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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손님을 기다립니다. 날이 좋든 좋지 않든.
 오늘도 손님을 기다립니다. 날이 좋든 좋지 않든.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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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지기로 일하지만 책 파는 능력 따위는 없다. 책 파는 데 필요한 능력이 뭐냐고 물어보면 나도 뭔지 똑바로 대답하지 못하겠지만 (나야말로 듣고 싶다) 몇 가지 꼽아볼까? 사람들과 대화를 잘하는 것? 책에 대한 지식? 책을 기막히게 소개하는 말발? 빠르게 많이 담을 수 있는 정보력? 역시 다 부족하다.

내가 책을 무진장 많이 읽은 것도 아니고 영업력이 좋은 것도 아니다. 독해력이 아주 좋아서 책에 대해 누구보다 잘 소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계산에 밝거나 기획력이 좋지도 않다. 책에 대한 사랑이 아주 남다르거나 강력한 것도 아니다.

이 모든 것이 아주(아주아주아주) 부족하지는 않아서 책방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근데 하나 잘하는 게 있다. 잘한다고 오늘 문득 깨달았다. 아니 잘 해왔다는 게 정확한 표현 같다. 잘했으니 이건 나의 능력이다. 그건 기다리는 일.

추운 날에는 추워서 손님이 없고, 더운 날은 더워서 손님이 없고, 날이 좋은 날은 날이 좋아서 손님이 없는 책방(이후북스만 없는 건가?). 하지만 책방의 문은 변함없이 열려 있다. 사람이 없으니까 코딱지나 후비며 너부러져 있고 싶지만, 손과 머리를 부지런히 놀린다.

문만 연다고 공간이 열리는 건 아니니 청소도 하고 책도 정리하고 음료도 준비한다. 책방도 나와 같이 기다리는 것이다. 하지만 기다린다고 다 만날 수 없는 곳이 책방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무관심한 시선을 견뎌야 하고 관심 어린 시선은 그것대로 감당해야 하고 우연한 시선들은 버텨가며 책방을 지켜야 한다. 약속 장소에서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기다린다고 다 만날 수 없는 곳이 책방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무관심한 시선을 견뎌야 하고 관심 어린 시선은 그것대로 감당해야 하고 우연한 시선들은 버텨가며 책방을 지켜야 한다.
 기다린다고 다 만날 수 없는 곳이 책방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무관심한 시선을 견뎌야 하고 관심 어린 시선은 그것대로 감당해야 하고 우연한 시선들은 버텨가며 책방을 지켜야 한다.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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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예전부터 나는 약속을 하면 대부분 먼저 나가 기다렸다(사실 친구들이 하나같이 시간 개념이 없기도 했다). 먼저 나가서 기다리면 마음의 여유가 있다. 기다리는 사람을 생각하며 조바심내지 않아도 된다. 책도 느긋이 읽을 수 있다. 책 읽을 시간을 벌려고 일부러 일찍 약속 장소에 나가는 일이 많았다.

(책을 읽기 위해 기다리는 것과 기다리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은 아주 큰 차이가 있지만) 이때부터 단련이 되었나? 좋아하는 사람을 기다릴 때는 기다리는 시간이 길수록 행복하다. 함께 이동할 장소, 먹을 거리, 같이 나눌 이야기들을 미리 생각하면 재밌기도 하다. 이렇게 기다리는 것을 즐길 줄 안다면 책 파는 데 안성맞춤인 능력이라 말하고 싶다(최고의 능력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이 능력을 가졌다고 책을 많이 팔 수 있는 건 아니다. 기다리기만 한다고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오거나 알아서 책을 사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무엇보다 덜 지칠 수 있다. 책방 문이 열리고 닫히는 시간까지 손님 없는 시간이 초조하거나 불안하거나 심심하거나 절망스러웠다면 정말이지 책방을 유지하지 못했을 거다. 기다리는 시간을 내 것으로 이용하며 하루를 즐길 수 있다면 오늘처럼 내일도 만들어 갈 수 있다. 책방은 그게 필요하다. 그 시간의 흐름 속에 누군가는 찾아오기 마련이니까.

기다리고 있다가 만나면 더욱 반갑다. 더욱 소중하다. 열 사람이 온 것보다 한 사람이 소중할 때, 이제는 잊었다고 생각한 초심이 되살아난다. 그렇다면 여기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내가 해온 만큼 더 나아갈 수 있다. 비가 무섭게 내린 날도 난 기다렸다.

무더우리라 예상되는 날도 기다린다. 아직 만나지 않았다면 미리 인사해야지. 반갑습니다 (그리고 책 좀 사세요). 그런데 기다리지 못하는 능력이 있다면 책 팔 때 더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역시 책을 파는 건 어렵네요.

덧붙이는 글 | - 글쓴이는 이후북스 책방지기입니다. 아는 사람들은 '황부농'이라고 부릅니다.



태그:#이후북스, #독립책방, #독립출판물, #동네책방, #책방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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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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