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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휴대폰 요금이 밥값 정도인 나라가 있다. 중동의 IT 강국인 이스라엘은 웬만한 음식 값이 1만5천 원 안팎일 정도로 우리나라보다 물가 수준이 높지만 통신비만큼은 놀랄 정도로 싸다. 월 1만 원 정도면 음성통화와 문자메시지는 무제한이고, 데이터도 5GB(기가바이트) 이상 쓸 수 있다.

그에 비해 한국에서는 이 정도 쓰려면 5배인 월 5만~6만 원은 내야 한다. 음성통화 무제한 요금제 가운데 가장 저렴한 것도 월 3만 원대이고, 데이터는 고작 300MB(메가바이트)다. 한국 소비자는 이스라엘보다 요금은 3배 이상 내고도 데이터는 1/10도 못 쓰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정작 한국 언론에게 이스라엘의 값싼 통신비는 '공공의 적'이다.

밥값보다 싼 이스라엘 통신비가 포퓰리즘 결과?

"정부 주도 개혁으로 통신비 부담은 크게 줄었지만 통신 산업 기반은 취약해지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모바일 인터넷 보급률은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조선일보] 이스라엘의 통신비 교각살우)

"이스라엘은 '통신비가 비싸다'는 국민 불만을 수용, 대대적 경쟁정책을 도입해 통신비를 낮추는 데 성공했지만, 통신사 적정이윤 보장에 실패하면서 선진국 가운데 최하위 통신품질을 기록하는 불명예를 안았다."([전자신문] 포퓰리즘의 최후...'이스라엘의 비극')

국내 일부 언론은 이스라엘 정부가 통신시장에 개입해 가계통신비를 최대 1/10까지 낮췄지만 그 바람에 통신사 매출이 줄고 투자가 줄어 통화 품질이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기본료 폐지 등 통신비 인하를 약속한 문재인 정부를 향해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정책'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일종의 경고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과연 이들 보도대로 이스라엘의 통신시장 경쟁 활성화 정책은 실패한 포퓰리즘 정책일까? <오마이팩트>는 '기본료 폐지'에 이은 통신비 팩트체크 두 번째로, 한국과 이스라엘의 가계통신비 인하 정책을 비교했다.(관련기사: 기본료 폐지는 포퓰리즘? 통신사 3대 거짓말)

한국-이스라엘 음성 무제한 요금제 비교. 이스라엘에선 음성통화와 문자메시지를 무제한 제공하는 요금제가 월 1만 원대에 쓸 수 있다. 무선 데이터 제공량도 6GB~20GB까지 다양하게 제공한다. 반면 한국에서 음성 무제한 요금제는 최소 월 3만2천 원대이고, 5~6GB 데이터를 쓰려면 5만~6만 원대 요금제에 가입해야 한다.
 한국-이스라엘 음성 무제한 요금제 비교. 이스라엘에선 음성통화와 문자메시지를 무제한 제공하는 요금제가 월 1만 원대에 쓸 수 있다. 무선 데이터 제공량도 6GB~20GB까지 다양하게 제공한다. 반면 한국에서 음성 무제한 요금제는 최소 월 3만2천 원대이고, 5~6GB 데이터를 쓰려면 5만~6만 원대 요금제에 가입해야 한다.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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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3사 독과점과 비싼 통신비, 6년 전엔 한국과 닮은꼴

이스라엘은 물가가 높기로 유명하다. 우리나라 강원도만 한 좁은 땅에 800만 명 넘는 사람이 몰려 사는 탓도 있지만, 일부 대기업이 주요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어서다. 6년 전만 해도 이스라엘 통신비는 우리나라와 함께 OECD 최고 수준이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통신 아웃룩 2011' 보고서에서 한국과 이스라엘의 가처분소득 대비 통신비 비중은 2009년 기준 4.4%로, 멕시코(4.6%)에 이어 나란히 OECD 2위를 차지했다. 2011년 한국은 4.28%로 조금 떨어졌지만 멕시코를 제치고 OECD 1위로 올라섰고, 이스라엘(4.0%)도 4위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OECD 평균(2.68%)을 크게 웃돌았다. 
   
그즈음 이스라엘에선 극적 반전이 일어났다. 지난 2011년 여름 이스라엘 국민들은 '치즈 불매 운동'을 계기로 고물가와 재벌 횡포에 맞선 대규모 시민운동을 벌였다. 이스라엘 정부는 사회경제변화위원회를 만들어 각종 물가안정대책을 내놨는데 통신비도 예외는 아니었다.

2011년 당시 이스라엘 이동통신시장 경쟁상황은 우리나라와 비슷했다. 셀콤(Cellcom), 펠레폰(Pellephone), 파트너(Partner) 등 '빅3' 통신 대기업이 1000만 가입자 시장을 1/3씩 나눠 갖는 독과점 체제였다.

한국-이스라엘 이동통신시장 비교. 이스라엘은 국토 면적과 인구가 한국의 1/5 수준이지만 1인당 GNP가 높고 물가 수준도 높다.
 한국-이스라엘 이동통신시장 비교. 이스라엘은 국토 면적과 인구가 한국의 1/5 수준이지만 1인당 GNP가 높고 물가 수준도 높다.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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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 제5이통사 등장하면서 '반값 통신비' 시대 열려

한국과 이스라엘 모두 시장 활성화와 통신비 인하를 위해 새로운 사업자가 필요했다. 한국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제4이동통신사 시도가 번번이 좌절됐지만, 이스라엘은 2012년 핫모바일(HOTmobile)과 골란텔레콤(Golan)이 뛰어들면서 5사 경쟁 체제가 시작됐다. 여기에 우리나라 알뜰폰과 같은 MVNO(이동통신망임대) 사업자들까지 가세해 통신비 가격 파괴를 주도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통신법으로 새 사업자를 적극 지원했다. 우선 신규 사업자가 자체 통신망을 깔기 전에 기존 통신사 통신망을 7년까지 빌려 쓸 수 있도록 해 통신시장에 바로 진입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또 위약금이 붙는 약정 요금제도 없애 소비자가 언제든 다른 통신사로 쉽게 갈아탈 수 있게 했다. 아울러 분당 88원 정도이던 통신사 상호 접속료도 18원 정도로 80% 가까이 내려 저렴한 음성통화 무제한 요금이 나올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경쟁은 통신비 인하로 이어졌다. 한때 평균 140세켈(약 4만5천 원, 1세켈=약 325원) 정도였던 이스라엘 통신비는 1, 2년 만에 70세켈(약 2만3천 원) 수준으로 반 토막이 났다.

글로벌 투자금융회사 바클레이즈 2012년 9월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초반까지 월 9만 원(280세켈)에 이르렀던 통신3사 음성통화 무제한 요금이 새 사업자 진입 후 불과 한 달 만에 3만2500원대(100세켈)로 떨어졌다. 당시 핫모바일과 골란 등 새 사업자들이 데이터를 3GB까지 제공하는 음성·문자 무제한 요금제를 절반에도 못 미치는 3만 원대(89~99세켈)에 선보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이동통신시장 5사 경쟁 체제 이후 음성 무제한 요금제 가격 변화. 2012년 5월 핫모바일과 골란텔레콤에서 3만 원대(89~99세켈)에 음성 무제한 요금제를 내놓자, 최대 9만 원(280세켈)에 달했던 기존 통신3사 음성 무제한 요금 수준이 두 달만에 3만2천원대(100세켈)까지 떨어졌다.
 이스라엘 이동통신시장 5사 경쟁 체제 이후 음성 무제한 요금제 가격 변화. 2012년 5월 핫모바일과 골란텔레콤에서 3만 원대(89~99세켈)에 음성 무제한 요금제를 내놓자, 최대 9만 원(280세켈)에 달했던 기존 통신3사 음성 무제한 요금 수준이 두 달만에 3만2천원대(100세켈)까지 떨어졌다.
ⓒ 바클레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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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이스라엘 통신3사 가입자 1인당 평균 매출(ARPU)은 월 3만5천 원(108세켈) 정도로 우리나라 통신3사와 비슷했지만, 2013년 2만6천 원대(83세켈), 2015년에는 2만1천 원대(66세켈)로 4년 사이 40% 넘게 떨어졌다.

2년 만에 가입자를 100만 명까지 끌어올린 새 사업자들은 2014년 음성 무제한 요금 수준을 3만 원대에서 1만~1만4천 원대까지 낮췄다. 2014년 당시 이스라엘 식당 음식 값이 50세켈(약 1만6250원) 정도인 걸 감안할 때, '밥값보다 싸다'는 평가가 단순한 과장이 아닌 셈이다.(관련기사: [연합뉴스] "월 9천원 무제한 통화"…이스라엘 폰요금, 밥값보다 싼 이유 )

완전 자급제와 구매세 폐지로 단말기 값 거품도 제거

통신비를 낮추는 데 성공한 이스라엘 정부는 단말기 값 거품 빼기에 나섰다. 당시 이스라엘 통신3사도 우리나라 보조금처럼 특정 요금제에 가입하면 단말기 할부 대금을 일부 환급해주는 '기기대금 환급' 요금제로 단말기 판매시장을 80% 이상 장악하고 있었다.

이스라엘 정부가 지난 2013년부터 '기기대금 환급' 요금제를 폐지해 통신서비스(유심)와 단말기 판매 시장을 분리했다. 덕분에 통신사 단말기 가격이 급속히 떨어졌다. 당시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텔아비브무역관 보고서에 따르면 통신사 단말기 가격이 일반 개인판매점보다 40~80% 가량 비쌌지만 규제 이후 격차가 6~20% 수준으로 줄었다.

지난 4월부터는 15%에 이르는 스마트폰 구매세마저 없앴다. 이스라엘 스마트폰 가격에는 부가세 17%는 물론 특별소비세에 해당하는 구매세까지 붙어 세금만 30%가 넘었다. 정부가 구매세를 없애자 통신사들도 단말기 가격을 일제히 15% 정도 내렸다.

통신망 투자 감소-5위 사업자 매각이 통신비 인하 부작용?  

요금 경쟁이 심해지면서 통신사 매출도 자연스럽게 줄었다. 하지만 통신3사는 운영 비용과 인력을 대폭 줄이는 등 체질 개선에 나서는 한편 인프라 투자를 오히려 늘렸다. 규제 이전 통신3사 매출 대비 투자율은 7~8% 정도에 머물렀지만 2012년 11.9%로 오히려 늘어났고 4G 투자가 본격화된 2014년엔 13%로 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다만 2015년 이후 투자율이 다시 8~9%대로 떨어지고, 5G 등 차세대 통신망 투자도 한국 등 다른 선진국에 비하면 더딘 건 사실이다.

오픈시그널에서 2016년 11월 발표한 국가별 LTE 비교 결과 한국은 4G(LTE) 이용률(95.71%)과 4G 속도(45.77Mbps) 모두 세계 1, 2위를 다투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각각 57.64%, 21.13Mbps로 중하위권에 머물렀다. 다만 영국(57.9%, 21.16Mbps), 프랑스(49.44%, 24.28Mbps) 같은 EU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이고 오히려 4G 속도는 글로벌 평균(17.4Mbps)은 물론 미국(81.30%, 13.95Mbps)보다도 빨랐다.

국가간 통신 품질 비교에서 이스라엘이 하위권에 있다고 해서 통신 정책이 실패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통신요금 수준이나 소비자 편익 등을 복합적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외국 통신시장 실태를 조사해온 공진기 010통합반대시민모임 대표는 "나라별로 통신시장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데이터 속도 등 품질을 단순 비교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면서 "오히려 데이터 속도가 일정 속도 이상 올라가면 소비자가 체감하기 어려운데도 국내 통신사처럼 LTE도 모자라 LTE-A, 5G에 계속 투자해야 한다면서 비싼 통신요금을 유지하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국통신소비자협동조합 이사인 한현배 아주대 겸임교수도 "지금까지 국내 통신사들은 통신망에 투자한다는 명분으로 국민에게 비싼 요금을 받으면서도 망 투자에 써야할 돈으로 계열사 규모만 늘렸다"면서 "통신비 인하 때문에 통신망 투자가 어려운 게 사실이라면 차라리 투자를 중단하고 국가 차원에서 공용 통신망을 만드는 게 더 나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 언론은 5위 사업자 골란텔레콤 매각을 '포퓰리즘의 종착지'라고 평가하기도 했지만 새로운 경쟁의 시작일 뿐이다. 골란은 가격 파괴를 주도하며 가입자를 80만 명까지 늘렸고 핫모바일, 셀콤 등 기존 통신사와 합병을 시도했지만 통신사 독과점을 우려한 정부 반대로 무산됐다. 결국 지난 4월 이스라엘 가전회사인 엘렉트라가 약 1억 달러에 인수했다.

이스라엘 통신업계는 골란 매각을 계기로 요금 인하 경쟁이 멈추기를 바라고 있지만, 6번째 이통사인 'Xfone'까지 서비스를 시작하면 경쟁이 더 치열해질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이스라엘 정부와 소비자들이 통신비가 다시 예전 수준으로 돌아가는 걸 바라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한 한인 동포는 지난 9일 <오마이뉴스>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스라엘 국민들은 통신비가 줄어 혜택을 입었기 때문에 통신 정책이 성공했다고 보고 있고 통신시장뿐 아니라 식품시장을 비롯해 독점이 존재하는 다수 시장에서도 이같은 정책으로 경쟁 강화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 통신사도 "완전자급제 하면 6천~1만2천 원 요금 인하"

국내 한 통신사가 최근 국회와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제출한 가계통신비 개선방안 보고서. 통신서비스와 단말기 판매를 완전 분리하는 완전자급제를 제안하고 있다.
 국내 한 통신사가 최근 국회와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제출한 가계통신비 개선방안 보고서. 통신서비스와 단말기 판매를 완전 분리하는 완전자급제를 제안하고 있다.
ⓒ 녹색소비자연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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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언론은 이스라엘 통신 정책을 '포퓰리즘'으로 몰고 있지만, 정작 국내 통신사는 이스라엘과 유사한 정책을 정치권에 제안했다.

국내 한 통신사는 최근 국회와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제출한 가계통신비 개선 방안 보고서에서 이스라엘처럼 통신서비스와 단말기 판매를 분리하는 완전자급제를 제안해 눈길을 끌었다. 녹색소비자연대에서 지난 12일 공개한 문건에는 완전 자급제를 도입할 경우 통신사가 보조금으로 지급하던 마케팅비가 줄어 요금제에 따라 월 6천~1만2천 원까지 요금이 인하되고, 단말기 출고가도 인하되리라는 전망이 담겨있다. 아울러 현재 분당 14.56원인 이동전화 상호 접속료도 없애 음성무제한 요금제 가격을 낮추고, 다른 사업자로 갈아타기 쉽게 약정 위약금도 축소하자고 제안했다. 

이스라엘에서 시행한 정책 가운데 ▲상호 접속료와 약정 위약금 축소내지 폐지 ▲완전 자급제와 세금 감면을 통한 단말기값 인하는 이처럼 국내 통신사에서 제안한 내용과 일맥상통하고 ▲신규 통신사와 알뜰폰(MVNO) 경쟁을 통한 자발적 요금 인하는 이미 우리 정부도 시도했거나 시행하고 있다.

이스라엘 이동통신요금 경쟁으로 통신사 매출이 줄면서 투자 규모가 줄고, 통신 품질 국제 비교 결과 하위권으로 평가되는 등 일부 부정적인 효과가 나타난 건 사실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통신업계 관점의 평가일 뿐이다. 오히려 소비자 관점에서 보면 정부가 통신사들의 자발적인 요금 경쟁을 유도해 가계통신비 부담을 크게 낮췄다는 점에서 성공한 정책으로 평가할 수 있다.

또한 이스라엘 정부가 시행한 정책들 역시 과거 한국 정부에서도 일부 시도했거나 최근 국내 통신사에서 정부에 제안하는 내용임을 감안하면, 통신업계 사정을 무시하고 국민 요구만 일방적으로 반영한 '포퓰리즘 정책'으로 보기도 어렵다.

이에 <오마이팩트>는 '이스라엘의 이동통신시장 경쟁 활성화 정책이 포퓰리즘 정책 실패 사례'로 본 국내 일부 언론 평가를 '대체로 거짓'으로 판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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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통신비인하, #이스라엘, #팩트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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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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