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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무소는 주민자치'센터', 경찰서는 치안'센터'(자료사진)
▲ 관공서 영어표기 동사무소는 주민자치'센터', 경찰서는 치안'센터'(자료사진)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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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1일, 전국의 2166개의 '동사무소'라는 명칭이 '주민센터'로 변경됐다. '주민센터'의 '센터'란 말할 것도 없이 영어 'center'를 의미한다.

'센터'라는 명칭은 비단 '주민센터'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치안센터를 비롯해 119안전센터, 해경안전센터, 고용안전센터, 물재생센터, 청년건강복지센터, 수산기술지원센터, 국립청소년농생명센터, 청소년해양센터 등등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LH니 SH라는 로마자 표기도 대담하게 사용된다. 각각 한국토지공사와 서울토지공사의 영어 표기다. LH 청약센터니 LH 고객센터,  LH 청년소셜벤처, LH 그린리모델링 등의 명칭도 공식적 용어로 서슴없이 사용된다. 그뿐만 아니라 KT&G, NH, NH생명, aT, KEPCO, KOPEC, KB, KT, KDB, IBK 등등…. 영문 약자 상호의 홍수다.

더구나 이제 '주민센터'는 '행복복지센터'라는 이름으로 또다시 바뀌고 있다. 심지어 어떤 지역에서는 그간 잘 사용하던 '여성회관'이란 이름을 '여성비전센터'로 바꿨다. 과연 우리나라 국가기관의 명칭에 영어를 무분별하게 사용해도 되는 것인가?

2007년 12월 대선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영어 대화가 가능하도록 정부가 책임지겠다'고 공약했다. 이 후보가 당선된 후 인수위 시절에는 유명한 '어륀지' 발음 논란이 있었다. 집권 후에는 영어 관련 정책을 중점적으로 추진했다. 일부 보수 논객들은 '영어 공용화론' 혹은 '영어의 제2공용어 지정론'을 강력히 제기했다.

'어륀지' 발음 파동과 '주민센터'라는 용어의 출현으로 상징되는 흐름은 과도한 영어 중시 경향성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 시기부터 조기영어교육 풍조가 사회 이슈로 본격 대두되기도 했다.

언어란 한 국가의 정체성과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 자체로 민족정신을 담는 수단이다. 국가기관과 공기업 등의 명칭에 영문 또는 영문 약자가 범람하는 사회에선 우리말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일본어를 자막으로 버젓이 사용하는 공영방송

지난 주말 KBS 예능프로그램인 <1박2일>을 시청했다. 방송 도중 화면에 큰 글자로 '츤데레'라는 자막이 표기됐다.

사실 시청자 중에는 '츤데레'라는 용어를 전혀 모르는 경우도 많다. 우리말도 아닌 일본어를 버젓이 자막으로 사용하는 태도는 '츤데레'를 모르는 시청자층을 완전 무시하거나, 아니면 '츤데레' 용어는 모든 국민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과연 이러한 행태가 공영방송이 할 일인가(관련 기사 : '천황에 귀의하다'로 쓰인 '귀화', 알고 계셨나요?).

언어의 자주성을 잃게 되면, 민족의 자주성도 잃게 된다. 부디 새 정부는 범람하고 있는 '센터' 명칭을 바로잡고 방송 용어 정화에도 힘을 기울여 우리 언어 정책의 '중심'을 세워내길 진심으로 바란다.


태그:#주민센터, #어륀지, #언어정책, #츤데레, #1박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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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학 박사,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근무하였고, 그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이상한 영어 사전>,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 <논어>, <도덕경>, <광주백서>, <사마천 사기 56>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시민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 그리고 오늘의 심각한 기후위기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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