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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언론에는 소위 '중앙'이라는 '서울발' 기사만 차고 넘칠 뿐 내가 사는 곳을 다룬 기사는 찾기 어렵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지역이 희망'이라는 믿음으로 지역 시민기자를 만나러 가면서 해당 지역 뉴스를 다룹니다. 첫 행선지는 대구입니다. [편집자말]
화재후 서문시장 4지구의 모습
 화재후 서문시장 4지구의 모습
ⓒ 박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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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시장 화재 후 반년의 시간이 흘렀다. 화재를 당했던 지인이 서문시장 1지구에 새 점포를 다시 냈다고 해서 찾아가 보았다. 대구의 후덥지근한 여름 한낮, 시장은 대체로 조용했다.

중구청은 상가 건물 들어가는 방안 제시했지만...

- 어떻게 보상이 좀 이루어졌나요?
상인 정OO: "보상이요? 성금 들어온 돈이 약 76억 원이었는데, 요전에 그것을 상인들에게 나누어줬어요. 저도 1300만 원 받았어요."

- 다른 데서 받은 건 전혀 없어요?
상인 정OO: "나는 보험도 안 들어 놓았고요. 다른 상인들도 거의 보험 안 들어놓았어요. 들어놓은 사람들도 받은 액수가 크지 않아요. 약 3000만~4000만 원 그 정도요."

- 대구시나 중구청에서는 보상을 해주지 않았나요?
상인 정OO: "베네시움이라고 서문시장 건너편에 있는 상가 건물을 손봐서 거기에 들어가는 방안을 마련해주었지요. 월세나 보증금 없이 관리비만 내는 조건으로요. 관리비가 한 평당 10만 원인가? 내가 들어갈 게 아니라서 정확한 건 잘 몰라요."

화재후 새로 차린 가게
 화재후 새로 차린 가게
ⓒ 박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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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거기 안 들어가고 따로 점포를 얻으신 거예요?
상인 정OO: "아직도 공사하고 있으니 시간도 많이 지체되고... 또 거기는 교통도 불편해서 장사가 잘 안될 것 같아서요. 시장에 붙어 있어야 그나마 손님들이 오지, 따로 떨어져 있으면 쉽지 않지요. 지인과 제 단골 고객들이 십시일반 보증금과 1년 치 월세를 마련해줘서 다시 시작한 거예요. 여기가 원래 창고 있던 곳인데, 불탄 상가들이 이곳에 입점하면서 월세가 많이 올랐어요."

-아 그렇군요. 주변 분들이 많이 도와주셨네요.
상인 정OO: "그 힘으로 다시 시작한 거지요. 전 재산을 날리고 나니 맥이 많이 풀렸어요. 주변 상인들 중에 화병 난 사람도 있고, 겉으로 다 표를 안 내서 그렇지 장사 때려치운 사람도 있고 그래요."

화재 원인은 불명... 재가 된 '쌈짓돈'

- 불이 난 원인은 규명이 되었나요?
상인 정OO: "그냥 유야무야 넘어갔지요. 경찰에서는 점포에서 누전된 거라고 단정짓고 거기에만 초점을 맞춰 수사를 하더라고요. 우리가 노점상에서 옮겨 붙었을 가능성을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쪽 수사는 전혀 안 해요. 대형 화재가 나면 화재 원인이나 제공자를 잘 찾아내야 되잖아요. 수천, 수만의 생계줄을 다 앗아가 버린 화재인데 원인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채로 그냥 종결되었어요."

- 저도 그 뒤 정확한 화재 원인에 대해 보도하는 것을 듣지 못했어요. 현 정권에 대해선 사람들 민심이 어때요?
상인 정OO: "전부 제 코가 석자니 이렇다저렇다 말은 별로 안 해요. 잘한다고 칭찬하는 것도 아니고, 그전처럼 좌파니 뭐니 그런 말도 없구요. 그냥 잠자코 지켜보지요. 다만 박근혜 불쌍하다는 소리는 하지요. 주변 사람들에게 속아서 그렇다고요. 정작 불쌍한 건 우리들인데도요. 저만 해도 천연 염색 등을 주로 취급했는지라 물건값이 한 2억 가까이 돼요. 잿더미 속에서 하나도 못 건졌어요. 하다못해 가게 안에 두었던 나무 금고까지 불타 버렸지요. 그날따라 매일 오던 금융기관 수금원이 오지 않아서 상인들에게 입금할 돈을 거둬 가지 않은 거예요. 불타 버린 액수에 비하면 그날 번 돈이야 쌈짓돈이지만 그 쌈짓돈마저 재가 되어 버린 거지요."

불에 탄 철제금고와 지폐
 불에 탄 철제금고와 지폐
ⓒ 박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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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사이에 정씨의 카카오톡이 울렸다. 철제 금고 안에 새카맣게 탄 돈뭉치가 들어있는 사진이었다. 불에 탄 돈이라도 나오면 한국은행에서 절반이라도 새 돈으로 바꿔준다고 한다.

4지구 불탄 자리는 거대한 성채처럼 에워싸져 있었다. 둘러쳐진 담장에는 4지구 점포들이 옮겨간 장소 알림판이 담벼락 가득 벽보처럼 붙여져 있었다. 옆에 있는 1지구로 간 가게, 서문 지하상가, 동산상가 등, 그들의 새 둥지는 다양했다. 속상한 마음을 떨쳐버리고, 새 희망의 민들레 홀씨처럼 형광색지로 붙였을 알림판이다.

화재후 4지구 점포 이전을 알리는 알림판
 화재후 4지구 점포 이전을 알리는 알림판
ⓒ 박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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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안내로 예전에 향토답사반 아이들을 데리고 방문했던 적이 있었던 한복점 주인을 만났다. 아내가 한복을 만들고, 남편은 점포를 운영하며 열심히 사시는 분들이셨다. 그때 아이들에게 음료수를 나눠주고 서문시장 역사에 대한 아이들의 질문에 친절히 답해 주셨다. 불이 난 후 '그분들 점포는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했는데 수소문 끝에 1지구로 옮긴 가게를 찾을 수 있었다.

"서문시장과 함께 제 청춘을 보냈어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이곳에서 점원으로 일하며 내 인생의 첫 출발을 했어요. 그렇게 일하다가 내 점포를 가지고 독립했어요. 20년이 훨씬 넘는 세월 동안 서문시장에 모든 청춘을 다 바쳤지요. 결혼도 하고, 아이들도 키우고... 이런저런 힘든 일들도 겪었지만 이번은 제가 시장 들어온 후 가장 큰 위기였어요. 비싼 천들이 많아서 피해액수도 아주 컸지요. 불나고 몹시 바빴어요. 넋 놓고 있을 여유가 없었던 게 오히려 도움이 됐다고나 할까요? 주문받은 한복 십여 벌도 모두 타 버려서 부랴부랴 다시 한복 짓고 하느라 정신없이 보냈어요."

- 이곳에 새 점포 낸 지는 오래 되셨어요?
한복집 주인(남편): "1월에 왔으니 벌써 반년이네요."

서문시장 화재 점포 대체상가인 베네시움
 서문시장 화재 점포 대체상가인 베네시움
ⓒ 박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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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시에서 제공하는 베네시움으로 이사 안 가시나요?
한복집 주인: "거기도 여러 가지로 문제가 복잡해요. 대구시에서 60억 가까이 지원해서 리모델링을 하고 있거든요. 근데도 베네시움 점주 대표와 우리 대표가 점포세 무상 계약 기간 시작일을 우리가 입점하는 날로 하는 게 아니고, 수리 시작한 1월부터 하기로 계약했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우리가 들어가서 무상으로 장사할 수 있는 기간이 채 2년도 되지 않거든요. 점포 꾸미는 데 자기 돈 들여야 하구요.

그래서 입점을 포기하는 상인들이 늘고 있어요. 지금 이 점포도 불안불안해요. 계약 기간이 끝나면 가게 주인이 점포세 올리려고 할까 봐요. 지금으로선 새 건물 짓는 게 최선의 해결책이에요. 화재 후 대체 장소가 금방 마련되는 것도 아니고, 그곳으로 옮겨가서 장사가 잘된다는 보장도 없고, 여기 저기 옮길 때마다 점포 꾸미는 비용은 비용대로 들고요.

4지구에도 자기 점포 가지고 장사했던 사람, 남의 점포에 세만 들었던 사람, 자기 점포 반, 세 얻은 점포 반으로 장사했던 사람, 모두 입장이 다르다보니 서로 의견을 합한다는 게 쉽지는 않아요. 그래도 우리는 어서 빨리 건물이 다시 서는 것만 학수고대 하고 있어요. 때로는 여러 가지 돌아가는 상황이 못마땅해도 내색하지 않고 새 건물 짓기만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대구시에서는 4지구만 다시 짓는 게 아니고 서문시장의 다른 건물까지 모두 합쳐서 큰 쇼핑센터식으로 지으려 한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그러면 그것은 전통시장이 아니잖아요? 그냥 쇼핑센터지, 쇼핑센터에 우리 같은 포목전이 들어갈 수나 있겠어요?"

- 제가 듣기로는 새 정부에서 '전통시장 살리기'에 엄청난 공을 들인다고 알고 있는데요. 국가 정책 방향과는 어긋나네요. 전통시장은 전통 시장다워야지요.
한복집 주인: "전통시장이 좀 질서 없는 것 같이 보여도, 점포뿐 아니라 노점상 등 전체 부양 인구가 어마어마하지요. 서문시장을 싹 밀고 현대화시키면 말 그대로 시장은 없어지는 거예요. 번쩍번쩍한 빌딩에서 지금처럼 저렴한 가격대를 유지할 수가 없지요. 그리고 그렇게 하자면 어느 세월에 건물을 완공하겠어요. 그냥 불난 건물이나 다시 짓게 해달라는 그 마음밖에는 없습니다. 내년 지방 선거 전에 그렇게 추진 안 되면 또 한세월 기다려야 하는 거예요. 어차피 우리 돈으로 설계비, 건축비 내서 다시 짓는 것이니, 제발 우리 뜻대로 빨리 추진되면 좋겠습니다."

한복집 주인(아내): "요즘 서문시장은 먹는 가게만 잘 되는 것 같아요. 같이 더불어 사는 것이 시장의 장점이긴 한데요. 먹는 가게는 사실 정식 점포가 아닌 곳이 대부분이니, 가스나 전기 시설 등이 좀 걱정이 되긴 해요. 너무 무분별하게 허가를 내주다보니 지나다가 보면 허술한 시설물들이 한두 곳이 아니에요.

야시장까지 개점해서 더 그런 거 같아요. 노점 권리금이 1억 되는 곳도 있다고 들었어요. 어떤 때는 우리보고 빨리 차 빼라고 하기도 해요. 야시장 문 열어야 한다고요. 근처 노점 음식 가게들도 덩달아 영업시간이 늘어나는 거예요."

서문시장다운 모습으로 재건축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상인이나 대구 시민들이나 매한가지이니, 대구시가 이런 여론을 잘 수렴해서 어서 빨리 재건축에 나섰으면 한다.

불난 후 몸과 마음이 어수선한 상태에서도 시장 사람들은 힘을 내어 새로운 삶터를 꿈꾸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고 있었다. 모쪼록 이런 참변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대구시는 안전한 서문시장 만들기에 만전을 기했으면 한다. 불난 자리가 제대로 아물어 새 살이 돋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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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서문시장 화재의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수사는 종결되었다. 원인이 제대로 규명되어 다시는 이런 대형 화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큰 피해를 당해 정신적, 경제적 고통을 견디고 있는 시장 상인들과 그와 관련된 분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마음을 담아 썼다.



태그:#서문시장, #서문시장화재, #서문시장4지구, #박근혜, #전통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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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팔공산 자락에서 자스민심리상담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교육과 여행에 관한 기사나 칼럼을 쓰고 싶은 포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보는 ssuk02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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