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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기사: 성 경험을 '격려' 소재로 삼은 조교, 심각하다]

메르스(MERS) 여파가 가시질 않던 2015년 6월 28일 일요일, 공군 훈련소를 떠나 당도한 곳은 군수학교였다. 규율이 훈련소처럼 엄격하긴 했지만 몸은 많이 편해졌다. 하루 일과 중 대부분이 실내 수업이었다. 수업은 학교 수업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교관들은 훈련소처럼 강압적으로 병사를 억누르기보단 웃음을 주는 상냥한 간부였다.

훈련소를 생각하면 확실히 군수학교 밥이 잘 나왔다. 밥은 이등병 교육생뿐 아니라 간부 후보생, 교관에게도 공통된 밥이 나왔다. 훈련소 밥은 어쩌다 나오는 '에이스' 같은 과자가 주식으로 여겨질 정도로 악명이 자자했다. '군대리아'가 나올 때 같이 나오던 시리얼이 그리워지곤 했다.

당시 특식(?)으로 배분되던 전투식량은 제조기한을 보면 2012년 5월 31일, 유통기간은 3년, 먹던 날은 2015년 5월 27일. 즉, 폐기를 앞둔 식량을 먹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어쩌다 몽쉘 같은 과자가 훈련소에 나오면 한 번에 대량으로 지급하고, 이걸 남기지 말고 다 먹어치우라는 식이었다. 맛으로 먹는 게 아니었다. 열량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었다.

특기학교에서 필자가 보냈던 편지
 특기학교에서 필자가 보냈던 편지
ⓒ 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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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이 치열했던 지역은

필자가 부여받은 특기는 '항공기재보급'이었다. 말만 보급이지, 그 범위는 다양하다고 들었다. 어디 자대로 가냐에 따라 급양으로 차출되기도 하고, 세탁소 일을 맡기도 하며, 부품 물자 처리를 위해 때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업무를 맡을 수 있다고 들었다. 이를 한데 아울러 '보급'으로 통칭한 거였다.

수업을 한창 받던 7월 7일, 자대 'TO'가 공개됐다. 이제 갓 훈련병 딱지를 뗀 이등병의 초미의 관심사이기도 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서울에 사는데 가령 부산에서 근무를 하게 된다면 집을 오가는 것도 일일 것이며, 휴가 때 지출하게 될 교통비도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교육을 받는 이등병들은 거주지 비중이 수도권이 높았고 다음은 경상, 전라, 충청 순이었다. 그런데 공개된 TO는 경상과 충청의 비중이 높았다. 수도권은 10명 내외였던 데 비해, 충청도는 그보다 많은 15명, 경상권은 16명이었던 것이다. 강원도는 8명, 전라도는 4명에 불과했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병사들은 당연히 수도권에 신경을 모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경쟁은 경쟁인 만큼, 수도권에서 밀려버리면 차선책으로 충청권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었다.

이등병들의 기피 지역

TO중엔 지뢰로 여겨지는 것들도 나왔다. 강원도 고성과 태백이 그랬다. 이등병 사이에선 기피 지역으로 분류됐다. 장점이라면 휴가를 더 얹어준다는 것. 이외에 체감할 만한 장점은 없었다. 수도권에 살더라도 경쟁에서 밀리고 밀려 고성과 태백에 근무할 수 있는 처지였다.

교관들은 옛 일을 꺼내며 과거엔 울릉도나 백령도 같은 TO도 간혹 등장했다고 알려줬다. 울릉도와 백령도는 날씨 상황에 따라 육지에서 오가는데 변수가 많은 곳이다. 특히 울릉도는 겨울에 폭설이 많이 와 병사들의 고충이 큰 것으로 알려지던 터였다.

문제는 원하는 지역의 자대에 가고 싶어도 그럴 수는 없다는 것. 훈련소 성적과 특기학교 성적을 더해 자대를 지원하는 체계였기 때문에, 점수에서 밀려버리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배치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점수의 비중은 훈련소에서 받은 게 컸다.

특기학교에서 받는 성적은 대개 실습 위주이기 때문에 편차가 크지 않지만 훈련소 성적 중 사격 점수는 한 발만 못 쏴도 점수의 편차가 커지기 때문에 사격에서 점수의 희비가 많이 엇갈렸다. 사격을 잘하면 자대를 배치 받는 데 우위를 점할 수 있었고, 그러지 못하면 경쟁에서 밀리고 밀려 추첨에 명운을 맡기는 방법밖엔 없었다.

필자가 특기학교에서 받은 편지.
 필자가 특기학교에서 받은 편지.
ⓒ 서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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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격에서 명운 엇갈려

필자는 사격을 그리 뛰어나게 하질 못했다. 당연히 훈련 점수도 낮을 수밖에 없었다. 이는 특기학교에서 자대를 배치 받는 데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했다. 수도권에서 살지만 사격 점수에서 크게 밀려버리자 '추첨 대상'으로 꼽히고 말았다. 결국 그나마 집 가까운 자대로 배치를 받길 소망하는 수밖에 없었다.

교육생들 가운데선 자대의 위치뿐 아니라 일의 강도가 어떤지 면밀히 따져보려는 흔적이 역력했다. 어느 자대는 편하더라, 이 자대는 힘들더라 식의 카더라가 도처에 떠돌았다. 어느 교육생은 편한 자대에 집착한 나머지, 동기 교육생들에게 "이 자대는 어떤 거 같냐"며 시시콜콜 자문을 구하다 핀잔을 듣기도 했다.

필자의 자대는 추첨 끝에 서산으로 결정됐다. 사실 살면서 이름만 들었지 진주(공군 훈련소가 위치한 곳)처럼 처음 가보는 데였다. 서울 집과 매우 근접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2시간 걸려 서울에 갈 수 있다는 데 위안을 삼아야 했다. 다만 가게 된 곳이 일이 많다고 소문난 곳이라 일복이 군대에 적용되는 건 아닌지 짐짓 궁금했다.

강원도 고성과 태백으로 배정받은 교육생은 탄식했지만 이내 휴가를 더 많이 얻는다는 걸 위안으로 여겼다. 사실 스스로 위안을 하는 거 외엔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다. 배정을 받은 이상, 그건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할 일이었다. 2개월여 훈련을 모두 마치고 이제 22개월간 지내야 할 곳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서산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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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공군, #훈련소, #수도권, #서울, #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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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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