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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양균이 돌아왔다. 정통 관료 출신인 그는 참여정부 당시 기획예산처 차관, 장관을 거쳐 청와대 정책실장까지 지낸 인물이다. 당시 정권의 경제정책 밑그림을 그려낸 핵심 설계자로 알려져있다. 특히 복지비전의 수립에 중대한 역할을 담당하였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집권 후 이어가겠다고 발표한 '비전 2030'이 만들어지는 데에 큰 역할을 수행했다.

10년간의 보수정권이 들어선 이래 그는 민간에서 경제 평론가이자 벤처 투자자로 현실 정치와는 거리를 둔 채 살아왔다. 하지만 정권이 교체된 지금, 비전 2030 수립의 핵심 주체들(김동연, 홍남기 등)이 문재인 정부의 'J 노믹스' 주역으로 등판하기 시작하며 다시 변양균에게 이목이 쏠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새 정부의 '숨겨진 설계자', '경제 실세' 등의 명칭으로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근래에 출간된 그의 저서 <경제철학의 전환>은 그렇기에 주목해 볼 만하다. 앞으로 5년간 문재인 정부가 펼쳐나갈 경제정책의 큰 틀 뿐 아니라 액션 플랜까지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의 주장이 모두 그대로 반영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언론과 학계, 시민 여론 전반에서 경제를 다루는 데에 있어 지금까지와는 다른 대변화가 필요하다고 요구하는 시점이다. 그리고 변양균 역시 같은 입장에 서있다는 점에서, 그 '대변화'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이 책을 통해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슘페터식 '공급혁신'과 '제 3의 길' 지향

변양균 저 <경제철학의 전환>, 2017.06.25
 변양균 저 <경제철학의 전환>, 2017.06.25
ⓒ 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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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핵심은 명료하다. '공급혁신'에 집중하자는 것,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환경을 조성하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공급혁신은 무엇일까, 그리고 기존에는 왜 그것을 안 했던 것일까?

여기에서 책 제목에 담겨있는 '전환'의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케인스식'에서 '슘페터식'으로, 그리고 '수요정책'에서 '공급정책'으로의 전환을 뜻한다. 전자가 기존에 (좌우를 막론하고) 정부가 경제를 다루는 입장이었다면, 저자는 후자의 입장이 새 시대에 걸맞다고 주장한다.

공급혁신은 말 그대로 공급, 즉 생산의 혁신을 의미한다.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를 더욱 촉진하려는 정책이다. 기존에 정부가 경제에 대한 정책을 수립했을 때, 그것은 십중팔구 어떻게 하면 소비를 진작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 즉 수요를 대변하는 정책이었다. 그래서 토건 사업을 벌이고 금리를 낮추었다.

하지만 그런 시도로는 저성장, 4차 산업혁명이 대두되는 시대에 유의미한 결과를 낼 수 없다는 것이 변양균의 입장이다. 더 많은, 새로운 기업들이 창조적 혁신을 통해 시장을 만들어내고 그 결과 고용을 창출해 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식이 더 적합하다는 것이다.

이것을 위한 정책은 필연적으로 추상적이거나 장기적일 수밖에 없기에 관료들에게 외면받아 왔다. 하지만 기존의 정책들이 지난 10년의 세월간 반복되어 사용되었음에도 효과를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중복되는 시도는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공급혁신의 이야기나 주장을 듣다보면, 마치 신자유주의자의 입장과 비슷해 보인다. 기업가를 대변하고, 생산자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은 매우 다르다. 공급혁신이 가능한 환경 조성에 '복지성장론'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자유롭게 노동자를 다루고 자원을 사용할 수 있게 규제를 풀어주는 대신, 그만큼 노동자들이 바뀐 환경 속에서도 건강한 중산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국민들의 기본적인 수요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꾸준히 가장 큰 문제로 지적받고 있는 주거비용 이슈부터 사교육비와 재취업교육에 이르기까지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 서민들이 부담하는 비용을 경감하려 지원해야 함을 역설한다. 공공주택 확충 등이 대표적인 액션 플랜이다.

이 같은 복지 정책들을 입법하면서도 노동의 유연화와 금융, 토지의 규제완화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영국 노동당의 '제 3의 길'과 매우 큰 유사점을 보인다. 저자 역시 이를 인정한다. 당시 2%대로 침체되었던 영국의 성장률이 제 3의 길 플랜 당시 3~4%로 상승했음을 보여주며 이 같은 시도가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것이라 주장한다. 무조건적 전통 복지담론은 넘어서자는 것이다.

좌우 프레임을 벗어난 미래, 참여정부의 계승

<경제 철학의 전환> 저자 변양균.
 <경제 철학의 전환> 저자 변양균.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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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참여정부는 경제정책에 있어 좌, 우 양측으로부터 거센 비판에 직면했던 경험이 있다. 한 쪽으로부터는 좌파, 사회주의자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고 정반대 편으로부터는 '좌측 깜빡이 켜고 우클릭한다'는 조롱에 마주해야했다. <경제철학의 전환>에서 말하는 '전환'은, 바로 그 당시의 입장을 거의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공격 속에 완성되었던 비전 2030은 노무현 정부 당시뿐 아니라 뒤를 이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도 일부 적극 활용되었다. MB 정권 당시의 동반성장론이나 산업은행 개혁, 그리고 박근혜 정권의 노인보험 확대나 차세대 산업 확충 등이 그 예시들이다. 전 정부 차원에서 공을 들인 만큼 충분한 가치와 현실성이 있다는 의미이다. 이번 문재인 정부에서는 더욱 발전적 형태로 비전 2030을 재수립, 계승할 가능성이 커보인다.

21세기는 신자유주의의 망령이 2008년 금융위기로 무너졌지만, 기존의 정통 복지국가 모델 역시 그 본거지인 유럽에서 조차 서서히 힘을 잃어가는 시대이다. 모든 국가들이 저마다의 새로운 길을 찾으려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일찍이 만들어 놓았던 한국만의 제 3의 길을 다시 부활 시키려는 노력은 의미있는 시도이다.

특히 이제는 참여정부 당시와 달리 여당의 코어 지지층도 두터워졌고, 대중적 신망도 높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개혁의 과정에서 발생할 피해자들이다. 당장 약 16.4% 인상된 최저임금(2018년 최저임금 7530원) 이슈에서도 사회 각층의 다양한 이해집단들 사이에 강력한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

과연 새 정부는 이런 난관을 극복하고 이제껏 시도된 적 없는 '전환'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 참여정부의 계승이 어떠한 모습으로 이루어 질 것인지, 그리고 성공할 수 있을지 그 앞으로의 5년간의 결과에 대한민국의 많은 것들이 달려있다.


경제철학의 전환

변양균 지음, 바다출판사(2017)


태그:#서평, #북리뷰, #경제, #철학,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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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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