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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7월 15일 울산이 광역시로 승격된 날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김태호 전 의원(맨 왼쪽) 심완구 울산시장(왼쪽 3번째)이 현판식을 하고 있다
 1997년 7월 15일 울산이 광역시로 승격된 날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김태호 전 의원(맨 왼쪽) 심완구 울산시장(왼쪽 3번째)이 현판식을 하고 있다
ⓒ 울산시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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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15일은 울산이 우리나라의 6번째 광역시(당시 직할시)로 승격된 지 20년 되는 날이다.

서울 특별시외, 1963년 부산이 첫 직할시(광역시)가 된 후 산업화의 영향으로 대도시가 발달하면서 1981년 대구와 인천이, 1986년 광주, 1989년 대전이 차례로 직할시로 승격했다. 그후 울산은 8년 정도의 공백기간을 가진 후 1996년 6번째로 광역시가 됐다.

울산이 광역시가 된 배경은 조선·자동차·석유화학 등 산업이 발달하면서 인구가 늘고 도시규모가 커진 탓도 있지만 정치적 배경이 크게 작용했다.

당시 울산의 광역시 승격은 집권여당인 민자당이 주도하고 야당인 국민회의가 반대하는 형국이었다.

울산광역시 승격 추진 배경엔 정치적 셈법이

울산을 광역시로 만들자고 공론화한 정치인으로는 현 바른정당 이혜훈 대표의 시아버지이자 울산의 맹주로 불렸던 고 김태호 전 의원이 선두주자로 꼽힌다. 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에서 총애를 받던 그는 3당 합당 후 김영삼 정부의 여당 사무총장까지 맡으면서 권력을 이어갔다.

노태우 정권때인 1989년 내무부장관에 입각한 때를 제외하고 중구에서 12, 13, 15, 16대까지 4선을 한 김태호 전 의원은 1992년 총선과 그해 있었던 대선 때 울산광역시 승격을 공론화했다. 야권이던 울산 출신 최형우 전 의원이 3당합당으로 여당이 돼 울산광역시 승격 추진에 가세했고, 당시 대선 후보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를 공약했다.

김태호 전 의원은 당시 지역언론 인터뷰에서 "울산은 행정적으로 경남도에 속해 있지만 검찰, 법원 등 시민 생활과 직결되는 주요기관이 경남이 아닌 부산시와 연관되어 있어 사실상 경남도와 거리를 두고 있는 상태"라면서 "그러면서도 울산시는 한해 150억 원의 도세를 부담하고 있어 이미 직할시로 승격해야 하는 요인을 갖추고 있다"면서 광역시 승격 타당성을 설명했다.

이처럼 여권이 울산광역시 승격을 1992년 대선 공약으로 내걸고 이후 이를 추진하고 나선 것은 정치적 셈법이 작용했다.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를 설립한 고 정주영 전 회장이 정치에 뛰어 들면서 만든 국민당이 1992년 총선에서 울산의 전 지역구를 휩쓸자 위기감을 느낀 여권이 지역여론이 팽배했던 '광역시 승격'이라는 카드를 들고 나선 것.

하지만 울산광역시 승격은 수많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울산이 분리되면 세수나 재정적으로 큰 손해를 보는 경남도가 강하게 반발했고, 당시 제1 야당인 국민회의도 울산광역시 승격 법안 통과 저지에 나섰다. 당시 야권에서 울산광역시 승격 저지 선두에 선 정치인이 당 대표인 추미애 의원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당시 야권의 반대 이유는 이미 1995년 6월 27일 지방선거로 선출한 울산시장(집권당 심완구 시장)이 광역시로 승격되면 그대로 광역시장이 되는 점, 울산시의원이 다음 선거 때까지 울산광역시의원도 하고 울산시자치구의원도 하고 (광역시 승격으로 편입될) 울주군의원도 하게 되는 문제 등이었다.

이후 어렵사리 경남도의회 의결을 거친 울산광역시 승격안은 국민회의의 반대속에도 야당인 자민련의 도움으로 1996년 12월 17일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다. 하지만 다음날인 18일 정기국회에 상정해 본회의에서 의결 통과키로 했던 울산광역시 승격안은 국회의 파행으로 결국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해 임시국회로 넘어갔다. 당시 민자당이 추진한 안기부법 개정안과 노동법을 두고 여야가 첨예한 대립을 보였던 것.

결국 1996년 12월 26일 새벽 6시 (민자당에서 당명을 바꾼)신한국당은 야당이 참석하지 않은 채 오세웅 국회부의장 사회로 안기부법과 노동관계법과 울산광역시 승격안 등 11개 법안을 상정 7분 만에 기립 표결을 통해 만장일치로 통과 시켰다.

안기부법 개정안의 경우 찬양 고무죄와 불고지죄에 대한 안기부의 수사가 가능하게 했고, 노동법의 경우 정부안 가운데 복수노조 허용과 정리해고제 등이 일부 개정되는 내용이었다. 이 때문에 야권과 노동계는 이를 악법으로 규정하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었다.

당시 집권여당이 기어이 날치기 통과해야만 했던 안기부법 개정안과 노동법에 끼어 함께 날치기 통과된 울산광역시 승격안은 그후 20년간 울산에 엄청난 도시발전과 시민들에게 많은 재정적 혜택을 안겼다. 하지만 그후 시민들은 "울산이 야도에서 보수정당의 아성이 됐다"는 평가를 들어야 했다.

덧붙이는 글 | 박석철 기자는 2009년 발간된 <울산광역시 승격 백서> 저자입니다



태그:#울산광역시 승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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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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