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언제나 공연 마니아를 자처하고 있다. 좋은 공연에 들이는 돈이라면 절대 아깝지 않다. 그런데 지금까지 다녀온 많은 공연을 더듬어보니, 록·힙합·EDM 등 대중음악들에 치우쳐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각자의 취향이 있다지만, 공연 마니아라면 더욱 다양한 장르에 도전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첫 번째 선택은 국립극장에서 열리는 여우락(樂) 페스티벌이다. '여기 우리 음악(樂)이 있다'의 줄임말인 여우락은 2010년에 막을 연 이후, 올해 8회를 맞았다. 여우락은 우리 국악의 현재, 그리고 미래를 소개하는 대표적인 장이다.

지난 12일, 두번째달의 '달빛 협주곡' 공연이 열리는 달오름극장에 다녀왔다. 두번째달은 세계의 민속 음악을 재즈, 록 등과 함께 자신들의 색깔로 엮어내고 있는 밴드다.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했으며 <궁> <구르미 그린 달빛> <푸른 바다의 전설> 등 굵직한 드라마 OST들을 작업했다. 지난해에는 춘향가의 주요 대목들을 음악극 형태로 재구성한 앨범 <판소리 춘향가>를 발표했는데, 이 앨범은 올해 '최우수 재즈&크로스오버 음반상'의 수상작이 되기도 했다. 우리 음악 여행에 여념이 없는, 두번째달을 만나러 언덕길을 올랐다.

동서양 음악의 이상적인 만남

 여기 우리 음樂이 있다.

여기 우리 음樂이 있다. ⓒ 이현파


필자 역시 <판소리 춘향가> 앨범의 팬이기 때문에 이번 공연을 선택했다. 이번 공연에는 세 명의 국악인들이 함께했다. <판소리 춘향가> 앨범의 주인공이었던 김준수 소리꾼(국립창극단 소속), 중요무형문화재 57호 경기민요(12잡가)의 이수자인 최수정 소리꾼, 그리고 연희 컴퍼니 '유희'의 타악기 연주자 윤여주가 그 주인공이다.

첫 번째로 무대에 오른 김준수 소리꾼은 판소리 춘향가에 수록된 노래들을 부르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최윤경(두번째달)의 아코디언과 함께 어우러진 '사랑가'는 듣는 것만으로도 미소를 짓게 했다. 여러 번 들었던 곡이지만, 국악이 이렇게 귀여운 분위기까지 자아낼 줄 몰랐다. 두번째달의 히트곡 '얼음 연못'을 재구성한 '이별가'는 공연에서 가장 애상적인 순간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변학도 앞에 암행어사로 돌아온 이몽룡을 그려낸 '어사 출두'는 단연 공연의 하이라이트 아니었을까. 랩을 연상케 하는 김준수 소리꾼의 빠른 노랫소리가 기타, 바이올린, 콘트라베이스와 어우러지는 순간 쾌감마저 느껴졌다. 소리꾼이 '암행어사 출두야'를 외치자, 관중석 전체에서 '출두야!'라는 화답이 크게 울려 퍼졌다. 우리 음악과 서양 음악의 이상적인 만남이었다.

'해 같은 마패를 달 같이 들어매고
달 같은 마패를 해 같이 들어매고'
- '어사 출두' 중


우아한 검은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경기민요 최수정 명창은 진행자 못지않은 입담으로 관객들을 웃음 짓게 했다. 하지만 분위기를 잡고 노래를 부르는 순간, 그녀는 아예 다른 사람으로 변모했다. 제주민요 '오돌또기' 등에서 농익은 목소리를 과시했고, 자신의 특기인 '비나리'를 부르며 모든 관객의 행운을 기도했다. 과연 무형문화재의 이수자 다운 존재감이었다.

국악은 지난 시대의 유물이 아니다
 두번째달과 김준수 소리꾼, 최수정 명창, 윤여주 연주가

두번째달과 김준수 소리꾼, 최수정 명창, 윤여주 연주가 ⓒ 이현파



공연 후반 등장한 윤여주 연주가의 삼도설장구 역시 감탄의 연속이었다. 넉살 좋은 인상의 그는 앙코르 무대에서 상모를 돌리면서 재등장했는데, 축제의 피날레에 어울리는 퍼포먼스였다. 필자가 있던 곳이 좌석이 아니라 마당이었다면 신명 나게 춤을 출 수 있지 않았을까? 두번째달은 공연 내내 만돌린, 퍼커션, 아이리시 휘슬, 아코디언 등 다양한 악기를 활용하면서 풍성한 소리를 선물했다. 예정된 90분을 훌쩍 넘긴 공연은 앵콜곡 '진도아리랑' 그리고 '사랑가'와 함께 막을 내렸다. 한여름 밤의 꿈을 꾼 듯했다.

국악은 수백 년 동안 우리 서민들의 희로애락을 그대로 투영해온 음악이다. '달빛 협주곡'은 서양 음악의 형식을 많이 빌렸지만, 희로애락과 '한'의 정서가 응축된 공연이라고 생각되었다. 두번째달의 멤버 박진우 씨(콘트라베이스)는 이 후기를 듣고 '관중들이 그렇게 받아들여야만 공연이 완성되는 것이다'라며 웃음을 지었다.

국악이 고루하고 어려운 옛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미디어를 통해 접할 기회가 많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지금 국립극장으로 달려가기를 권하고 싶다. 국악은 지난 시대의 유물이 아니다. 지금 여우락에서는 시대와 발맞춰 계승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전통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우락 페스티벌은 오는 7월 22일까지 국립극장에서 펼쳐진다. 인터파크 티켓, 그리고 국립극장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예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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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음악과 공연,영화, 책을 좋아하는 사람, 스물 아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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