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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퀴어문화축제의 모습.
 2016퀴어문화축제의 모습.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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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7월 15일, 서울광장에서 한국퀴어문화축제가 열린다. "나중은 없다, 지금 우리가 바꾼다!" 올해의 슬로건이다.  

이 행사가 처음 열린 때가 '지난 세기'인 2000년이니, 올해로 벌써 18번째다. 사람이 만 18세가 되면 꽤 많은 권리와 자격이 주어진다. 상영하는 모든 등급의 영화를 볼 수 있고, 결혼할 법적 자격을 갖게 되며, 9급 공무원 시험도 치를 수 있게 된다.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국제 기준을 따라 선거 연령을 18세로 낮추자는 논의도 활발히 일고있다. 다시 말해, 18세가 되면 판단 능력과 사회적 역할 모두에서 성인으로 인정받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18번째를 맞는 퀴어문화축제는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행사가 코앞에 다가온 현재, 주최 측은 축제 준비에 정신없이 바쁠 것이다. 하지만 이 시간, 그들만큼 바쁜 이들이 있다. 축제를 훼방놓으려는 사람들이다. 주최 측이 어떻게 축제를 잘 치를까 머리를 짜고 있을 이 시간, 두 번째 집단은 어떻게 축제를 잘 방해할까 머리를 굴리고 있을 터이다.  

표정도 크게 다를 것이다. 누구에게는 손꼽으며 기다려온 말 그대로 '축제'이겠으나, 누구에게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고 싶은 '제삿날' 같을 테니 말이다.  

혐오세력의 핵심, 보수 개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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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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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년간 퀴어문화축제에 가장 화끈하게 혐오를 표출해 온 세력은 단연 보수 개신교일 것이다. 올해에도 이미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 기독교대한성결교회(기성) 등 20여 개 교단이 행사 반대시위를 열기로 결의한 상태다.  

이들 교단은 반대운동을 위해 '동성애퀴어축제반대국민대회 준비위원회(아래 반대준비위)'라는 긴 이름의 단체를 구성하기도 했다. 이들은 축제 행사장 주변에서 시위와 기도회를 포함해, 다양한 반대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이들의 각오를 들어보자.   

"시민의 공적 공간에서 퀴어축제가 정례화되지 않고, 차별금지법이 통과되지 않도록 동성애의 해악을 국민들에게 알리겠다." 

그러니까, 지난 18년간 지속되어 온 행사의 '정례화'를 막고, 성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이 지속되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이게 '사랑의 종교'를 믿는다는 사람들의 발상이다.  

나는 이 글에서 두 가지를 말하려고 한다. 하나는 '반대준비위'가 모든 개신교도를 대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를 포함해 많은 신자들이 그들과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민주사회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성적 지향과 상관없이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믿는다.  

두 번째로 말하고 싶은 것은, 그 누구도 퀴어문화축제를 방해할 법적 권리가 없다는 점이다. 퀴어문화축제는 합법적인 행사다. 오래 전부터 미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스웨덴, 핀란드 대사관 등 외국 공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2016년에는 마크 리퍼트가 축제현장을 방문해 축하하며 "정말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며 격려하기도 했다.  맞다. 바로 그 '리퍼트'다. 2015년 그가 피습당했을 때, 보수 기독교도들이 "리퍼트 대사님을 사랑합니다"라고 외치며 몰려와 난타, 발레, 부채춤까지 춘 바로 그 리퍼트 대사 말이다.  

특히 올해에는 사상 처음으로 국가인권위원회도 공식 참여하기로 했다. "우리 사회의 성소수자들이 받는 차별과 편견을 해소하는 데 노력한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교회에서 들어야 할 이 '은혜로운 말씀'을 국가기관으로부터 듣고 있고 있자니, 앞으로 예배를 드리러 어디로 가야 할지 헷갈릴 지경이다.  

축제 방해는 의사표현이 아닌 '범죄'다

2016퀴어문화축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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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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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도들의 반대 활동을 보면 흔히 거칠고 시끄러우며, 때로 더럽기도 하다. 길바닥에 누워 행진을 가로막는가 하면, 북이나 장구를 동원해 참가자에게 '고막 고문'을 가하기도 하고, 심지어 인분을 몸에 묻히고 인파 속으로 뛰어드는 '폭탄테러'를 감행하기도 한다.   

이 모든 행동은 법에 저촉되는 범법행위이다.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제3조에는 '집회 및 시위에 대한 방해 금지'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예컨대 3조 1항은 "누구든지 폭행, 협박, 그 밖의 방법으로 평화적인 집회 또는 시위를 방해하거나 질서를 문란하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밝히고 있다.  

마이크를 이용해 큰 소리로 기도하거나 시끄러운 악기소리를 내는 경우는 어떨까? 위의 법률 14조 1항은 "확성기, 북, 징, 꽹과리 등의 기계·기구를 사용하여 타인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는 소음을 발생시켜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물론 민주사회에서는 누구든 의사를 표시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의사표현은 타인의 의사표현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만 가능하다. '의사표시'가 '방해'의 동의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행사에 방해가 되지 않는 곳에 서서 피켓을 들든, 전단을 나눠주든, 조용히 기도를 하든 그것은 그들의 자유다. 기도의 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왜 자꾸 무례, 소음, 물리력(그들 말로 '사람의 힘')을 동원하지 못해 안달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누구든지 합법적 집회를 방해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누구든지"이다. 평화적인 시위는 군대도, 경찰도, 검찰도 막을 수 없다. 제 22조 1항은 '군인·검사 또는 경찰관이 합법적 집회나 시위를 방해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더욱 엄격한 처벌규정을 마련해 두고 있다.   

앞의 '누구든지'에는 개신교도도 포함된다. 신자수 많은 교회의 목사도 예외는 아니다. 이런 당연한 말을 하는 까닭은, 일부 개신교도는 마치 자신이 법과 무관한 듯 행동하기 때문이다.  

교인들이 오지에서 공동체를 일구며 살지 않는 한, 자신들이 사회의 혜택을 입으며 살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종교적 열망이 얼마나 크든, 신자들도 세금을 납부해야 하고, 교통 법규도 지켜야 하며, 민주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과 의무 또한 지켜야 한다.  

'사회 속에 사는 신앙인'이라는 이중성은 때로 혼란과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두 개의 세계관이 평화롭게 공존하기도 하지만, 때로 충돌하기도 한다. 이런 이중적 정체성은 예수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라는 말로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사회는 '타인'의 다른 말로, 타인에 대한 가장 기본적 의무는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동성애 혐오자들의 '방어기제'

2016퀴어문화축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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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심리학자 로랑 베그는 동성애 혐오자들의 태도를 일종의 '방어기제'로 이해한다. 동성애에 극단적 거부감을 표하는 사람들에게 동성간의 성애 장면을 담은 영상을 보여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입과 표정은 역겹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막상 '몸'은 다른 반응을 보인다.  

장치를 피험자의 음경에 연결해 성적 반응을 확인했을 때, 동성애 혐오자들일수록 더 흥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성애에 거부감을 갖지 않는 사람들의 경우 34%가 발기했지만, 혐오자들의 '발기율'은 80%에 이르렀다.  

이 실험을 토대로, 로랑 베그는 동성애 혐오가 자신의 충동을 부정하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본래 사람들은 타인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는 법이다. 

그런 면에서 타인에 대한 존중은 자신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다. 사회적 배려는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퀴어문화축제가 성소수자만을 위한 행사가 아닌 까닭이 여기 있다.  

당신이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든 타인에게 존중받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이 축제를 지키고, 환영하고, 즐길 충분한 이유가 있다.  

올해로 18번째를 맞는 한국퀴어문화축제에 연대의 박수를 보내며, 차별없는 세상을 위해 함께 싸워갈 것을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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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퀴어문화축제, #개신교, #동성애, #혐오, #퀴어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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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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