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예준이는 자유로운 영혼이에요~"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닐 때 학부모 상담을 했는데 담임선생님이 이렇게 평해주셨다. 그렇다. 우리 아이는 너무 자유로워 놀이터에 있어도 눈으로 쫒지 못할 속도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한다. 아이가 없어진줄 알고 하얗게 질려서 찾아 헤매던 적도 많았다.

'크면 달라지겠지', '아직은 어려서, 몰라서 그러겠거니' 하고 내가 참았다.

창의력과 밝은 성격을 가지게 하는데 억압과 제재는 독이라고 인터넷에 떠도는 자료에서 많이 봐온 터라 그렇게 해야 잘 키우는 것이라 생각했다.

58개월째 자유롭게 살던 아이는 과하게 자유로워 아직도 눈물 나게 속상하게 하거나 난감한 상황에 빠뜨리기도 한다. 아이가 소리 지르고 진상을 피우면 주변에 있는 엄마들은 내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지켜본다. 너무 창피하고 어쩔 줄 몰라 아이를 놔두고 딱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한편으론 다른 사람들이 우리 아이를 이상하게 생각할까 걱정하기도 한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본 '훈육지침서'대로 귓속말로 이렇게 말한다.

"택배 아저씨가 멋진 선물을 주고 가셨지 뭐야~ 가볼까"
"엄마가 집에 선물을 사놨어. 구경하러 갈래?"

이러면 세상 착한 아이처럼 주변 사람들을 붙잡고 말한다.

"친구야, 난 집에 간다. 친구 엄마 예준이는 집에 가요~"

선물이란 게 별거 없다. 예전에 사두었던 초콜릿이나 아이스크림, 자동차스티커북 정도다.
물론 맘에 들지 않으면 던지고 바닥을 뒹굴며 난리를 친다.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야~!"

놀이터를 포기하고 집에 온 것이 마냥 억울한가보다. 하지만 내가 몸이 너무 안 좋거나 내안에 '참을 인'을 다 써버린 경우에는 사람들 몰래 엉덩이를 확 꼬집는다.

아이는 "엉덩이 꼬집지 마~!"하며 큰소리로 엉엉 운다. 정말 사라지고 싶은 순간이다.  참다못한 나는 직업군인인 아이아빠에게 말했다.

"예준이 영창 보내자" (물론 장난입니다.)

덕분인지 원래 이맘때는 그런 것인지 아이의 표현력은 상상이상이다. 아이가 아는 단어 안에서 최고의 표현인 듯 한데 듣고 보면 절묘하게 상황과 일치해 더 이상의 단어는 불필요해 보였다.

"엄마, 내가 로봇이 됐어!"하며 장난감 상자에 들어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 58개월된 미운 우리 아이 "엄마, 내가 로봇이 됐어!"하며 장난감 상자에 들어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김정실

관련사진보기


아빠의 피가 마르도록 졸라 얻어낸 장난감을 착용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이는 환호를 지르며 즐거워 하지만 아이 아빠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얼굴이 검게 변해 있었다.장난감을 못 사게 하는 나에게 어쩔 수 없었다며 미안해 했다.
▲ 58개월 미운 우리 아이 아빠의 피가 마르도록 졸라 얻어낸 장난감을 착용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이는 환호를 지르며 즐거워 하지만 아이 아빠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얼굴이 검게 변해 있었다.장난감을 못 사게 하는 나에게 어쩔 수 없었다며 미안해 했다.
ⓒ 김정실

관련사진보기


상황1) "발에 모래 들어갔어!"

아이는 모래 놀이터에 쪼그리고 앉아 장난감 삽으로 모래를 퍼서 트럭에 '담았다, 부었다'를 반복했다.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는 모래무덤이 크게 만들어 졌다.  한참을 그렇게 놀다 갑자기 괴로워하며 말했다.

"엄마, 발에 모래 들어갔어!!"
"그래?"

아이 신발을 벗어서 모래를 털어 주었다.

"이제 됐지?"
"아니야~ 발에 모래 들어갔다고~"
"신발에 모래 털었잖아. 이제 괜찮을 거야~"

했더니, 짜증과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발에 모래~. 발에 모래 들어갔다고~"

가만히 살펴보니 발에 쥐가 난거였다. 발에서 자글자글한 느낌이 드니 모래알이 굴러다닌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땡볕이라도 즐거운 모래놀이. 1시간 햇볕을 쬐고 나면 "아!뜨거, 땀나" 하며 일어 선다. 둘째는 뜨거운 것도 잊고 처음 만져보는 모래가 마냥 신기하다.
▲ 미운 우리 아이들 땡볕이라도 즐거운 모래놀이. 1시간 햇볕을 쬐고 나면 "아!뜨거, 땀나" 하며 일어 선다. 둘째는 뜨거운 것도 잊고 처음 만져보는 모래가 마냥 신기하다.
ⓒ 김정실

관련사진보기


햇볕이 뜨거워도 쪼그리고 앉아 모래를 만지고 있다. 첫째는 저렇게 앉아 있다가 잠시후에 발에 모래가 들어갔다며 난리를 친다.
▲ 미운 우리 아이 햇볕이 뜨거워도 쪼그리고 앉아 모래를 만지고 있다. 첫째는 저렇게 앉아 있다가 잠시후에 발에 모래가 들어갔다며 난리를 친다.
ⓒ 김정실

관련사진보기


상황2) "목 마려워"

아이가 소변이 마려울 때는 이렇게 말한다.
"엄마, 쉬마려워"

갈증이 나서 물이 먹고 싶을 때도 이렇게 말한다.
"엄마, 목마려워"

'마렵다'와 '목마르다' 비슷하긴 하다. 이번엔 나도 한 번에 알아들었다.

상황3) "아기 가져와야지~"

58개월 된 남자아이는 17개월 된 여동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본인이 블록으로 만들어 놓은 로봇이나 놀이공원을 망가뜨리기 때문이다.  처음에 아기가 손을 대려고 하면 손가락을 꼭 쥐다가 꺾어 버리거나 뒤로 밀어 버렸다. 아기는 뒤로 자빠져 머리를 쿵 찧곤 했다. 소스라치게 놀라 큰애를 혼내지만 57개월 된 아이는 억울할 뿐이다.

"얘가 먼저 망가뜨렸어"
"내가 먼저 가지고 놀고 있었어!"
"하지 말라고 하는데 계속 해~!"

아이는 그동안 살면서 배워온 규칙을 일일이 열거하면서 본인은 잘못한 것이 없다고 절규했다. 사과 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 '아기'에게 주는 어드밴티지를 이해 할 수 없고 인정도 못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외출에서 돌아오던 길이었다. 아파트 현관문 앞에서 큰애는 문을 열고 있었고 둘째인 17개월 아기는 옆집 오빠들 자전거를 만지려고 뒤뚱뒤뚱 달려가듯 걸어갔다.

"예원아~ 들어가야지~. 이쪽이야 이쪽"

아무리 부르고 손짓을 해도 '헤헤헤' 웃으며 반대쪽으로만 갔다. 그래서 장난으로 첫째에게 말했다.

"우리 그냥 들어가자. 예원이는 안 들어올 건가봐. 우리끼리 가자~"

첫째는 짜증과 답답함, 불안감, 초조함 등이 농축 된 반응을 보이며 말했다.

"아기 가져와야지~~!! 쫌!"

버릴 수도 없고 가지기엔 귀찮은 애증의 동생. 가져가야 한단다.

상황4)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고운거야~"

우리 집에 있는 58개월 된 남자아이는 밥 먹을 때 밥을 씹어서 물고 있는 버릇이 있다. 햄스터처럼 양쪽 볼과 앞쪽에 쌓아 둔다. 이걸 보고 있는 부모는 밥 다 먹으면 간식을 주겠다거나 놀이터에 놀러가자고 유혹하며 삼키기를 재촉하지만 아이는 밥을 입에 물고 말한다.

"어떤 간식~? 우와~ 맛있겠다~!"
"놀이터에 친구들이 많아~"
등 자기 할 말만 하고 도무지 삼키지를 않는다. 보고 있으면 냄비에 물이 끓듯 서서히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한다. 밥 먹는 애한테 소리 지르거나 험한 말을 하면 밥이 더 맛없어 질까봐, 체할까봐 짜증도 못 낸다. 그러다 결국은 폭발한다.

"너 이렇게 물고만 있을 거면 밥 먹지마! 밥 안 줄거야! 먹기 싫으면 먹지마!"
라고 무의식중에 버럭 나와 버린다. '아, 조금 더 기다려 줄 걸 그랬나' , '다른 방법으로 달래 볼걸 그랬나' 내적 갈등을 하지만 아이의 멘탈은 엄마보다 강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고운거야~!! " 라며 도리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다. 너무도 당당하게. 유치원에서 일주일에 하나씩 배우는 속담을 나에게, 이렇게 써먹다니. 어안이 벙벙,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456개월 산 내가 57개월짜리에게 진 거다. 자식을 이길 수가 없다.

아이들에게 완두콩을 까달라고 했다. 그사이에 나는 각종 집안일을 번개같이 해야 한다. 아이들은 초고도의 집중력과 호기심을 보이며 콩을 깐다. 잠시후면 깐 콩을 머리위로 던지며 논다. 그러면 나는 집안 구석구석 흩어진 콩들을 줍는다.
▲ 미운 우리 아이 아이들에게 완두콩을 까달라고 했다. 그사이에 나는 각종 집안일을 번개같이 해야 한다. 아이들은 초고도의 집중력과 호기심을 보이며 콩을 깐다. 잠시후면 깐 콩을 머리위로 던지며 논다. 그러면 나는 집안 구석구석 흩어진 콩들을 줍는다.
ⓒ 김정실

관련사진보기




태그:#극한육아, #육아보다 공부가 쉬워요, #육아 후엔 세상 무서울것이 없어요, #육아일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