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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 사이에는 불문율이 하나 있다. 동료 교사의 교육 방식에 대해 절대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가정사를 터놓고 말할 정도로 친한 사이가 아니라면, 함부로 말 꺼냈다간 격한 다툼으로 번지기 십상이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동료 교사의 심하다 싶은 체벌의 현장을 목격하고서도 그때마다 못 본 척 눈감고 마는 건 그래서다.

그런데, 얼마 전 학교생활기록부 종합전형(아래 학종)을 두고 몇몇 동료 교사들과 언쟁을 벌였다. 여느 때 같으면 '너도 옳고 나도 옳다'는 식으로 두루뭉수리 넘어갔을 일인데, 학교가 '학종 시스템'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잠재된 갈등이 순간 터져 나온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학종이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학교생활기록부(아래 학생부)는 아이의 미래와 학교의 등급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가 됐다.

"학생부 기록은 온전히 교사의 몫입니다. 아이들의 요구 사항을 적어주거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또한, 내신 성적이나 석차를 기준 삼아 학생부 기록의 질과 양을 정하는 일은 교사로서 자존감을 해치는 짓입니다. 도덕적 딜레마에 빠져 신뢰를 잃게 되면 교육은 이뤄질 수 없습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격이라고나 할까요? 제도를 탓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 바로 섭시다."

"이상과 현실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등학교는 현실상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고, 명문대 진학은 학교도, 학부모도, 아이들조차도 모두 공감하는 고등학교 교육의 유일하다시피 한 목표 아닙니까. 일개 학교와 교사가 정책을 바꿀 수도 없고, 어차피 학종도 완벽한 제도가 아니라면 어느 정도 부작용은 감수해야 합니다. 숱한 입시제도의 변화 속에 우리나라 고등학생이 언제 행복했던 적이 있었나요?"

 둘은 모두 의대 진학을 꿈꾸며, 한창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종합전형(학종)을 준비하고 있다
 "급기야 학종은 교사들 사이에 느닷없는 '학생부 기록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수업 역량이 떨어지는 교사는 참을 수 있어도 학생부 기록에 소홀한 교사는 용서할 수 없다'는 우스갯소리까지 공공연히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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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이태 전까지만 해도 학교는 '수능 시스템'으로 최적화되어 있었다. 수능 성적과, 심지어 모의고사 성적까지 공공연히 순위가 매겨져 몇몇 언론에 게재되면서, 애면글면하던 학교는 그 계량화된 수치로 개별 교사의 열정과 능력을 평가하기 일쑤였다. 이런 마당에 수능에 출제되지 않는 교과는 아예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았고, 주상 같은 교육과정이 무시되는 건 다반사였다.

'수능 시스템'에서는 다양한 교내 활동이 설 자리는 없었다. 봉사활동은 하나 마나 한 '시간 채우기' 활동으로 전락했고, 일주일에 한 번뿐인 동아리 활동은 그저 숨 막히는 학교생활에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을 했을 따름이다. 그나마 시험을 앞둔 즈음에는 모든 교내 활동은 예외 없이 자습 시간으로 대체되었다. 그 흔한 학급회의 한 번 안 하고 졸업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그렇듯 획일화된 학교교육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도입된 것이 바로 학종이다. 시행 초기 수능과 학종 중 어떤 게 더 교육적이냐는 양자택일의 문제에서 대부분의 교사들이 기꺼이 학종 편에 선 이유다. 하지만 자사고와 외고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깜깜이 전형'이라거나 '현대판 음서제'라는 인식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학종에 대한 신뢰가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고 있다.

기준이 모호하고 공정하지 않다는 인식은 학종의 취지마저 훼손시켰고, 안타깝게도 차라리 '구관이 명관'이라는 퇴행적인 분위기마저 조장하고 있다.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수능 시스템'의 폐해를 숱하게 겪었던 교사들조차도 학종을 두고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 옷'이라거나, '시기상조'라며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이는 '학종 시스템'이 몰고 온 부작용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취지만 놓고 보면 학종이 수능보다 교육적일지는 모르지만, 정작 학생들의 학교생활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학종이든 수능이든 정작 학생들의 행복과 무관한 제도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조변석개하는 입시제도보다 당사자인 학생들의 생각은 눈곱만큼도 반영하지 않는 논의 구조 자체에 더 화가 나요."

사실 한 아이가 내뱉은 이 한마디가 교사들 간 언쟁의 발단이 되었다. 수능보다 교육적이라며 도입된 학종은 아이들을 설득하는 데 역부족이었다. 학종이 강의식 수업을 개선시킬 수 있다는 희망 섞인 분석을 내놓고는 있지만, 그만큼 아이들의 학교생활이 행복해졌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과연 무엇을 위한 입시제도 개선인지 따져 묻는 그의 지적은 타당해 보였다.

아이의 인생이 이것으로 결정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한 학생이 밤 늦은 시각까지 학교에 남아 야간 자율학습을 하고 있는 모습.
 "당사자인 학생들의 생각은 눈곱만큼도 반영하지 않는 논의 구조 자체에 더 화가 나요."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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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수능 시스템'에서 '학종 시스템'으로 대체되었지만, 아이들의 신산한 학교생활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되레 지친 어깨에 짐 하나가 더 얹힌 듯 더 바빠지고 힘들어졌다며 하나같이 하소연한다. 한 아이는 학종으로 대학에 가려고 하니 좋아서 하는 동아리 활동과 봉사활동조차 당장 이해타산부터 따지게 되더라며 씁쓸해하기도 했다.

학종에 발맞춰 달라진 수업 방식의 변화에도 아이들은 대체로 시큰둥한 반응이다. 일방적인 강의식에서 모둠활동 중심으로 형식은 시나브로 바뀌었지만, 수업의 질은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수업이라기보다 각자 자신의 학생부에 기록할 거리를 교사 앞에서 발표하는 시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며 혹평하는 아이도 있다. 그나마 그런 기회가 고르게 주어지지도 않는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교사들조차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보다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더 길다고 푸념할 정도다. 말하자면, 어떻게 수업하고 무엇에 관해 상담했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학생부에 그것을 어떻게 기록했는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잘 가르치는 교사보다 학생부에 잘 써주는 교사가 우수한 교사다. 학종이 대세가 된 지금, 아이들이 바라는 교사상도 달라졌다.

급기야 학종은 교사들 사이에 느닷없는 '학생부 기록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수업 역량이 떨어지는 교사는 참을 수 있어도 학생부 기록에 소홀한 교사는 용서할 수 없다'는 우스갯소리까지 공공연히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아이들의 학교생활과는 무관하게 학생부 기록만큼은 나날이 풍성해지고 두꺼워지는 이유다. 흡사 알맹이는 온데간데없고 껍데기만 남은 셈이다.

방학이 예전엔 수업 연구와 연수 등 재충전을 위한 기회였다면, 학종이 도입된 이래로는 온전히 학생부를 쓰는 시간으로 변모했다. 한두 달 동안 교사가 컴퓨터 앞에 앉아 썼다 지웠다는 반복하는 모습은 이제 교무실의 익숙한 풍경이 됐다. 요즘 들어선 담임 업무를 기피하는 이유도 달라졌다. 아이들 가르치는 것보다 학기 말 학생부 쓰는 게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학생부의 항목별로 1500자와 3000자라는 글자 수에 주눅이 든 교사가 의외로 많다. 모든 항목을 다 채워야 하는 것도 아닌데, 분량이 적으면 괜히 손해 볼까 싶어 있는 말 없는 말 다 지어내는 노력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게 교육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헛짓'임을 알면서도 그만둘 수 없는 건, 아이의 인생이 이것으로 결정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학종은 혼란을 야기한 입시 제도

"학종은 내용과 형식 전반에 걸쳐 학생부의 획일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으며, 그런 학생부 기록만으로 한 아이의 적성과 재능을 파악할 수 있다는 건 대학의 오만입니다.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되레 큰 부담을 주는 학종의 한계를 인정하고, 학생부가 제 모습을 되찾을 수 있도록 반영 항목을 대폭 축소하는 등 제도 개선에 당장 나서야 합니다. 거칠게 말해서, 학종은 입시제도라는 이름으로 학생부의 '위조'를 조장하고 있는 건지도 몰라요."

"학종의 파행이 근본적으로 '갑'인 대학의 책임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을'인 고등학교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다고 봐요. 주어진 입시제도 환경에 맞춰 그때그때 융통성 있게 대처할 수밖에 없잖아요. 대학이 아이의 적성과 재능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가 여부는 우리에겐 부차적인 문제 아닐까요? 솔직히 그 아이가 대학에 합격했는가가 중요할 뿐이죠. 더욱이 소설책이 되어가는 학생부가 비단 우리 학교만의 문제는 아니잖아요."

동료 교사와의 언쟁은 끝내 접점을 찾지 못했다. 늘 그렇듯 이상론과 현실론이 맞서면 서로의 입장만 재확인하고 마무리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건, 이상을 추구하는 제도라면 치밀하지 못할 경우 현장에 엄청난 혼란을 야기하거나 온갖 편법만 양산한다는 점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학종은 '게도 구럭도 다 잃은' 서툰 입시제도다.

사족 하나. 입시제도가 어떻게 변하든, 아이들을 명문대에 한 명이라도 더 합격시켜야 한다는 일선 학교의 '사명감'과 내 아이만큼은 명문대에 보내야 한다는 학부모의 '욕심'이 결합되는 순간 백약이 무효다. 애먼 교사들끼리 수능이냐 학종이냐를 두고 다툴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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