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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마는) 그리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일본에 근본적인 변화를 몰고 왔다. 자신을 버려가며 나라에 헌신하기는커녕 '자리'만 탐내는 정치 지도자가 넘쳐나는 요즘, 료마가 그리울 수밖에. 어디 일본뿐일까. 인사 난맥을 보고 있자면 오로지 '자리'를 위해 정권을 무너뜨렸나 싶어 하는 말이다."

5일자 <중앙일보> 분수대의 '이러려고 정권을 무너뜨렸나'라는 제목의 칼럼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지난 주말, "메이지유신의 주역 사카모토 료마의 고향인 시코쿠 섬 고치현에 다녀왔다"는 이 <중앙일보> 기자는 자신의 일본여행을 자랑이라도 하듯 고치현과 일본인이 존경하는 정치가였던 료마를 소개했다. 료마는 막부정치를 무너뜨리고 일본을 근대화로 이끌던 와중에 메이지 유신 직전 암살당한 인물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놀라웠다. 이 사카모토 료마를 "이러려고 정권을 무너뜨렸나"라며 '난맥'이라 표현한 현 정부의 인사 상황을 연결 짓는 것도 그랬지만, "자리만 탐내는 정치 지도자가 넘쳐나는 요즘"이란 표현이 2017년 7월의 칼럼인지 의구심을 자아낼 수밖에 없었다랄까. 이 칼럼에 대해 노종면 전 YTN 노조위원장은 6일 자신의 SNS에 이렇게 일갈하기도 했다. 

"이 칼럼을 쓴 안혜리 기자. 화를 부르는 칼럼을 종종 쓰는 이다. 그리고 박근혜 7인회 멤버인 안병훈 전 조선일보 부사장의 딸이기도 하다."

<중앙일보>의 현 라이프스타일 데스크라는 안 기자는 일주일 전 쓴 '망신당하면서도 청문회에 서는 심리적 이유'라는 제목의 칼럼에서도 낙마한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거론하며 "제기된 다른 각종 의혹은 차치하고 드러난 사실만으로 얼마든지 망신당할 수 있는 흠결인데도 장관직 제의를 수락한 게 보통 사람 입장에선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대체 왜"라고 썼다. 그러면서 이렇게 답을 내렸다.

"기억, 특히 자신과 관련된 기억은 자신에게 유리하게 왜곡되기 쉽"고, "자신의 능력이나 성과는 한껏 포장하고 과오는 별것 아닌 것으로 축소하는 기억의 왜곡 탓에 누구나 이처럼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될 가능성"이 있는데, "여기에다 잊고 싶은 건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망각도 한몫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기억의 왜곡과 망각은 이 정부의 반대편에선 인사들에게 더욱 치명적인 증상이 아니었던가. 더욱이 이렇게 완결된 구조 안에서 본인의 입장, 계급, 진영에 따라 상황과 논리를 제 입맛대로 그럴싸하게 둔갑시키는 이런 글이 가장 무서운 종류라 할 수 있겠다. 칼보다 펜이 무서운 이유이기도 하다. 헌데, 안 기자를 포함해 요즘 이 기억의 왜곡과 망각 증세를 글과 말로 전시 중인 이들이 즐비하다. 먼저 안 기자의 칼럼을 더 보자. 

'아전인수'와 '내로남불', 보수의 특기 아니었던가

<중앙일보>의 6일자 칼럼.
 <중앙일보>의 6일자 칼럼.
ⓒ 중앙일보 온라인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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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청문위원들의 준비 안 된 질문과 비상식적 추궁, 그리고 아전인수격 해석 탓에 억울한 사람도 있다. 비상식을 바로잡기 위한 청문회만큼은 상식적으로 진행되는 걸 보고 싶다."

실로 그러하다. 국민들의 열망이 딱 그러했다. 작금의 인사청문회에서 보여준 야당들의 행태가 딱 그러했지 않은가. '아전인수'는 물론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줄임말)이란 단어가 유행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글의 주인공이 바로 안 기자다. 지난해 12월 18일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가 한창이던 당시 안 기자가 내놓은 칼럼의 결론이며, 제목은 '청문회에 선다면'이란 제목이었다.

이 글은 과거 본인이 겪은 경험담을 통해 개개인의 기억이 불완전할 수 있음을 설명한다. 그 후 "그런 생각을 하다 만약 청문회에서 이런 상황에 맞닥뜨린다면 곤혹스럽겠다는 엉뚱한 상상에 이르렀다"며 개인의 기억 왜곡과 망각 증상에 관해 청문 대상에 이입한다. 그러면서 증인들의 모르쇠는 "기억의 불완전성"으로 두둔하고 청문위원들의 준비 부족과 '아전인수'를 탓하는 내용이다. 

자, 그러니까 이번 인사청문회를 통해 '아전인수'와 '내로남불'(올 1월 이 <중앙일보> 기자가 쓴 칼럼엔 '지겹다 내로남불'이란 제목도 있다)의 작태를 연출했던 것은 누구인가. 걸핏하면 색깔론을 내걸거나, 지극히 문재인 정부 길들이기를 위한 정치공학적인 잣대를 들이대고, 때때로 20년도 넘는 후보자들의 위법 행위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던 것은 또 누구인가.

이런 이들은 또 있다. 안 기자를 포함해 보수매체들이 대체로 비슷하겠지만, 눈길을 끄는 인물이 있다. 최근 <TV조선>의 메인앵커 자리를 꿰찬 전원책 변호사, 아니 전원책 앵커가 딱 그렇다.

'팩트'에 충실하겠다던 전원책의 '혁명' 알레르기

<TV조선> '종합뉴스 9'의 한 장면.
 <TV조선> '종합뉴스 9'의 한 장면.
ⓒ 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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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주목한 건 문 대통령이 사용한 '촛불혁명'이란 단어입니다. CSIS 전략연구소 초청만찬에서의 말씀입니다. "촛불혁명은 대통령으로서 나의 출발점이다. 그 요구에 화답하는 것이 대통령으로서 나의 책무다." 특파원간담회에서도 촛불혁명이란 단어를 썼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촛불혁명으로 교체된 대통령이란 점에서 굉장한 존중을 보였다." 그러니까 권력의 정당성을 촛불시위, 다시 말해 광장의 시민들에게서 찾은 겁니다.

우선 촛불시위를 혁명이란 관점에서 보고 있다는데 저는 놀랐습니다. 문 대통령은 헌법적 절차인 탄핵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되자 보궐선거로 당선된 분입니다. 그것을 혁명으로 보는 건 대통령의 개인적 시각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외교석상에서 한국정부를 혁명으로 탄생한 정부라고 하는 건 분명 한 발 더 나간 것입니다. 문 대통령은 헌법적 계속성을 가진 대한민국의 대통령입니다. 스스로 지지층만의 대통령으로 남고 싶지는 않을 것이라고 저는 믿고 싶습니다."

지난 3일, <TV조선> '종합뉴스 9'의 진행을 맡은 전원책 앵커가 처음으로 내놓은 클로징 멘트다. 첫 일성으로 "살아있는 뉴스를 전달하겠다"며 "팩트를 전달하겠지만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를 지키는데 결코 소홀하지 않겠다"던 전 앵커의 인식수준이 이 정도다. '우리'란 누구를 뜻하겠는가.

문 대통령이 "권력의 정당성"을 "광장의 시민들"에게서 찾은 거란 해석을 내놓은 것도 그러하지만, 그에 대해 "놀랍다"는 인식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대목에서는 정말로 놀랄 수밖에 없다. "보궐선거로 당선된 분"이라고 깎아내리려는 의도도 선명하다. 게다가 문 대통령은 "외교석상에서 한국정부를 혁명으로 탄생한 정부"라고 했다며 "분명 한 발 더 나간 것"이라고 침소봉대하는 것은 그야말로 "팩트"에 부합하지 않는 대목이다.

혁명이라는 '비유'를 '팩트'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혁명'이란 단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우리', 그러니까 보수층을 대변하고픈 전 앵커의 무의식이 드러나는 표현이라고 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전 앵커는 "문 대통령은 헌법적 계속성을 가진 대한민국의 대통령입니다. 스스로 지지층만의 대통령으로 남고 싶지는 않을 것이라고 저는 믿고 싶습니다"라고 일종의 경고 아닌 경고를 날리기까지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촉구' 촛불집회는 22차에 걸쳐 열렸고 약 2300개의 시민단체, 총 1700만 명(주최측 추산)의 국민이 참여했다. 탄핵을 앞두고 2월 28일에서 3월 2일까지 한국갤럽에서 성인 101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는 19∼29세 92%, 30대 95%, 40대 89%가 탄핵에 찬성했다고 나올 정도였다. 이런데 문 대통령이 '촛불혁명'을 거론했다고 해서 '지지층만의 대통령' 운운하는 것은 부적절한 표현 아닐까.

'내로남불'은 누구들의 장기인가

지난 3일 <TV조선> '종합뉴스9'의 한 장면.
 지난 3일 <TV조선> '종합뉴스9'의 한 장면.
ⓒ 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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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점은 전원책 앵커 역시 지난 3일 앞서 소개한 <중앙일보> 안 기자의 인식과 대동소이한 톱보도를 내놨다는 점이다. 이날 톱보도는 김상곤·송영무·조대엽 세 장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 찬성 여론이 매우 낮다는 내용(관련기사 : '전원책 뉴스'는 '촛불혁명'이 불편했다)이었다.

"세 후보자를 임명해야 한다는 응답은 10명 중 2명 정도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는 것이 핵심이었는데, 톱보도로서의 경중(이날 다른 방송사는 모두 폭우를 첫 보도로 다뤘다)을 떠나 설문조사를 토대로 부정적 여론을 부각시키는 설문 해석부터가 딱히 '팩트'에 부합하지 않는 '의도'가 다분히 엿보이는 해석이 주를 이뤘다. 민주언론시민연합에 따르면, 해당 설문 내용에서 찬성 여론이 10명 중 2명이라 낮은 편인 게 맞지만, 지명 철회나 자진사퇴를 요구한 것도 10명 중 3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보수매체들의 '아전인수', '내로남불'의 보도와 칼럼들이 슬금슬금 고개를 들고 있다는 점이리라. 그러니까 자신들이 만들고 키웠으며 정권 유지에 혁혁한 공을 세웠던 박근혜 정권의 몰락 과정에서 반성은커녕 다시금 '문재인 흔들기'에 나서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촛불광장에서 시민들에게 내몰렸던 MBC와 KBS 역시 같은 맥락에서 내부구성원들로부터 사장단의 퇴진과 개혁을 요구받았다.

이러다 '내로남불', 즉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을까 무섭다. 더욱이 팩트는 기본이요, 기억의 왜곡과 망각을 죄악시 여겨야 할 글쟁이들이, 언론인들이 가져야 할 자세는 아니지 않은가. 보수언론, 보수매체가 원래 그렇지 않았느냐고?

이른바 '기레기'의 시대, 적폐와의 전쟁을 선언한 문재인 정부에서 이들 보수매체들의 저항은 나날이 늘어만 갈 것이다. 우리는 이미 참여정부에서 뼈 아픈 학습을 거친 바 있다. 문재인 정권을 탄생시킨 그 촛불시민들은 그래서 오늘도 더 바쁜가 보다. 이러한 '망각'의 글쟁이들과 싸워내야 하기에.


태그:#전원책, #중앙일보,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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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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