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상반기 흥행 1위를 차지한 영화 <공조>.

2017년 상반기 흥행 1위를 차지한 영화 <공조>. ⓒ CJ엔터테인먼트


그리고 남자들의 범죄, 그리고 남자들의 고군분투. 2017년 상반기 한국영화 박스오피스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상반기 박스오피스 1, 2위를 차지한 <공조>와 <더킹>이 그랬고, 3위 <프리즌>은 아예 여성 출연자가 희귀할 수밖에 없는 '남자 교도소'라는 공간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다.

몇 년 째 이어진 한국영화계 전반의 뚜렷한 하향평준화 속에서 승자독식 구조도 뚜렷했다. '100만 돌파'도 힘겨운 상황이지만 상향된 제작비 탓에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하는 영화들이 속출했다. 그 틈바구니 속에서 의외의 흥행작도 나왔고, 어이없는 실패작도 속출했다. 전반적으로 '(남성 위주의)범죄'를 중심에 두고 드라마와 액션, 느와르와 코미디 등 장르들을 펼쳐나간 모양새였다. 그러나 작품적으로 '방점'을 찍을 만한 수준의 화제작은 없었다.

전체 관객 점유율도 청신호를 켤 수준은 아니었다. 각각 781만 명과 531만 명을 동원한 <공조>와 <더킹>이 시장을 견인한 1월(54.5%)과 2월(58.6%)은 제외하곤, 3월부터 5월까지 한국영화 점유율은 30%대에 머물렀다. 겨울방학 기간까지 이어지는 설 연휴와 2월에 강한 상반기 한국영화의 흥행 패턴을 고스란히 답보했다고 보면 맞다.

6월까지 할리우드 대작인 <미이라>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 <원더우먼> <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가 1위부터 4위를 싹쓸이하면서 이러한 경향은 두드러졌다. 한국영화는 현재 박스오피스 1위 이준익 감독의 <박열>이 선전 중이고 CJ 엔터테인먼트의 '텐트폴' <군함도>가 개봉하는 7월과 <택시운전사> 등이 대기 중인 8월에 들어서면서 점유율만큼은 반짝 반등세를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2017년 상반기 영화계의 몇 가지 경향들을 짚어 봤다. <군함도>를 비롯해 이미 예견된 몇몇 거대 배급사의 '텐트폴' 영화의 흥행으로 여름 한철 반짝 분위기 전환은 이뤄낼 수 있겠지만, 상반기에 드리워진 이러한 경향들이 반전을 이룰지는 단언컨대 불투명해 보인다.

장르의 변주, 그럼에도 득세한 '남자'영화들

 2017년 상반기 흥행 2위에 오른 <더 킹>.

2017년 상반기 흥행 2위에 오른 <더 킹>. ⓒ NEW


남한 형사와 북한 군인이 사건을 해결한다(<공조>). 정치 (남)검사들의 흥망성쇠는 한국 현대사의 궤적과 크게 다르지 않다(<더 킹>). 감옥의 남자들은 인정사정 볼 것 없고(<프리즌>), 부산 기장의 아재들은 동네를 지키려고 좌충우돌이다(<보안관>). 억울하게 누명을 쓴 청년도, 그 청년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분투하는 변호사도 물론 남자다(<재심>).

역시 누명을 쓴 주인공을 도와 범죄 집단과 맞서는 조력자들 중 여자는 단 한 명뿐이다(<조작된 도시>). 그리고 이 장르들은 형사액션, 정치·검사 드라마, 감옥 느와르, 아재 코미디, 블록버스터 액션, 법정 소재 휴먼드라마 등으로 분화된다. 여성들은 극의 중심에 없다. 언제나 그렇듯.

최근 2017년 상반기 손익분기점을 넘긴 상업영화가 고작 7편이란 소식이 화제가 됐다. 소개한 영화들은 박스오피스 상위 6위를 차지하면서 각자의 손익분기점을 넘긴(<조작된 도시> 제외) 상반기 흥행 영화들이다. 여기에 작년 12월 개봉한 <마스터>와 다큐멘터리 <노무현입니다>, 손익분기점 돌파에 실패한 <임금님의 사건수첩>과 <특별시민>을 더하면 상반기 박스오피스 10위 리스트가 완성된다.

예외적인 경우라면, 지난 6월 8일 개봉해 '마의 100만'을 돌파한 <악녀> 정도일 텐데, 이 영화 역시 김옥빈을 원톱으로 내세우면서도 남성적인 시각에 갇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조작된 도시>와 <특별시민>에 연이어 출연한 심은경의 캐릭터는 다소 특이한데, 전자는 주인공 지창욱 캐릭터를 도우며 로맨스의 기운을 풍기는 조연인 반면 136만을 동원한 <특별시민>은 부패한 시장 세력을 도우면서 번민하는 전형적인 '프레시맨' 캐릭터라 할 수 있다.

김옥빈의 <악녀>가 '여성 킬러'라는 장르 성격에 방점을 찍었다면, 좀 더 현실적인 <특별시민>은 주로 남성들이 맡았던 '입문자' 캐릭터를 여성 배우에게 맡긴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지난해 상반기 <비밀은 없다>나 <굿바이 싱글>, <덕혜옹주>의 여성 서사에 비하면 그 중량감이 턱없이 부족하다랄까. 그나마 <마스터>의 엄지원이나 진경 캐릭터가 서사에 단단히 흡착된 여성 캐릭터라 할 만하다.

전형적인 범죄수사물(<마스터>)과 인물시사 다큐멘터리(<노무현입니다>), 코믹사극과 정치드라마까지 더 한다면 흥행 영화들의 장르가 꽤 다채롭게 보일 순 있다. 남성이 서사의 중심에 선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이 리스트를 들여다보면 실로 심각하다.

이제는 상업영화가 관객대중의 무의식을 반영하는지, 그 상업영화들이 억지로 그 무의식을 선도하는지 구분이 안 갈 정도다. 주요 여성 캐릭터의 부재나 중량감 부족은 한국 상업영화가 지속적으로 풀어내야 할 숙제인 것이다.

2017년 상반기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1위 <공조> (7,817,459)
2위 <더 킹> (5,316,015)
3위 <프리즌> (2,931,897)
4위 <보안관> (2,587,976)
5위 <조작된 도시> (2,514,943)
6위 <재심> (2,421,011)
7위 <마스터> (2,212,559)
8위 <노무현입니다>(1,833,147)
9위 <임금님의 사건수첩>(1,634,403)
10위 <특별시민>(1,362,634)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7월 4일 기준)

여전히 애매하고 극심한 불균형, '다양성'이란 카테고리 

 영화 <눈길>의 스틸컷.

영화 <눈길>의 스틸컷. ⓒ 엣나인


영화진흥위위원회 통합전산망 상 '다양성 영화' 1위는 현 독립/예술영화계의 일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희원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하고,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가 배급한 국산 애니메이션 <터닝메카드W: 블랙미러의 부활>은 지난 1월 개봉, 42만을 동원하며 1위에 올랐다.

방학 시즌을 겨냥한 애니메이션들이 다양성 영화로 분류되면서 생기는 일종의 해프닝인데, 영화진흥위원회의 '다양성 영화' 분류가 얼마나 자의적이고 비현실적인지를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러한 혼돈은 박스오피스 순위에서도 고스란히 반영된다고 할 수 있다.

뒤를 이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눈길>, '작은' 김태용 감독의 <여교사>, 기독교 소재 다큐멘터리 <서서평, 천천히 평온하게>, 홍상수 감독의 신작 <밤의 해변에서 혼자>가 5만 이상을 동원하며 5위권을 형성했다. <눈길>이 최대 495개 스크린을, <여교사>는 393개, <서서평, 천천히 평온하게>도 234개를 확보했다.(<노무현입니다>는 개봉일 580개 스크린으로 출발했다)

한국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를 포함한 이 다양성 영화 시장이야말로 배급 사이즈를 벌리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극소수의 비중을 차지하는 독립예술전용관에만 의존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극심한 불균형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비멀티플렉스 극장 역시 존립을 위해 블록버스터나 외국 수입영화, 즉 장사가 되는 영화들까지 수용할 수밖에 없다.

이들 극장에서 한국 독립영화들의 상영 횟수를 잡아먹은 <옥자>의 개봉 상황이 그런 모순된 환경을 적나라하게 까발려준 준 경우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애매한 배급/극장 환경이 개선될지는 미지수다. 최근 독립영화 지원 활성화와 더불어 '영화 산업 양극화'의 개선의지를 천명한 도종환 신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의지와 이와 연관된 '영비법 개정'에 대한 국회 차원의 공감대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그럼에도 주목할 만한 작품들은 개봉을 이어갔다. 구교환의 열연이 돋보이는 <꿈의 제인>, 신준 감독의 데뷔작 <용순>, 역시 고봉수 감독의 데뷔작 <델타 보이즈>가 극영화로서는 호평을 받았다 다큐멘터리로는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가 제작한 <더 플랜>과 해직 언론인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한 <7년-그들이 없는 언론>, 성주 주민들의 사드 투쟁을 그린 <파란나비효과>가 주목을 받았다. 특히 극영화는 홍상수 감독을 제외하고 신인 감독들(2부작 드라마를 영화판으로 완성한 <눈길>을 포함)의 데뷔 장편이 주목을 받은 셈이다.

2017 상반기 한국 다양성영화 박스오피스
1위 <터닝메카드W: 블랙미러의 부활> (429,569)
2위 <눈길> (130,060)
3위 <여교사> (116,851)
4위 <서서평, 천천히 평온하게> (116,024)
5위 <밤의 해변에서 혼자> (56,907)
6위 <더 플랜> (34,225)
7위 <마리안느와 마가렛> (27,479)
8위 <꿈의 제인>(22,269)
9위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19,440)
10위 <7년-그들이 없는 언론>(16,577)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7월 4일 기준)

그리고, 신임 문화부 장관에게 거는 기대

 영화 <옥자>의 스틸컷.

영화 <옥자>의 스틸컷. ⓒ 넷플릭스


여러 연예 매체들은 올해의 주요한 영화계 사건으로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의 스캔들을 꼽기도 했다. 특히 김민희가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베를린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홍상수 감독이 올 칸 국제영화제에 <그 후>와 <클레어와 카메라> 두 편을 나란히 초청받으면서 이 두 사람의 관련 소식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영화감독과 배우가 영화보다 영화 외적인 상황으로 더 주목받은 경우라 씁쓸함을 더하는 풍경이랄까.    

그런 감독은 또 있었다. 봉준호 감독은 상반기 내내 <옥자>로 화제를 몰고 다녔다. 넷플릭스가 제작하고 넷플릭스로 서비스되는 영화이기에 칸 국제영화제는 물론 국내에서도 영화 외적인 배급 환경과 관련 숱한 논란과 논쟁을 낳았다.

반면 역시 칸 미드나잇스크리닝 섹션에 초청된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의 변성현 감독은 개봉 직후 터진 소셜미디어 글 논란으로 칸 레드카펫도 밟지 못하는 불운을 맞았다. 영화는 결국 남부럽지 않은 완성도와 화제에도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다. 

그럼에도 상반기 이슈는 누가 뭐래도 탄핵 정국일 것이다. 주말이면 극장을 향했을지도 모를 시민들이 연일 촛불을 들었던 것도, 이에 힘입어 <노무현입니다>가 200만에 가까운 흥행몰이를 한 것도,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에 항의하는 영화인들의 목소리가 지속된 것도 다 탄핵된 전직 대통령과 그 정부 탓일 것이다.

문화예술계가 직격탄을 맞았던 만큼, 새 정부 들어 영화진흥위원회의 정상화를 비롯해 극장 환경이나 독립영화계가 '이명박근혜' 전으로 되돌아 갈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그러기에 앞서, 당장 올 여름 <군함도>와 <택시운전사>의 흥행 성적이 또 산업을 견인할 것이다. 상반기 한국영화의 점유율은 43%였다.

옥자 공조 홍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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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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