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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책이 나왔습니다'는 저자가 된 시민기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저자가 된 시민기자라면 누구나 출간 후기를 쓸 수 있습니다. [편집자말]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
ⓒ 어떤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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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 그러니까 '글 쓰는 치과의사', '글 쓰는 교사', '글 쓰는 주부'... 그럼 나는? '글 쓰는 일당 노동자'라고 할까, '글 쓰는 반백수'라고 할까? 아직(?) 전업작가는 아니니까. 

올여름도 방울토마토 비닐하우스 농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선홍색으로 잘 익은 토마토를 선별해 따는 작업이다.

나이 쉰 중반에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이라는, 생애 첫 책을 출간한 지 3개월쯤 지났다. 일손 달려 쩔쩔매는 농가와 출판사가 주는 인세만으로는 먹고살기 팍팍한 (여행 경비도 꿍쳐둬야 하고) '무명작가'가 손뼉을 마주쳤다.   

작업은 지리산 산내 삼화리 마을에서 오전 5시 30분부터 시작됐다. 8시쯤 되자 토마토의 붉은 단내와 달궈진 공기로 들숨날숨이 후끈후끈. 찜통에 들어앉은 양 숨이 뜨겁다. 그래도 기분은 완전 '짱'이다.

나는 '육체노동'이 즐겁다. 30여 년 동안 소설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신춘문예에 해마다 도전하며 농장, 공사판, 식당 같은 곳에서 입에 풀칠을 한 덕에 몸과 마음이 단련 됐다. 토마토 따기도 올해가 두 해 짼데, 손끝이 숙련 됐다.

톡! 바닥에 떨어진 토마토 한 알을 입에 넣었다. 땡글땡글 입 안에 퍼지는 신선한 단맛이 끝내준다. 지난해 이맘때가 생각났다. 그때도 여전히 '작가 지망생'으로 노동을 하며, 여기저기 출판사에 '아이슬란드 여행기 원고'를 투고했다. 

 비닐하우스에서 토마토 따기
 비닐하우스에서 토마토 따기
ⓒ 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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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나 저제나 좋은 소식이 들려올까... 목차, 저자 약력, 기획서, 출간제안서와 함께 원고를 부지런히 출판사로 보냈다. 처음엔 대형출판사들부터 문을 두드렸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 쉽게? 그건 아니었다.

'자유, 여백, 느림 등을 찾아 여행하고 살아왔던 나는 출판계 역시 그런 여유 있는 문화적인 곳인 줄 알았다. 글만 진정성 있게 쓰면 환영받을 줄 알았다. 그러나 출판계는 거대한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어느 영역 못지않게 시장성 원리에 의해 '빡세게' 돌아가는 곳이었다. 나는 그 거대한 장벽 앞에서 종종 소외감을 느꼈다.' - 여행작가 이지상의 <여행작가 수업> 중에서. 

나 역시 '그 거대한 자본주의 장벽' 앞에서, 첫 발부터 맥을 못 췄다. 진입장벽이 만만치 않다는 걸 뼈저리게 실감했다. 열 번째로 원고를 보낸 출판사에서 퇴짜를 맞고 '투고'를 접으려고 했다.

내 인생의 축소판 같았던 71일 아이슬란드 히치하이킹 여행. '죽을 만큼 힘들고, 눈물 나게 외롭고, 아찔하도록 위험한 여정'을 겪은 후, 또 죽을 힘을 다해 쓴 글이었다. 이제 그만, 외장하드에 처박아두려 했다. 마음 가볍고 홀가분하게.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 생각도 못했을 일이었다. 출판을 집어치우겠다고? 그것도 마음 가볍고 홀가분하게? 그랬다.

 71일 히치하이킹 아이슬란드 여행 중에
 71일 히치하이킹 아이슬란드 여행 중에
ⓒ 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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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로 떠날 땐 나는 '인생 실패자'였다. 그러나 그 기괴한 대자연 속을 누비며 죽을 고비를 넘기고 돌아와선 사람이 확 달라져 있었다. 더는 뭐가 되려고 아등바등 하지 않았다(소설가가 되겠다고 발끝을 세우고 30여 년 참 모질게 살았는데). 인생 실패니 성공이니 하는 말 따위가 뭔 대수람!

미국의 저명한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의 말처럼 '매순간 살아 숨 쉬는 걸 절절히 체험하며 사는 거지' 싶었다. 무슨 큰 깨달음이라도 얻은 것 마냥(물론 순간순간 사사로운 감정에 애면글면 붙들리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속물이니).

아무튼 책을 출간하고 작가가 되고... 하는 일에 목매달지 않았다. 책이 나오면 좋고, 안 나와도 좋았다. 다만 출판사들로부터 거절당하는 이유는 정말 궁금했다. 궁금해서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이유가 뭘까? 왜?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작품성'이 한참 모자라나?(그래도 문예창작 전공자로 수십 년 소설 습작을 했고, 오마이뉴스에도 종종 글을 올렸고... 그러니 아주 형편없지는 않을 텐데), '시장성'이 꽝인가?(설마 독자들이 모두 부드럽고 서정적이고 달짝지근한 에세이만 편식하겠나), 분량이 너무 긴가? (국내 여행 서적엔 사진을 본문 곳곳에 잔뜩 까는데, 그렇게 만들면 두 권짜리 분량이니), 읽어 보지도 않았나?(젠장! 그런 것 같다), 30여 년 신춘문예에서 떨어졌듯이, 떨어지는 게 내 팔자라서?(웃기고 있네! 말도 안 된다), 유명인도 아니고 소위 파워블로거도 아니고, 어디서든 이름 날리는 사람이 아니라서?(그럴 수도 있겠다)

이유가 뭐든 투고를 그만 접으려는데,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은경씨, 포기하지 말아요. 나도 작가 친구가 있다고 자랑하고 싶은데... 날 위해서라도 책 꼭 내요. 네?"

그때 불현듯, 연로하신 부모님 얼굴이 떠올랐다. 딸의 꿈이 이뤄지길 여든 넘도록 오매불망 기다리고 계신 분들(그분들에게는 내 책이 소설책이든 에세이집이든 무슨 차이가 있겠나).

마음을 다시 잡았다. 투고를 계속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반가운 소식은 오지 않았다. 서른두 번째 퇴짜를 맞은 날엔 하늘을 향해 손가락으로 '퍽큐!'를 날리며 키득키득 웃었다. 그러다가 마치 날아가는 참새 똥구멍이라도 본 사람마냥 몸을 흔들며 웃어젖혔다. 푸하하핫!'

그동안 '똑같은' 답변을 친절하게 보내준 출판사가 다섯 곳이었다. 모범답안처럼 '출간 방향이 맞지 않아 출간이 어렵습니다'라고. 나머지에서는 묵묵부답(기다리라던 2주 혹은 1달 동안 내 원고로 국을 끓여 잡수셨나?).  

마침내 서른 세 번 째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도서출판 어떤책이라는 1인 출판사였다(사실, 내가 직접 투고한 곳이 아니라 지인의 손을 통해 원고가 넘어간 곳이었다. 그러고 보니 막무가내 '투고'로는 그 장벽을 넘어설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김정옥 대표를 만난 지 10분도 안 지나 그가 내민 출판계약서에 흔쾌히 사인 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믿음과 신뢰가 가는 사람이었다. 그는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을 출판한 후 '우리의 운을 우리가 결정했던 게 아닐까'라는 제목으로 온라인 서점에 편집후기 글을 썼다.

'...타인의 운을 내가 결정하는 때도 있다. 투고 원고를 검토할 때다. 출판사에는 꾸준히 원고가 들어오는데 안타깝게도 출판사가 투고 원고를 출간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이 원고를 굳이 다른 사람들이 읽을 이유가 있을까 싶을 때도 있고, 애초에 투고 원고를 진지하게 검토할 수 없는 상황도 있다. (중략)

이번에 어떤책은 투고 원고를 출간했다. 분량이 200자 원고지로 1400매 정도 되었는데, 파일을 열자마자 그 자리에서 다 읽었다. 빌 브라이슨, 더글러스 애덤스, 메리 로치,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글, 흔히 '영미논픽션'이라 불리는 스타일을 좋아하는 내 취향을 사로잡는 원고였다. 지적이며 재치 있고, 좌충우돌하는 캐릭터가 펄펄 살아 있는 실제 이야기.

낮에는 육체노동을 하고 밤에는 글을 쓰는 여성 작가였다. 15년 편집자 경력에 식당에서 설거지하고 밭에서 토마토를 따는 작가와 일해 본 경험이 없었다. 나와는 판이하게 다르게 사는 작가에게서 이토록 나를 매혹하는 글이 나온다는 게 신기했다.(중략) 이 자리를 빌어 글 쓰는 일에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계신 모든 분들께 경의를 표한다. 이 책이 그분들께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는 정말 이지상 작가의 말처럼 '책이란 작품을 만드는 보람으로 일하는 편집자였다. 많이 팔리는 것도 좋지만 사회에 의미 있는 메시지, 개인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은 원고를 발굴하여 책으로 만드는 데서 기쁨을 찾는 사람이었다. 저자들에겐 정말 고마운 편집자.' 나는 서른두 번 원고를 퇴짜 맞고 그를 만난 게 행운이다 싶었다.

지난 4월, 막 출간된 정성들여 정갈하게 잘 만든 책을 들고 고향 부모님을 찾아갔다.

"내 평생 네 책이 나오길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아버지가 책을 받으며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으셨다. 며칠 후 엄마가 전화를 걸어왔다.

"책 다 읽었다. 얼마나 울면서 읽었는지... 우리 딸 고생 많았다... 고맙다! 사랑한다!" 

생전 처음 효도를 한 것 같았다. 두 분이 더 연로해지시기 전, 그러니까 너무 늦지 않아 다행이었다. 지난 6월엔 부모님이 이모, 외삼촌, 외숙모를 모시고 지리산에 있는 내 집을 찾아오셨다(나는 30여 년 만에 만나는 친척들이었다!). 아버지는 나와 둘이 있을 땐 '은경아~!' 부르시는데, 그때 친척어르신들 앞에선 목청 돋워 '작가님, 강작가님~!'이라고 날 계속 부르셨다.

 토마토 농장에서 휴식시간
 토마토 농장에서 휴식시간
ⓒ 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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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를 따다가 으쓱거리시던 아버지 표정이 생각나서 풋! 웃음이 터지려는데, 휴대폰 진동음이 작업 바지 주머니에서 울려왔다. 토마토 줄기 진액이 묻어 푸르둥둥 더러워진 손으로 폰을 조심조심 열었다. 마침 엄마였다.

"엄마, 나 일 하는 중이야. 끝나면 전화 할게요... 아니, 토마토 따요.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어지러우면 하우스에서 나갈게... 아이, 참 걱정하지 말라니까. 일 재밌어요. 힘들어도 재밌으니까 하지..."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다시 빨간 토마토 한 알을 쏙 입에 넣었다. 아릿한 향이 온몸으로 퍼져가는 듯했다. '살아 있다'는 존재의 희열감마저 불러일으키는 그 진한 향기와 맛! 달콤한 노동의 맛이었다.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 - 실패를 찬양하는 나라에서 71일 히치하이킹

강은경 지음, 어떤책(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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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지리산으로 귀촌하였습니다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