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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강경화 신임 외교부 장관 취임식이 열리고 있다.
 지난 6월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강경화 신임 외교부 장관 취임식이 열리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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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이 바뀌면서 한국이 개발도상국의 사회·경제적 발전을 지원하는 국제개발협력 분야도 큰 변화를 겪고 있다. 특히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된 대표적인 브랜드 사업들이 잇따라 폐지되는 추세다.

지난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비판 받은 '코리아에이드(Korea Aid)'는 보건 아웃리치 프로그램으로 변경됐고, 박근혜 정부 들어 예산이 3배 이상 대폭 증가한 '새마을 ODA' 사업도 기존의 농촌개발사업으로 재편된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달 30일 새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개최한 '국제개발협력위원회' 회의 모두발언에서 "작년에 일부 사업이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돼 국민이 ODA(공적개발원조) 사업에 대해 실망을 일부 갖게 된 것은 사실"이라며 원칙에 따라 투명하게 추진해 국민들의 지지와 신뢰를 회복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가운데, 여아의 치열한 공방 끝에 문재인 정부의 첫 외교 수장인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임명됐다. 국제개발협력 분야의 개인과 단체들은 강 장관 임명을 강력히 지지했다. 2006년부터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부고등판무관,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사무차장보 등을 지내며 오랫동안 국제사회의 인권과 인도주의 지원 분야에서 활동한 강 장관이 역대 장관들보다 국제개발협력에 대한 이해가 깊고, 개혁적인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여성으로서 보수적인 외교부의 유리천장을 깨고 장관에 올랐다는 사실 자체가 개혁이었다.   

제도의 변화에는 세계관, 규범적 신념으로서의 '아이디어'와 '정치적 구조' 그리고 '행위자'간의 조합이 영향을 미친다. 국제개발협력과 관련한 다양한 아이디어의 분출, 10여 년 만의 민주정부의 등장, 핵심적 행위자인 강 장관의 등장 등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지금이 한국 국제개발협력 개혁의 적기이다.

물론 현재 한국의 개발협력 추진체계가 무상원조(외교부)와 유상원조(기재부)로 이원화된 구조인데다, 외교부 내에도 사드, 북핵, 한일 위안부 합의 등 주요 현안들이 산적해있다. 그러나 강 장관은 한국 무상원조 전체를 주관하는 외교부의 수장으로서 한국 국제개발협력의 개혁을 이끌 수 있는 중요한 '행위자'임은 분명하다. 과거 영국와 일본에도 특정 인물이 국제개발협력의 개혁을 주도한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국제개발협력 개혁 이끌어 낸 여성 리더들

1997년 '제3의 길'을 내세워 정권을 잡은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Tony Blair) 총리는 클레어 쇼트(Clare Short)를 독립적 원조부처인 국제개발부(Department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이하 DFID)의 초대 장관으로 임명했다. 쇼트는 국제개발부가 원조를 뛰어넘어 영국의 개발협력 정책 전반에 대한 책임을 갖고 부처 간 조정위원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내각회의에 참여하는 각료급으로서의 위상을 요구했고, 이를 얻어냈다.

이후 쇼트는 총리와 재무장관의 적극적인 지지 하에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했고, 전 부처에 국제개발부의 요구사항을 우선순위로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며 영국 국제개발협력의 개혁을 이끌었다. 한 예로 쇼트는 정부 담당부처가 무기수출허가서를 발급하는 과정에서 국제개발부와 협의하도록 만들었다.

이는 1994년 보수당 정부 당시 무기수출과 원조제공의 연계로 영국 국제개발협력 개혁을 촉발시켰던 '페르가우 스캔들'의 반복을 막기 위한 행동이었다. 현재 영국 DFID가 국제사회에서 개혁적인 정책 추진으로 국제개발협력을 선도하는 기관이라는 평을 듣는 배경에는 개혁적인 리더십을 발휘한 지도자가 있었다. 이념적으로 준비된 집권당, 정치적 기회의 활용,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의 등장. 이것이 영국 국제개발협력 개혁의 요체이다.

일본국제협력단(JICA)의 사다코 오카다 총재(2003-2011)
 일본국제협력단(JICA)의 사다코 오카다 총재(2003-2011)
ⓒ 일본 외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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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지난 2003년 일본의 ODA 시행기관인 일본국제협력단(이하 JICA)에는 10년간 유엔고등난민판무관(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er for Refugees)으로 근무했던 사다코 오카다(Sadako Ogata)가 새 총재로 부임했다. 오카다는 약 8년 동안 JICA 총재로 재직하며 3S(Scale up, Speed up, Spread out)를 기조로 내세워 많은 변화를 이끌어 냈다.

특히 2008년 유·무상 통합원조기관인 신JICA 출범을 주도했고, '인간안보'를 새로운 이념으로 제시했으며, 평화구축을 강조하고, 많은 직원들을 현장에 내보내는 등 조직개혁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오카다는 오랫동안 국제기구에서 활동하며 쌓은 안목과 경험, 전문성 그리고 강력한 리더십을 가지고 일본 국제개발협력의 개혁과 통합을 이끌어 내는데 크게 기여했다. 

오랜 보수정권 하에서 한국 국제개발협력의 개혁의 길은 지지부진했다. 장관들은 역대로 국제개발협력에 큰 관심이 없었고, 전문성 없는 대선캠프의 인사들이 한국국제협력단 이사장에 '낙하산'으로 부임해왔다.

10년 만에 들어선 민주정부에서는 무엇이 달라질까? 쇼트와 오카다의 행보는 강 장관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이들은 국민과 임명자의 강한 지지 위에서 국제개발협력에 대한 분명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개인의 뛰어난 역량과 리더십을 활용해 개혁을 이끌어 갔다. 물론 단순히 이들 개인의 노력만으로 개혁이 추진된 것은 아니다. 또한 개혁적으로 변모했던 영국과 일본의 국제개발협력이 현재 문제가 없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개혁의 단초가 이들에게서 기인한 것은 분명하다. 

현재 한국 국제개발협력은 위기의 기로에 서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과 사익추구의 수단으로 활용된 ODA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어느 때보다 낮다. 최근에 나온 ODA에 대한 감사원 보고서는 한국 국제개발협력이 가야 할 길이 아직 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강 장관은 우리 사회의 강한 지지를 바탕으로 유엔에서 인류 보편의 가치를 실현하는 활동을 통해 쌓은 경험과 전문성을 가지고 강한 리더십을 발휘해 한국 국제개발협력을 개혁해야 한다.

강 장관이 반쪽짜리인 무상원조 담당부처의 수장이라는 식으로 스스로의 위상을 축소하지 않기를 바란다. 사회의 지지를 바탕으로 대통령과 타 부처 장관들을 설득하고, 한국 국제개발협력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개혁적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장관 혼자서 하는 개혁은 오래갈 수 없다. 한국 국제개발협력의 적폐를 해소하고 지속적인 개혁을 추진해 나갈 개혁그룹을 제도화할 것을 제안한다. 머지않은 미래에 일본에는 오카다, 영국에는 쇼트가 있었다면, 한국에는 강경화가 있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본 글은 발전대안 피다의 웹진 피움 8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http://pida.or.kr/221040979399)



태그:#강경화, #O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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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대안 피다(구 ODA Watch)는 시민들과 함께 '개발'을 넘어 '발전'을 고민하고, 국내의 부조리하고 불평등한 개발을 '감시'하며 '대안'을 찾아가는 시민사회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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