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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먹으려고? 난 이제 다 먹었는데..."

가족들이 모인 저녁 시간, 식단으로 준비한 삼겹살이 부족한 것 같으니 조금 더 굽겠단다. 그래서 난 그저 솔직하게 말했을 뿐이다. 그런데, 열심히 밥을 먹고 있던 가족들의 표정이 일순간에 무너졌다.

"당신은 사소한 거로 사람 기분 망치는 재주가 있어. 자기 숟가락만 놓고 닫아 버리면, 다른 사람 생각은 않는 거야? 그래서 결론이 뭔데?"

그랬다, 실은 내가 '다 먹었다'고 한 말에는 '인제 그만 먹을 때도 되지 않았나?'라거나 '그만 굽지 그래?'라는 의미가 이미 함축되어 있었다. 상대의 배려 따윈 0.001도 없는 나의 말투에 가족들의 원성은 불 보듯 뻔한 일. 차라리 쩝쩝거리는 소리를 내며 먹거나, 고기가 익기를 기다리는데 날름날름 다 집어가는 사람보다 이럴 땐 더 얄밉단다. 지나치게 솔직한 내 말투 한마디에, 모처럼 대화를 통해 깊어질 수 있는 가족 간의 소통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내가 식탁에서 '개저씨(개념 없이 나이를 앞세워 약자에게 무시하는 중년)'의 오명을 쓰게 된 이유는 바로 말투였다. 직장에서 반듯했던 젠틀맨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집에서 무심코 행했던 배려 없는 말의 버릇이나 모습들이 나를 개저씨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나는 매사에 솔직하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그 솔직함을 표현할 때 '무슨 말을 할까?'보다 '어떤 식으로 말을 전할까?'를 항상 잊고 있었다. 돌이켜보자면 나는 말하는 '내용'이 항상 우선이었지, '방법' 따위는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마음이 담기지 않은 그냥 '말'로만 표현했으니, 상대방에게 따뜻한 마음이 전혀 담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말투를 조금 바꿔보면 정말 나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도 있긴 하지만, 어쩐지 나에게는 와닿지 않는다. 그저 농담처럼 들릴 뿐이다. 그런데, 여기 말투 하나로 거의 두 배에 가까운 호감도의 차이를 보인 실험결과를 보니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미국 로욜라 대학에서 시민들에게 마케팅 조사라는 명목으로 볼펜과 연필을 보여주며 "이 제품들을 얼마나 좋아합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응답자의 36.1%가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같은 제품을 보여 주며 "이 제품들을 얼마나 싫어합니까?"라고 묻자 이번에는 좋아한다는 대답이 15.6%로 감소했다.

인간의 마음은 이상하게도 사소한 말투 하나의 차이에도 큰 영향을 받는다. 아주 작은 말투의 차이로 상대방의 부탁을 기꺼이 들어주는가 하면, 왠지 모르게 반발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떤 말투를 사용해야 상대방이 행동하고, 어떤 말투를 쓰면 상대방이 행동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당신의 말하기에 '심리'를 더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말투 하나 바꿨을 뿐인데>(일, 사랑, 관계가 술술 풀리는 40가지 심리 기술), 나이토 요시히토(심리학자) 저, 김한나 역
 <말투 하나 바꿨을 뿐인데>(일, 사랑, 관계가 술술 풀리는 40가지 심리 기술), 나이토 요시히토(심리학자) 저, 김한나 역
ⓒ 유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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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심리학자인 나이토 요시히토는 <말투 하나 바꿨을 뿐인데>라는 책에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투의 심리학'을 40가지의 노하우로 제시한다. 저자는 말투만 살짝 바꿔도 주변의 인간관계가 달라지고 인생이 바뀐다고 설명한다.

친구에게 뭔가를 부탁할 때는 될 수 있으면 '사소한' 부탁부터 하자. 속으로는 큰 부탁을 하고 싶어도 일부러 '사소한' 부탁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작은 부탁을 하면 상대방도 크게 부담스러워 하지 않는다. 즉, '받아들여도 되나?' 하고 판단하는 기준이 현저히 낮아져서 기꺼이 부탁을 들어준다. 이때 매우 신기한 현상이 일어난다. 자신은 '사소한' 부탁만 했는데, 상대방은 '그 이상의 호의'를 베풀어 주는 경우가 많다.(본문 20쪽, '이븐 어 페니 테크닉')

책에 등장하는 저자의 노하우를 좀 소개하면, 상대방에게 부탁할 때는 사소한 부탁부터 하면 뜻밖에 쉽게 풀린다. 단순히 "일 좀 도와줄래?"라고 말하지 말고 "10분만 도와줄래?"라고 부탁하면 1시간을 도와달라고 할 때보다 부담이 가벼워져서 응할 가능성이 높다. 또 한 번 응하기 시작하면 10분이 지났다고 바로 가버리는 사람은 없다.

'1페니(1파운드의 100분의 1)라도 좋으니 빌려만 달라고 부탁하면 대부분의 경우 그보다 더 많은 돈을 빌려준다'는 이와 같은 현상은 '이븐 어 페니 테크닉(even a penny technique)'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작은 부탁을 해 놓으면 나중에 요구 정도를 끌어올려도 잘 들어주기 쉽다.

저자의 이런 비법은 금세 적용할 만하다. 초등학생 자녀가 비만해져서 운동을 조금 시키고 싶다면 우선 "5분이면 되니까 걸어 보지 않을래?"라고 제안한다. 아이가 그 제안을 따른다면 "이제부터 5분은 빨리 걷기를 해 보자"라고 덧붙이면 된다. 일단 뭔가에 응하면 뒤로 물러설 수 없다는 마음이 생기는 이치다. 두 번째 부탁까지 알아서 선뜻 떠맡는 기적을 경험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호감 가는 사람으로 보이려면 어떻게 말해야 할까? 말은 인간관계에서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작은 말투의 차이가 상대에게 나를 호감 가는 사람으로 보이게도 하고 비호감으로 보이게도 한다. 특히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다가갈 때도 어떤 말투를 쓰느냐에 따라 상대의 호감을 끌어내기도 하고 거부당하기도 한다.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은데 괜찮습니까?" (O)
"당신을 보면 입에서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군요." (X)
"저와 함께 술 한잔하러 갈까요?" (△)

흔히 남성은 여성 앞에서 관심을 끌기 위해 과장해서 이야기하는 버릇이 있다. 그러나 알래스카 대학교의 심리학자 크리스 클레인크의 실험에 따르면, 매우 평범하게 접근했을 때 호감도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노멀의 법칙'이라고 한다. 따라서 영화나 만화 주인공처럼 멋 부린 대사는 필요 없다. 그냥 웃으면서 "저는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라고 평범하게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면 꽤 높은 확률로 여성이 "좋아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본문 55쪽, '노멀의 법칙')

같은 이야기라도 상대가 내 의견에 동의할 확률이 비약적으로 높아지는 사례를 모아봤다.

*상대의 YES를 끌어내려면?
- 그냥 김 대리 : "이번 주 금요일 회식에 오지 않을래?" (X)
- 긍정맨 김 대리 : "이번 주 금요일에 우리 부서 회식에, 내가 요즘 '썸'타는 여자 동료가 온대. 너도 와서 내가 그녀와 사귈 수 있게 옆에서 좀 도와줘." (O)

* 내 말을 믿게 하려면?
- 그냥 김 부장 : "여름철 더위 예방에는 장어구이가 최고지!." (X)
- 예리한 김 부장 : "며칠 전에 유명한 영양학자가 TV에서 말했는데, 여름철 더위 예방에는 장어를 먹는 게 좋대." (O)

* 인간관계를 돈독히 하려면?
- 짜증나는 김 부장 : "화장 좀 하고 다녀. 좀 더 가꾸고 출근하면 좋겠어!" (X)
- 배려하는 김 부장 : "요즘 같은 날씨에 빨간 옷을 입으면 더 멋져 보일 것 같은데?" (O)

정중한 말을 사용하면 지적이고 일을 잘하는 인상을 주지만, 상스러운 말을 사용하면 나쁜 인상을 준다. 그런 사람이 하는 말은 부하 직원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결론은 나이나 직책과 관계없이 언제든지 누구에게나 고운 말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연습하면 자전거를 탈 수 있고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말주변이 없는 사람이라도, 아무리 내성적인 사람이라도 연습하면 충분히 말을 조리 있게 할 수 있다. 그저 작은 동기와 의지만 있으면 된다. 말투를 아주 조금만 바꿔 보자. 그것만으로도 하는 일이 더 잘 풀리고 인간관계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사람은 심리로 움직이고, 심리는 말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꽂히는 말, 혹하는 말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오늘부터 당신의 말하기에 '심리'를 더하라.


말투 하나 바꿨을 뿐인데 (리커버 한정판) - 일, 사랑, 관계가 술술 풀리는 40가지 심리 기술

나이토 요시히토 지음, 김한나 옮김, 유노북스(2017)


태그:#말투, #나이토 요시히토, #말투 하나 바꿨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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