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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자들의 노동감수성을 주제로한 연구보고서를 낸 김정민 서울시 주무관.
 창업자들의 노동감수성을 주제로한 연구보고서를 낸 김정민 서울시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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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에 청년창업 열풍이다. 잡스 같은 IT의 영웅을 꿈꾸는 사람도 있을 테고, 살인적인 취업난을 벗어나려는 도피처로 창업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잘 되면 좋겠지만 잘 안 됐을 경우가 문제다. 회사가 망하면 사장은 본전은 못 건질지언정 자신이 계획한 대로 조직을 이끌어본 경험이 남을 것이다. 그걸로 재기를 하면 된다. 그러나 그 무모한 도전을 함께 했던 노동자들은 어떻게 될까.

그런 고민을 하는 공무원이 있다.

주인공은 서울시 대변인실 김정민 주무관(33). 그는 최근 서울연구원의 '작은연구 좋은서울' 기획을 통해 <청년창업자의 노동감수성 향상을 위한 방법>이란 제목의 연구보고서를 냈다.

"노동감수성은 내 시간만큼 타인의 시간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자기 업무를 하기도 바쁜 공무원이 이런 주제의 보고서를, 그것도 자발적으로 내는 건 매우 드문 일.

그러나 그가 예술대학 출신에 출판사 마케터, 교통방송 PD, 비영리재단 홍보담당자 등 다양한 이력을 거쳐 온 '어공(계약직공무원의 다른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공무원이 되기 전에 홍대의 뮤지션이나 아티스트들과 같이 일을 하다 보면 회사가 근로계약서를 쓰는 것은 차치하고 언제 돈을 받을 수 있을지조차 알려주지 않는 거예요. 일회성이라고 생각해서 가볍게 생각하는 경우가 빈번한 거죠."

그 자신도 다양한 노동환경을 경험하다 보니 타인들의 노동문제를 볼 때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감정이입이 되더라는 것.

"노동감수성은 내 시간이 중요한 만큼 타인의 시간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정의한 김 주무관은 언젠가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사용자와 노동자가 같이 행복한 문화예술 관련 사회적기업을 창업하겠다는 계획으로 보고서를 쓰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작년 10월부터 올 4월까지 이 보고서를 쓰기 위해 인터뷰한 사람은 자그마치 50여명. 보고서에는 간추려서 8건만 실었다.

▲ 직장경험 없이 창업한 주먹밥집 이사 ▲ 20대 직장경험이 있는 빵집 대표 ▲ 비영리단체에 취업했으나 경직된 조직문화에 실망하고 7개월만에 그만둔 20대 ▲ 탄탄한 조직생활을 경험하고 나서 자신만의 조직을 새로 만들었던 비영리단체 전직 이사 ▲ 다문화여성들을 위한 기발한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개발했다가 오래 못가 사업모델을 변경해야 했던 사회적기업 대표 등의 성공담과 실패담이 담담하게 실려 있다.

이어 노동감수성을 향상할 수 있는 본보기로 ▲ 학내 토론 동아리를 만든 교대생 ▲ 성과급제에 반대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서울대병원 간호사 ▲ 타인의 노동환경 경험을 인터뷰하는 소셜벤처투자사 매니저 등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그는 노동감수성과 노동교육의 연관성을 파악하기 위해 당초 창업자의 노동교육 경험 유무에 따라 인터뷰 유형을 나누려고 했으나, 노동교육을 받은 창업자를 찾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포기했다며 우리 사회 교육의 문제점에 혀를 내둘렀다.

"정부가 창업을 지원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인데, 일자리만 창출되면 다 되나요. 그 일자리가 지속 가능하려면 사용자가 되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노동교육이 필수적입니다. 사용자도 노동자의 권리를 알아야만 노동자의 시간이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되죠. 노동자도 사용자에게 어디까지 주장을 해도 되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럴려면 어쨌든 공통의 교육경험이 있어야 하는 거죠."

'나는 어공이다'로 시작하는 김정민 주무관의 연구보고서.
 '나는 어공이다'로 시작하는 김정민 주무관의 연구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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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임금·장시간노동이 당연? 요즘 세대는 달라요"

그는 기대와는 달리 비영리단체의 노동감수성이 영리회사에 비해 오히려 더 부족하다며 아쉬워했다.

"시민단체 혹은 사회적기업 같은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단체들은 처음에 일도 많고 이윤도 별로 없으니까 최저임금도 못 지키거나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아요. 과거 세대는 '여기 돈 벌러 온 게 아니잖냐'면서 당연한 걸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요즘 세대는 일자리 개념으로 생각합니다. 과거 세대는 민주화라는 가치를 이룩해낸 심리적 보상이 큰 듯하지만, 이명박근혜 정권 10년간 패배주의에 찌든 요즘 세대에게 돈은 활동을 지속하게 해 주는 중요한 가치 중 하나입니다."

그는 가장 인상적인 인터뷰로 다문화여성 산모들에게 같은 국가 출신 관리사를 파견해 산후조리를 돕는 비즈니스 모델을 고안했던 사회적기업 대표 인터뷰를 꼽았다.

좋은 취지의 사업에도 불구하고 평소에는 종이기저귀를 쓰다가도 산후관리사가 오는 날은 천기저귀를 써서 빨게 하거나, 내일 산후관리를 가야 하는데 전날 밤 늦게 못가겠다고 하는 등 당사자들의 노동감수성과 서로간의 신뢰 부족으로 오래 가지 못하고 서비스를 접은 게 아쉬웠기 때문이다. 

김 주무관은 서울시 직원들의 노동감수성에 대해서도 '사춘기 고등학생' 수준이라며 일침을 가했다. 즉 박원순 시장이 부임한 이후로 '노동존중특별시'를 내걸고 수많은 노동친화 정책을 폈지만, 정책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며 "아직도 산하기관 등에서는 하급 노동자들을 경시하는 풍조가 남아 있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에 대한 해법으로 "직원들의 노동교육 강화 및 비정규직 전환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비정규직 전환 정책을 추진하는 중앙정부 역시 공통으로 겪게 될 문제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향후 문화예술을 통해 도시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기업을 창업하고 싶다는 김 주무관은 올 9월에는 이화여대 대학원 사회적경제협동과정에 진학해 공부를 이어갈 예정이다.

서울연구원 신경희 박사는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기업들은 노동법이나 규칙 같은 노동업무를 따로 담당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소규모로 창업하려는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그런 사람들이 이 보고서를 읽어 보면 노동감수성 향상에 많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창업자의 노동감수성에 대해 설명하는 김정민 주무관.
 창업자의 노동감수성에 대해 설명하는 김정민 주무관.
ⓒ 서울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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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김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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