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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건대, 나는 가끔 공중화장실에서 사람들을 당황시키곤 한다. 남성들의 경우 화장실로 들어오다 홀로 있는 나와 마주치고는 자신들이 화장실을 잘못 찾아왔다고 판단하고는 되돌아 나가곤 한다. 드문 일이지만 여성들을 혼란스럽게 하기도 한다. 여자 화장실로 들어가려던 여성이 남자 화장실에서 나오던 나와 마주치고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식이다. 참고로 나는 남자 화장실 이용자다.

결코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것도 일종의 민폐라면 민폐라 할 수 있을 터, 믿거나 말거나 요즘에도 일어나는 일이다. 적어도 외모에 있어서 나는, 남성과 여성 모두의 기대를 배신한다. 얼마 전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을 바꾼 중요한 이유도, 알지도 못하는 백인 남성들의 연이은 페이스북 친구 신청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면 '계집애' 같다는 소리를 달고 살았지만, 그 소리가 그리 싫지 않았다. 주먹질도 곧잘 해서 어머니를 학교로 소환시킬 만큼 사고뭉치였고 '우등생'보다는 교실 뒤편의 '열등생'과 주로 어울렸지만, 확실히 '머스마'라기보다는 생각 많고 예민하며 표현력 강한 '가스나'에 가까웠다.

내 옷을 골라 주고 나와 옷을 공유하기도 하던 어머니 영향 때문인지 이른바 유니섹슈얼한 옷들을 즐겨 입었다. 학생은 물론이고 교사까지 남성만 득실거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후부터는 줄곧 더 자유로운 집단 속에서 긴 머리를 하고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남성에게나 여성에게나 '아저씨'보다는 '아가씨' 소리를 더 많이 듣고 살았다. 옛날 얘기가 아니다. 얼마 전 길에서 내가 지갑을 흘렸을 때 뒤에서 나를 부르던 호칭도 '아가씨'였다.

'남성성'을 거부하는 방법

소녀들 사이에서 발레를 배우는 빌리(제이미 벨 분)
▲ 빌리 엘리어트 소녀들 사이에서 발레를 배우는 빌리(제이미 벨 분)
ⓒ UIP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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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스럽게도 나는 내가 속한 노동자 계급 하위문화에서 요구하는 남성성을 큰 갈등 없이 거부하며 성장했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직업과 관련해서는 예외였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나는 미술대학을 가겠다고 선언을 해서 집안을 발칵 뒤집어놨다. "사내들은 축구나 권투, 아니면 레슬링을 하는 거야. 빌어먹을 발레는 하지 않아!" 영화 <빌리 엘리어트 Billy Elliot>(2000)에서 권투 대신 발레를 하겠다는 빌리를 다그쳤던 광산노동자 아버지는 결국 빌리와 함께 왕립발레학교 오디션에 참가한다.

하지만 영화와 현실은 달랐고, 나는 미술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큰아들을 육군사관학교에 입학시키길 원했던 부사관 출신인 아버지는 남자가 미술을 하는 걸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아들의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어머니 역시 미술대학 진학을 위해 필요한 별도의 사교육비를 감당할 여유가 없었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결국 시각예술계에 발을 들여놓긴 했다. 하지만 내가 10년이 넘는 길고 긴 우회로를 거쳐야 했던 것은 내가 속한 계급의 남성성에 관한 한계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적어도 당시 시각대로라면 노동은 남성의 역할이고, 예술은 노동의 포기를 의미한다. 따라서 평범한 노동자들의 아들이, 그것도 장남이 예술을 한다는 것은 남성성에 있어 치명적인 손실이다. 취향과 스타일의 소비에 있어 기존의 남성성을 위반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노동에 있어 남성성을 위반하는 것은 계급의 경제적 조건상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결국 예술이라는 노동을 선택하면서 그 남성성마저 거부했다.

빌리처럼 발레로 다져진 근육질의 몸이라는 또 하나의 남성성은 갖추지도 못했지만, 심지어 그런 남성성을 사진으로 담는 것도 거부한다. 여성성은 물론이고 남성성의 새로운 전형화와 상품화에도 반대하는 까닭이다. 이 거부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나도 알지 못한다. 분명한 건 누군가건 계속해서 새로운 남성성을 만들어낼 것이고, 누군가는 계속해서 기존의 남성성을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태그:#남성성들, #남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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