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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방문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일 오후 서울공항에 도착해 함께 전용기편으로 들어온 조선현종어보, 문정왕후 어보를 보며 박수치고 있다
 미국 방문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일 오후 서울공항에 도착해 함께 전용기편으로 들어온 조선현종어보, 문정왕후 어보를 보며 박수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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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왕후어보가 2일 대통령 전용기를 통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돈을 주고 매입한 문화재가 아니라 협상을 통해 돌려받은 문화재로 매우 이례적인 문화재 환수 사례다. 때문에 수많은 언론이 문정왕후어보 환수의 의미와 그 배경에 대한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언론에 보도된 기사 중 잘못 알려진 사실이 있어 이를 바로잡고자 한다.

화선지에 써진 '묵서'(墨書)

문정왕후어보에 붙어있는 묵서에 대해 이야기부터 하자면 일단 어보 측면에 붙어있던 것은 '묵지(墨紙)'가 아닌 '묵서(墨書)'다. 묵지는 한쪽 또는 양쪽 면에 검은 칠을 한 얇은 종이를 뜻하는 단어로 어보에 붙어 있던 종이는 검은 칠을 한 얇은 종이가 아니었다. 반면 묵서의 뜻은 먹으로 글씨를 쓰는 일이라는 단어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보에 붙어 있던 것은 '화선지에 써진 묵서'다.

공혜왕후어보 문화재제자리찾기 혜문대표가 공혜왕후어보의 묵서를 살피고 있다(왼쪽), 공혜왕후어보 측면에 '五室(오실)'이라고 써있다.
▲ 공혜왕후어보 문화재제자리찾기 혜문대표가 공혜왕후어보의 묵서를 살피고 있다(왼쪽), 공혜왕후어보 측면에 '五室(오실)'이라고 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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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처음 발견한 것인가?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는 2011년 공혜왕후 어보 경매사건에 관여하여 정부에게 압수를 권유하였으나 정부가 매입한 사건이 있었다. 이 당시 공혜왕후어보에도 화선지에 써진 묵서가 붙어있었다. 이에 LA 카운티박물관과의 1차 협상 당시 문정왕후어보에도 종이가 붙어있는지 확인 작업을 한 것이다.

LA카운티박물관 도록 LA 카운티박물관 도록에 ‘금보의 좌측면에는 묵서명의 흔적이 있으나 일부가 지워져 현재 정확한 내용은 파악하기 어렵다.’고 쓰여 있다.
▲ LA카운티박물관 도록 LA 카운티박물관 도록에 ‘금보의 좌측면에는 묵서명의 흔적이 있으나 일부가 지워져 현재 정확한 내용은 파악하기 어렵다.’고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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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카운티박물관 도록에도 '금보의 좌측면에는 묵서명의 흔적이 있으나 일부가 지워져 현재 정확한 내용은 파악하기 어렵다'고 쓰여 있다. 그러므로 현장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로 발견한 것은 아니다.  

문정왕후어보 화선지에 '六室大王大妃(육실대왕대비)'라는 묵서가 써있다.
▲ 문정왕후어보 화선지에 '六室大王大妃(육실대왕대비)'라는 묵서가 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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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서로 써진 "六室大王大妃(육실대왕대비)"가 환수의 결정적 계기?

국보 227호 종묘 정전은 역대 임금과 왕비의 제사를 모시는 제례 시설로 몇 차례의 보수를 거쳐 현재 19칸의 건물로 남게 되었다. 문정왕후는 조선 제11대 왕 중종의 계비로 중종과 함께 왕비의 신주가 종묘 6번째 방에 자리하고 있다. 조선 제11대 왕인데 왜 6번째 방에 자리하고 있느냐? 그것은 불천위 때문에 그렇다.

본래 제사는 고조까지 4대를 지내게 돼 있으나 '불천지위(不遷之位)'라 하여 큰 공훈이 있는 왕에 대해 신주를 다른 곳(영녕전)으로 보내지 않고 영구히 두면서 제사를 지낸다. 불천위인 서쪽 첫 번째 태조의 신주가 모셔져 있는 방부터 시작하여 태종-세종-세조-성종-중종-선조 등의 순서대로 신주가 모셔져 있다. 그러므로 문정왕후어보에 "六室大王大妃(육실대왕대비)"라는 묵서가 붙어있던 것이다.

그렇다면 묵서로 써진 "六室大王大妃(육실대왕대비)"가 문정왕후어보 환수의 결정적 계기였는가? 그렇지는 않다. 이미 묵서명을 파악하지 못하였지만, 묵서의 존재는 알려져 있던 것이었고 종묘 6번째 방에 있었다고 하여 LA카운티 박물관이 반환을 결정한 것은 아니다.

LA카운티박물관의 반환결정문 한국정부로부터 어떠한 요청도 받지 않았지만 제출한 자료가 신빙성있는 증거라고 판단하여 반환을 결정한다고 써있다.
▲ LA카운티박물관의 반환결정문 한국정부로부터 어떠한 요청도 받지 않았지만 제출한 자료가 신빙성있는 증거라고 판단하여 반환을 결정한다고 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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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환이 결정된 이유, 도난물품 입증의 세 가지 논거

'문화재제자리찾기'는 2009년도부터 문정왕후어보를 포함한 조선 왕실어보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였다. 이에 2011년부터 LA 카운티 박물관에 문정왕후어보 반환협상을 요구하였으나 당시엔 성사되지 못하였고 2013년 7월에 와서야 협상이 성사됐다. 이때 제출한 자료는 미국 국무부 수사기록과 양도나 매수가 불가능한 '불융통물'에 대한 주장, 미국 연방법이다.

우선 미국 국무부 수사기록은 2009년도에 문화재제자리찾기가 메릴랜드 국가 기록원에서 찾은 문서로 <볼티모어선>의 기사 기록과 양유찬 대사의 분실신고 기록이다. 6.25전쟁 당시 종묘에 있던 어보 47과가 분실되었고 발견 즉시 한국으로 돌려보내 달라는 내용이다.

두 번째로 '양도나 매수가 불가능한 불융통물'에 대한 주장이다. 어보는 국가 정체성과 관련된 문화재로 사사로이 매매 혹은 양도될 수 없는 물건이다. 따라서 박물관 측이 어보를 매입했다 하더라도 양도될 수 없는 물건을 매입한 행위에 해당함으로 원칙적으로 불법이라는 주장이다.

셋째로 미국 연방법 2314조(E.G., 18 U.S.C. SECTION 2314)다. 이것에 따르면 5000달러 이상의 물건이 미국에 반입될 때는 세관 기록이 있어야하고 정식 신고절차를 밟지 않았다면 해당 물건을 압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허나 문정왕후어보는 기록이 없었다. 그러므로 불법적으로 밀수되거나 유통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세 가지 자료를 제출하였고 LA카운티박물관은 "문화재제자리찾기가 제출한 증거가 신빙성 있는 자료들(credible evidence)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반환 결정을 내린 것이다.

LA카운티슈퍼바이저 면담 2013년 9월 19일, 당시 LA카운티박물관 프레드 골드스틴 부관장이 문서를 받고는 긴급히 박물관으로 돌아갔다.
▲ LA카운티슈퍼바이저 면담 2013년 9월 19일, 당시 LA카운티박물관 프레드 골드스틴 부관장이 문서를 받고는 긴급히 박물관으로 돌아갔다.
ⓒ 구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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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환 결정이 나기 3시간 전, LA카운티슈퍼바이저와의 면담을 통해 LA카운티박물관(프레드 골드스틴 부관장 배석)에 다시 한번 이 문서를 전달하고 협상이 결렬되면 미국 법정에 행정소송을 제기하겠다고 통보하였다. 이에 프레드 골드스틴 부관장이 문서를 받고는 긴급히 박물관으로 돌아갔고 최종회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

행정소송 변호사 선임 LA에서 베리피셔 문화재 전문변호사와 행정소송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 행정소송 변호사 선임 LA에서 베리피셔 문화재 전문변호사와 행정소송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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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제자리찾기'는 2009년부터 자료조사를 시작하여 반환 운동을 펼쳤고, 2013년에 9월 19일(현지 날짜) LA 카운티박물관으로부터 문정왕후어보 반환 결정을 이끌어냈다. 이번에 돌아오는 어보는 문정왕후어보만이 아니다. LA 카운티박물관에 문정왕후어보를 판매한 로버트 무어로부터 압수한 현종어보도 있다.

그러나 돌아오는 어보 중에 문정왕후어보만이 집중 조명되고 있다. 이것은 미국 서부 최대 규모의 공립박물관과 싸워 이긴 승리의 기억을 사람들이 더 높이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재 환수는 하루아침에 결정되는 일이 아니다. 자료조사만 3년 이상이 걸리며 협상테이블에 올리기까지도 많은 시간이 걸린다. 앞으로는 문정왕후어보가 돌아올 수 있도록 많은 시간을 투자해 환수 운동을 한 시민들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있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구진영 시민기자는 2013년도부터 지금까지 문정왕후어보 반환운동을 하고 있는 문화재환수운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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