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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펀딩 플랫폼 텀블벅을 통해 마흔맞이 혼자 여행 도전 에세이 <아줌마 왜 혼자 다녀요>를 알게 됐습니다. 혼자 여행에 이어 나홀로 책 만들기에 도전한 이유를 한번 들어봤습니다. [편집자말]
도쿄 여행 중 보았던 '도쿄디자인페스타'에서 자극받은 나는 큰 용기를 내어 라이브 페인팅에 도전했다. 자신감을 갖게 해준 계기가 되었던 작업.
▲ 드디어 도쿄에서 라이브 페인팅을 하다 도쿄 여행 중 보았던 '도쿄디자인페스타'에서 자극받은 나는 큰 용기를 내어 라이브 페인팅에 도전했다. 자신감을 갖게 해준 계기가 되었던 작업.
ⓒ 박경화(만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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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에도 작업실을 알아보러 OO문화재단 O.T에 갔다가 나이 제한에 걸려 그냥 돌아오고 말았다. 올해로 결혼한 지 17년, 중년이란 위치가 그랬다. 젊지도 늙지도 않은 애매모호한 자리. 그래서 속할 수 없는 자리도 많아졌다.

마흔이 되던 해에도 그랬다. 이유 없는 서러움과 허탈감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냥 '4'라는 숫자가 주는 인상이 그랬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채 되지도 않았는데 외부에서 "너는 이제 사십대야"라는 사인을 계속 주기 시작했다.

서른 다섯이 넘어서야 그림 작가가 된 나는 아직 '신진'이라 공모전을 통해 전시 기회를 얻어야 하는데, 전시 조건에 '만 40세 이하 청년 작가여야 한다'는 갤러리가 많았다. 사회적으로 제약받는 것도 서러운데, 스스로 제약을 주지 말자 결심했다.

2014년 4월 누가 뭐라든 영어 어학연수도 하고, 혼자 여행도 하겠다며 일을 저질렀다. 한 달간. 정말이지 사십 평생 이런 고생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마음 고생을 겪었다. 여행 중에 플루까지 걸려 몸 고생도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래놓고 현지인 집에서 호스트와 함께 지내보고 싶다며 같은 해 11월에는 일본으로 떠났다. 또 한 달간. 외로움에 사무쳤고 호스트를 잘못 만나 뜻하지 않은 시련도 겪어야 했다. 그치만 이 두 달간의 여행을 내 인생에서 내가 최고로 잘한 짓 중 하나라 꼽는다.

다음날부터 혼자 낯선 도시에 남겨질 나는 플루까지 걸려 아팠다. 우울함에 내다본 창밖에 남의 집 테라스.
▲ 아줌마 왜 혼자다녀요 책 내용중 다음날부터 혼자 낯선 도시에 남겨질 나는 플루까지 걸려 아팠다. 우울함에 내다본 창밖에 남의 집 테라스.
ⓒ 박경화(만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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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만 집중했던 유일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사회학 전공자이면서 예술가로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하던 나에게 명확한 방향을 제시해 준 것도 이 여행이었고, 상상만 하던 일들에 도전하게 된 것도 이 여행이 시작이었다.

그렇다고 굉장히 특별한 여행을 했나, 하면 그것도 아니다. 특별하지 않았다. 하와이 민박집 구석에서 햇반과 사발면을 먹고 버스를 타고 호놀룰루 뮤지엄 정원에 앉아 실컷 새 구경을 했다. 도쿄의 한 동네 골목에 있는 카페에 넋 놓고 앉아 낙서와 드로잉을 했을 뿐이다. 도시를 좋아하는 내가 도시 속에서 살다 온 것 뿐이었다.

전시를 준비하며 관람객들과 한층 깊은 소통을 위해 책을 만들기로 했다. 출판에 문외한이었던 나는 A4 용지의 반절을 접어 중철로 책 비슷한 형태의 것을 제작했다. 책을 좋아하는 친구가 보더니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그림마다 붙이는 몇 줄의 캡션으로 마음을 다 전달하기 힘들었던 나는 '책 비슷한 그것'에 어느 정도 만족했다.

여행하는 과정에서 하나씩 작업한 작업물을 전시했다. 소통하고자 작은 책자도 만들어서 비치했지만 바쁜 발길을 잡기는 힘들었다.
▲ 아줌마 왜 혼자 다녀요 전시중 여행하는 과정에서 하나씩 작업한 작업물을 전시했다. 소통하고자 작은 책자도 만들어서 비치했지만 바쁜 발길을 잡기는 힘들었다.
ⓒ 박경화(만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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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전시 방명록에서 때때로 '(책 비슷한) 책자에서 그림을 보았다'라는 반가운 글귀가 눈에 띄었다. 한번은 전시 관람객과 대화하는 자리에서 중년을 맞이하는 사람 그리고 혼자 여행을 떠났던 사람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다들 나처럼 '마흔이 되면 이것저것 할 수 없는 나이가 된다'며 타인의 시선에 의해 혹은 스스로 제약을 갖는 것 같았다.

사실 우리 엄마만 보아도 그랬다. 책장에 가득 꽂혀있던 EBS일본어 교재. 엄마는 일어 공부를 하고 싶어했으나 '그 나이에 일어 공부해서 뭣에 쓰려고 하냐'는 아빠의 말에 그만두었다. 우리 밥을 차려주고 빨래와 청소 등을 해주는 게 엄마인 줄 알았다. 그냥 엄마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엄마도 몰랐을 것이다. 중년의 엄마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가족을 위해 사는 것 뿐인 줄 알았을 거다. 지금이야 세대가 많은 변했지만, 여전히 중년이란 단어에 발목을 잡는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내가 어학연수를 가고 싶다고 했을 때 엄마, 아빠의 반응도 역시 '왜?'였다.

그림 전시만으로는 더 넓은 소통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난 무명작가일 뿐이고, 내가 갖고 있는 미디어라고는 SNS의 친구들과 팔로워 몇 명이 전부였으니까. 게다가 많은 이미지 속에 묻혀 빠르게 지나가고 마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책 비슷한 책' 말고 '제대로 된 책'을 만들자 마음 먹은 이유다.

전시장 한켠에 두고, 오는 분들이 봐주길 기다리는 책 형태의 그것들
▲ 아줌마 왜 혼자 다녀요 책형태의 그것들 전시장 한켠에 두고, 오는 분들이 봐주길 기다리는 책 형태의 그것들
ⓒ 박경화(만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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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기운이 있을 때 결심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니, 마흔이 지나 뛰어든 탓에 더 창작 욕구가 솟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 상태에서 그저 뛰어들었다. 책 편집 툴을 배우는 것부터 맞춤법 검사하기, 이미지 보정하기 등등 책 같은 책을 혼자 엮어낸다는 것이 이렇게 고된 일일 줄이야.

게다가 가장 취약한 홍보와 영업까지 해야한다니. 얼마전 샘플 책을 만들기위해 찾아간 프린팅 업체에서 나에게 물어본 한 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책 팔 데는 있어요?" 없지... 없다. 책을 만들어야지 생각하고 만들었을 뿐 뒷 일은 아무것도 생각한 게 없다. 하지만 책을 만드는 새로운 과정을 겪으면서 '독립출판'이라는 세상 속에 점차 스며들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나이 마흔에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없지 않았다. 지금은 마흔하고도 세 살이 더 많아진 어엿한 중년 중급자의 길로 접어들고 있는 나. 이제 책까지 만들었으니 다음에는 또 무슨 일을 벌일지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한다. 아마 이 책이 또 다른 길로 나를 데려다 줄 것이다. 중년 반항을 준비 중인 혹은 진행 중인 모든 중년들에게 큰 응원을!

☞ 참여를 원하시면, '아줌마 왜 혼자 다녀요 독립출판을 위한 펀딩 프로젝트' 가기


아줌마! 왜 혼자 다녀요?

만욱 지음, 만욱(manwook)(2017)


태그:#아줌마왜혼자다녀요, #중년, #혼자여행, #만욱 , #독립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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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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