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옥자>의 봉준호 감독.

영화 <옥자>를 연출한 봉준호 감독. 국내 매체와의 인터뷰는 참으로 오랜만이다. 스스로도 "이럴 기회가 많지 않아 재밌게 응하고 있다"며 소회를 전할 정도. 영화는 29일 개봉해 국내 극장과 넷플릭스 채널을 통해 상영 중이다. ⓒ NEW


'드디어'라는 말이 지금의 <옥자>에 가장 어울릴 것 같다. 6월 29일 개봉일 <옥자>의 배급을 맡은 관계자가 긴 숨을 내쉬며 "개봉일이 이렇게 오는군요"라고 말했다는 후문을 먼저 전한다. 봉준호 감독의 차기작, 70회 칸영화제 초청작, 그리고 글로벌 스트리밍 서비스 기업 넷플릭스가 투자한 작품. 이 세 키워드만으로 올 상반기 영화계는 뜨거웠으니 말이다.

프랑스 극장연합회와 국내 멀티플렉스 극장들의 보이콧 등의 이슈는 이 영화를 작품이 아닌 산업의 영역으로 밀어 넣었다. 수 년 간 <옥자>를 준비해 온 이들 입장에선 속이 탔을 터. 오죽했으면 국내 기자간담회에서 봉준호 감독이 "개봉하면 (극장 논란이 아닌)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나누고 싶다"고 했을까.

29일 현재까지 영화를 관람한 이들 사이에서 다양한 해석과 함께 봉준호 감독이 숨겨 놓은 '디테일'에 대한 단서가 올라오고 있다. 봉준호 감독을 만나 직접 물었다. 정작 본인은 관객들이 디테일에 신경 쓰다가 영화의 핵심을 놓칠 수도 있기에 '봉테일'이란 별명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걸로 알려졌지만, <옥자>에도 이미 감독이 숨겨놓은 몇 가지 떡밥들이 있었다. 이 기사와 함께 찾아보고, 비교해보자.

[하나] <옥자>의 탄생 배경엔 <동물농장>이 있었다?

 영화 <옥자>

ⓒ 넷플릭스


여러 기사에서 옥자의 탄생과 정체를 놓고 여러 말이 나왔다. 공통적으로 봉준호 감독이 "굉장히 슬퍼 보이는 동물을 보면서 영감을 얻었고, 그 동물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는 게 주다. 지난 칸영화제 현지에서도 봉 감독은 "하마, 코끼리, 매너티 등의 모습을 참고해 섞었다. 뭔가 억울해 보이는 모습이었으면 했다"고 기자들에게 말하기도 했다. 사실 영화가 공개되지 훨씬 전부터 봉 감독이 SBS <동물농장>의 팬이며, 시사회 때 해당 제작진을 초대하기도 했다. 즉, <옥자> 탄생엔 <동물농장>이 크게 기여했던 것.

"그 프로가 일관성이 있다. 일단 장수프로인데 한 번도 콘셉트가 흔들리지 않더라. 방송국이 개편하더라도 그 프로는 진행자가 가끔 바뀌는 것 외엔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동물과 인간을 함께 다룬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동물이 뛰는 것만 다루는 프로는 많았는데 <동물농장>은 인간과 동물의 사연이 있다. 기구함 안타까움 등이 있는데 그만큼 둘을 대등하게 다루는 거다. <옥자>도 사실 그거다. 미자(안서현)가 옥자에게, 옥자가 미자에게 귓속말을 하는 게 영화에선 중요한데 서로가 대등한 존재로 대한다는 걸 관객에게 느끼게 하고 싶었다. <동물농장>의 접근방식에 좋은 영향을 받았다."

[둘] <옥자>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식단에 고기가 있다?

거대 식품 기업 미란도의 낸시와 루시 자매(틸다 스윈튼이 1인 2역)는 슈퍼 돼지를 통해 큰 돈을 벌려는 사업자다. 물론 동물을 대하는 태도는 둘이 상반되지만 박리다매를 위해 동물을 비윤리적으로 키우고 죽이는 낸시나 슈퍼돼지 콘테스트를 여는 등 보다 열린 자세를 갖고 있는 루시는 욕망을 위해 동물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영화에서 슈퍼돼지들의 학대받는 장면이 가감 없이 나오고, 산골소녀 미자와 할아버지 희봉(변희봉)이 말미에 채소로만 가득한 식단을 나누는 걸로 채식주의에 대한 각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아니다.

"이 영화는 비건(채식주의)을 강조하는 건 아니다. 마지막 장면 식탁에 야채들만 있다고? 자세히 보시라. 삶은 달걀이 있다. 사실 통닭을 넣을까 하다가 소심하게 계란을 넣었다(웃음). 밥상은 중요하다. 육식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닌 육식의 방식을 생각하자는 거다. 인류도 육식을 계속 해오지 않았나, 적당히 고만고만한 범위 안에서 했지. 근데 현대는 비즈니스 모델화 시켜 동물을 사육한다. 자본주의화 된 거지. 우리 모두가 완전한 채식주의나 육식주의자가 아니잖나. 다들 무난한 범주 안에 있다. 동물을 키우면서도 삼겹살을 먹고, 마트 계산대에 등심을 올리면서 다른 손엔 애완견을 안고 있다. 애완동물이 제품이 되는, 그 대량생산 공정에 들어가는 걸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목도하게 하고 싶었다. 좋은 의미로 관객을 불편하게 하고 싶었다."

 <옥자>의 한 장면

<옥자>의 한 장면. 좌측이 글로벌 식품 기업 미란도의 CEO 루시 역을 맡은 틸다 스윈튼, 우측이 옥자를 구하러 미국 뉴욕 한복판까지 날아온 미자 역의 안서현. ⓒ NEW


[셋] 원래 미자는 섹시한 20대 후반 여성이었다?

단발의 연약한 소녀 미자는 <옥자>의 한 축을 담당하는 주요 캐릭터다. 그런데 이 인물이 봉준호 감독 초안엔 20대 후반 여성으로 설정됐었다는 사실! 성인 여성에게서 아이의 시선으로 옮겨진 셈이다.

"2010년 가을인가. 그때 써놓은 글엔 미자는 20대 후반의 시골처녀였다. 뭔가 섹시하면서도 묘한 매력을 주는 인물이라 도시남자들이 도와주려고 쫓아온다. 그러다가 이들이 동물적 분위기에 휩싸이며 발정 난 상태로 간다는 이상한 시놉이었다. 써놓고 보니 되게 싫더라. (웃음) 긴 여정이 의미를 가지려면 강한 교감이 있어야 하는데 그럼 아이밖에 없다! 혹시 '산골 소녀 영자 사건' 아시나? 지금은 스님이 됐는데 아버지와 단 둘이 산골에 살던 그 소녀 기록도 다시 찾아봤다. 소년은 왜 안 되냐고? 소년과 수컷 옥자면 왠지 파수꾼 분위기가 날 거 같더라." 

[넷] <옥자> 안에 버락 오바마가?

개봉 전 TV 영화 프로를 통해 봉준호 감독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미 행정부 수반들과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을 백악관 룸에서 지켜보는 사진을 검색해 보시고 <옥자>를 보면 뭔가 재밌는 걸 발견할 것"이라 말한 바 있다. 힌트를 준 셈인데 여기에 더해 28일 <옥자>의 각본가가 존 론슨이 정답을 자신의 SNS에 공개해버렸다. 미란도 사무실에 한 데 모여 있는 장면과 2011년 5월 1일 사진을 함께 제시한 것이다.

"우리끼리 킥킥대며 찍은 장면이다. 그 사진 속 인물들과 비슷한 사람을 데려오라고 캐스팅 디렉터에게 요청했으니 말이다. 관객 10명 중 2명만 알아채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틸다 스윈튼이 힐러리 역이고, 지안카를로가 오바마인 거지(웃음). 뭐 엄청난 정치적 의미를 담은 건 아니고 그냥 한 거다. 근데 백악관 사진을 보면 '세계 질서는 우리가 잡는다!'는 분위기가 풍기긴 한다. 트럼프가 아닌 오바마임에도 말이지. 백악관도 그런 의미에서 사진을 공개했을 거다. 요즘엔 기업이 국가나 공권력을 능가하는 힘을 갖기도 하잖나. 미란도 컴퍼니가 그런 분위기를 내는 건데 실상은 뭔가 어설퍼 보인다. 그런 걸 나름 담은 거다."

 영화 <옥자>의 영어 각본을 맡은 영국 극작가 존 론슨( Jon Ronson).

영화 <옥자>의 영어 각본을 맡은 영국 극작가 존 론슨( Jon Ronson)이 SNS에 올린 사진. 위는 영화 속 장면, 아래는 2011년 5월 1일 백악관이 공식 배포한 사진이다. 봉준호 감독은 아래 사진을 그대로 영화 속 캐릭터들에게 구현시켰다. ⓒ Jon Ronson


[다섯] <옥자>의 제이크 질렌할은 본래 <설국열차> 주인공?

극 중 죠니 윌콕스 박사로 특유의 과장된 행동 연기를 선보인 제이크 질렌할은 분명 <옥자>의 마스코트 같은 캐릭터다. 섬세한 연기로 미국 등에서도 고정 팬을 보유한 그의 쓰임을 두고 일부 평론가들이 부정적으로 보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론 익살맞고 과장된 연기에 큰 재미를 느낀 관객들이 많다. 그런데 이 배우는 사실 <설국열차>의 주인공이 될 뻔했다. 크리스 에반스에 앞서서 말이다.

"2007년 인가 제이크를 처음 만났다. 나와 에이전시 회사가 같아서 자연스럽게 미팅을 했는데 <설국열차>에 함께 하고 싶었다. 크리스 에반스로 가기까지 세 명의 배우가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이 제이크였다. 시나리오를 좋아했는데 일정이 안 맞더라. 이후 <옥자>의 콘셉트 아트를 보여주니 시나리오가 나오면 꼭 달라고 하더라. 그래서 줬고 하루 만에 출연하겠다고 답이 왔다. 죠니를 좋아하는 분도 있고 과하다는 분도 있는데 그런 연기는 제가 부탁한 거다. 영화에서 가장 뭔가에 미쳐있는 캐릭터를 그리고 싶었다."

'옥자' 한국 왔어요! 14일 오전 서울 광화문의 한 호텔에서 열린 영화 <옥자> 기자회견에서 배우 변희봉, 틸다 스윈튼, 안서현, 스티븐 영, 지안카를로 에스포지토. 다니엘 헨셜이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제70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옥자>는 비밀을 간직한 채 태어난 거대한 동물 옥자와 강원도 산골에서 함께 자란 미자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29일 넷플렉스를 통해 전세계 공개된다.

▲ '옥자'의 주역들 지난 6월 서울 광화문의 한 호텔에서 열린 영화 <옥자> 기자회견 당시 사진. 좌측부터 배우 변희봉, 틸다 스윈튼, 안서현, 스티븐 영, 지안카를로 에스포지토, 다니엘 헨셜. ⓒ 이정민



그 밖의 것들

이밖에도 영화 말미 낸시의 담배와 루시의 담배색깔이 각각 녹색과 분홍인 것도 나름 미란도의 두 CEO 성격 구분을 위한 감독의 의도였다. 소품으로 만든 게 아닌 실제 시판 중인 담배들이다.

사실 세부적으로 얘기했지만 봉준호 감독은 인터뷰 중 "스스로 장르화 되는 것에 우려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봉준호식', '디테일에 강한' 등의 표현에 본인이 갇히는 수도 있다는 이유였다.

"의도적으로 교란시켜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든다. 봉준호 치곤 밝았어 이런 표현들을 하시는데 어떤 기준점이 생기는 거 같다. 날 의식하지 않고 그때그때 꽂히는 걸 영화화 하는 건데 관객 분들은 이미 손에 자와 각도기를 들고 있다. (웃음) 중요한 건 아직 난 여섯 편밖에 영화를 안 찍었다는 사실이다. 일반화되거나 범주화되는 걸 어떡하면 피할 수 있을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뭔가 그물망에 걸리는 느낌이다. 

얼마 전 송강호 선배와 연락하는데 '(차기작인) <기생충> 시나리오 쓰고 있는데 그걸로 새 출발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왜 새 출발이란 단어가 나왔을까. 히치콕 같은 사람은 70세까지 영화를 찍는데 그때가 되면 어떤 느낌일까. <옥자> 관련해 많은 세계의 선배 감독들을 만나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 분들보다 난 현저히 느리고 작품 수도 적은데 말이다. 자기 세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험난한 길이 있는 것 같다. 제가 영화를 찍은 수에 비해 짊어지고 있는 짐이 많다는 생각도 든다. 비뚤어진 마음에 강하게 스스로 망쳐봐야 하나? 잿더미에서 출발해야 하나? 이런 생각도 든다."

 영화 <옥자>의 봉준호 감독.

ⓒ NEW



봉준호 옥자 틸다 스윈튼 제이크 질렌할 안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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