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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첫날, 내게 쏟아진 온갖 질문과 말말말...
 동네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첫날, 내게 쏟아진 온갖 질문과 말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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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아가씨네. 무슨 술 좋아하나? 술 한잔 사줄게."
"저기, 사장님 딸인가... 사장님 딸이에요? (대답을 안 하니 계속 묻는다)"
"전 유부남인데요. 우리 같이 온 총각 직원들이 맘에 든다고 해서요."

동네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첫날, 내게 쏟아진 온갖 질문과 말말말... 뭐, 기본 안주로 무엇이 나가야 하는지, 고추장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마른 안주용 소스에 마요네즈와 간장, 매운 고추는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 고심하느라 이런 말들은 그냥 '패스'하고 말았지만 말이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아니 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본업은 지역의 여성단체 활동가. 우리 단체는 전체 활동가들이 동일하게 최저임금을 받고 있다. 그나마 최저임금이라도 받아가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하기도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최저시급 받아 월 130여만 원. 나는 홀로 살아가는 1인가구다. 월세 30만 원, 각종 공과금과 통신 요금, 하나쯤은 들어놔야 할 것 같아서 가입한 싸디싼 생명보험, 한달에 1만 원밖에 안 한다기에 냉큼 든 실비보험, 점심 밥값과 교통비... 그렇게 130만 원에서 하나씩 하나씩 내역을 지워가다 보면 결국 '0'이다. 갑작스레 예상치 못한 일이 터지거나 경조사비를 쓰면 그달은 마이너스였다.

단체 활동하기 전에 모아놨던 약간의 돈도 1년 8개월 동안 다 까먹었다. 다른 대책이 필요했다. 지금 내가 하는 활동을 놓치지 않으면서 선택할 수 있는 건 퇴근 후 아르바이트, 투잡뿐이었다.

30세 이상은 땡! 시작부터 막히다니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결심하고 매일 밤 침대에서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알바천국, 알바몬, 사랑방 잡... 아르바이트 정보가 있는 사이트는 몽땅 들어갔다. 오호, 사이트를 둘러보다 일할 곳은 안 찾고 사이트 구성에 감탄하고 말았다.

정확히 적혀있는 2017년 최저임금, 근로계약서 작성하는 법 같은 알바팁, 알바비와 관련해서 상담할 수 있는 곳까지... 많은 정보들이 그 사이트에 담겨있었다. 혼자 야밤에 노트북을 켜놓고 사이트 곳곳을 클릭했다. 단체 활동가의 습성이란. 그렇게 호기롭게 아르바이트 구인란을 뜯어보기 시작했건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급좌절하고 말았다. 내 발목을 잡은 건 나이 제한!

낮엔 부쩍부쩍 사람들에 치이는 일들이 좀 많은 편이라 저녁엔 혼자 할 수 있는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적당하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대부분 '25세 이하, 고시생, 휴학생 환영!' 문구가 따~악 적혀 있다.

커피숍 마감 시간 자리라도 찾아봤지만 그것도 마찬가지. 지원 자격이 30세 이하로 정해져있었다. '편의점 물건들을 정리하고 계산하는데 나이 제한이 왜 필요하냐'며 혼자 구시렁 구시렁댔지만, 이미 자신감은 저 바닥으로 향하고 마음은 소심해지기 시작했다.

이럴 바엔 차라리 직접 돌아다녀보자 싶어 다음 날은 동네 상가를 둘러보며 다니기 시작했다. 어슬렁 어슬렁, 혹시 아르바이트 구함이라고 쓰인 종이가 있는지 둘러보는데 "직원 및 아르바이트 구함" 현수막이 붙여진 고깃집이 보인다.

그래, 몸은 좀 고되더라도 저런 곳도 나쁘지 않지 하고 가게를 향해 가는데 가게 안에 보이는 아르바이트생들이 다 너무나 젊어 보였다. 이제 갓 스물이 넘었을 법한 외모의 그들을 보곤 걸음을 멈췄다.

'내 나이에 저들이랑 같이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하면 민폐가 아닐까'
'사장이 몇 살이에요? 하고 물어보면 어쩌지... 당연히 물어볼 건데...'

온갖 생각들이 떠올랐다. 결국 가게를 들어가지 못하고 서성이다 집으로 돌아왔다. 소심해질대로 소심해진 마음으로 그날 밤, 나의 '나이'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일하고 있는 단체는 평등한 조직문화를 만들어보자는 차원에서 모든 활동가들이 별칭을 쓴다. 그리고 서로의 나이에 대해 묻지 않는다. 우리 단체에서 진행하는 모임에서도 자기소개를 할 때면 자신이 좋아하는 별칭으로 이름을 대신한다. 또 나이나 출신 학교에 대해서 자연스레 묻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2년여 함께 활동한 우리 단체 동료들의 나이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게 사실. 나도 굳이 '나이'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단체를 벗어나고 그 '나이'라는 게 나를 한없이 소심하고 자신 없게 만드는 걸 확인하니 마음이 씁쓸해졌다. '안전하고 평등한 우리 단체를 벗어난 이 세계는 또 어떤 세계인 건가, 이것이 현실인 건가' 싶은.

내가 일하고 있는 단체는 평등한 조직문화를 만들어보자는 차원에서 모든 활동가들이 별칭을 쓴다. 그리고 서로의 나이에 대해 묻지 않는다.
 내가 일하고 있는 단체는 평등한 조직문화를 만들어보자는 차원에서 모든 활동가들이 별칭을 쓴다. 그리고 서로의 나이에 대해 묻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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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엔 활동가, 밤엔 알바... 고군분투 '생존'의 기록

그렇게 몇 날 며칠 밤을 꼬박 세우며 아르바이트 구인 사이트를 뒤진 결과, 나는 동네 맥줏집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게 됐다. 그렇게 또 다른 세계에 발을 디딘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앞으로 쓸 글은 '또 다른 세계'에 대한 이야기다.

"직장 내 성희롱은 이런 것이고 그 안에 목격자들의 역할이 중요해요"라며 열변을 토하는 낮 시간이 지나면, 나는 "아가씨"로 시작해 "여기 앉아 봐" 하는 술 취한 손님들의 이야길 10번 이상은 듣게 되는 밤을 맞이한다. 밤 12시가 되면 휘황찬란한 마차가 호박으로 변했던 신데렐라처럼, 저녁 8시가 되면 여성단체 활동가에서 동네 술집의 알바 노동자로 변하는 거다.

그 시간 동안 보게 될 다양한 풍경들을 이 공간에 담으려고 한다. 일명 '30대 페미의 동네 알바 생존기'. 처음엔 알바 체험기로 했다가 수정했다. 이건 여유롭게 무얼 체험하기 위함이 아니다. 분명히 나의 '생존기'다.

한편으론 '페미니스트란 말을 여기 쓰는 게 맞을까', '내가 쓴 글과 시각이 페미니스트들 욕먹게 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살짝쿵 들었던 게 사실. 그 때, 몇 달 전 읽었던 록산 게이의 책 <나쁜 페미니스트> 서문이 떠올랐다.

"나를 따라다닐 나쁜 페미니스트라는 꼬리표를 환영한다. 왜냐하면 나는 인간이니까. 그래서 엉망진창이니까. 누군가의 본보기가 되려고 애써 노력하지 않는다. 완벽하려 하지 않는다. 내가 모든 해답을 갖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전부 옳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내가 믿고 있는 것을 지지하고, 이 세상에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고, 내 글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면서도 온전히 나 자신으로 남고 싶을 뿐이다."


그녀의 말마따나, 나는 완전한 사람이 아니기에 그냥 지금 있는 그대로 잘 생존해 볼 참이다. 바야흐로, 나의 '생존'이 시작됐다. 


태그:#페미니스트, #동네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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