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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초단시간 초등학교 보육전담사로 고용된 김아무개씨.
 경기도 파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초단시간 초등학교 보육전담사로 고용된 김아무개씨.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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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보육전담사 김아무개(50)씨는 지난 2015년 2월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한 초등학교와 이상한 계약을 맺었다. 월·수·목·금요일에는 3시간만, 화요일에는 2시간만 초등학생 20여 명의 방과 후 시간을 책임지는 일을 하기로 한 것이다. 주 14시간, 하루 평균 2.8시간만 일하는 초단시간보육전담사로 고용된 것이다.

초등돌봄교실은 지난 2004년 저소득 맞벌이 가정의 학생들에게 공공 무상 돌봄을 제공한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교원 자격증이 있는 초등보육전담사(이하 돌봄 전담사)가 방과 후 학교에 마련된 돌봄교실에서 학생들을 돌본다. 돌봄교실 담당 부장교사와 돌봄전담사가 함께 돌봄교실 학급을 관리한다.

국회예산정책처가 2014년 발간한 '방과후 돌봄서비스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학부모의 96%가 초등돌봄교실에 만족한다고 답했을 정도로 학부모의 호응이 좋은 정책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돌봄전담사들의 눈물이 있다. 시도교육청이 예산을 이유로 주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보육전담사(이하 초단시간 전담사)를 만들었다. 하지만 과중한 업무 탓에 초단시간전담사는 초과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김씨는 1000여 명의 초단시간 전담사 가운데 한 사람이다.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
경기도 파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초단시간 초등학교 보육전담사로 고용된 김아무개씨.
 경기도 파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초단시간 초등학교 보육전담사로 고용된 김아무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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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박근혜 정부가 지난 2013년 경력 단절 여성에게 일자리를 준다면서 초단기 노동을 만들었는데, 경기도교육청이 2014년 전담사에 초단기근로를 적용했다"라고 말했다. 비극의 시작이다.

경기도교육청이 만든 돌봄전담사 근로시간 형태를 보면, 지난 2016년 4월 기준 하루 3시간 근무부터 8시간 근무까지 다양하다. 또한 주 14시간(하루 평균 2.8시간) 이하 근로시간 계약도 적지 않다. 근로시간 형태만 20가지가 넘는다는 게 돌봄 전담사들의 설명이다.

계약서에 나와 있는 초단시간 전담사들의 업무는 ▲초등돌봄교실 운영 ▲보육환경 여건조성·초등돌봄교실 교육활동 지원 ▲보육 프로그램 개발·활용 등이다. 하지만 업무 범위가 넓어, 근로시간 안에 업무를 마무리하기에는 불가능하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하루 2.8시간 안에 학생출결 관리는 물론 아이들에게 간식을 주고 프로그램 관리, 학습교재와 교구 관리, 교실 정리정돈을 하고 아이들 귀가시간, 학부모 요구까지 파악해야 했다. 화장실 갈 시간도 없었다. 주어진 시간 안에 일을 다 할 수 없어서 일일운영일지, 주간교육계획안 작성 같은 건 집에서 해야 했다."

시급 9500원짜리 선생님으로 살다가 소송만 남았다

근로시간 안에 업무를 끝내지 못하면, 초단시간 전담사는 어떠한 대가도 받지 못하고 초과노동을 하거나 동료 전담사들에게 일을 떠넘길 수밖에 없다. 김씨는 2015년 3월부터 2016년 2월까지 1년 동안 94시간의 초과노동을 했다. 그의 한 달 근로시간이 60시간임을 감안하면, 한 달 보름을 무보수로 일한 셈이다. 학교는 이런 상황을 잘 알았지만, 관행이라며 김씨의 초과노동에 눈을 감았다. 

"2014년 2월 한 초등학교 돌봄전담사 면접을 보러 갔는데, 교장 선생님이 예산이 없으니 2시간은 자원봉사 하라고 말을 했다. 학교에서는 이를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에 '예'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출퇴근 기록기에 적히지 않은 노동도 상당하다. 김씨는 기자에게 한 학부모의 문자 메시지를 보여줬다. 보낸 시각은 낮 12시 30분이다. 김씨의 근무시간은 오후 1시 30분부터이지만, 학부모의 문자 메시지를 외면할 수 없다.

이렇게 근무시간이 아닐 때도 학부모의 문의나 요청이 쏟아진다. 그는 "돌봄교실 담당교사가 학부모들에게 '김아무개 선생은 시급 9500원짜리 선생님이니 많은 걸 요구하지 말아 달라'라고 했다"면서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처럼 무료노동을 해도, 시급 9500원짜리라는 말을 들어도 침묵할 수밖에 없는 것은 초단시간보육전담사가 1년마다 재계약을 하는 신세이기 때문이다. 경기도교육청은 지난 2013년 상시·지속적 직종에 종사하는 기간제 교육실무직원들의 고용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계속근로기간이 1년을 초과하고 주 15시간 이상 일하는 이들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다. 초단시간 전담사는 빠졌다.

초단시간 전담사들은 학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김씨는 스스로를 "노예"라고 표현한다. "1년마다 재계약의 단두대에 올라야 해, 아무리 부당한 지시여도 반항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그는 "급하게 팔 수술을 해야 했는데 학교에서 난색을 표해 금요일 수술하고 일요일 퇴원한 뒤, 팔 깁스한 채로 월요일에 출근한 적도 있었다"라며 고통을 토로하기도 했다.

김씨가 재계약에 실패한 이유

경기도 파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초단시간 초등학교 보육전담사로 고용된 김아무개씨.
 경기도 파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초단시간 초등학교 보육전담사로 고용된 김아무개씨.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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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지난해 재계약에 실패했다. "김씨의 얼굴이 어둡고 말투가 건방져 민원이 많았다"는 이유였다.

그는 그해 7월 중앙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했다. 중앙노동위는 12월 김씨의 손을 들어줬다. 중앙노동위는 경기도교육청이 주 15시간 이상 근무자부터 적용한 무기계약직 대상자에 김씨 역시 포함이 된다고 판단했다.

경기도교육청과 그는 주 14시간 근로계약을 맺었지만, 이는 경기도교육청이 초단시간 전담사를 무기계약직 대상자에 포함시키지 않기 위해 쓴 탈법적 방편이라는 것이다. 중앙노동위는 김씨가 실제로는 15시간 이상 일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중앙노동위는 또한 김씨의 재계약 실패를 부당해고로 판단했고, 그를 복직시키라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경기도교육청은 중앙노동위의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경기도교육청은 "근무시간에 맞는 업무를 하고 근무량을 조절하도록 학교에 안내하고 있다"며 "해당 소송과는 별개로 초등보육 전담사의 근로시간 단계를 최소화 시키는 것을 해당 노동조합, 유관부서와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당시 담당부서에 근무했던 교육청 관계자는 "당초 15시간 미만으로 계약했는데 무기 계약직이 되면 비슷하게 근무하고 있는 분 1000여 명도 다 무기계약직으로 돼야 하는 상황"이라며 "파급효과가 크다. 법적인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1000여 명의 엄마들을 위해 싸운다

경기도 파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초단시간 초등학교 보육전담사로 고용된 김아무개씨.
 경기도 파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초단시간 초등학교 보육전담사로 고용된 김아무개씨.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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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초단시간 전담사를 포함한 돌봄 전담사를 '엄마'로 표현한다. 바쁜 부모 대신 엄마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돌보기 때문이다. 그는 "저 때문에 경기도교육청과 중앙노동위가 소송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변호사를 선임하고 자료 준비를 하고 있다. 해야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애들 돌봐주던 사람이 요즘엔 법 공부를 하고 있다"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김씨는 오는 30일 사회적 총파업에 참여한다. 그의 뒤에는 초단시간 전담사 1000여 명이 있다. 김씨는 "초과노동을 하고 고용이 불안한 건 저 만의 일이 아닌 초단시간 전담사 모두의 문제"라며 "초단시간 근무를 없애고, 6~8시간 근무를 보장해줘야 전담사와 아이들 모두 안정적인 돌봄교실에서 있을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태그:#학교, #비정규직, #돌봄, #돌봄교실, #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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