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성주 군민들은 평화의 상징으로 파란 나비를 만들기 시작한다.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성주 군민들은 평화의 상징으로 파란 나비를 만들기 시작한다. ⓒ 인디플러그


사회적인 분쟁 또는 사건들이 벌어지면 그곳의 현장과 그곳의 사람들을 직접 대면시키거나 혹은 사건 자체에 대한 논리적인 분석과 재구성을 시도하는 다큐멘터리들이 항상 등장해 왔다. 그리고 한국의 경우 (안타깝게도) 최근 몇 년간 그런 사건들이 빈번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에서 최근에 만들어진 다큐멘터리의 제목을 나열해 보는 일은 어쩌면 우리가 통과해 온 시간과 사건들, 장소와 사람들을 되새기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내 머릿속에는 다음과 같은 제목들이 거의 자동반사적으로 떠오른다. 2009년 쌍용자동차 옥쇄파업을 다룬 태준식의 <당신과 나의 전쟁>(2010), 2009년 용산4구역 철거현장 화재사건(용산참사)을 다룬 김일란·홍지유의 <두개의 문>(2011), 최초로 세월호를 다뤘던 이상호·안해룡의 <다이빙벨>(2014), 홍대입구역 부근 칼국수 집 두리반 강제철거를 다룬 정용택의 <파티 51>(2014), 장장 30년에 걸친 영도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역사를 기록한 김정근의 <그림자들의 섬>(2016), 서울시공무원간첩조작사건을 다룬 최승호의 <자백>(2016) 등이 바로 그런 다큐멘터리의 이름들이다. 그리고 지난 6월 22일 성주군의 사드(THAAD) 배치 반대 투쟁을 담은 박문칠의 <파란나비효과>가 개봉했다. 아마도 이 영화는 이 목록에 새로 추가될 이름이 될 것이다.

사실 <파란나비효과>의 개봉소식을 듣고 나는 좀 놀랐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좀 걱정이 됐다. 그 이유는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로서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시간에 도착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성주군의 사드 배치 반대 투쟁과 같은 사건을 다큐멘터리로 다룬다는 것은 거의 도박과 다름없다. 국내 사드 배치 문제가 사회적으로 불거지고 성주군이 배치 부지로 확정된 것은 기껏해야 지난해 여름이었다. 또한 지난해 말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올해 봄 사드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였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성주군의 사드 배치는 다시 갈림길에 놓여있었고, <파란나비효과>가 개봉되기 전까지 성주군의 투쟁은 일종의 정서적인 휴지기 상태로 보였다. 그러니까 <파란나비효과>는 발생한 지 이제 1년 남짓 된, 그리고 아직 종료되지 않은,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완전히 잊히지도 않은 사건을 이야기하려고 하고 있었다.

도박같은 개봉

 2016년 7월 사드 배치 반대 촛불집회가 열린 성주군청

2016년 7월 사드 배치 반대 촛불집회가 열린 성주군청 ⓒ 계대욱


이렇게 현재진행형인 사건을 다루게 될 때 다큐멘터리 감독은 한 가지 문제에 봉착 할 수밖에 없다. 바로 다큐멘터리의 중요한 방법론이자 기능인 사건의 재구성(진실)과 그로 인한 기억과 정서의 환기(성찰)가 애초에 폐기된다는 것이다. 다큐멘터리가 이것을 완전히 포기해 버릴 때 공격받기 너무 쉬워진다(이 공격에 대해서는 "비난과 조롱 대상 된 <파란나비효과>, 이건 좀 아니지 않나"에서 잘 드러난다).

상황이 안 좋을 경우 때때로 다큐멘터리는 엉성한 프로파간다로 전락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앞에 소개했던 대부분의 영화들도 이 방법론과 목적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용산참사를 재구성해 시민 5명과 경찰관 1명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절규하는 <두개의 문>은 죽음의 그을음으로부터 2년 6개월을, 500일이 넘는 두리반의 유쾌한 농성을 기록한 <파티 51>은 농성의 열기로부터 4년을, 역사를 기록하고 싶었던 <그림자들의 섬>은 1987년으로부터 29년, 김진숙의 85호 크레인 고공농성으로부터 5년을, 서울시공무원간첩조작사건으로부터 국정원을 역습하는 송곳 같은 탐사저널리즘 <자백>은 국정원의 원죄적 악행으로부터 4년, 유오성의 무죄가 선고된 2심으로부터는 2년 6개월, 또는 대법원 최종확정으로부터 1년의 시간들을 각각 두고 세상과 만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어떤 면에서 다큐멘터리에게 시간이라는 것은 불가결한 하나의 질료質料인 셈이다.

내 생각에 박문칠은 자신의 딜레마를 결코 모르지 않았다. 그는 분명히 알고서도 그렇게 했다. 왜냐면 박문칠은 <파란나비효과>가 바로 지금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몹시 조급한 마음으로 지금 당장이 아니고 사드 배치가 완료된 후라면 이미 일은 늦어버린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에게 <파란나비효과>를 서둘러 찍고 사람들 앞에 보여주는 것은 적극적인 정치적 행위이며 사람들이 <파란나비효과>를 관람하는 것 역시 하나의 정치적 행위이자 성주군의 사람들에게 보내는 연대라고 믿는다. 지금 박문칠은 그런 식으로 우리에게 정치가 필요하다고 호소하는 중이다.

하지만 이렇게 절박했던 박문칠이 선택 가능했던 전략은 결국 (성주군)사람들과 그들의 증언(인터뷰) 뿐이었다. 그래서 <파란나비효과>는 차라리 대놓고 뻔뻔해지기로 한다. 그는 도무지 모두가 궁금해 하는 사드가 북한의 미사일들을 실질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지 여부, 한반도의 안보에 대해 외교적 접근과 사드와 같은 군사적 접근 간 지정학적 합리성에 대해 어떤 분석이나 주장도 애초에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그 대신 박문칠은 성주 군민이자 다섯 명의 평범한 여성 배미영, 배정하, 배은하, 이수미, 김정숙을 그저 우리와 대면시킨다. 의존할 것이 사람밖에 없었던 카메라는 그녀들을 절실하게 바라보고 어떤 언론도, 그리고 성주 밖의 세상 누구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했던 그녀들도 카메라를 정말로 절실하게 바라본다.

대놓고 뻔뻔해지다

 사드 배치 반대 집회에 참가하고 있는 배정하(좌)와 배미영

사드 배치 반대 집회에 참가하고 있는 배정하(좌)와 배미영 ⓒ 인디플러그


이 다섯 명의 성주 군민 중 특히 주된 인터뷰이인 배미영과 이수미는 성주 군민답게 지난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투표했고 선거에서 항상 새누리당 사람들(현 자유한국당 또는 바른정당)을 찍어왔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사실이 지금은 너무도 부끄럽고 후회된다고 증언 한다. <파란나비효과>가 중요하게 할애하고 있는 이야기 중 한 축은 이렇게 새누리당으로 대표되었던 보수 정치인들에 대한 지지가 신앙과 같이 절대적인 공간에서, 또한 스스로도 보수 정치인들을 지지해왔던 여성들이 군민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삶의 터전 지척에 미사일을 배치하는 보수 정권의 배신에 대해 분노하고 학습하며 정치적으로 각성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동일한 맥락에서 이미 지지와 신뢰에 대한 배신, 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유린했던 전임 대통령을 파면시켜 법정에 세우고 대통령을 교체해 버린 성주군 밖의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는 사실상 일정의 유대감 이상의 울림을 기대하기는 역부족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파란나비효과>에는 전혀 기대치 못한 역설로써 또 다른 한 축의 이야기가 있다. 바로 저항하는 남성의 부재이다. 우리는 오히려 이 따뜻한 저항과 연대의 어두운 면과 같은 다른 한 축의 섬뜩한 이야기를 주목 해야 할 필요가 있다. <파란나비효과>에는 좀처럼 남성을 발견하기 힘들다. 다섯 여성들의 남편들조차도 한 번도 카메라에 포착되지 않는다. 비록 앞에서 언급한 다섯 명의 여성 외에 인터뷰이로 이국민과 이희동이라는 남성들이 등장하지만 인터뷰 분량은 상대적으로 훨씬 적은 편이며 현장에서도 제한적으로 등장한다. 집회에서 촛불을 들고 있는 사람들도 소녀부터 노인까지 절대다수가 여성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파란나비효과>가 담고 있는 성주군의 풍경을 보고 있으면 성비가 심각하게 불균형한 공간이라는 기묘한 느낌까지 받게 된다. 그렇다면 도대체 경상북도 성주군의 남성들은 모두 어디에 가 있는가.

남성들은 모두 어디에?

 사드 배치를 찬성하는 보훈안보단체들을 만나고 있는 성주군 지역구 국회의원 이완영

사드 배치를 찬성하는 보훈안보단체들을 만나고 있는 성주군 지역구 국회의원 이완영 ⓒ 인디플러그


<파란나비효과>에 등장하는 그나마 몇 명 안 되는 남성들은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다섯 명의 여성과 오히려 전혀 반대지점에 가있다. 군수 김항곤과 성주군 지역구 국회의원인 이완영이 그들이다. 이완영은 지역구 국회의원임에도 성주군의 사드 배치를 적극적으로 환영하는 입장이다. 군수 김항곤은 최초에는 군민들과 함께 강경하게 사드 배치를 반대해 왔으나 배치 부지가 성주읍이 아닌 인구가 보다 적은 초전면 롯데스카이힐CC 골프장으로 변경된 후에는 사드 배치를 수용한다는 입장으로 태도를 바꿔버린다. 배미영은 김항곤에게 초전면도 성주군이고 사람과 아이들이 사는 곳은 어디든 사드가 배치 돼서는 안 된다며 입장을 바꾸지 말라고 울먹이며 설득하지만 김항곤 군수는 "국가가 한 발 물러섰으니 우리도 한 발 물러서야 한다"며 얼버무리거나 동문서답을 할 뿐이다. 다시 한 번, 도대체 사드 배치에 저항하는 경상북도 성주군의 남성들은 모두 어디에 가 있는가.

나의 질문에 대해 배미영은 자신이 싸움을 시작하며 남편을 비롯한 자신이 알고 있는 거의 모든 성주군의 남성들에게 들었던 말을 대신해서 들려준다. "나라가 하겠다는데 우리가 국가랑 싸워서 이길 수 있나." 우리가 언어를 하나의 인식체계로 전제한다면 배미영이 자신의 목소리로 대신 들려주는 남성의 언어는 곧 마땅히 성주군 남성들의 인식체계로 역전시켜 생각해 볼 수 있다. 명령과 복종의 언어. 그리고 전체주의에 최적화된 인식체계. 그러므로 어떤 면에서 이 다섯 여성들은 지금 이중의 투쟁을 하고 있는 중이다. 성주군 남성들의 인식체계와도 싸워야 하며 동시에 부재한 그들을 대리하면서까지 국가와도 싸워야 한다.

이 영화의 물음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길목마다 설치한 현수막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길목마다 설치한 현수막 ⓒ 인디플러그


<파란나비효과>의 성주군의 남성들이 이렇게 정치적 신앙 속에서 자포자기하고 있다면, 또는 그저 국가의 명령을 복종하고 이행하고 있었다면 이 다섯 여성들은 친구들과 사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공부하고, 평화를 상징하는 그림을 그리거나 시를 써서 전시했다. 또 때때로 장터를 열어 사람들과 먹을 것을 나누고, 집회에서 사람들과 함께 노래하며 직접 만든 파란 나비를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파란나비효과>는 그게 이들의 언어였고 할 수 있는 유일한 싸움이었다고 성주 밖 세상 사람들이 모르고 있던 성주군의 이야기를 전해 준다.

이런 맥락이었는지 영화에 출연했던 김정숙과 이수미는 지난 6월 26일 청와대에 방문해서 자신들이 재배한 성주 참외와 직접 쓴 손 편지와 시, 그리고 <파란나비효과> 상영회 초대권을 문재인 대통령이 아닌 김정숙 여사에게 보냈다.

<파란나비효과>의 조금은 무모했던 정치는 지금 한 편으로는 성공하고 있는 것 같다. 누구보다도 이 영화를 통해서 성주 군민들이 다시 한 번 활력을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국회의원 박주민, 심상정, 김종대, 이정미, 이재명 성남시장 등 정치인들이 <파란나비효과>에 지지를 보냈으며 6월 24일에는 광화문에서 약 3000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사드 반대 집회가 개최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파란나비효과>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람과 아이들이 있는 곳 어디도 사드는 안 된다"며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정치적이 되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이 요청에 어떤 언어로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파란나비효과 성주 사드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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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공허한 공포를 떠올린 나는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어디건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 보기로 결심했다" -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그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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