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 많은 자여, 그대 이름은 <옹고집>
가짜를 진짜라고 여기며 사는 옹고집의 처 진짜를 쫒아내고 부인(역 석호진)까지 차지한 가짜 옹고집(역 문영동).

▲ 가짜를 진짜라고 여기며 사는 옹고집의 처 진짜를 쫒아내고 부인(역 석호진)까지 차지한 가짜 옹고집(역 문영동). ⓒ 최종규


옛날 옹진골 옹당촌에 옹고집이라는 남자가 살고 있었다. 옹고집은 인색한 데다 고약한 성격에 고집이 세고 심술이 사나운 인물로 자신의 머슴은 물론 노모까지 박대하는 천하에 죽일 놈이었다. 어느 날 한 도사가 사람을 보내 옹고집을 좀 혼내고 오라고 옹고집이 사는 집으로 보낸다. 그렇지만 보낸 사람이 옹고집에게 매만 맞고 돌아오게 되자 도사는 도술을 부려 허수아비를 가짜 옹고집으로 변하게 만든다.

가짜 옹고집이 진짜 옹고집이 살던 집에 들어간 뒤부터 서로 자신이 진짜 옹고집이라고 주장하나 옹고집의 아내와 자식마저 누가 진짜 옹고집인지 알지 못하게 된다. 결국, 진짜 옹고집이 관가에 송사를 제기했지만, 오히려 가짜로 내몰린 진짜 옹고집은 곤장을 맞고 마을 밖으로 쫓겨나게 된다.

진짜 옹고집은 자신의 삶을 비관하여 자살을 시도했지만, 도사에 의해 구출되는데 도사로부터 부적을 받은 진짜 옹고집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서 부적을 던지자 가짜 옹고집은 다시 허수아비로 변하게 된다. 그 후 진짜 옹고집은 자신의 삶을 참회하고 신실한 불교 신자로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고전 <옹고집전>이다.

<미스터 옹>,그대 또한 불행한 자가 아닌가

누가 진짜 옹고집인가? 진짜(역 류재필)와 가짜 옹고집(역 문영동)이 서로 진짜라고 노모(역 김용선)에게 밝혀달라고 하는 장면.

▲ 누가 진짜 옹고집인가? 진짜(역 류재필)와 가짜 옹고집(역 문영동)이 서로 진짜라고 노모(역 김용선)에게 밝혀달라고 하는 장면. ⓒ 최종규


<미스터 옹을 찾아라!>는 고전 <옹고집전>의 줄거리를 차용하되 생명공학의 인간복제 모티프를 현대적인 상상력으로 재구성하고 극 전체의 뼈대를 마당놀이 형태로 가져가면서 여러 해학적 요소를 가미해 만든 현대적 퓨전 풍자극이다.

생명공학을 연구하는 황보 박사(역 이상희)는 연구비 후원을 부탁하기 위해 옹고집(역 류재필)의 집에 제자 우륵(역 신동환)을 보낸다. 그렇지만 옹고집은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돈을 뺏으러 왔다며 우륵을 뼈가 부러지도록 흠씬 두들겨 패서 돌려보낸다. 이에 분노한 황보 박사는 옹고집을 응징하기 위해 똑같은 복제 옹고집을 만들어내게 되면서 이야기는 점점 흥미진진해진다.

한 집에 똑같은 옹고집이 둘이나 있으니 그 후로 벌어질 일들은 좌충우돌과 혼란의 연속이다. 결국, 가족을 통해서도 진짜와 가짜를 판별하지 못하게 되자 진짜 옹고집은 관가에 소송까지 제기하게 된다. 하지만 복제된 옹고집(역 문영동)이 진짜라는 판결을 받고 진짜 옹고집은 오히려 집에서 쫓겨난다. 진짜 옹고집은 유리걸식하며 몰래 자기 집 주변을 엿보는데 자기보다 더한 옹고집의 악한 행태를 보며 지난날의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자본주의적 인간의 탐욕에 대한 유쾌하고도 통렬한 풍자극

옹고집에게 연구비 후원을 얻어내려는 황보 박사와 제자 우륵 황보 박사(역 이상희)는 제자 우륵(역 신동환)을 시켜 옹고집에게 연구비 후원을 부탁하지만 우륵만 죽도록 두들겨 맞고 실패한다.

▲ 옹고집에게 연구비 후원을 얻어내려는 황보 박사와 제자 우륵 황보 박사(역 이상희)는 제자 우륵(역 신동환)을 시켜 옹고집에게 연구비 후원을 부탁하지만 우륵만 죽도록 두들겨 맞고 실패한다. ⓒ 최종규


고전 <옹고집전>이 도술의 힘을 빌려 옹고집을 혼내주고 깨달음을 얻게 한 후 갱생의 삶을 통해 전통적인 유교적 가치나 불교적인 가르침을 전하고자 했다면 <미스터 옹을 찾아라>는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결말에서 벗어나 다면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극에 등장하는 진짜와 가짜 옹고집, 복제 옹고집을 만들었던 황보 박사 역시 탐욕이 인간을 괴물로 만들고 종국엔 파멸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깨우쳐주고 있다.

'견리사의(見利思義), 이득을 눈앞에 보거든 그것이 옳은가를 생각하라'는 말처럼 인간의 어떤 행동의 선택 앞엔 이익과 정의가 놓여있다. 정당한 수단으로 정당한 이익을 얻는다면 그것을 나쁘다 할 사람은 없지만, 나의 유익을 취하려고 타인의 고통이나 슬픔을 강요할 수는 없다. 지나친 탐욕의 결말은 늘 파멸에 이르는 것임을 알면서도 우리는 늘 이웃과 함께 사람의 도리를 다하고 인정을 나누는 소박한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모두가 자본주의적 욕망의 노예가 되어가는 것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이 극은 유쾌한 웃음을 유발하지만, 사실은 우리 시대의 탐욕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함께 통렬한 풍자극으로 읽힌다.

재판정에서 판결을 기다리는 옹고집들 진짜 옹고집(역 류재필)은 진짜를 가려달라며 소송을 제기하지만 오히려 자신이 쫓겨나는 결과를 맞게 된다.

▲ 재판정에서 판결을 기다리는 옹고집들 진짜 옹고집(역 류재필)은 진짜를 가려달라며 소송을 제기하지만 오히려 자신이 쫓겨나는 결과를 맞게 된다. ⓒ 최종규


한편 이 극의 미덕은 상투적인 결말을 보여주지 않고 마당놀이 형태의 광대(역 최경희)가 재담을 능숙하게 펼치는 서술자로 등장하여 관객들에게 함께 생각할 시간을 만들어주면서 용서와 화해를 통해 새로운 상생의 삶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대본을 쓴 극작가 김태수의 원작을 바탕으로 전통의 현대적 수용에 힘을 기울여 온 연출(이상희)의 적절한 디렉션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보인다.

특히 주연 외에도 관록이 느껴지는 사또 역의 이민재, 노모 역의 김용선, 옹고집의 처 역의 석호진, 그 밖에 행랑어멈(역 김현숙), 강쇠(역 최태익), 채련(역 황윤희) 등의 감칠 맛 나는 열연이 극의 완성도를 높여주었으며 장면전환에 따라 수시로 이동 배치되는 탁자 형태의 무대 소품들, 실제 활용되는 전통 악기들, 천을 이용한 무대 공간의 확장, 한복의 느낌을 살리면서도 극의 분위기에 맞는 무대 의상 등이 전체적으로 잘 어울리는 한 편의 드라마를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진실을 알게 된 진짜 옹고집(역 류재필) 진실을 알게 된 진짜 옹고집은 소송을 다시 제기하게 된다.

▲ 진실을 알게 된 진짜 옹고집(역 류재필) 진실을 알게 된 진짜 옹고집은 소송을 다시 제기하게 된다. ⓒ 최종규



덧붙이는 글 제작: 제의와 놀이 KOTTI, 집현
공연: 대학로 여우별 씨어터, 5.18~6.6 9회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6.23~6.25 3회
미스터 옹을 찾아라 류재필 문영동 이상희 신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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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리뷰어. 2013년 계간 <문학들>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명왕성 소녀>(2023), <물 위의 현>(2015), 캘리그래피에세이 <캘리그래피 논어>(2018), <캘리그래피 노자와 장자>, <사랑으로 왔으니 사랑으로 흘러가라>(2016)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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