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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제주해군기지 건설저지를 위한 전국대책회의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가 개최한 집회 및 시위의 자유 쟁취를 위한 기자회견에서 임보라 섬돌향린교회 담임목사가 발언하고 있다.
 지난 2015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제주해군기지 건설저지를 위한 전국대책회의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가 개최한 집회 및 시위의 자유 쟁취를 위한 기자회견에서 임보라 섬돌향린교회 담임목사가 발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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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29일 오후 2시 9분]

현대판 마녀사냥인가. 아니면 종교 본연의 교리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인가.

국내 최대 보수 장로교단인 예장합동 교단(김선규 총회장)이 성소수자 권익보호에 앞장서 온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의 이단성을 심사하겠다고 나서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예장합동 총회 이단대책위(아래 이대위, 진용식 위원장)는 지난 15일 임 목사 앞으로 '이단사상 조사연구에 대한 자료요청의 건'이란 제목의 공문을 보냈다. 이대위는 이 공문에서 "제101회 총회의 헌의를 수임받아 귀 단체(섬돌향린교회)및 귀하(임보라 목사)의 이단성 여부를 조사하는 중"이라며 아래 세 가지를 요청했다.

1) 귀 단체(개인)에서 이단사상으로 문제제기 되었던 내용일체
2) 상기 내용 중 수정되었던 부분이 있다면 관련 내용 일체
3) 지금까지 발행된 책이나 내용일체(설교문, 신문, 음성 및 비디오 녹화 등 일체)


이대위는 만약 회신이 없을 시 "그동안 확보한 자료에 의해 본 이단대책위에서 결정함을 알려드리는 바"라고 끝을 맺었다.

예장합동 교단이 임 목사의 이단성 심사에 나선 건, 임 목사가 <퀴어 성서 주석>(Queer Bible Commentary·QBC) 번역본 발간에 참여했다는 이유에서다. 예장합동 이대위 진용식 목사는 기독교 인터넷 신문인 <뉴스앤조이>와 한 인터뷰에서 "헌의가 들어와 조사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해 9월 열린 예장합동 교단 제101회 총회에서 임 목사에 대한 이단성 여부를 심사해달라는 청원이 들어왔고, 총회가 이를 수락했다는 설명이다.

다른 보수 교단들도 예장합동을 거들고 나섰다. 한국교회 8개 교단 이단대책위원장 연석회의(기감, 기성, 기침, 대신, 통합, 합동, 합신, 고신)은 27일 "목사가 교리적으로 동성애 문제를 진행해 나가는 상황이기에 퀴어 성서 주석 번역본 발간은 이단문제에 해당한다"며 이단성 심사에 동참하기로 결정했다.

신앙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성소수자 혐오'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일단 <퀴어 성서 주석>은 발간 '예정'인 상태다. 단지 참여했다는 사실 자체를 문제 삼아 이단성을 심사하겠다는 건 문제가 있다. 임 목사는 오랜 기간 성소수자를 섬기며 이들의 권익보호 증진에 매진해왔다. 진용식 목사는 "우리는 동성애 활동을 문제 삼는 것"이라고 밝혔다.

보수 개신교는 성소수자 혐오를 확산하는 데 일조해왔다. 해마다 퀴어문화축제가 열릴 즈음이면 보수 개신교계는 '동성애 지구 종말' '흡연은 폐암을, 음주는 간암을, 동성애는 에이즈를' '동성애 조장, 에이즈 확산, 세금 폭탄' 등의 혐오 발언을 쏟아낸다.

보수 개신교계의 입장은 단호하다. 동성애가 죄라는 것이다. 이들은 그 근거로 성서를 든다. 이런 주장을 따져보기에 앞서 보수 개신교계가 쏟아내는 혐오 발언의 진위부터 검증해 보자. 동성애가 에이즈를 부른다는 선전은 명백한 허위다.

후천성 면역결핍증, 즉 에이즈는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 그리고 낙후된 보건의료 체계로 인해 생긴 질병이라는 게 정설이다. 그러나 보수 개신교 교회에선 이 같은 '사실'을 무시하기 일쑤다. 오히려 거짓 선동 구호를 신앙의 이름으로 유통한다.

지난 2013년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평등한 가족구성권, 다양한 가족구성권,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 및 혼인신고 수리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임보라 섬돌향린교회 목사.
 지난 2013년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평등한 가족구성권, 다양한 가족구성권,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 및 혼인신고 수리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임보라 섬돌향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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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의 타락이 더 큰 죄

무엇보다 성서는 동성애를 죄라고 규정하고 있지 않다. 성서의 기록을 살펴보자. 성서에서 동성애를 언급한 대목은 구약성서 <레위기>와 사도 바울이 로마인에게 보낸 편지(<로마서>) 정도다. <레위기> 저자는 남자와 한 자리에 드는 것을 '망측한 짓'(레위기 18장 22절)이라고 완곡하게 적는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 1장 27절에서 "남자와 남자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한다"고만 기록했을 뿐이다.

성서는 오히려 성직자들의 타락에 준엄한 경고를 보낸다. 구약성서 <사무엘상> 2장의 기록을 살펴보자. 여기엔 하느님께서 제사장 엘리의 두 아들의 도덕적 타락에 어떤 심판을 내렸는지 자세히 적혀 있다. 제사장 엘리의 두 아들은 백성들이 하느님께 바친 제물을 제 것으로 안다. 그뿐만 아니다. 성막(예배당 이전에 예배 장소로 쓰였던 천막 - 글쓴이)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있었는데, 엘리의 아들들은 이 여인들과 잠자리를 갖는다. 몇몇 개신교 목회자들이 교회 재정을 사유화하고 여성도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 논란이 일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여호와는 이들의 타락에 모골이 송연한 형벌을 내린다. 엘리의 두 아들은 물론 엘리 가문 자체를 멸한 것이다. 성서에서 이런 예는 얼마든지 들 수 있다. 역사적으로도 성소수자 때문에 사회가 타락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종교, 혹은 정치 지도자들의 도덕성 상실이 공동체의 붕괴를 불러온 예가 더 많았다.

예장합동 교단이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동성애로 인한 성도덕 타락'을 먼저 생각했다면, 성추행으로 물의를 일으킨 전병욱씨 사건을 엄정하게 다뤘어야 하지 않을까. 징계권을 가진 예장합동 평양노회는 전씨에게 '설교 2개월 중지, 공직 정지 2년'의 처분을 내렸다.

전씨가 삼일교회에 시무하던 당시 다수의 여성도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공식 제기됐지만, 평양노회는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회법정이 전씨가 복수의 여성도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사실을 인정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전병욱 목사가 담임목사의 지위를 이용해 장기간 다수의 여성 신도들인 피해자들을 상대로 성추행과 성희롱을 해온 것으로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현재 전씨는 법원 판단에 불복해 대법원에 항소한 상태다.

또 지난 9년 보수정권 집권 기간 동안 세월호 유가족 등 시대의 아픔을 당한 많은 이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다시피 했다. 그러나 예장합동 교단이 전면에 나서 이들을 보듬진 않았다. 이런 교단이 성소수자 인권 보호에 앞장섰던 타 교단 목사의 이단성을 심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가톨릭마저 이단이라는 예장합동

예장합동의 무리한 이단성 심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예장합동은 2015년 9월 제100회 총회 당시 "총회 임원회와 정치부 임원회가 로마 가톨릭 이단성 공포 안건을 맡기로 했다"고 결의한 바 있다. 즉, 가톨릭의 이단성을 심사하겠다는 말이다. 당시 총회장에서는 '가톨릭은 이단도 아닌 이교'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가톨릭과 개신교를 아우르는 그리스도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종교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나 교단을 만들지 않았다. 그보다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고,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세우려 했다. 예수께서 세우려했던 하느님 나라는 가난한 자, 권력에 억눌린 사회적 약자, 병든 자가 주인이 되는 나라다.

따라서 당시에 천형으로 여겨졌던 한센병자나 걷지 못하는 자라도 예수에게 오는 데 문제 되지 않았다. 예수는 되려 병든 이들, 그리고 그 시대에 가장 아픔 당한 이들을 먼저 찾아갔다. 아마 지금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면, 성 정체성이나 피부색 등을 문제 삼지 않을 것이다.

교회는 예수가 전한 복음의 정신을 살려야 한다. 그게 교회의 존재 이유다. 영국 성공회 사제인 데이브 톰린슨은 자신의 책 <불량 크리스천>에서 이렇게 적었다.

"교회는 살아 숨쉬는 사랑의 공동체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조건 없이 받아들이는 곳, 평등한 기회를 주는 곳, 다양성을 기뻐하는 곳, 누구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집처럼 편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성소수자를 겨냥해 혐오를 여과 없이 발산하고, 이들을 돕는 목회자를 이단으로 낙인찍으려는 시도는 명백히 반그리스도적이다.

예장합동은 타 종교나 타 교단 목회자에 대해 이단 낙인을 찍으려 하기보다 자신의 발밑부터 살펴야 할 것이다. 내부개혁은 소홀히 하면서 이단 낙인에 매달린다면 교세 감소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다른 보수 교단 역시 마찬가지다. 성소수자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는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십계명 가운데 네 번째 계명, 즉 "네 이웃에 대해서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계명 위반이다.

2016년 6월 11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2016퀴어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다.
 2016년 6월 11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2016퀴어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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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그리스도교 전통을 지닌 모든 나라와 지역에서 성소수자를 두고 첨예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 와중에 캐나다 연합교회(The United Church of Canada)의 경우 지난 1988년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든, 성소수자라도 예외 없이 교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목회자도 될 수 있다고 결의했다.

성소수자는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의 완성이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서 바라고 원했던 소망이었다. 그 소망을 이뤄가야 하는 건 예수를 따르는 이들은 물론, 우리 사회 구성원 전체가 이뤄내야 할 사명이다. 시대착오적인 이단심의가 즉각 철회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캐나다 연합교회  소속 한인 목회자 16명은 25일 예장합동 교단의 임 목사 이단심사와 관련, 아래와 같은 입장을 냈다.

"우리는 최근 한국에서 임보라 목사가 이미 발간된 영어판 퀴어성서주석을 번역출판하려는 것에 대해 타 교단인 예장합동 측 이단대책위가 이단성 시비를 조사하겠다고 나서는 마녀사냥식의 오만한 행동을 접하면서, 출신교단과 신학적 견해차이를 넘어서 큰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입장은 생명과 사랑의 복음을 깊이 묵상하는 신학적 성찰과 더불어 일관성 있고 타당한 성서해석, 그리고 인간의 성(sexuality)에 대한 현대 의학·심리학·사회학적 지식을 통해서 세워가는 것이지, 일방적인 이단시비와 협박으로 강요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에 우리는 임보라 목사에 대한 예장합동 측 이단대책위의 소위 '이단사상 조사연구' 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합니다. 아울러 이번 기회를 통해 한국의 각 교단과 신학교에서도 좀 더 깊이 있는 성찰과 성숙한 토론이 활발해지기를 바랍니다."


태그:#예장합동, #임보라 목사, #섬돌향린교회, #데이브 톰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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