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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 그리고 10만인 클럽 회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그동안 개인적인 이유로 수 개월간 연재를 올리지 못했음을 깊이 사과드립니다. 연재를 재개하오니 독자님들의 많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저는 2015년 6월 14일부터 23일까지 일본 순회강연을 마치고 6월 24일부터 7월 9일까지 북녘의 수양딸을 찾아 북한을 여행했습니다. 또 2015년 10월 초에도 북한을 한 번 더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연재 '수양딸 찾아 북한으로'를 통해 그 사이에 있었던 일을 전하려 합니다. - 기자 말

평양판 '맥도날드'

청봉악단의 연주회가 열린 인민극장(왼쪽 둥근 건물) 앞에서.
 청봉악단의 연주회가 열린 인민극장(왼쪽 둥근 건물) 앞에서.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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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14일, 아침에 일어나니 기분이 아주 상쾌하다. 전날 설경이네 집에도 가고 밤에는 음악회도 다녀와 기분 전환이 돼 그런가 보다. 최근에 창단했다는 청봉악단의 연주회였다. 먼저 관람한 모란봉악단과 굳이 다른 점을 찾아보자면 모란봉 악단의 곡 편성과 편곡을 기악 중심으로 했다면 청봉악단의 연주는 주로 성악을 중심으로 곡의 흐름을 이끌어 갔다고 볼 수 있겠다.

두 악단 모두 음악 편곡이 기존 사회주의 음악의 흐름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편곡 기법이었다. 청봉악단의 연주에서는 재즈풍의 선율마저 감지할 수 있었다. 미국의 작곡가 스티븐 포스터의 <오 수산나>를 비롯한 외국 민요들의 편곡은 내가 그동안 들어 봤던 그 어떤 음악 편곡보다도 훌륭했다.

특히 전형적인 미국 민요를 연주할 때는 어색하지 않게 그 나라 감성을 노래와 율동에 담아 표현했다. 오히려 받아들이는 내 감정이 어색하기까지 했다. 평양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민요를 듣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해보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노래를 들으며 경미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이 미국 노래를 인민들이 알고 있어?"
"네, 세계명곡집이라는 게 있는데 그 안에도 들어 있습니다. 서방의 노래들이 대부분입니다."

북한 연주자들이 북한 노래를 부를 때는 이들의 실력을 가늠해 보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북한 음악에 대한 내 지식이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이 외국곡을 연주하는 것을 들으면 수준이 상당히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역사나 19세기 미국의 사회상 등 <오 수산나>의 배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것이라는 가정을 하면 이들이 이 노래를 무척 훌륭히 소화한다는 생각이다.

연주회는 '인민극장'이라는 곳에서 열렸다. 전형적인 오페라 극장이다. 마이크를 쓰지 않고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고 한다. 북한에는 최고 수준의 극장이나 연주회장들이 많이 있다. 평양 인구에 비해 그 숫자도 많고 이들의 생활 수준에 비해 그 시설이 가히 세계적이다. 아마도 음악이 선전·선동의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꽃 전시관에서 안내원과 함께.
 꽃 전시관에서 안내원과 함께.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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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전시관 내부모습. 중앙에 조선로동당의 상징이 꽃으로 표현돼 있다.
 꽃 전시관 내부모습. 중앙에 조선로동당의 상징이 꽃으로 표현돼 있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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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는 남편의 얼굴색도 좋아 보인다. 아침부터 맥주를 찾는 걸 보니 어제 의사 선생님께서 주신 약이 잘 듣는 모양이다. 오늘 오후에는 둘째 수양딸 설향이네 집에 가기로 돼 있다. 오전에는 특별한 일정이 없어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려 하자 안내원 경미가 꽃구경을 가자고 한다.

꽃구경이라고 해서 들놀이 가는 줄 알았는데 막상 도착한 곳은 큰 건물이다. 꽃 전시관이다. 조선로동당의 상징(낫, 붓, 망치)을 전시관 한가운데 꽃으로 화려하게 장식해놨다. 그리고 가장자리를 따라 여러 직장에서 출품한 꽃장식이 전시돼 있다. 대부분이 당과 지도자에게 바치는 작품들이다. 역시 사상과 이념이 깃들어져 있다.

평양의 햄버거 식당을 찾아가는 길.
 평양의 햄버거 식당을 찾아가는 길.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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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동안 꽃 전시관을 걸으며 구경을 했더니 갈증이 난다. 시원한 음료수라도 마시면서 잠시 쉴 곳을 찾으니 햄버거 식당에 가잔다. 그곳에 가면 청량음료를 비롯해 다양한 종류의 커피가 있다고 경미가 일러준다.

햄버거 식당은 김일성 종합대학 근처에 있다. 막상 들어가 보니 메뉴가 엄청나게 다양하다.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열었다. 벽에 걸려있는 메뉴가 전부가 아니다. 메뉴판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여러 종류의 샌드위치와 음료를 보고 있자니 변화하고 있는 북한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평양 햄버거 식당의 메뉴는 다양했다. 하지만 메뉴판을 보니 벽에 붙은 메뉴가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됐다.
 평양 햄버거 식당의 메뉴는 다양했다. 하지만 메뉴판을 보니 벽에 붙은 메뉴가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됐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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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햄버거 식당의 종업원.
 평양 햄버거 식당의 종업원.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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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햄버거 식당의 프렌치 프라이스(감자튀김). 종이곽은 마치 맥도날드의 그것과 닮았다.
 평양 햄버거 식당의 프렌치 프라이스(감자튀김). 종이곽은 마치 맥도날드의 그것과 닮았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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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북한에는 민간 경제의 시장화와 함께 서구의 문화가 서서히 유입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은 이를 자연스럽게 접하고 있다. 그러나 서구의 문화가 무분별하게 들어와 주민들이 이를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는 건 아니다. 국가가 외국 문화의 유입을 제한하거나 조절하기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북한 주민들이 갖고 있는 보편적 가치가 있으며, 이에 반하는 외부의 문화를 그들 스스로가 자정하는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마도 이곳 북녘동포들의 가치관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할 것이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이 북한땅 햄버거 식당의 메뉴판에서 '아메리카노'라는 글자를 보는 순간 야릇한 감정이 느껴졌다. 그래서 주문해봤다. 호기심에 프렌치프라이(감자튀김)도 함께 주문했다. 프렌치프라이를 담은 종이곽이 마치 맥도날드의 그것과 유사하나, 맛은 훨씬 더 좋다. 우선 감자가 고소하고 튀김의 색깔이 곱다. 아마도 냉동 감자가 아닌, 신선한 감자를 튀겨서 그런 것 같다. 커피를 마시면서 창밖을 내다본다. 한껏 멋을 낸 여성들이 걸어간다. "아, 지금 북한은 변하고 있구나!" 혼잣말을 되뇐다.

북한 짜장면

북한에서 맛본 짜장면. 맛은 남한 짜장면이 더 나았다.
 북한에서 맛본 짜장면. 맛은 남한 짜장면이 더 나았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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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 식당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경미가 "점심도 이 식당에서 햄버거로 하겠냐"고 묻는다. 미국서 햄버거는 많이 먹을 수 있으니 다른 곳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북한의 햄버거 맛이 궁금하긴 했지만 햄버거 맛이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고, 기왕이면 우리가 먹어보지 못한 음식을 먹고 싶었다. 경미가 색다른 제안을 한다.

"남조선에서는 짜장면을 많이 먹는다는데 조국(북한)의 짜장면을 한 번 드셔 보시겠습니까?"
"짜장면? 그래 가자. 고려호텔 앞에도 짜장면집이 있던데 맛이 어떨는지 궁금해하던 차에 참 잘 됐다. 어서 가자, 얘."

우리가 찾아간 곳은 짜장면 전문집이 아닌 일반 음식점이다. 한식(조선식), 일식, 중식이 모두 갖춰져 있다. 북한동포들도 짜장면을 먹지만 즐기지는 않으며 가끔씩 먹는 별식이라고 한다. 이유인 즉, 짜장면에 비해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좋은 냉면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란다. 짜장의 색깔은 옅은 갈색이고 소스에서 오향 냄새가 약간 난다. 그 외에는 우리가 먹는 짜장면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큰 차이점이 있긴 하다. 가장 중요한 단무지와 양파가 함께 제공되지 않는다. 북한을 수차례 여행했지만 이곳에서 짜장면을 먹어보는 건 처음이다.

역시 우리 입맛에는 한국식 짜장면이 훨씬 좋다. 언젠가 북한동포들에게 한국식 중국음식을 맛보인다면 그 인기가 대단하리라 상상해 본다.

설향이를 찾아서

설향이 부부.
 설향이 부부.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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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호텔방으로 돌아와 설향이에게 건넬 육아용품을 미국서 가져온 기저귀 가방에 담는다. 지난번 첫째 딸 설경이 출산 때와 비슷하게 준비했다. 아기를 위한 의약품, 비타민, 우유병, 샴푸, 비누 등 그리고 설향이 부부를 위한 여러 가지 선물들. 설향이는 지금쯤 배가 많이 불러 있겠지.

설향이네 아파트로 가는 길과 거리의 허름하게 보이는 아파트들이 이제는 많이 눈에 익었다. 처음 북한을 방문했을 때 그런 아파트들을 보면서 가슴 아파했던 기억이 난다. 설경이네도, 설향이네도 모두 아파트의 외양이 매우 낡았다. 첫 방문 때 집안으로 들어가기 전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모른다. 아파트 벽의 시멘트는 떨어져 나가 있고, 페인트가 벗겨진 곳도 한두 군데가 아니다. 수십 년 전에 지어진 소비에트 스타일의, 성냥갑 같은 단조로운 건축양식이 초라함을 더한다. 그런데 막상 집 안으로 들어가 보면 깔끔하게 정리정돈 해놓고 갖출 건 다 갖춰놓고 산다. 정말 겉과 속이 다른 것이 북한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설향이 부부가 반갑게 맞아준다. 배가 잔뜩 부른 설향이가 내 손을 잡으며 인사를 한다.

"안녕하셨습니까, 오마니. 오신다더니 정말 또 오셨습니다. 어서 들어와 앉으세요."
"설향아, 배가 많이 불렀구나. 힘들지?"
"일없습니다. 남편이 많이 도와줍니다. 나 도와주자고 퇴근 후 술자리 피해 일찍 집에 와 아주 편합니다."
"그럼, 그래야지. 아이구, 듬직한 남편… 여전하구나."
"애 갖고 나서 많이 변했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야? 연애할 때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하곤 했잖아. 기억 안나? 우리 안내할 때 중간중간에 하도 전화를 많이 해 우리가 놀리곤 했잖아."
"하하, 기건 기랬습니다만 결혼하고 나니까니 뭐…."
"어서 계속해봐."
"지금은 잘하니까 됐습니다. 오마니."

내가 설향이 남편을 노려보자 남편은 설향이를 쳐다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친다. 어디나 사람 사는 게 다 같다. 유머도, 남편 얘기도, 시댁 얘기도….

2013년 8월 설향이와 백두산에서 .
 2013년 8월 설향이와 백두산에서 .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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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2013년 8월, 2주간 함께 여행했던 추억을 더듬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를 나눈다. 함께 백두산을 오를 때 내가 힘들어하자 연약하게만 보였던 설향이가 뒤에서 내 등을 밀어주며 하던 말들이 생각난다. 일본군에 대항해 목숨을 걸고 싸운 여자 빨치산에 대한 이야기다.

배가 부른 설향이를 힘들게 하지 않기 위해 서둘러 집을 나왔다. 설향이가 내 소매를 잡는다.

"아니, 저녁도 안 드시고 이번에도 기냥 가십니까?"
"또 다른 일정이 있어. 다음에 올 때는 내가 장을 봐 올테니 함께 해 먹자꾸나."
"매번 오실 때마다 기냥 가셔서 이거 참 안됐습니다."
"아냐, 설향아. 몸조리 잘해. 다음에 올 때는 꼭 먹고 갈게."

설향이네 아파트를 나오니 이 지역주민들의 해외동포 친척을 담당하는 직원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북한은 상당히 촘촘하게 짜여진 조직사회다. 각 단위마다 그 단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해외동포 친척이 방문하면 담당자가 이를 미리 알고 모든 편의를 제공한다.

"녀사님, 그래 딸이랑 잘 보내셨습니까?"
"네,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밌게 지냈습니다."
"또 언제나 다시 오시나요?"
"글쎄요…, 1~2년 내에는 꼭 다시 올 거예요."

갑자기 이 분이 눈물을 글썽이며 말을 잇는다.

"아, 친 딸도 아닌데…, 그 멀리 미국서 여기까지…."

아마도 이 세상에서 북한 여성들처럼 눈물이 많은 사람들은 없지 않을까 싶다. 반공교육 때문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북한 사람들은 감정이 메마르고 차가울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북한의 여성들은 수줍음을 많이 타면서도 감정 표현을 숨기지 않는다. 게다가 감성이 풍부하고 감상적이기도 하다. 하기사 많은 북한의 노래들이 사상과 이념을 내포하고 있지만 멜로디와 리듬은 사뭇 감상적이고 애달프다.

끔찍한 철갑상어

호텔로 돌아와 저녁식사 장소를 놓고 남편과 논쟁을 벌인다. 남편이 북한 요리의 별미 중에 하나인 철갑상어회를 먹으러 가잔다. '상어'라는 말만 들어도 등골이 오싹한데 그것도 날로 먹자니…. 도저히 내키지 않는다. 소름마저 끼친다. 남편의 우격다짐에 할 수 없이 따라 나선다.

식당은 주택가 같은 곳에 있는데 간판도 없다. 상어 이미지처럼 어두컴컴하니 음산하고 으스스하다. 대체 이 건물이 식당인가 싶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여러 개의 방까지 갖추고 있는, 꽤 크고 그럴싸한 식당이다. 방으로 안내받아 '게름직한' 기분으로 앉아있는데 웨이트리스가 들어와 붉은 술을 한 잔씩 돌린다. 철갑상어 피인지, 간인지, 쓸개인지를 섞은 술이란다. 기겁을 하고 술잔을 돌려주니 소주를 따라준다.

철갑상어회는 이렇게 생겼다. 깜짝 놀랐다.
 철갑상어회는 이렇게 생겼다. 깜짝 놀랐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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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갑상어 요리의 백미 철갑상어국.
 철갑상어 요리의 백미 철갑상어국.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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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들어온 철갑상어회가 의외로 먹음직스럽게 보여 화들짝 놀란다. 소주 한 모금을 마시고 한 점 입에 넣는다. 살점에 붙은 물렁뼈가 오돌오돌 씹힌다. 아, 고소하다!

식사와 함께 마지막으로 나온 철갑상어찌개가 일품이다. 철갑상어 껍질을 넣고 된장을 풀어 끓여냈단다. 마치 복어 껍질을 먹는 느낌이지만 그 와는 또 다른 별미다. 이 찌개가 철갑상어 요리의 백미다.

남편의 '우격다짐'에 고마워 하며 생각지도 않게 개운하고 산뜻한 기분으로 식당을 나선다. 큰 기대는 실망을 낳고 체념은 때론 뜻밖의 결과를 준다더니…. 호텔에 도착하니 안내원 경미가 작은 목소리로 다소곳이 말한다.

"내일은 탈북자 김련희씨의 가족을 만납니다."

아, 드디어 서울의 탈북동포 김련희씨와 그녀의 평양 가족을 페이스북 메신저로 연결해 주는구나! 헤어진 후 처음일 텐데 얼마나 가슴이 미어질까. 나는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힘주어 꼭 쥐고 방으로 올라왔다.


태그:#평양, #맥도날드, #패스트푸드, #북한 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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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음대 졸업.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 음악박사. 전직 성악교수 이며 크리스찬 입니다. 국적은 미국이며 현재 켈리포니아에 살고 있습니다. 2011년 10월 첫 북한여행 이후 모두 9차례에 걸쳐 약 120여 일간 북한 전역을 여행하며 느끼고 경험한 것들 그리고 북한여행 중 찍은 수만 장의 사진들을 오마이뉴스와 나눕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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