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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 편의점에 맡기세요". 최근 편의점은 빨래 대행 서비스도 시작했다. 세븐일레븐은 지난 1월 무인세탁소를 시범 운영했고, GS25는 지난 14일 세탁소 네트워크 업체 리화이트와 함께 지역 세탁소와 상생형 세탁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빨래뿐만이 아니다. 피자도 굽는다. 이렇게 편의점이 맡는 일은 갈수록 늘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과거 편의점 알바 시절 생각이 난다.

"이제 빵 굽는 법을 배워 보자." 이 말을 들은 건 알바를 시작한 지 4개월 정도 됐을을 때였다. 빵집 알바가 아니라 편의점 알바를 할 때였다. 당시 나는 굉장히 큰 크기의 편의점에서 알바를 했고 그곳에서 혼자 재고 정리 및 관리, 계산, 빵 굽기·포장·진열, 택배, 세금 납부, 로또를 비롯한 각종 복권의 당첨 여부를 판단하고 교환해주는 것, 호빵을 관리하고 찌기, 각종 온·오프라인 상품권 판매, 커피 판매, 휴대폰 충전, 의약품 판매 등의 일을 했다.

편의점 알바는 모두에게 '쉽게' 여겨지는 알바 중 하나다. 물건이 들어오면 물건을 넣고, 손님에게 결제만 해주면 되는 정도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애초에 노동에 쉽다 어렵다를 따지며 그 일에 대해 가치절하를 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편의점 알바는 사람들 생각만큼 '그냥 놀고먹는' 알바는 아니다. 최저시급 혹은 최저시급보다 못한 돈을 받는 경우가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편의점 알바 노동자가 하는 일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영화 <카트>에서 고등학생 편의점 알바로 나오는 도경수(태영 역)
 편의점 알바 노동자가 하는 일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영화 <카트>에서 고등학생 편의점 알바로 나오는 도경수(태영 역)
ⓒ 영화 <카트>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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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능이 돼야 했던 기억들

편의점 알바를 시작한 건 막 20살이 된  당시 쉽게 구할 수 있는 일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크기가 큰 곳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만만찮을 거라 생각했고, 실제로 그랬다.

야외 테이블에서 술을 먹고 치우지 않고 가는 사람들, 폭언을 하거나 시비를 거는 사람들, 내부에서 술을 먹으면 안 된다고 아무리 말해도 고집을 피우며 술을 먹는 사람들 등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 역시 고역이었다. 편의점 알바는 다른 알바와 달리 '치안에 대한 불안'까지 겪어야 했다. 도난이나 폭행·폭언의 대상이 되는 일이 많아 '야간 아르바이트는 남자만 뽑는다'는 편의점도 많았다.

다만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알바가 해야 하는 일이 굉장히 많다'는 것이었다. 현재보다 편의점이 맡았던 기능이 적었던 당시에도 큰 편의점은 여러 가지 일을 맡고 있었고, 알바는 그 모든 것들을 능숙하게 다뤄내야 했다.

그나마 나는 당시의 알바와 이후에 했던 편의점 알바에서 상대적으로 좋은 점주를 만나 그들이 어떤 일은 내게 맡기지 않기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해야 할 일은 많았다. 생지를 꺼내 빵의 특성에 따라 굽거나 녹여 일일이 포장을 하고 진열을 했고 그 빵을 배달하는 일도 있었다. 1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토요일에는 로또를 사러 왔고, 일요일이 되면 그것을 맞추러 왔다. 환불 체제가 없는 로또의 특성상 버튼 하나를 잘못 누르면(손님이 자신이 구매하는 것을 대충 말하거나, 말하고 나서 마음을 바꾸면 늘 이런 일이 생긴다) 추가로 나온 로또는 내 돈을 주고 구매해야 했다.

사람들은 각종 세금을 납부하러 왔고, 택배를 부치러 왔다. 나는 어느 때는 세무서의 직원 같았고 어느 때는 우체국의 직원이 됐으며 5개 종류가 넘는 복권을 다루는 복권 판매소의 직원이기도 했다. 빵집 알바생이기도 했고 술집 알바생이기도 했다. 아메리카노와 라떼, 카푸치노 등을 주문에 따라 만드는 카페 알바생이기도 했다.

사람의 증세에 따라 약을 추천하는 약사이기도 했고 전화카드와 휴대폰을 판매하는 통신전문가이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이 조금이라도 미숙하면 "알바란 애가 그것도 모르냐"라는 일갈을 들었다. 이후 온갖 아르바이트들을 했고, 그 중에는 모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소위 '빡센' 알바도 있었지만 당시의 편의점 알바 난이도는 그것들에 비해 절대 뒤지지 않았다. 너무나 많은 일을 해야 했지만 대우나 인식은 오로지 '그냥 계산만 해주는 애' 정도에 그쳐 있었기 때문이었다.

편의점 알바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논란이 되었던 구인광고
 편의점 알바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논란이 되었던 구인광고
ⓒ 인터넷 커뮤니티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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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알바는 '고작 그 정도의' 존재에 불과한가?

그런 나 역시 사정이 괜찮은 편에 속하기도 했다. 물론 편의점 알바가 매장에 따라 난이도가 천차만별이 되기 때문에 '정말 쉬웠다'고 하는 주변의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들도 있었다. 그들은 치킨을 튀기기도 했고 오뎅이나 떡볶이 등 분식을 관리하기도 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 2~3명이 함께 근무해도 일손이 부족하고 하루에 한 번씩 편의점의 모든 물건이 동나버리는 곳에서 일하는 친구도 있었다.

한 번 물량이 들어오면 수십 개의 박스를 정리하느라 땀을 흘리며 3시간 가까이를 보내는 친구도 있었다. 그들은 '편의점 알바'라는 이유로, '수습기간'이라는 이유로 최저시급을 받지 못하기도 했고 대부분은 최저시급만을 받았다. 주휴수당을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앉을 의자가 없어서 종일 서서 근무해야 하는 친구도 있었다. 아무도 거기에 제대로 토를 달지 못했다. 우리 사회에서 '편의점 알바'는 고작 그 정도의 일을 하는 존재로 여겨지기 때문이었다. '꿀알바'이기에 많은 돈을 받을 이유도, 식비를 제공할 이유도, 쉴 여유를 제공할 이유도 없는 존재.

그 사정이 이해되는 부분도 있다. 이를테면 야간 알바를 할 때는 낮은 임금일지라도 나에게 지급하는 일급이 편의점이 내는 매출보다 컸다. 야간에 수익이 거의 없는 곳일지라도 무조건 24시간 열려 있어야 한다는 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수익을 많이 내는 곳도 있었지만 반대로 점주는 100만 원의 소득도 얻지 못하는 곳도 있었다. 너무 힘든 곳이라 알바를 제때 구하지 못해 점주가 매일 혼자서 18시간 가까이 근무하는 곳도 있었다. 편의점에서는 '강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알바노조 편의점 모임 관계자들이 지난해 12월15일 오전 '편의점CU'를 운영하는 'BGF 리테일' 사옥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14일 경북 경산의 한 편의점에서 35세 알바노동자의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알바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환경을 보장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알바노조 편의점 모임 관계자들이 지난해 12월15일 오전 '편의점CU'를 운영하는 'BGF 리테일' 사옥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14일 경북 경산의 한 편의점에서 35세 알바노동자의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알바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환경을 보장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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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전히 편의점 알바는 그중에서 가장 약한 사람으로 남아 있다. 알바노조의 지난해 12월 조사에 따르면 알바생 68%가 폭언을 경험했고 61%가 주휴수당을 받지 못했다. 최저임금 미달에 해당하는 임금을 받는 사람은 43.9%였다. 편의점 알바에게 늘어난 것은 시급이 아니라 맡겨지는 일이었다.

식비를 따로 제공 받지 못하고 유통기한이 지난 폐기만을 '감사하며' 먹는 현실도, 최저로 맞춰지는 임금도 변하지 않았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편의점 알바를 해보았고, 다른 알바들도 겪고 나서는 절대로 편의점 알바를 찾지 않는 나는 편의점에 갈 때마다 알바에게 맡겨지는 일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는 것을 본다. 그들에게 남겨지는 '꿀알바'의 시선과 그로 인한 낮은 대우와 별개로 편의점 알바는 갈수록 '만능'이 되기를 요구받는다.

덧붙이는 글 | 다른 매체에 기고될 수 있습니다.



태그:#편의점, #편의점 알바, #아르바이트, #편의점 아르바이트, #최효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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