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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 신고할 거야!"
"차 때려 부술 거야!"

2012년 9월 26일에 태어나 이제 생후 57개월이 된 남자아이의 말이다. 걸을 수 있게 되면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밥을 먹을 때도 스마트폰으로 좋아하는 동영상을 틀어놔야 겨우 제자리에서 밥을 먹는다.

며칠 전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의 공개수업에 가보니 이 버릇은 전혀 고쳐지거나 나아지지 않았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친구와 얘기하거나 장난치거나 누워 있었다. 선생님이 가장 많이 부르는 이름도 이 아이 이름이었다.

"추예준!"

당연히 똑바로 앉으라거나 선생님 말씀에 집중하라는 의미다. 대부분 남자아이는 이럴 것이라고 겨우겨우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이제 이 아이는 자기 생각을 어렴풋이나마 주장하기 시작했다. 57개월 동안 보고 들은 단어와 지식으로 자기 생각을 표현한다.

[상황 1] "숫자 7 옆은 누구야?"

아빠 옷을 입고 멋진 포즈를 잡고 있는 6살 아이
▲ 57개월 된 미운 오리새끼 아빠 옷을 입고 멋진 포즈를 잡고 있는 6살 아이
ⓒ 김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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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유치원에서 숫자를 배웠나 보다. 어떤 날은 1부터 10까지 잘도 센다. 수 개념을 알아서가 아니라 그냥 입에 붙은 거다. 아이가 어느 날 내게 물었다.

"엄마, 7 옆에는 누구야?"

나는 어딘가에 친구나 동물, 인형이라도 있는 줄 알고 "어디? 어디 말이야?"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이는 검고 동그란 눈을 반짝이며 "아니~ 7 옆에는 누구냐고~"라고 되물었다. 그런데도 내가 질문의 요지를 알아채지 못해 이런 대화를 서너 번 주고받다가 '아!' 하고 눈치를 챘다.

"응, 8이야." 

요즘에는 이렇게 묻는다. "스물아홉 옆에는 누구야?"라고.

[상황 2] "이제 키울 수 있겠어?"

놀이터에서 돌아와 목욕하지 않는다고, 간식을 달라고 떼쓰고 있다
▲ 57개월 미운 오리 새끼 놀이터에서 돌아와 목욕하지 않는다고, 간식을 달라고 떼쓰고 있다
ⓒ 김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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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유치원 버스에서 내리는 시간은 오후 5시 5분. 아이는 마중 나온 내 얼굴은 보지도 않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친구와 친한 형이랑 소리 지르며 놀이터로 뛰어갔다.

놀이터에서 논 지 1시간 30분이 지나 집에 갈 시간이 돼도 전혀 지친 기색이 없었다. 1시간이 지나면서부터 "집에 갈 시간이야. 아파트 귀신 나올 때 됐어"라고 수십 번 얘기하고 있던 터다.

해가 지면서 바깥이 어둑어둑해지고 바람도 점점 세졌다. 생후 17개월 된 둘째의 몸이 휘청거렸고,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조바심이 나다 못해 화가 난 내가 말했다.

"아, 정말 예준이는 엄마가 못 키우겠어.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니?"

겨우겨우 집에 왔다. 이번에는 목욕을 하지 않겠다고, 간식을 달라고 드러누웠다. 아무리 달래고 화를 내도 막무가내였다. 도리어 내게 큰소리를 쳤다.

참다못한 나는 또 "아, 진짜 예준이는 엄마가 못 키우겠어. 안 키울래, 이제부터. 맘대로 해"라고 말하곤 둘째를 목욕시키러 욕실로 들어갔다. 목욕이 끝나갈 때쯤, 첫째인 아이가 슬금슬금 욕실로 들어와 배시시 웃었다. 못 본 척했다.

그렇게 목욕을 마치고 밥을 먹고 놀다가 자려고 누웠다. 나는 아직 화가 풀리지 않은 척 했다. 아이는 엄마인 내 옆에 바짝 붙어 누워 목을 만지작만지작하며 묻는다.

"나 엄마 말 잘 들었어?"

예의상 "응"이라고 답하자, 아이가 묻는다.

"그럼 이제 키울 수 있겠어?"

하하하. 뭐야. 나를 가지고 노나. 그래도 웃음만 날 뿐이다.

[상황 3] "이 카드로 살 수 있어!"

유치원에서 돌아와 놀이터로 뛰어 들기 직전 좋아 하는 모습
▲ 57개월 미운오리 새끼 유치원에서 돌아와 놀이터로 뛰어 들기 직전 좋아 하는 모습
ⓒ 김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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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TV 만화 중 <헬로 카봇>을 좋아한다. 두 달 전부터 만화에 나오는 캐릭터 중 하나인 슈퍼패트론을 사 달라며 엄마와 협상 중이다.

생후 17개월 된 둘째가 엄마 지갑을 뒤지며 놀고 있었다. 신용카드, 체크카드, 포인트 카드, 지폐가 바닥에 흩어졌다.

그때 첫째인 아이가 예쁘게 생긴 포인트 카드를 집더니 환호하며 물었다.

"엄마, 슈퍼패트론 살 수 있어. 이 카드를 주면 돼!"

결제가 안 되는 포인트 카드를 들고서 말이다. 아이는 생후 57개월 동안 엄마가 마트에서 물건을 사거나 식당에서 계산할 때 카드를 내는 것만 봐왔다. 현금은 찾기가 귀찮아 카드를 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아이는 누가 용돈을 주면 잘 받지도 않고 신경도 안 쓴다. 옆에서 시키니 "고맙습니다" 하지만 금방 돈을 흘리거나 던져둔다.

돈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 몰라서. 카드는 알지만 돈은 몰라서.


태그:#육아, #소소한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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