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정상화를 위한 토론회가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부산국제영화제 정상화를 위한 토론회가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 성하훈


부산국제영화제 정상화의 길이 이렇게 요원했을까. <다이빙벨> 상영 이후 정부 주도의 압력과 영화인들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최근이었다.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다시 시민 품으로, 부산국제영화제 정상화 토론회'(아래 토론회)에 모처럼 이 갈등의 주체와 관계자들이 한데 모여 의견을 나눴다.

토론회 내용은 크게 부산영화제 파행에 대한 책임론과 정상화를 위한 영화인들의 요구로 나뉘었다. 애초 참석자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추후 명단에 포함된 부산국제영화제 남동철 프로그래머는 "강수연 위원장, 김동호 이사장은 영화제를 지키기 위해 방패로 모셔왔고 우린 그들의 노력을 지켜봤다"며 "지금까지 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최악을 막기 위해 싸웠다고 생각하며, 강수연 위원장과 김동호 이사장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고 자평했다.

이어 남 프로그래머는 "최악의 사태는 바로 블랙리스트를 주도한 이들이 권력이 되거나 영화제를 장악하거나 영화제를 못하게 되는 일이었다"며 "(지난해) 영화제를 했던 건 우리가 무슨 권력욕이 있어서가 아닌 영화제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서였고,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이 물러난 이후 강수연-김동호 체제가 영화인들의 기대에 못 미쳤다는 평가에 대한 반박이었다. 남 프로그래머는 "영화제를 이렇게 지킨 사람에게 나가달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덧붙였다.

깊은 갈등의 골 

남동철 프로그래머의 발언은 그간 영화인들, 특히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재판 과정에서 부산영화제의 소극적 행동에 실망한 이들을 염두에 둔 말이었다. 청와대가 서병수 부산시장에게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2014년 <다이빙벨> 상영 중단 압력을 넣었다는 게 검찰과 감사 결과로 속속 밝혀지자 김동호 이사장과 강수연 위원장 등에게 함께 서병수 시장을 고발하자는 요구가 강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재판 결과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만 유지하자 영화인들의 사퇴 요구가 나온 것이다.

조종국 전 부산영상위원회 사무처장이 반박했다. 조 사무처장은 부산시 경제부시장과 사적 만남에서 이용관 사퇴 논의가 있었음을 언급하며 "정권 차원에서 이용관 찍어내기가 있었다는 것엔 이견이 없을 거고 이제 잘해보자는 건데 그 방법에서 차이가 있다"며 김동호 이사장이 온 과정에서의 세 전제 조건을 언급했다.

"(부산영화제를 파행으로 몰고 간) 서병수 시장의 사과,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명예회복을 위한 조치, 정관 개정을 위한 권한을 찾아오자는 거였는데 김동호 이사장은 이 조건을 걸지 않고 직함만 조건 없이 수락했다. 이는 영화인 상당수의 입장과 다른 독자행동이었다. 지난해 6월 이용관 위원장이 재판받을 때 김동호 이사장은 박근혜와 함께 프랑스에 가서 일정을 수행했다. 이게 권력 아닌가. <다이빙벨> 사태 때 그 분은 또 문화융성위원회장으로 장관급 직책을 재임했다. 어떻게 그 분이 피해자일 수 있나."

조종국 사무처장은 현재까지 밝혀진 청와대 개입 사실을 들면서 "집행위원장이었던 사람이 재판을 받는데 남일 대하듯 하는 태도가 동의 안 되는 것"이라 강조했다. "감히 제안한다"는 전제와 함께 조 사무처장은 "(파행 사태에) 가담하진 않았지만, 방조 혹은 묵인하고 권력 가까이에 있었던 것만으로 책임이 있다"며 "어떤 결단과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상화 부산국제어린이영화제 집행위원장은 2016년 부산영화제 정기총회를 언급했다. 서병수 시장의 퇴진 압박이 극에 달했던 시기이며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이 정관 개정과 영화제 정상화를 전제로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김상화 위원장은 "당시 총회에서 아무 말도 못 한 사람들 모두 비겁했다"며 "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의 죽음을 안타깝게 지켜보면서도 그 시간을 갈등 해결의 장으로 만들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했다. 김 위원장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운영 조직의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며 "김동호 이사장은 문화융성위원회장으로 다시 가시고, 강수연 위원장은 배우를 하셔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전 위원이자 한국영화감독 조합 소속이기도 한 이미연 감독 역시 "영화제 정상화엔 다들 동의하는데 각론에서 나뉘는 것 같다"며 "영화인들이 영화제를 열라 말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아니고 다만 외적인 조건으로 영화제가 완전히 무너졌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행동이다"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영화인 단체들의 보이콧 사태를 들며 이미연 감독은 "우리가 추측했던 (외압) 사실이 정권이 바뀌며 확인되고 있다. 영화제를 지난해 열었던 건 패착인 것 같다"며 "올해 보이콧을 두고 다시 논의하지 않고 있다. 빠른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영화제 외압, 고의성 없었다?

파행 원인과 책임론이 불거진 가운데 부산시를 대표해 토론회에 참석한 이재형 영상콘텐츠산업과장의 발언이 질타를 받기도 했다.

토론회 진행을 맡은 이준동 나우필름 대표는 "현장에 부산시를 대표해 나오셨기에 하나만 묻겠다"며 부산시가 영화제와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을 정치적으로 탄압한 것에 동의하는지, 서병수 시장은 사과할 것인지 물었다.

이에 이재형 과장이 "그 과정이 어찌 됐든 고의성은 없었다고 본다"고 답하자, 이준동 대표는 재차 "공식 입장인가. (청와대가 <다이빙벨> 사태에 영향을 줬다는) 밝혀진 사실에도 불구하고 서병수 시장은 사과하지 않는가"라고 물었다. 이재형 과장은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전제하면서 "부산시의 고의성은 없었다고 본다. 재판 과정에서 밝혀지면 사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뒤이어 발언한 문화체육관광부 직원은 그간 블랙리스트 정국에서 벌어진 문체부 내부 분위기를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이영아 영상콘텐츠산업과장은 "김종덕 장관과 조윤선 장관 이후 직무대행 체제까지 이어졌는데 조윤선 장관 때 여러 차례 직원과의 대화가 있었다"고 운을 뗐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이 밝혀지며 내부 결속을 위한 건지 단속을 위한 건지 모르겠는데 그때 직원들은 '청와대로부터 여러 부당한 지시를 받고 있고 우리가 그걸 이행 안 할 힘이 없으니 좀 끊어 달라'고 요구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우리가 그걸 이행하면서 내부적으로 장관과 차관에게 보고했고, 그 내용과 외부에서 장관이 설명하는 게 너무 달라 힘들었다. 정신분열에 이를 정도라고 호소했으나 이미 일이 벌어진 상태라 신세한탄 차원밖에 될 수 없었다. 이제 도종환 장관이 오셨기에 직원들 바람이 실질적으로 이행될 수 있을 거라 믿고 있다." 



패널들의 발제 후 참석자들의 발언 기회가 주어졌을 때 일부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이춘연 영화인회의 이사장은 "서병수 시장의 사과와 구속 수사를 촉구한다"고 강하게 말했고, 정진우 감독은 "발제자들끼리 싸우는 건 그만 하라"며 "국가 예산 제대로 짜달라고 요구하고 영화계 갈등 해결 해야지 감투 싸움으로 떠들고 있나"며 언성을 높였다.

행사 직후 <오마이스타>와 만난 한 영화인은 "이 토론회를 보면서 고 김지석 선생과 이용관 선생이 더 그리워졌다"며 "명예를 얘기하면서도 자리에 연연하는 모습이 보여 좀 마음이 좋지 않았다"고 평했다.

한편 이번 토론회를 주최한 전재수 의원은 "이 토론회를 시작으로 이후 영진위 문제 등 다양한 주제를 두고 자리를 만들 예정"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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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영화(독립영화, 다큐멘터리, 주요 영화제, 정책 등등) 분야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각종 제보 환영합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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