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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투경찰 출신의 5.18민주화운동 피해자가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 5.18 당시 전경 신분으로 광주 상황을 편지에 담았다가, 포고령·반공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김상회(60)씨는 20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이 같은 소식을 전했다.
 전투경찰 출신의 5.18민주화운동 피해자가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 5.18 당시 전경 신분으로 광주 상황을 편지에 담았다가, 포고령·반공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김상회(60)씨는 20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이 같은 소식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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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간 어깨를 누르고 있던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다."

전투경찰(아래 전경) 출신의 5.18민주화운동(아래 5.18) 피해자가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 5.18 당시 전경 신분으로 광주 상황을 편지에 담았다가, 포고령·반공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김상회(60)씨는 20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이 같은 소식을 전했다.

1980년 5월 전북 전주에서 전경으로 복무하고 있던 김씨는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광주 상황을 적었다가, 같은 해 6월 5일 전북도경 대공분실로 불법 연행됐다.

이후 김씨는 전북 계엄합수단, 육군 35사단 헌병대, 광주 상무대 등을 거치며 폭행·가혹행위가 동반된 조사를 받았고, 결국 군법회의(현 군사재판)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다. 김씨는 불법 연행 기간과 미결구금일수를 인정받지 못한 기간을 포함해 총 1년 100일(1980년 6월 5일~1981년 9월 12일)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관련기사]
1980년 5월, 전경인 내가 대공분실에 끌려갔다
편지 두 통 때문에 끌려온 영창, 조사관은 곡괭이 들고 '쪼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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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김씨의 상황은 지난해 5월 <오마이뉴스> 인터뷰를 통해 처음 알려졌다.

30년 넘게 과거를 가슴에 묻고 살았던 김씨는 지난해 2월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심의위원회(7차 보상신청)'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위원회는 약 1년 동안 심의를 거쳐 지난 1, 2월 김씨를 비롯한 244명을 보상 대상자로 확정했고, 김씨는 지난 3월 29일 이러한 사실을 서울지방보훈청에 알렸다. 그리고 서울지방보훈청은 지난 4월 20일 그를 '5.18민주유공자'로 인정했다.

"5.18 위해 조금이라도 힘 보탤 것"

서울 송파구 자택 인근에서 만난 김씨는 "제 입장에선 (보상 판정을 받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라며 가슴 졸였던 지난 1년의 상황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김씨는 "(보상 판정 직후) 당시 무죄라고 주장하며 당당하게 숙이지 않았던 것이 결국 역사의 평가를 받게 됐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출소 후 김씨는 자신의 과거가 알려질까 두려워 정상적인 생활을 이어갈 수 없었고, 결국 1989년 일본에 정착할 마음으로 유학을 떠났다. 하지만 유학 생활 동안 5.18 트라우마로 인해 안면마비 증상에 시달렸고, 학업을 이어갈 수 없어 2000년 귀국했다. 안면마비 증상은 왼쪽 무릎 통증(조사 당시 폭력)과 함께 김씨가 지금까지 겪고 있는 고통이다.

그럼에도 김씨는 "마음은 홀가분해졌다. 특히 제 과거를 잘 몰랐던 자식 삼남매도 최근 유공자 인정을 받은 뒤 '아빠 고생했어'라고 위로를 해주더라"라며 옅은 웃음을 내보였다. 특히 김씨는 "어머니가 많이 좋아하셨다"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인터뷰 당시 김씨는 "나중에 알게 된 건데, 제가 교도소에 있을 때 어머니는 아들 걱정에 한겨울에도 난방을 안 하고 살았다고 한다"라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전투경찰 출신의 5.18민주화운동 피해자가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 5.18 당시 전경 신분으로 광주 상황을 편지에 담았다가, 포고령·반공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김상회(60)씨는 20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이 같은 소식을 전했다.
 전투경찰 출신의 5.18민주화운동 피해자가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 5.18 당시 전경 신분으로 광주 상황을 편지에 담았다가, 포고령·반공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김상회(60)씨는 20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이 같은 소식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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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앞으로 5.18과 관련해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겠다"라고 강조했다.

"트라우마로 인해 고통스러운 시기도 있었지만, 뜻하지 않게 시대에 비켜서지 않고 5.18 및 광주와 함께 할 수 있었다. 이는 내 인생의 가장 큰 자긍심으로 자리 잡았으며 당시의 수인번호를 지금도 제일 중요한 곳의 비밀번호로 사용하고 있다. 이제 유공자로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내 개인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여전히 광주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광주를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김씨는 "제가 지난해 인터뷰에 응한 가장 큰 이유는 지만원씨 등 광주를 폄훼하는 사람들 때문이었다"라며 "최근 5.18 유공자가 공무원을 싹쓸이하고 있다는 가짜뉴스들이 나왔는데 참으로 안타까웠다. 국가 채용시험에서 가산점을 받는 보훈대상자 중 5.18 유공자는 극히 드물 뿐만 아니라, 가산점 합격자 역시 전체의 30%에 불과해 근본적으로 싹쓸이가 불가능하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2016년 보훈대상자 85만 4356명 중 5.18 유공자는 4225명으로 약 0.5%에 불과하다.

특히 김씨는 "과거의 저처럼 트라우마에 시달렸던 이들을 발굴하고, 그들이 조금이라도 마음의 짐을 덜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라며 "'5.18민주유공자 예우에 관란 법률'을 개정해 정부가 추가 보상 신청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1990년 제정된 이 법률은 보상 신청기간이 적시돼 있어 한시법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동안 법 개정을 통해 총 7차례 보상이 진행됐지만(김씨는 7차 보상 대상자), 과거 김씨처럼 여전히 보상 기회를 얻지 못한 이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상시적으로 보상 신청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돼왔다. 또 기록되지 않은 사망자·행방불명자 등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피해자들도 많기 때문에 신청뿐만 아니라 정부의 발굴 작업이 필요하는 지적도 있다.

한편 김씨는 지난 5월 18일 정권교체 후 진행된 첫 5.18 기념식을 거론하며 "직접 가서 보진 못했지만 굉장히 감동적이었다"라고 떠올렸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임을위한행진곡도 부르지 못하게 하고, 그래서 5.18 기념식이 5.18묘역과 옛 전남도청에서 따로 열리는 등 문제가 많지 않았나"라며 "그런데 올해는 문재인 대통령도 기념식에 참석하고 광주시민도 대통령을 환영하는 모습이었다. 보기 좋았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대통령이 격식을 파괴하면서까지 유족을 안아주는 모습을 보며 대통령으로서의 최고의 위로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김씨는 "문 대통령의 공약인 '5.18 정신의 헌법전문 수록'이 꼭 실현됐으면 한다"라며 "그것은 우리나라의 정의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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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선악의 저편을 바라봅니다. extremes8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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