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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봉의 조망 몸은 양양군에 있지만 조망되는 건 양양군에 한정되지 않는다. 인제군과 속초시는 물론 고성군과 평창군, 강릉시, 고성군까지 모두 굽어보이는 곳이 대청봉이다. 고성군과 속초시의 경계선인 설악산 울산바위도 대청봉에서는 그저 작은 하나의 바위에 지나지 않는다. ⓒ 정덕수
얼마간의 머무름, 그사이에 구름은 쉼 없이 다양한 장면을 연출하는 지휘자가 돼 설악을 마음껏 그려내고 소리 없는 연주를 선보였다. 구성이 탄탄한 여백을 기반으로 아름답고 장중한 악상이 탄생하는 듯했다. 자연은 그 어떤 위대한 예인보다 더 기막히게 붓 없이 그림을 그리는 대가(大家)이며, 오선지 없이 기막힌 악상을 그리고 연주하는 음악가이자 시인이다.

정오를 넘겨 구름이 서서히 멀리 물러나는 모습을 봤다. 중청대피소 방향으로 내려서며 남쪽과 북쪽으로 펼쳐진 전혀 다른 파노라마에 압도당한다. 이른 새벽부터 안개를 마다하지 않고 오르며 반드시 그 보답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어김없이 산은 찬연하게 빛나는 6월의 햇살 아래 탄탄한 구성을 하나도 감추지 않고 보여주기 시작했다.

눈잣나무 아래 바위틈엔 바람꽃이 찬란한 7월을 기약하며 잎의 중심에 팥알보다 작은 꽃망울을 맺었다. 고본도 하늘거리며 잎을 한껏 펼쳤고, 세잎종덩굴은 자줏빛 꽃들을 흔들었다. 꽃범의꼬리와 만주송이풀도 이제 곧 꽃을 피워 설악을 더 풍요롭게 만들겠노라 다짐하는 모습이었다. 설악은 슬픔도 노여움도 모두 눅여 오로지 충만함으로 채울 줄 안다.

대청봉 사람의 간섭을 덜 받고 자연이 치유할 수 있도록 황폐화되었던 등산로에 이처럼 위로 띄워 가교를 설치했다. 1980년대의 풍경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지금의 모습은 놀라울 정도다. ⓒ 정덕수
대청봉 사람의 간섭을 덜 받고 자연이 치유할 수 있도록 황폐화되었던 등산로에 설치한 가교에서 다시 목책이 쳐진 흙길로 내려서면 정상에서 불과 500여 미터 내려섰을 뿐이지만 공룡능선도 높이가 만만찮음을 드러낸다. 천불동과 신선암, 범봉, 1275봉, 나한봉, 마등령으로 이어 황철봉은 물론이고 울산바위와 장군봉까지 확인된다. ⓒ 정덕수
사람의 간섭을 줄이고 자연에 맡겼을 때, 훼손됐던 흔적들을 자연이 어떻게 치유할 줄 아는지 설악의 주봉 대청봉을 보면 알게 된다. 1990년대 초반까지 중청봉에서 대청봉에 이르기까지 30여m가 넘는 넓은 범위가 맨 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대청봉은 전체가 듬성듬성 키 작은 참나무와 진달래, 철쭉이 있을 뿐 말 그대로 황량한 황무지처럼 보였다.

당시 야영에 아무런 제약이 없었기 때문이다. 텐트를 칠 자리가 없으면 나무를 뽑아내고라도 자리를 만들기 일쑤였다. 물론 형형색색의 텐트들이 불을 밝힌 풍경 그 자체가 아름답다고들 했다. 밤이 깊도록 여름밤 기타연주가 들렸고, 술 취해 흔들거리는 산 노래와 유행가가 뒤섞여 잠을 이룰 수 없게 했다. 고추장을 풀어 끓이는 찌개가 내는 냄새가 밤이 깊도록 이곳저곳에서 풍겼던 풍경은 이젠 옛 기억으로만 그려 본다.

대청봉 중청대피소를 지나 갈림길에서 한계령 방향으로 나서서 산허리를 돌아 중청봉이 오른쪽으로 보이는 지점에서 돌아서면 대청봉은 어떤 고장에서나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봉우리와 같은 모습이다. 진달래 좋을 때 왜 이곳에서 촬영할 생각을 못했던가 싶다. ⓒ 정덕수
중청대피소에서 즉석밥을 데워달라고 해서 늦은 점심을 먹고 소청과 끝청봉으로 나뉘는 갈림길을 지나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끝청봉 직전 전망이 좋은 곳에서 몇 장 사진 촬영을 하기 위해서다.

설악산 절경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곳

오색에서 출발해 설악산 대청봉을 올라 한계령(오색령)으로 하산할 때 사진 촬영하기 알맞은 곳을 잠시 소개한다.

대청봉을 300여m 남겨 둔 지점부터 정상까지는 점봉산이나 끝청봉에서 귀떼기청봉으로 이어지는 서북주릉을 먼 배경으로 촬영할 수 있다. 정상에서는 완전히 열린 사방 풍경이 모두 근사한 촬영 대상이다.

그리고 중청대피소 방향으로 내려가며 북쪽으로는 천불동과 공룡능선을 촬영할 수 있고, 남쪽으로는 오색지역과 점봉산을 촬영한다. 그리고 이 일대는 눈잣나무가 가장 많은 곳으로, 사계절 눈잣나무와 함께 진달래부터 철쭉, 바람꽃이나 겨울의 상고대 촬영도 좋다.

중청대피소를 통과해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잠시 거슬러 돌아서면 대청봉을 근사하게 촬영할 수 있다. 끝청봉 방향으로 20여 분 정도 걸으면 시야가 탁 트인 바위를 넘어서게 되는데, 이곳에서 사방 풍경을 근사하게 담을 수 있다. 끝청봉에서 몇 장 촬영하고 나면 줄곧 1300~1400m 능선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자작나무와 참나무가 하늘을 가린 숲길을 통과하게 된다.

평소 걸음이 빠른 경우 30~40분이면 끝청봉에서 다시 시야가 탁 트인 지점에 도착할 수 있다. 이곳은 석고덩골 상단의 너덜지대로 대청봉 4.2km와 한계령 4.1km로 표시된 이정표가 세워져 있어 쉽게 확인된다. 이곳에서부터 한계령 갈림길까지가 최고의 촬영장소란 걸 기억하면 설악산 능선 산행은 충분히 즐겁다. 단, 설악폭포교에서 2ℓ 정도의 물을 받아 등산을 한다면 물이 충분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중청대피소에서 물을 구입해 식수를 충분히 준비해야 된다.

끝청봉 조망 지난 5월 24일 끝청봉을 거쳐 오색령으로 하산하기로 작정하고 나섰던 걸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행운을 만날 수 있게 참으로 잘했다 싶다. 알맞게 피어난 봄과 기막히게 아름다운 구름과 적당한 조건의 빛, 그리고 딱 맞춘 시간까지 여러 장소에서 촬영하지 않고 단 한 곳에서만 촬영했어도 이런 멋진 광경을 또 기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 정덕수
끝청봉 조망 지척의 끝청봉을 보며 귀떼기청봉과 용아장성을 오른쪽으로 배치시켜 촬영했다. 지난해 여름 허락없이 누군가 인사동 거리에서 들고 간 카메라가 있었다면 이 풍경을 더 근사하게 촬영했을 아쉬움이 크다. 하지만 올 8월 하순엔 다시 카메라를 장만할 수 있는 행운도 설악산에 선물했다. ⓒ 정덕수
끝청봉 조망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다는 건 산을 오르는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다. 사진작가로 활동하며 전문적으로 산 사진 촬영을 나서는 이들은 이와 같은 장면 하나를 만나기 위해 한 자리에 보름씩 카메라를 설치하고 기다린다. 또한 이렇게 공개하지도 않는다. 그들에겐 그 사진이 곧장 생업이기 때문이다. 사진의 왼쪽에 귀떼기청봉이 보이고 중심 부분이 용아장성이며, 조금 오른쪽으로 구름에 검게 보이는 위치가 공룡능선의 1275봉으로 이 일대를 천화대((天花臺) 즉 하늘의 꽃밭이라 한다. ⓒ 정덕수
끝청봉 이 사진을 촬영한 위치에서 10여 미터만 나서면 너덜로 이루어진 끝청봉이다. 이 봉우리에서 오색방향으로 500m 아래에 오색↔끝청봉 간 케이블카를 설치할 때 상부정류장을 조성하고 끝청봉 직전 조망이 가능한 지점까지 고공으로 탐방로를 만든다는 계획이 오래전부터 양양군에서 주민들의 숙원사업으로 추진됐다. 지금 이대로 통제를 해도 등산을 하는 이들이 숨어서라도 산행을 하며 쓰레기를 버리고 자연을 간섭하게 하느냐와, 고공으로만 이동하는 방법으로 자연과 사람의 공생을 도모하는 방법이 좋으냐는 보다 충실하고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 정덕수
끝청봉 직전의 능선은 5월 24일 촬영한 사진이 가장 좋아 그때 촬영한 사진으로 소개한다. 지난 5월 16일 통제 기간이 해제돼 곧장 그날 대청봉을 올랐지만, 그땐 점봉산과 달리 해발 1400m 위로는 나뭇잎도 피지 않아 촬영을 포기했다. 그리고 5월 24일, '구름이 끼지만 대체로 날씨가 맑다'는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오전 10시가 넘어 오색에서 대청봉을 올라 한계령으로 내려오는 길을 걸었다. 그때야 해발 1500m 지대까지 진달래가 피고 있었다.

여기에서는 저녁나절엔 봉정암에서 틀어 놓은 독경 소리까지 들린다. 공룡능선과 용아장성이 북쪽으로 가깝게 눈에 들어오고, 동쪽으로는 중청봉과 대청봉이 손에 잡힐 듯하다. 서쪽으로는 바로 앞의 끝청봉과 멀리 귀떼기청봉까지 장쾌한 설악의 산세를 드러낸다. 물론 귀떼기청봉과 마주하여 남쪽의 가리봉과 주걱봉도 한눈에 볼 수 있고, 인제군을 넘어 홍천군의 산들까지 날씨만 사진처럼 좋다면 어렵지 않게 조망된다.

간혹 산에서 만나 동행한 이들에게 그들의 걷는 속도를 고려해 '어떤 풍경이 보일 때 촬영하며 잠시 기다리면 그 장소에서 만날 수 있다'는 말을 할 때가 있다. 그러면 그들은 "설악산을 얼마나 자주 올라왔기에 그렇게 잘 아느냐"고 한다. 1년에 50회 이상 올랐다면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이미 지난 5월 16일부터 10번을 대청봉을 올랐고, 한계령으로 하산한 것도 4번이다.

1980년대엔 오전에 대청봉을 다녀왔는데 다시 올라와달라는 연락을 받고 오후에 오른 적도 있고, 밤중에도 필요하다는 물건을 구입해 가져다준 적도 있다. 그때만 해도 올라가는 길에 20여kg의 짐을 지고도 3시간 정도면 대청산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벼운 배낭을 졌을 땐 1km를 12분이면 충분히 오를 수 있었으나 요즘은 꼭 그 곱절의 시간이 걸린다.

물론 사진 촬영을 작정하고 나서면 장소에 따라 다른 촬영에 알맞은 시간에 맞춰 걷다 보니 한계령 통제소 바로 위 바위에서 일몰을 볼 때도 있다. 솔직히 석고덩골 상단부와 한계령갈림길 중간 지점의 전망 좋은 곳이나 끝청봉에서 일몰의 근사한 풍경을 촬영하고 싶지만 그러면 하산 자체가 너무 늦어 아직 시도하지 못했다.

산에서는 손에 잡힐 듯 가갑게 보이는 곳도 막상 걸어보면 의외로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하고, 아주 멀리 보이던 봉우리도 20~30분에 지나치게 된다. 촬영하고 끝청봉으로 나서는 길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이지만 막상 걷다 보면 5분은 기본이고, 동행한 이의 걷는 보폭에 맞추다 보면 10분도 더 넘게 걸린다.

설악산이 맺어준 인연, 박영석 대장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다는 걸 13살 무렵부터 시작한 40여 년의 등산 경험을 통해 배웠다. 열일곱 어린 나이에 당시 고등학생이던 박영석(1963년 11월 2일~2011년 10월 18일)과 인연도 그 덕에 맺었다. 사실 박영석은 나보다 나이로는 1살 위지만 생일로는 3달 정도밖엔 차이가 없어 친구가 됐다.

여름 방학을 맞아 오색에 온 그와 주전골을 몇 번 오가며 설악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하루는 아침을 먹고 찾아가니 "영석이가 너한테 간 거 아니냐"며 어른들이 걱정하고 계셨다. 주전골을 한달음에 돌아봤지만 어디에도 그 친구는 없었다.

다시 돌아와 "아마도 영석이가 대청봉엘 올라간 거 같습니다"라고 하자, "서울에서 와서 산은 올라가 본 적도 없는 얘가 혼자서 아침도 안 먹고 대청봉을 올라갔겠니. 다시 한번 동네 어디에서 놀고 있는지 찾아봐"란 답을 들었다.

며칠 전 대청봉을 올라가는 길들에 대해 꼬치꼬치 묻던 그를 기억하기에, 반신반의하며 대청봉으로 오르는 길을 향해 마을의 맨 위에 있는 호텔까지 갔다. 마침 막 내려오는 박영석을 만날 수 있었다.

"대청봉 다녀오니?"
"응.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곧장 올라갔는데, 네 얘기대로 중간쯤에 계곡에서 물을 마시고 정상에 올라가니 이미 해가 떴더라. 그래서 곧장 어른들 염려하실까봐 얼른 내려왔어."

염려했던 어른들은 아침밥도 먹지 않고 대청봉을 올라갔던 그가 무사히 돌아오자 별말씀 없이 밥을 차려주며 "다시는 그렇게 말도 없이 산에 올라가지 말고, 다음엔 꼭 이야기를 하고 도시락이라도 챙겨서 가"라고 하셨다.

그렇게 산과 인연을 맺은 그와는 대학생이 되었을 때 다시 만났다. 설악산의 천불동에 있는 설악골 앞에서 잠시 쉬고 있을 때였다. 대학 산악부원들 몇 명이 암벽장비를 어깨와 배낭위에 걸치고 골짜기에서 내려오는데, 거기에 그가 있었다. 본격적으로 산악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열여덟 하얀 피부를 지녔던 도시 아이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제대로 씻지도 못해 땀에 전 얼룩진 얼굴에 몇 올 수염이 간지럽게 자란 수염을 보며 "웬만하면 물도 많은데 좀 씻지"라고 하자, 그는 "습관이 돼서 이젠 괜찮아"라며 멋쩍게 웃어 보이곤 동료들과 서둘러 내려갔다.

그러니까 박영석은 안나푸르나에서 영원히 잠들 때까지 31년을 산엘 올랐고,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14좌 완등과 3극점 탐험에 7대륙 최고봉 등정이란 위업을 달성한 인물이 됐다.

박영석처럼 중·고등학교를 나와 대학을 다니며 산악활동을 했다면 과연 그와 같은 위치에 서 있었을까? "덩치 크다고 산을 잘 오르진 않잖아. 너도 만만치 않은데 왜 그래"라며 어깨를 툭 치고는 이빨을 드러내며 씩 웃어 보이던 박영석.

이젠 어디서도 만날 수 없지만 난 여전히 설악을 오르내리며 그를 추억한다. 서북주릉을 함께 걷자고 약속했었지만 영석이는 늘 설악을 찾아도 저녁나절 어둑한 시간에야 대피소에서나 얼굴을 볼 수 있었고, 날이 밝으면 각자의 길로 헤어지곤 했다.

끝청봉 이제 잠시 뒤돌아본다. 지나온 길이 아스라하고 대청봉도 또 다른 풍경으로 여름을 향해 한껏 단장을 마쳤다. 올 1년 몇 번이나 더 이 길을 걷고 생각을 키우고 되돌아볼까. ⓒ 정덕수
서북주릉 1981년 10월 3일 이 길을 단풍과 더불어 걸었고 시 ‘한계령에서’를 썼다. 끝청봉 정상부는 말 그대로 아고산식생대란 수림대다. 분비나무와 잣나무 등의 침엽수들이 있는 고산목본류가 자생하는 지대를 아고산식생대라 하는데 지난 해 봄 양양군문화복지회관. 대강당에서 오색↔끝청봉 간 케이블카와 관련해 공청회를 진행할 때 환경단체에서 나온 토론자가 방청석의 군민들을 향해 “여기 아고산식생대라 용어를 아시는 분이 있습니까”라 물었을 때 누군가 대답할 줄 알고 사진촬영만 했다. 솔직히 그런 모습은 그리 좋게 보이지 않고 반감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 정덕수
서북주릉 사진의 중앙에서 약간 왼쪽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점봉산이고 오른쪽으로 서북주릉의 끝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인제군의 가리봉이다. 이미 시간은 오후 2시가 넘었다. 아직 6km 이상 걸어야 한계령(오색령)으로 내려설 수 있다. 2곳에서 사진 촬영을 더 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 정덕수
끝청봉에서는 오색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당시 영석이와 어울려 마을을 돌아다니며 군것질하던 가게의 모습과 주인도 바뀌었지만, 그가 결혼할 때쯤의 풍경은 변함없다. 추억하는 건 남겨진 사람이 해야 하는 의무겠다.

아직 촬영 장소 두 곳이 남았다. 배낭을 짊어지고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갔다. 길이 좁아 올라오는 이들이 있어 자주 발걸음을 멈춰 비켜섰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산 좋고 물 맑은 양양 살자

낙산 의상대 아침 해 솟으면
청봉 눈부시게 희망을 품고

오색령 휘감아 구름 젖으면
남대천 거슬러 연어 뒤척이니

어성전 풍진 가락 한 소절
하조대 솔바람 속 스며드는데

산 빛 좋고 물빛 맑은 자리
타는 단풍 사랑 고운 양양 아닌가

-정덕수 <양양 아리랑>

음악가인 임동창 선생님께서 "강원도의 아리랑을 시·군마다 한 번 만들어 보게 시를 써 보시죠"라고 하셔서 글을 썼고, 그가 그날로 곡을 입혀 보내주셨다(관련기사 : 노래 <양양 아리랑>이 탄생했습니다). 그 노래를 들으며 오색령(한계령)을 향해 걸었다.

(*다음 편에 계속)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덕수의 블로그 '한사의 문화마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양양군, #설악산, #대청봉, #끝청봉, #서북주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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