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 대해 그리고 세상에 대해

 영화 <노무현입니다>의 스틸 이미지 및 포스터.

ⓒ 영화사 풀


내 나이 이제 쉰. 나는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나는 경북 예천의 어느 오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2017년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다양한 역사의 면면을 보며 여기에 이르렀다. 나의 삶은 끊임없이 물결치며 번뇌하며 헛된 망상을 좇는 삶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살아오면서 진정한 나는 무엇이고, 나의 진정한 삶의 가치는 무엇인지 묻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그러면서 먼 길 끝에 있지도 않은 '신기루'만 잡으려고 살아왔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있지도 않은 '신기루'를 잡으려고 세상을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않았고, 진정한 나의 내면도 살펴보지 않았다.

나는 오십 줄이 가까워지고 나서야 나는 세상에 대한 '눈'을 열기 시작했고, 인제야 '참나'에 대한 진지한 살핌을 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세상에 대한 눈을 여는 것이 곧 진정한 나를 살피는 것임을. 나와 세상은 결코 멀리 떨어진 별개의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이고 세상이 곧 나임을…. 그리고 세상은 진리를 향해 나아가고 있고, 나 역시도 참 진리(참나)를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그동안 나는 나름 깨우쳐 온 게 있으니, 그것은 '내가 참 어리석었구나!'라는 사실이다. 나의 젊고 어렸던 시절은 우리나라의 격변기라고 할 수 있는 70, 80, 90년대였다. 그 당시는 군부독재 시절이었고, 유신 정권시대였고, 광주 민주화를 비롯해 수많은 민주화의 몸짓이 있었던 시절이기도 했다. 나는 무지했던가. 아니면 소심했던가. 나의 젊은 시절은 애석하게도 항상 그것의 주변인 혹은 아웃사이더였다. 늘 나는 '내 먹고살기도 바쁜데 무슨….' '내가 어찌 그런걸….' 하며 옹졸한 사고를 펴며 이 위대하고 장엄한 시대의 민주화 물결에서 비켜났다.

세월은 흘러 민주화가 이제 걸음마를 떼기 시작하는 오늘날, 아직도 민주화를 가로막는 세력들이 큰 산처럼 버티고 있는 이 시대에 나는 진정 깨달았다. 한 인간으로서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자기 발견, 그리고 세상에 대한 진정한 눈을 밝히는 것, 이것이 결국 나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며, 세상을 있게 하는 참 실체임을 결국 '참나'의 발견과 '세상에 대한 눈'은 서로가 별개가 아니라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 세상이요, 세상이 곧 나라는 사실이다. 세상을 보지 않는 옹졸한 나에게 갇히면 나는 보되 세상을 보지 못하고, 나의 내면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세상만을 바라봐서는 진정한 세상을 알지 못한다. 나와 세상, 세상과 나는 서로 유기적으로 일체인 것, 둘이 아니란 말이다. 나는 이 사실을 모른 채 나의 조그만 이익에만 몰두하고 있었으니, 이는 결국 어두운 불행만 초래한 꼴이 되고 만 것이다.

노무현에 대한 회귀 혹은 귀결

 영화 <노무현입니다>의 스틸 이미지 및 포스터.

ⓒ 영화사 풀


영화 <노무현입니다>가 현재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왜 그럴까? 우리 인간은 필연적으로 서로 귀결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결국은 삶의 문제에 있어 인간으로서 맞이할 수밖에 없는 공통적인 부분이 있다. 그것이 바로 인간다운 삶이다. 정의를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서로 인간이기 때문에 말없이 흐르는 인간으로서 공감하는 그런 부분이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간다운 삶이다.

노무현은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다 저세상으로 갔다. 그는 인간으로서 본연의 내면을 들여다보았던 인물이고, 그리고 인간의 본질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본질은 인간다운 삶으로서 귀결되었다. 그리고 결국 인간다운 삶은 모두가 행복한 세상, 정의로운 세상을 향한 삶이었다.

그런데 그런 인간다운 삶을 찾는 사람들이 노무현 말고 또 있었다. 그것은 노무현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모두가 원래 노무현이었던 사람들이었다.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며 각자의 삶을 살았지만, 노무현의 인간다운 삶의 모습을 보며 그에 공감하며 저절로 모두 하나하나가 노무현이 되었다. 그들은 바로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노사모)'였다.

그들 각자 하나하나는 약하고 여렸지만, 하나 된 노무현이 되었을 때는 강하고 굳세어졌다. 그들은 단순한 하나의 인간 노무현이 된 것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거대한 노무현'이 되어 있었다. 이는 모두가 스스로 인간다운 삶을 향한 자발적인 집결로 인한 것이니 어려워도 어렵지 않았고, 고되도 고된 것이 아니었으며, 두려워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이는 결국 2002년 대선에서 기적과도 같은 승리를 일궈낸 밑바탕이 된 것이다.

나는 노무현이다

 영화 <노무현입니다>의 스틸 이미지 및 포스터.

ⓒ 영화사 풀


여기서 나는 영화 <노무현입니다>의 감독 이창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창재 감독을 일찍이 주목하고 있었다. <사이에서>(2006), <길 위에서>(2013), <목숨>(2014) 등을 통해 인간에 대한 집요하고도 밀도 있는 탐구를 추구했던 이창재 감독. 그는 많은 작품을 내놓진 않았지만, 작품 하나하나가 인간의 깊은 내면을 통찰하는 영화들이었다. <사이에서>는 무당을 소재로 인간과 영적인 세계의 본질, 그리고 그러한 무당이 지닌 인간과 영적인 세계의 사이에서 고뇌를 다루었고, <길 위에서>는 진정한 자아와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비구니들의 길 위에서 처절하고도 애절한 구도적 삶의 모습을 보여 주었으며, <목숨>에서는 소위 시한부 인생을 사는,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들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죽음 앞에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잔잔하게 보여주었다.

이러한 영화들의 한결같은 공통점은 인간성에 대한 탐구, 인간의 삶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이창재 감독의 영화는 당연히 노무현과 닿아 있을 수밖에 없다. 이창재 감독이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은 결국 노무현이 대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창재 감독이 인간의 본성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와 성찰로 이어지고 있다면 노무현은 이러한 인간성의 구현 및 발현에 중점을 더 두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그러나 결국 이들은 인간이란 주제에서 서로 하나로 묶여 있었다. 조금 다른 듯하지만 인간을 향한 삶이었고 그리하여 나도 노사모도 결국 인간을 향한 삶이었다. 그것은 노무현이 그토록 추구한 인간다운 삶, 사람다운 세상이다. 인간이란 한 주제에서 우리는 모두가 하나로 통일된다. 나와 노사모와 노무현과 이창재는 모두 하나인 셈이다. 인간다운 삶을 향해서 우리는 모두가 하나의 인간인 셈이다. 결국 우리는 모두 이렇게 말하게 된다. '나는 노무현이다'라고.

깨어 있어라

 영화 <노무현입니다>의 스틸 이미지 및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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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10년간 잃어버린 것이 있다. 그것은 인간다운 삶을 잃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잃어버리고 난 다음에야 그것의 소중함을 알게 되던가? 지난 10여 년간, 우리는 우리가 그렇게 어렵게 찾았고 쟁취해 냈었던 인간다운 삶, 민주적인 삶을 잃어버렸다. 다시 찾기에 얼마나 버겁고 힘들었나. 왜 노무현이 다시금 그리워지고 노무현을 찾는 것일까? 노무현은 바로 인간다운 인간이었다. 우리는 잃어버린 인간다운 삶을 다시 찾고 나서야 잊어버릴 뻔했던 노무현을 알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결국 노무현을 떠나서 살 수 없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다운 삶을 지향해 나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인간이면서 범하는 오류가 있으니 그것은 망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삶을 살면서 편안하게 살 때를 경계하고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편안함이라는 것은 결국 또 다른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게으름과 연계돼 있으면서 망각이라는 것과도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언가 어렵게 일궈낸 것을 지키는 데에는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편안함이라는 것은 불행과 직결되는 '독'이 숨어 있다.

편안함에 빠져서 살다 보면 게을러지고 그것은 결국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편안함이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가를 잊어버리는 수가 있다. 이 편안함을 얻어내려고 얼마나 많은 피땀을 흘렸는지 잊어버리곤 한다. 이것은 불행의 늪으로 빠져드는 독이 된다. 편안함을 안다면 내가 편안함에서 어떤 상태를 견지해야 하는가 하는 '깨어있음'이 있어야 한다. 편안함이 그저 편안함에만 머물러 있다면 금방 불행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깨어있음'이 수반되어야 함이다.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것은 우리가 그에 걸맞은 수준 높은 '깨어있음'이 있어야 함을 알아야 한다.

우리 곁에는 사실 '노무현'이라는 값진 보물이 있었다. 우리는 그런 귀한 보물이 있었는지도 사실 모른 체 살아왔다. 인간다운 삶을 주창해 왔고, 그것을 일궈내기 위해 온몸으로 불의의 현실과 맞서 싸웠던 인간 노무현. 우린 그런 보물을 아주 쉽게 잃어버렸다. 보물이 있는 줄 모르니 놓치는 건 너무도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이것이야말로 내가 진정 말하고 싶은 깨어있음이다. 인간에 대한 진정한 성찰과 반성 고뇌, 그리고 세상을 향한 눈을 가졌다면 노무현을 금방 알아보았을 것이다. 노무현이 바로 그러한 자질을 갖추었던 보물이었단 것을…. 깨어 있었다면 나는 노무현이고 인간다운 삶을 추구한 노무현이 바로 나 자신이었음을…. 이것이 진정한 '깨어있음'이다.

"안녕하세요? 노무현입니다"

 영화 <노무현입니다>의 스틸 이미지 및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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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노무현입니다" 이것은 영화 <노무현입니다>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말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것은 이창재 감독이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자 노무현의 절실한 희망이었으며 우리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인간다운 삶이 구현된 세상, 내가 노무현이고, 너도 노무현이고, 우리가 모두 노무현인 세상. 우리가 모두 인간다운 삶을 살아 나가는 그래서 개인 노무현으로 인사해도 우리가 서로 살갑게 맞이하며 미소 짓는 그런 세상의 인사.

우리는 이런 인사를 나눌 날을 기대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것은 나는 노무현이고 너도 노무현이고 우리가 모두 노무현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깨어있는' 삶을 견지할 때 이루어질 것이다.

영화 속 대사들
"돈 없이 정치 할 순 없나? 이게 나한테 가장 숙제다. 돈 안 드는 정치라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거냐. 그러시면서 우시는 거예요."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십시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노무현의 시대가 오겠어요? (아, 오지요, 100% 오죠. 반드시 올 수밖에 없죠.) 근데 그런 시대가 오면 나는 없을 것 같아요."

"안녕하세요. 노무현입니다."

"야~, 기분 좋다!"

"어렵게 말하면 정의. 사람 사는 세상. 불의를 보고 참지 않는 것. 우리나라의 주인이 바로 '나'라는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것."


노무현 노무현입니다 나는 노무현이다 이창재 노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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