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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 9. 20. 수풀 속에 숨어있던 한 인민군 병사가 총구 앞에서 짐승처럼 기어 나오면서 투항하고 있다. ⓒ NARA
백암 박은식 선생의 유훈

내가 2004년, 2005년, 그리고 2007년 세 차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를 방문해 1800여 점의 한국전쟁 사진 자료를 입수해 올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재미동포 박유종 선생 덕분이었다. 사실 나는 아직 영어로 "화장실이 어디입니까?"라는 말도 할 줄 모른다. 그런데도 그분이 곁에서 온갖 것을 다 불편 없이 도와주셨기 때문에 이 일이 가능했다.
박은식 선생 ⓒ 자료사진
그분은 상해 임시정부 박은식 대통령의 막내손자로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남달랐다.

그분 할아버지 백암 박은식 선생은 대역사학자로 <한국통사> <한국독립지혈사> 등의 저서를 남긴 독립운동가다.

백암 선생은 비록 나라는 망했지만 우리 겨레가 우리말과 우리 역사만을 지니면 언제든 나라는 다시 세울 수 있다고, 국어와 국사 교육을 매우 강조하셨던 분이다.

그런 탓인지 "Time is money"(시간은 곧 돈이다)라는 매우 바쁜 미국 사회에서 70여 일 줄곧 나를 도와준 것은 아마도 할아버지의 유훈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분도 때때로 그런 말씀을 했다.

"박 선생은 국어 교사로, 역사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우리 할아버지가 매우 좋아할 분입니다. 그래서 내가 돕는 겁니다."
NARA 서고의 문서 상자들. 세계 현대사의 보물창고다. 2004. 2. 5. 그곳 아키비스트 리차드 보이런의 안내로 서고 내부를 견학할 수 있었다. 왼쪽 백범 암살범 안두희를 10여 년간 끈질기게 추적했던 고 권중희 선생, 오른쪽 필자. ⓒ 박도
아무튼 내가 워싱턴 근교 메릴랜드 주 칼리지파크 NARA에 드나들었던 기간 동안 우리 두 사람은 날마다 가장 먼저 출근했고, 가장 나중에 퇴근했다. 우리는 NARA 서고 자료 상자를 대출받아 초등학교 시절 소풍지에서 보물찾기를 하는 것처럼 그 자료들을 샅샅이 살폈다.

특히 2004년 2월 12일에는 한국전쟁 관련 상자번호 RG(Record Group) 186, 192, 195, 201 등 네 박스를 개봉했는데, 거기 갈무리된 사진들에는 그 시절 고단한 삶들이 속속들이 드러나 있었다.
1951. 10. 21. 평양. 총구 앞에서 목숨은 구차하다. 학생은 태극기를 그려 들고, 인민군은 엎드려 살려달라고 애걸하고 있다. ⓒ NARA
전란 속에서 고단한 삶들

전쟁이 일어나면 군인들이 가장 큰 수난을 당하는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가족이나 후방 사람들도 전투 군인들 못지않게 고생하기 마련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모든 게 군인 우선으로 전시 군인들은 그래도 특권을 누린다. 전쟁터에서 군인들이 전공을 세우면 훈장과 포상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군인이 전쟁터에서 살아남으면 영웅으로 대접받는다. 설령 전사를 하더라도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등, 국가로부터 전몰장병으로 상당한 예우를 받는다.

하지만 자식을 남편을 군에 보낸 부모나 아내는 늘 불안 속에서 살게 마련이다. 행여 전세가 뒤집히면 자식 때문에, 남편 때문에 숨소리도 내지 못한 채 적 치하 죄인처럼 살아가기 마련이다. 또 그들은 전란을 피하려면 피란봇짐을 지고 방방곡곡을 떠돌면서 식구들의 양식을 위해 피란민으로 갖은 수모를 겪으며, 고된 수고를 해야 한다.
1954. 3. 3. 미군부대 근처 천막에서 한국의 여인들이 미군의 세탁물을 빨래하고 있다. ⓒ NARA
한국전쟁 당시 피란지에서 심지어 자신과 가족들의 생명과 양식을 위해 최후의 수단으로 스스로 치마를 걷어올린 여성들도 없지 않았다. 전선에서 남편이 유골상자로 돌아오면 아내는 그때부터 가장으로 자식들을 먹이고, 입히며, 교육까지 모두 떠안게 마련이다. 

영국의 극작가 T 모어는 한 작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오랜 전쟁 중 쌍방이 모두 피곤하여 이윽고 평화가 왔다. 그런데 국민들에게 돌아온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세금, 남편을 잃은 부인, 의족(義足), 그리고 빚 등이다."

또 프랑스의 작가 앙드레 지드는 <지상의 양식>이라는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간이 조금만 덜 돌았더라면 전쟁으로부터 생기는 비극에서 벗어났을 것이다."

어쩌면 전쟁은 가장 미친 짓이 아닐까? 더욱이 동족끼리 강대국의 사주로 전쟁놀이를 한다는 것은. 나의 고교시절 한 교사는 수업시간 눈밖에 벗어난 두 학생을 앞으로 불러낸 뒤 서로 뺨을 때리게 했다. 처음 두 학생은 마지못해 슬쩍 슬쩍 상대의 뺨을 쳤다. 그러자 그 교사는 시범으로 한 학생의  뺨을 세게 치고는 그렇게 하도록 사주했다.

그때부터 두 학생은 결사적으로 서로 상대를 팼다. 마침내 두 학생은 코피를 흘리는 등, 기진맥진 쓰러졌다. 지난날 한국전쟁은 그런 게 아니었는지….

남북의 지도자들은 지금 내가 들려주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했으면 좋겠다. 그게 겨레를 살리는 길이고 통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닐까? 이런 일을 앞장 서서 하는 게 후세 역사에 남을 진정한 겨레의 지도자일 것이다.
1951. 6. 18. 강원도 양구. 북한군에 협조한 혐의가 짙은 한국 여인들이 군 수사기관으로 연행되고 있다. ⓒ NARA
분단의 장막을 걷자

2017년 6월 25일 아침, 강원도에 사는 한 훈장은 다음의 말을 유언으로 남긴다.

"우리 서로 손잡고 잘 살아보자. 왜 그게 안 되나. 누가 우리를 방해한다는 말인가?"

다음은 1948. 4. 19. 남북연석회의에 앞서 남북동포에게 남긴 백범 선생의 성명서 일구다.

"위도로서의 38선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지만, 조국을 분단하는 외국 군대들의 경계선으로서의 38선은 일각이라도 존속시킬 수 없는 것이다. 38선 때문에 우리에게는 통일과 독립이 없고, 자주와 민주도 없다. 어찌 그뿐이랴. 대중의 기아가 있고, 가정의 이산이 있고, 동족상잔까지 있게 되는 것이다."
1948. 4. 19. 남북연석회의 차 평양으로 가는 길에 38선 표지 앞에선 백범(가운데, 왼쪽 선우진 비서, 오른쪽 아들 신) ⓒ 백범기념관

70년이 지난 지금도 어디 한 자 틀림이 있는가. 분단 100년이 다가오기 전에 평화적으로 분단의 장막을 걷어야 할 것이다. 그게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가장 시급한 책무다.

이번 회에서는 한국전쟁 전란 속에서 고단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사진들로 골라 보았다.

(* 이 기사에 실린 사진들은 필자가 NARA 및 맥아더기념관에서 직접 검색하여 수집한 것으로, 사실 그대로 전달하고자 포토샵을 하지 않은 스캔 원본 그대로입니다.)
1950. 11. 16. 서울. 한 할머니가 폐허의 잿더미에서 땔감으로 석탄을 골라내고 있다. ⓒ NARA
1950. 9. 27. 경인가도의 주민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유엔군의 서울 수복 대열을 환영하고 있다. ⓒ NARA
1953. 한 아낙네가 아이를 업은 체 땔감을 머리에 이고서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 NARA
1951. 2. 4. 경찰이 지게에 군수물자를 지고 나르는 노무자들을 통제하고 있다. ⓒ NARA
1951. 11. 15. 서울. 구두닦이 소년인 슈 샨 보이들로 당시에 도심 뒷골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 NARA
1951. 8. 20. 서울. 한국전쟁 이후 청계천변의 판자촌 집들. ⓒ NARA
1951. 8. 20. 서울 영등포. 한 어머니가 피란봇짐 곁에서 아이들에게 참외를 깎아주고 있다. ⓒ NARA
1951. 1. 8. 부산. 담배와 껌을 목판에 담고 파는 소년. 한국전쟁 이후 한동안 이런 장사꾼 소년들이 대도시에는 숱하게 많았다. ⓒ NARA
[이전 기사] 줄지어 누워 있는 넋들, 눈도 감지 못하였구나

[리워드 안내]

<오마이뉴스> '좋은 기사 원고료'로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는 '한국전쟁 사진 2매'를 메일로 랜덤 전송합니다. 그 견본 이미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또 후원자 분들을 위해 기자의 저서 <카사, 그리고 나> <백범 김구 암살자와 추적자> <약속> <항일유적답사기>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을 준비했습니다.

종로에서 진행될 '박도 기자와의 차 한잔' 초대권과 강원도 횡성군에서 열릴 '작가와의 대화' 초대장도 리워드로 마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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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10.31. 원산. 헐벗고 굶주렸지만 웃음은 떠나지 않는 아이들. ⓒ NARA
1950.9. 한 지아비가 시각장애인 아내를 지게에 진 채 피란길을 떠나고 있다. ⓒ NARA
1950.10. 서울 은평. 한 소녀가 동생을 돌보며 불타버린 야외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있다. ⓒ NARA
1953.2.19. 전란 중이지만 설빔을 차려 입은 천진난만한 소녀들이 민속놀이의 하나인 널뛰기를 하고 있다. ⓒ NARA
1950.10. 옹진전투에서 한쪽 다리를 잃은 한 국군 특무상사가 목발을 짚은 채 침통한 표정으로 철조망 앞에 서 있다. ⓒ NARA
기자의 저서. 왼쪽부터 <카사, 그리고 나> <백범 김구 암살자와 추적자> <약속> <항일유적답사기>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 ⓒ 박도

덧붙이는 글 | 그동안 시중 서점에서 품절되었던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 5쇄가 한국전쟁 67돌을 앞두고 막 출시됐습니다. 이 책은 원로작가 김원일, 문순태, 이호철, 전상국 선생의 한국전쟁 체험담과 제가 NARA에서 입수한 사진 100장면으로 '눈빛출판사'에서 엮어 만든 책입니다.

태그:#한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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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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