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수정: 2일 오후 5시 50분]

바야흐로 음악 프로그램의 전성시대다. 공중파 3사를 대표하는 <뮤직뱅크> <쇼! 음악중심> 그리고 <인기가요>뿐 아니라 <엠카운트다운> <더 쇼> <쇼 챔피언> 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음악 무대들이 꾸준히 TV 채널을 채우고 있다. 10대를 중심으로 지속적인 수요가 이어질 뿐 아니라, 근래 들어서는 해외에서도 한국 음악프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들 음악프로는 가수들의 노래와 무대를 보여주고 홍보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지만,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이 존재한다. 다름 아닌 1위, 그리고 그 자리를 뒷받침해주는 순위 제도이다. 순위차트는 음악 프로그램들이 빼놓지 않고 채택, 운영하는 요소이다. 그리고 많은 가수, 특히 성공을 꿈꾸는 신예들에게는 여기서 더 높은 순위에 이름을 올리고 1위 트로피를 거머쥐는 것은 큰 바람일 것이다.

그런데 이 순위제도가 실제로 공정하지 않다면 어떨까. 사실 오랜 시간 동안 순위제도에 대해서는 방송사를 막론하고 끊임없이 다양한 문제 제기들이 이어져 왔다. 그런데도 개선을 위한 노력은 눈에 크게 행해진 적이 없다. 이는 때로는 시청자들의 공분을,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무관심을 낳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 부정적이다. 가요 순위제, 도대체 어떤 허점을 가지고 있으며 무슨 대처가 필요한 상황일까.

너무나 손쉬운 조작 시도, 끊이지 않는 책임공방

 해당 방송을 통해 '음원'에 대한 사재기 논의가 크게 확대되었다. 2012년 7월 25일 전파를 탄 이 방송은 현재 다시 보기가 불가능한 상태이다.

해당 방송을 통해 '음원'에 대한 사재기 논의가 크게 확대되었다. 2012년 7월 25일 전파를 탄 이 방송은 현재 다시 보기가 불가능한 상태이다. ⓒ SBS


한국은 미국, 일본 등에 비해 음악 시장의 규모가 크지 않다. 2016년 기준 한국 음악 시장의 크기가 약 8억3500만 달러인 데 반하여 미국과 일본은 각각 그것의 19배, 6배에 육박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소속사 등이 시장에 개입하여 자사 가수의 음원 혹은 음반을 사드려 순위를 띄우는 속칭 '사재기' 문제가 자주 불거지는 실정이다. 대개 쉽게 증거가 드러나지는 않기에 혐의를 실제로 확정 짓게 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쉽사리 납득할 수 없는 순위, 특히나 1위는 이런 의혹을 늘 불러일으키고 대중의 공분을 키운다.

걸그룹 '라붐'의 최근 사례가 가장 대표적이다. 라붐은 지난 4월 17일 미니앨범 'MISS THIS KISS'를 통해 컴백했다. 이들은 이제 데뷔 3년 차에 접어들고 있지만 아직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새 타이틀곡 'hwi hwi' 역시 주요 음원차트 100위권에 진입하는 데에 실패했고, 조용한 상태로 활동을 끝낼 것으로 예상하였다.

그런데 이상한 상황이 발생했다. 직전 앨범이 총판매량조차 약 3000장에 그치는 상황에서 새 앨범은 무려 2만8000장의 초동(첫 주 판매량)이 발생한 것이다. 공백기에 유의미한 활동도 없었고, 신곡의 반응도 미지근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 금세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결국 이 판매량 덕분에 KBS <뮤직뱅크>의 'K-차트'에서 1위에 등극하였고, 주요 포털 사이트와 연예지에서까지 사재기 의혹 기사들이 크게 보도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1위에 등극하며 꺾은 상대가 아이유였기에 더욱 대중의 시선은 차가웠다.

처음에는 해외 판매량 반영, 보따리 상인의 영향 등의 애매한 해명을 이어가던 라붐의 소속사는, 해당 그룹이 홍보 모델로 나선 요식업 회사 측에서 이벤트를 위해 대량 구매를 실행했다고 해명하며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하지만 해명과정의 지연은 그 신뢰도를 떨어뜨렸고, 과연 소속사가 직접 행하지 않은 대량구매는 사재기로 볼 수 없는 것인지에 대한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물론 이들만이 의혹의 대상인 것은 아니다. 사실 음반보다도 최근 들어 더 자주 사재기 의심을 받는 것은 음원이다. 음반의 경우에 비해 사재기 의혹의 실체를 추적하기도 어렵고, 순위가 대중에 미치는 파급력은 더 크기 때문이다. 2012년 <한밤의 TV 연예>를 통해 처음 문제가 공론화되었고, 2014년에는 음원 사재기 브로커에 대한 첫 검거도 이루어졌다. 씨스타, iKON, 빅스타 등도 음원 사재기 의혹의 당사자가 된 경험이 있다. 씨스타는 당시 허위 사실 유포라며 법적 대응에 나섰고, iKON은 매체 인터뷰를 통해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순위 조작을 목적으로 '사재기'를 자행하는 것은 현행법상 분명한 범죄이다. 음악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제 26조(음반 등의 유통질서 확립 및 지원)에 따르면 음반, 음악 영상물 관련 사업자들이 특정 제품의 판매량을 올릴 목적으로 부당하게 구입하거나 그렇게 시키는 자를 처벌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여받게 된다. 음원 사재기는 뒤늦게 2016년이 되어서 처벌의 대상으로 포함되었다.

하지만 이런 규정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여전하다. 이 이슈에 대해 관심 있는 소수를 제외하면 대개의 시청자는 순위조작에 잠깐 분노하고 넘어가 버리기 때문이다. 순위 조작이 분명한 일종의 범죄라는 인식 자체가 기성 세대에게는 심각하게 인식되지 않았고, 젊은 세대는 효과적인 문제를 제기할 영향력이나 힘이 부족하므로 빚어지는 결과이다. 그렇기에 기획사 등은 분명 논란이 생길 것을 알면서도 순위 띄우기의 유혹을 떨치기 어렵고 늘 비슷한 유형의 이슈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순위 제도에 대한 운영을 기계적으로 하는 데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재 대개의 음악 프로 순위표는 음반, 음원 유통사들로부터 자료를 받아 그대로 점수화하며 작성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니 한 번에 과도한 물량이 판매, 유통되거나 특정 가수의 작업물이 이유 없이 대량 출고될 경우 그 사안에 대해 보다 추가적인 자료를 요청하고 의혹이 구체적일 경우 차트에서 제하거나 페널티를 주는 방식을 동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의 객관성을 확보하는 것은 또 다른 과제를 낳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압박은 큰 변화를 지금껏 이끌어오지 못했다. 방송사 스스로 직접적 움직임이 이루어져야 사재기 유혹에 대해 실질적인 억제력이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너도 나도 1위? 방송사 입맛대로

 <뮤직뱅크>의 경우는 전년도 이맘 때 제작진의 실수로 생방송 도중 1위와 2위를 뒤바꾸어 발표를 해버리는 사태도 발생했다

<뮤직뱅크>의 경우는 전년도 이맘 때 제작진의 실수로 생방송 도중 1위와 2위를 뒤바꾸어 발표를 해버리는 사태도 발생했다 ⓒ KBS


주요 음악프로들은 서로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순위를 산출한다. 가요 순위를 결정하는 기준에는 음반 판매량, 음원 순위, 투표, 소셜 미디어의 반응 등 여러 가지 지표들이 존재한다. 그중 어떤 것을 택하고 빼느냐에 따라, 그리고 어떤 비율로 이들을 조합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결과물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무릇 '순위'라고 한다면 어느 정도의 객관성은 반드시 담보해야 신뢰와 인정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가요프로들은 오히려 갈수록 노골적으로 방송사나 제작진의 재량이 개입될 여지를 키우는 순위 책정 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1위 자리를 비롯한 전반적인 가요 순위가 방송사의 영향을 크게 받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가령 대표적인 음악 프로그램인 <뮤직뱅크>의 경우를 살펴보자. 해당 프로의 순위차트인 K-차트의 경우 방송횟수의 비중이 20%를 차지한다. 음반이나 선호도 투표보다 훨씬 중요한 비율이다. 그런데 이 방송점수는 KBS에서 송출된 음원만을 대상으로 한다. 그렇기에 많은 가수가 활동을 시작하게 되면 KBS 내 프로그램에 반강제적으로 참여하고 뮤직뱅크에 들리는 것이 일상화되고 있다.

<디스패치>의 보도에 따르면('방점뱅크를 아시나요?') KBS 내의 사실상 모든 프로그램이 방송점수의 대상이 되기에 방송사 측이 마음만 먹으면 특정 가수의 순위를 오르고 내리게 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고 한다. "방송을 잡는 것에 열을 올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PD의 눈도장을 찍기 위해 KBS에 출근하다시피 한다."는 기획사 관계자의 말은 뼈아프다.

음악팬들이 주는 1위 자리는 분명 영광스러운 존재이다. 하지만 그것이 대중이 아닌 방송사와 PD의 선호, 이해관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면 오히려 무관심이나 조롱의 대상이 될 뿐이다. 순위 제도의 다양성은 문제 되지 않을지언정 각자 나름의 객관성은 반드시 확보되는 방향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

실제 인기 반영 못하는 '깨진 거울'

 공중파 음악 프로그램들은 시청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공중파 음악 프로그램들은 시청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 SBS


상기한 공정성, 투명성 논란을 차치한다고 해도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다. 바로 많은 가요에 대해 방송차트의 순위표와 실제 대중들이 체감하는 인기 정도가 보이는 커다란 괴리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들어본 적도 없는 노래가 TV 프로에서는 당당히 1위를 차지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확실히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노래가 순위표에서는 하위권을 전전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상황은 가요 순위 자체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를 완전히 무너뜨려 버렸다.

사례를 살펴보자. 보이그룹 NCT 127은 지난 14일, 쇼케이스를 가지고 신곡 'Cherry Bomb'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22일 <엠카운트다운>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이 노래는 주요 음원차트에서 유의미한 성적 지표를 보여주지 못했다. 최대 음원사이트 멜론 등에서도 음원공개 일자 이후 오래 지나지 않아 23일 경 100위권 내에서 이탈했다. 그런데도 다른 요인들(음반 판매량, 사전투표 등)에서의 우위를 바탕으로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여기에 <엠카운트다운> 측이 자사 프로에 출연하지 않는 가수들은 순위에서 빼는 방식의 제도 개혁을 한 영향도 상당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요소가 있다. 가요 프로그램과 이들의 음악 순위를 기성세대들이 즐기지 않고 믿지 않는 데에는 세대별로 가요 순위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 가장 큰 '왜곡의 틀'은 다름 아닌 투표제도이다. 온라인과 모바일로 이루어지는 선호도 투표는 대개 소수의 팬덤과 열성 시청자들에 의해 독점된다.

그렇기에 대중적 인기와 무관하게 투표의 결과로 순위가 너무 크게 바뀌는 일들이 빈번해지고 있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부가수입의 확보를 위해 투표제도를 운용하는 것을 꾸준히 확대해 가고 있지만, 그것이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지에 대해서는 재고가 필요하다. 투표에서 강세를 보이는 소수 가수의 팬덤만 순위에 관심을 가지는 결과로 귀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 가요는 더 이상 한국인들만 즐기는 대상이 아니다. K-POP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널리 영토를 넓혀가고 있다. 세계 각지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미국과 일본의 음악 시장에는 공신력 있게 인용되는 가요 순위들이 존재한다. 반면 K-POP은 그 위상의 확대와 공신력 있는 순위 제도의 개발이 비례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더욱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많은 이가 동의하고 참고할 수 있는 공정한 지표가 필요하지 않을까. 부디 가요차트가 소수 장사꾼과 열성 팬덤만의 전유물로 전락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꾸준한 개혁의 노력이 필요한 때다.

연예 음악 가요 순위 음악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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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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