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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세기 파지리크 카펫
 기원전 5세기 파지리크 카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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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은 가장 오랫동안 카펫을 생산해 왔고, 가장 질 좋은 카펫을 생산하고 있다. 현재 이란은 질과 양 모두에서 세계 최대의 카펫 생산국이다.

이란의 카펫 생산 역사는 25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48년 스키타이 왕족의 무덤에서 발견된 카펫인 파지리크(Pazyrik)가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케메네스제국 시대에 이미 카펫이 사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카펫이 페르시아 지역에서 처음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양을 치는 유목민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양털을 실로 만든 다음 베틀에 씨줄과 날줄로 걸어 매듭을 지으면서 천을 완성해 갔던 것이다.

이후 카펫의 재료가 낙타털, 명주실로 확장되어갔다. 사산시대와 이슬람시대를 거치는 동안에도 페르시아 카펫 생산은 계속되었다.

스토리가 있는 카펫
 스토리가 있는 카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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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세기 셀주크제국이 페르시아 지역을 지배하면서 카펫 짜는 기술이 아나톨리아 지역으로 전파되어 터키 카펫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후 페르시아 카펫과 터키 카펫이 직조기법이나 문양 등에서 조금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페르시아 카펫의 전성기는 사파비제국 시대다. 사파비 황제 타마습 1세가 가내수공업인 카펫 생산을 황실의 산업 수준으로 확대했기 때문이다. 그는 장인들이 공방을 만들어 카펫을 대량생산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1600년대 압바스 1세 때는 금실과 은실이 사용되고, 압바스 문양이 개발될 정도였다. 유럽 각국의 왕이 등극할 때 대관식용 카펫을 만들어 수출하기도 했다. 이 시대 페르시아 카펫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이때부터 카펫의 문양도 기하학적인 아라베스크로부터, 주제와 모티브, 스토리가 있는 방식으로 다양화되었다. 가장 흔한 모티브는 아라베스크와 꽃이지만, 식물, 동물, 심지어는 인간까지도 표현의 대상이 되었다. 

카펫에는 '스토리'가 담겨야 한다

카펫박물관
 카펫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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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의 카펫박물관은 시내 중심부 랄레(Laleh)공원 북쪽에 위치한다. 팔레비 왕비였던 파라 디바의 요청으로 1976년 건설을 시작해 1978년 2월 개관했다. 외관이 베틀 모양을 하고 있으며, 밖으로 차양 형태의 외벽을 만들어 빛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차단했다. 직사광선으로 인한 기온 상승과 카펫의 변색을 막으려는 조치다. 전시장 면적은 3400㎡이며, 2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1층에 상설전시실, 2층에 기획전시실이 있다. 상설전시실에는 200점 정도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카펫이 지역별로 구분되어 전시되고 있다. 타브리즈, 카샨, 이스파한, 케르만, 호라산 등지의 작품이 많다. 전시실은 동서로 길게 뻗어 있다. 서쪽의 현관 전시실에서 베틀과 전형적인 문양의 작품을 감상한 후, 본 전시실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베틀
 베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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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틀에 걸려 있는 색실 꾸러미가 10개에서 20개 정도다. 카펫에 사용되는 색상이 그 정도 된다는 얘기다. 카펫은 일반적으로 촘촘하게 짜는 것이 상품으로 인정을 받는다. 촘촘해야만 표현되는 문양이 더 정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 전시된 카펫에서는 아라베스크 문양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꽃과 식물, 동물, 인물이 아주 세밀하고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다.

꽃과 식물은 대칭이 기본이고, 동물과 인물은 다양성이 기본이다. 이것이 사파비시대 이후 페르시아 카펫의 특징이다. 카펫 속에 그들의 삶과 역사, 문화가 예술적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에, 페르시아 카펫에는 스토리가 무궁무진하다. 그들의 자연관과 종교관, 문학과 전설,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녹아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페르시아 카펫이 더 가치 있는 것이다. 그 카펫을 하나하나 분석해보자.

사계절 카펫
▲ 사계절 카펫 사계절 카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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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카펫 중 우리의 시선이 오랫동안 머물도록 하는 것은 스토리가 있는 카펫이다. 타브리즈에서 20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가로 220㎝·세로 298㎝의 카펫이 있다. 사계절(Four Seasons)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이란 사람들의 삶과 역사, 풍속을 보여준다. 자세히 살펴보니, 중심에 원형 포인트가 있고, 그 주변을 4면의 그림이 감싸고 있는 구조다. 그림 사방으로는 테두리를 두르고, 각 모서리의 원형에 성경 속 이야기를 표현했다.

가운데 원형 포인트에는 페르세폴리스에 있는 아케메네스제국 황제의 대관식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그것을 감싸고 있는 사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다. 봄에는 소를 몰고 밭을 간다. 여름에는 꽃을 피우고 과일을 거둔다. 가을에는 곡식을 거둬들인다. 겨울에는 가족과 함께 나들이한다. 계절별로 다른 건물이 표현되어 있는데, 궁전과 사원으로 보인다.

아담과 이브
 아담과 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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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의 모서리에 표현된 그림은 하느님, 아담과 이브, 아브라함과 이삭, 예수로 보인다. 왼쪽 위 하느님은 수염이 성성한 할아버지로 표현되어 있다. 오른쪽 위 예수는 양들을 이끄는 젊은 목자로 표현되어 있다. 왼쪽 아래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따는 모습이다. 오른쪽 아래 그림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느님께 제물로 바치기 위해 죽이려는 장면이다. 카펫에 수를 놓아 표현한 것으로, 그 정교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12지 12궁도 카펫
 12지 12궁도 카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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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이스파한에서 만든 12지 12궁도 카펫도 재미있다. 가운데 원형에 중점을 두었다. 원을 12개 영역으로 나누고 간지와 궁에 맞는 상징물을 그려 넣었다. 안쪽이 12지고, 바깥쪽이 12궁이다. 12지는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다. 이에 상응하는 12궁 상징물은 천칭, 전갈, 궁수, 염소, 물병, 물고기, 양, 황소, 쌍둥이, 게, 사자, 처녀다.

이들 각각의 상징물에 페르시아어가 적혀 있는데, 뭐라고 썼는지 궁금하다. 이들 원형의 별자리 위아래에 작은 원형의 인물과 사물이 그려져 있다. 이것을 12지 궁도와 관련지어 보면 해와 달로 이해할 수 있겠다. 이들을 둘러싸는 사각형의 네 가장자리에는 네 명의 인물상이 있다. 각각 무함마드, 예수, 공자, 석가모니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 이들 앞에는 그가 누군지 말해주는 캘리그래피가 적혀 있다.

로스탐 신화 카펫
 로스탐 신화 카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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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탐 신화를 담은 카펫도 있다. 페르두시의 <왕들의 서>에 나오는 내용으로, 페르시아 고대 영웅 로스탐이 사나운 악마를 물리치는 모습이다. 말을 타고 가는 로스탐, 악마를 퇴치하는 로스탐이 보인다. 그림 속에 영웅들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사슴, 멧돼지, 사자 같은 동물도 보인다. 그리고 공작과 새, 나무와 꽃도 보인다. 이 카펫의 시대배경은 영웅시대다.

왕실부터 자연까지... 카펫 주제는 무궁무진

유럽 왕실 카펫
 유럽 왕실 카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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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왕실의 모습을 보여주는 카펫도 있다. 왕자와 공주가 만나는 장면처럼 보이는 카펫은 주문 받은 것이어서 그런지 디자인과 색채가 전통 이란 카펫과는 상당히 다르다. 여인의 의상은 빅토리아 시대의 것이다. 카펫 속 건물도 예술적이기보다는 실용적이다. 그렇다면 영국 왕실의 정원일까?

페르시아 왕실의 모습을 표현한 카펫도 있다. 양파형 첨탑이 있는 정자에서 왕과 왕비는 사랑을 나누고 휴식을 취한다. 이들이 말을 타고 함께 외출하거나 격구를 하는 모습도 보인다. 왕이 말을 타고 사슴을 잡는 모습도 보인다. 이들 그림을 둘러싼 가장자리에는 숲속에서 뛰어 노는 짐승들이 표현되어 있다. 이 카펫은 밀라노에서 수입한 실로 케르만에서 만든 것으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동서양의 합작품이 된다.

황제의 대관식 카펫
 황제의 대관식 카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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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 케르만에서 만들어진 황제 대관식 카펫도 인상적이다. 카펫 아래 프랑스어로 'Roi sur son Trone'라는 글씨가 있어 황제의 대관식 장면임을 알 수 있다. 아케메네스시대 황제의 즉위 모습으로 보인다. 이러한 조각은 페르세폴리스와 낙쉐로스탐 부조에서 여러 번 본 적이 있어 쉽게 이해가 된다. 그런데 이 카펫은 특이하게도, 주변은 화려한데 중심부는 흰색 바탕에 옅은 카키색이어서 화려하지 않다.

천국 카펫
 천국 카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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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카펫으로는 자연 속의 동식물을 표현한 것이 있다. 나무, 열매, 새, 동물이 공존하는 천국이다. 심지어는 나비, 곤충과 벌레까지 표현되어 있다. 아이들을 위한 생물도감 같다. 큰 틀로 보면 중심부에 나무, 과일, 새, 가장자리 부분에 숲과 동물이 표현되어 있다. 현실과 잘 맞지 않는 것은 한 나무에 다른 종류의 과일이 달려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들 나뭇가지에 무수히 많은 새들이 앉아 있다. 새들은 알도 낳고 새끼도 기른다. 새의 종류는 40가지는 되는 것 같다. 칠면조, 닭, 오리 같은 가금류도 보이고, 부엉이, 뻐꾸기, 산비둘기 같은 산새도 보인다. 제비, 까마귀처럼 검은 깃의 새도 보이고, 공작처럼 화려한 새도 보인다. 그런데 독수리, 매 같은 맹금류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천국처럼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나무, 새, 과일
 나무, 새, 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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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자리를 둘러싸고 있는 동물은 코끼리, 낙타, 코뿔소, 얼룩말 같은 열대지방 동물들이다. 다른 쪽에는 사자, 표범, 치타, 하이에나, 기린 등이 보인다. 말, 낙타, 염소, 양, 개 같이 인간과 가까운 동물도 보인다. 또 토끼, 사슴, 멧돼지, 곰 같이 사냥의 대상인 동물도 보인다. 거북이, 악어, 천산갑 같이 등이 딱딱한 동물도 보인다. 한마디로 동물의 왕국이다. 그런데 이 카펫이 언제 어디서 만들어졌는지는 확인을 못 했다.

출입구 전시실
 출입구 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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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을 나가면서 꽃들의 향연으로 이루어진 카펫을 봤다. 이들은 앞에서 본 이야기가 있는 카펫과는 달리 스토리를 찾기 어렵다. 그러나 꽃의 아름다움과 꽃밭의 화려함을 즐기다 보면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이곳에 표현된 꽃의 종류만 해도 수십 가지가 넘는다. 카펫을 짜는 사람들은 꽃의 패턴을 갖고 있을까?

사실 예술이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면 자신만의 패턴이나 경향이 나타난다. 카펫 장인들도 직물을 계속해서 짜다보면 자신만의 특기가 생겨날 것이다. 꽃을 다양하게 특징적으로 표현한 장인의 주특기는 꽃무늬가 되는 식으로. 페르시아 카펫의 출발은 초목과 꽃이다. 거기에 동물과 인물이 더해지고, 이야기가 만들어져 세계 최고의 카펫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태그:#카펫박물관, #파라 팔레비, #페르시아 카펫, #압바스 문양, #스토리가 있는 카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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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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