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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9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도종환 장관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지난 19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도종환 장관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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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있는 공무원이 되십시오. 공무원이 무슨 영혼이 있느냐 라는 말은 하지 마십시오. 문체부에서 일하는 여러분들이야말로 영혼이 있는 공무원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사유, 여러분의 감수성, 여러분의 상상력, 여러분의 행동이 그대로 문화예술인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지난 19일 취임한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취임사는 조금 남달랐다. "역시나 문인 출신"이란 평가가 도드라졌다. 단상 아래에서 임직원들과 눈을 맞춘 방식뿐만은 아니었다. 시인 출신인 만큼 시인 러디어드 키플링의 시 <만일>의 한 구절로 취임사를 마무리해서도 아니었다.

도종환 장관의 취임사는 지난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농단의 중심에 섰던 문체부에 메스를 대고 수술을 감행하고 말겠다는 의지의 적극적인 표명으로 읽힐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지난 정부에서 대두됐던 "영혼 없는 공무원"에 대한 질타를 의식한 듯 직접적으로 "영혼이 있는 공무원이 되십시오"라는 주문을 잊지 않았다.

더욱이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겠다'는 민주정부의 전통적인 문화 정책 원칙을 고수하는 동시에 국정농단 사태로 유린됐던 문체부 내부의 조직문화를 쇄신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예술인들이 참여하는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이 대표적이다. 도 장관은 이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저는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지키겠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행정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예술인들을 대상으로 재정 지원에서 배제하고 사회적으로 배제하는 일을 했던 분들에게는 책임을 묻겠습니다.

국정농단에 관여한 문화행정에도 책임을 묻겠습니다. 국민을 위해 일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인데 국민에게 불이익을 주는 행정을 했다면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합니다. 잘못된 부분을 인정하고 바로잡아야 합니다. 조직이 확실히 달라졌다는 모습을 보여줄 정도로 쇄신해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이번 주 안에 예술인들이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겠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감시받지 않을 권리, 검열 받지 않을 권리, 배제당하지 않을 권리,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예술인들도 그렇습니다. 블랙리스트는 직권남용이면서 형법위반입니다. 동시에 헌법위반입니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일입니다. 다시는 블랙리스트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겠습니다."

도종환 장관의 첫 결재, 문화예술위원장과 영진위원장 사표 수리

 박명진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왼쪽), 김세훈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박명진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왼쪽), 김세훈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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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박근혜 정권 차원에서 자행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청산과 문체부 내부의 비위자 책임 추궁을 천명한 도종환 장관. 그의 취임과 함께 문화예술계 농단에 앞장선 부역자로 지목받고 있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박명진 위원장, 영화진흥위원회 김세훈 위원장의 사직서도 이날 수리됐다. 도 장관의 임기 첫 결재사안이 바로 이 두 사람의 사표 수리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박 위원장과 김 위원장은 조기대선 투표일 하루 전이었던 지난달 8일 각각 사직서를 문체부에 제출했다. 하필 대선 하루 전날 사직서를 제출한 데 대해 힐난이 쏟아졌다. 그나마 이 사표 역시 감사원이 이들 두 기관에 대해 감사를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보류돼 왔다. 그러던 차에 도 장관이 시원(?)하게 이들 두 사람에 대한 사표를 수리한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국정농단 사태 이후 박 위원장과 김 위원장은 대표적인 블랙리스트 부역자로 인식돼 왔다. 문화예술인과 문화단체의 정부 지원을 심의, 결정하는 문화예술위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시발점이라 알려진 박근형 연출가의 연극 <개구리>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풍자를 담았다는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배재했다. 2015년 9월 문체부 국정감사에서 당시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의원은 <개구리>에 대한 문화예술위의 지원 배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이러한 문화예술위의 사실상 검열과 지원 배제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청와대 입성 이후 더욱 공고해졌음이 검찰 조사 등으로 밝혀졌다. 김세훈 위원장 역시 <다이빙벨> 사태로 국민들에게 좀더 알려진 영화계 블랙리스트 사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2014년 12월 임기를 시작한 김 위원장은 재임 기간 <다이빙벨>로 촉발된 부산국제영화제 파행은 물론 블랙리스트에 협조하며 독립예술영화지원 사업에 대한 편파 지원 의혹을 받고 있다. 탄핵 정국이던 작년 12월, 영화인 8개 단체는 김 위원장을 검찰에 고발하기까지 했다.

각각 임기를 1년과 6개월여 앞둔 박 위원장과 김 위원장에 대한 도 장관의 사표 수리는 마치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직후 행보를 연상시킨다. 취임 직후 국정교과서를 폐기하고,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지시한 것처럼, 그러니까 지난 정부에 쌓여왔던 적폐를 하나 둘 청산해 나가는 것처럼 도 장관 역시 취임과 함께 블랙리스트 청산을 위한 유의미한 첫걸음을 뗀 것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상징성 차원이 아니다. 영진위의 사례를 보자.

블랙리스트 청산 작업, 왜 꼭 필요한가

 지난 19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도종환 장관이 취임사를 하고 있다.
 지난 19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도종환 장관이 취임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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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영화진흥위원회는 '2017년 상반기 저예산영화개봉지원 사업' 심사결과를 공지했다. 이 사업은 영진위가 신청과 심사를 거쳐 저예산 독립영화의 배급/마케팅 비용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올 상반기엔 총 54편의 신청작 중 16편을 선정했다.

헌데 이 결과 발표 이후 독립영화인들의 탄식 어린 반응이 쏟아졌다. 대개 "아니, 정권이 교체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 작품들이"라거나 "이럴 수 있었으면서 지난 정부들에선 그랬던 건가"하는 반응 일색이었다. 이런 반응은 사실 블랙코미디 같은 현실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선정작에는 사드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파란나비효과>나 용산참사를 다룬 <공동정범> 등 이른바 사회 현실을 건드린 '문제작'들과 함께 독립영화계에서 호평을 받은 작품들이 고루 망라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선정될 만한 '좋은 작품'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만약 지난 정권이었다면' 혹은 '작년이었다면'이란 찜찜한 기분과 의구심을 떨쳐낼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블랙리스트가 잔존했다면 선정되기 힘들었을 작품이란 얘기다. 한 마디로, 정권 교체 직후 문체부의, 그리고 영진위의 '비정상의 정상화'가 진행되는 느낌이랄까.

블랙리스트 청산의 시발은 이렇게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 일컬어지는 부역자들의 책임을 묻고, 그들이 만들고 실행하고 있는 정책과 제도에 재정비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여러분의 행동이 그대로 문화예술인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라는 도 장관의 말마따나 결국 문체부 산하 공무원들이야말로 일선 현장의 문화예술인들과 만나며 제도와 정책을 매만지는 실무자요, 그들의 손끝에서 지원과 배제를 포함한 문화 정책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쇄 작용은 고스란히 창작자들은 물론 관객이나 수용자, 즉 국민에게 영향을 미친다. 헌법재판소와 검찰이 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박 전 대통령 파면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 등의 구속에 주요한 요건으로 상정한 것 역시 같은 이유일 것이다.

오는 7월 3일,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 등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 혐의자들의 결심공판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19일 블랙리스트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는 다음 달 3일 결심공판을 고려 중이라 밝혔다. 7월 안으로 선고가 이뤄질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도종환 장관의 블랙리스트 청산 작업을 위해서도, 이 재판에서 피고인들에게 무거운 형량이 내려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정권 차원에서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흔들었던 블랙리스트 사건이 얼마나 중차대하고 불행한 사건이었는지 환기하는 한편 또 이에 부역한 '영혼없는 공무원'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덧붙여, 도종환 장관이 약속한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의 활동도 눈여겨 보자.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구체적인 족적을 남기는 이러한 '좋은 선례'는 적극적으로 지지할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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