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왕국.

대한민국을 이렇게 일컫는 사람들도 있다. 서로 간의 이해와 배려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사회라기보다는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거나 신경에 거슬리면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폭발하여, 욕설을 퍼붓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물론 이는 개개인의 성향이나 그들이 처한 환경마다 달라질 수 있는 문제다. 그러나 권위적인 회사나 선후배 문화, 세대 간, 남녀 간의 갈등 등, 전반적으로 답답하고 다소 경직된 사회 분위기가 있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환경은 학교도 예외가 아니어서 이르면 초등학생 때부터 아이들은 학교 폭력에 노출된다. 학교폭력 문제는 심각성보다 쉬쉬하기 바쁜 오점처럼 여겨진다. 이 과정에서 상처받는 건 피해자다. 피해자가 전학을 가야 하고, 가해자는 오히려 당당한 불합리한 일들도 비일비재했다. 최근 윤손하 아들이 연루된 학교 폭력 사건에, 많은 누리꾼이 공분한 것도 이런 기시감 때문이었다.

학교 폭력 가해자된 윤손하 아들

 <최고의 한방>에 출연 중인 윤손하. 하차 요구가 쏟아진 이후에 정식으로 사과했다.

<최고의 한방>에 출연 중인 윤손하. 하차 요구가 쏟아진 이후에 정식으로 사과했다. ⓒ KBS


윤손하의 아들이 학교 폭력의 가해자로 뉴스에 등장했다. 학교 수련회. 보도에 따르면 이불에 들어가 텐트 놀이를 하던 유아무개군에게 무차별적인 폭력이 가해졌다. 손으로 때리거나 발로 차는 것을 넘어 야구방망이, 나무 막대기까지 동원됐다고 한다. 유군의 울음에도 아이들의 폭력은 멈추지 않았고, 이들은 그날 밤 물을 찾는 유군에게 바나나 우유 모양의 바디워시를 주며 먹으라고 했다는 다소 충격적인 내용도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은 없었다. SBS는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 가운데 대기업 총수 손자와 배우 윤손하씨 아들이 가해자에서 빠지거나 별다른 책임을 지지 않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대기업 총수 손자는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손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호아시아나 관계자는 19일 <국제신문>에 "학교 측 조사 결과 (박 회장 손자가) 가담하지 않았다고 나왔다, 현재까지는 학교 측 조사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추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진술은 가해자 위주로 편집되었고, 피해자에 대한 보호는 없었다. 병원 치료까지 받고 있는 피해자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아무리 아이들이 한 행위가 '장난'이라고 한들, 피해자가 불쾌함을 느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장난으로 치부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SBS < 8 뉴스 >를 통해 공개된 숭의초등학교 교장과 피해 학부모 사이의 녹취록에 따르면 교장은 "어차피 이 학교 안 보내실 것 아니냐. 학교를 징계하는 건 이사장님이다. 교육청 무섭지 않다"는 고압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죄송하다.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바로 잡고, 다시 확인해 보겠다"가 아닌, 불만이면 학교 보내지 말라는 식의 황당한 태도는 한 학교를 책임지고, 아이들을 선도해야 할 교장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기 힘들다.

피해자 상처 배려 않는 학교와 사과문

 SBS < 8 뉴스 > 화면 갈무리. 학교 측의 태도도 쉬이 납득하기 어려웠다.

SBS < 8 뉴스 > 화면 갈무리. 학교 측의 태도도 쉬이 납득하기 어려웠다. ⓒ SBS


논란이 계속되자 윤손하는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대중은 오히려 분노했다. 윤손하의 시선이 가해자의 논리를 그대로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윤손하의 소속사 씨엘컴퍼니가 발표한 공식 사과문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방송은 악의적 편집."
"방에서 친구들과 장난을 치던 상황."
"야구 방망이는 스티로폼으로 감싸진 플라스틱 방망이."
"바나나 우유 바디워시는 맛을 보다가 뱉은 것뿐."

학교 폭력 가해자로서 걱정을 끼쳐 죄송하다는 말과는 달리, 모든 문장이 변명으로 일관되어 있다. 누군가에게는 장난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폭력일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단순히 '아이들의 장난'으로 사건을 축소하고, 때렸다는 사실 자체보다 '무엇으로' 때렸냐에 집중하고 있다. 가해자의 의견을 전반적으로 수용한 사과문은 사과문이라기보다는 '변명문'에 가까웠다.

"치료비는 처음부터 부담하기로 했고, 피해자 부모와 연락을 취했으나, 그쪽에서 답이 없었다"는 말 역시, 피해자의 입장이 아닌 그들의 입장일 뿐이다. 마치 사과하면 끝날 일을 피해자들이 거절했다는 뉘앙스였기 때문이다. 사과를 받고 말고는 잘못한 쪽이 아니라, 그 잘못으로 피해를 입은 쪽이 결정하는 일이다. 과연 윤손하의 아들이나 본인이 같은 일로 충격을 받았을 때 역시 같은 잣대로 사건을 대할 수 있는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하차 요구 쏟아지자 제대로 사과한 윤손하  

윤손하의 시선은 폭력 가해자의 입장이 어떤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피해자의 상태나 상황보다는 자신이 입은 피해에 집중하고, 억울함에 방점을 찍는다. '아이들의 장난' 쯤에 일을 크게 만드는 상대방을 깎아내리기에 급급하다. 차라리 하지 않느니만 못한 입장 발표에 대중의 시선은 더욱 싸늘해졌고, 마침내 윤손하가 출연하고 있는 <최고의 한방>에서도 하차 요구가 빗발쳤다. 그제야 윤손하는 "피해자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우리 가족의 억울함을 먼저 생각했던 것 사과드린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다시 올렸지만, 이미 시기와 상황이 늦어버린 후였다.

이 사건이 알려진 것은 '금수저'와 '유명인'이 얽힌 화제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이런 폭력 사건, 아니면 더욱 심각한 사건들이 여전히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피해자는 그나마 다행이지만,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게 만드는 압박감이 도처에서 몰려오는 피해자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이 사건에서조차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해명해야 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했다. 학교는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하고 가해자 부모는 제대로 반성할 줄 몰랐다.

이제 막 10살이 된,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의 세계에서도 그런 불합리함을 받아들이라고 가르치는 학교가 과연 배움의 가치를 전달할 수 있을까. 어른들의 그런 간교함을 아이들에게까지 전가시킨 것이 아이들을 분노의 왕국'의 일원으로 키워내고 있는 건 아닐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우동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윤손하 학교폭력 숭의 초등학교
댓글28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6,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