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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5일이다. 해마다 맞이하는 날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국민들 기억 속에서 특별한 의미 없이 지나가는 날이기도 한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날만 가까워지면 마음이 숙연해지곤 한다. 그도 그럴 게 6.25 전쟁에 대한, 조금은 특별한 기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6.25 전사자 유해발굴의 기억

나는 지난 2014년 7월부터 2016년 4월까지 6.25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을 주도하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아래 국유단)'에서 유해발굴병으로 복무한 바 있다. 강원도 철원의 광덕산부터 속초의 설악산 상봉, 경북 영천의 진격산에 이르기까지 1년 9개월 동안 전국 방방곡곡의 산이란 산은 다 돌아다니며 6.25 전쟁 당시 산화한 호국영령들의 유해를 발굴·수습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임무 수행을 위해 투입된 현장은 반세기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전쟁의 참혹한 흔적으로 가득했다. 삽만 들었다 하면 시레이션(전투식량), 칫솔, 탄피 등 유품들이 쏟아졌다. 발굴된 유해들은 고인이 어떤 상태로 최후를 맞이했는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조각나거나 분산된 형태로 출토됐다.

'아, 이런 곳에서도 전쟁이 있었구나' 눈앞에 펼쳐지는 전쟁의 흔적을 두 눈으로 직접 마주하며 나는 놀라움과 숙연함을 동시에 느꼈다. 높은 산을 오르느라 죽상이던 발굴병력들 역시 탄성을 내질렀다. 책으로만 접하던 전쟁의 기억을 두 눈과 양 손의 살갗으로 직접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2012년 6월, 강원도 인제에 위치한 명당산 유해발굴현장에서 유해를 수습하고 있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소속 발굴병의 모습
 2012년 6월, 강원도 인제에 위치한 명당산 유해발굴현장에서 유해를 수습하고 있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소속 발굴병의 모습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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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마주했던 전쟁의 비극과 슬픔, 죽은 자들을 마주해야만 하는 고통은 여전히 잔상으로 남아 나의 6월을 괴롭게 한다. 안타까운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전쟁의 공포와 비극이 희석되고 있다는 점이다.

갈수록 심화되는 남북갈등의 위기 속에서 '대북선제타격론'과 같은 무시무시한 발언들이 틈만 나면 언론지상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은 그 자체로 공포스러운 일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참혹했던 현장의 모습이 시시때때로 눈앞에 아른거린다.

서두가 길었다. 아무도 관심 없을 나의 군 생활을 길게 얘기한 까닭은 사실 한 권의 책을 소개하기 위함이었다. 바로 내가 느꼈던 전쟁의 기억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죽은 자들의 증언>이란 책이다.

이 책은 6.25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의 실질적 '산파' 역할을 맡았던 국유단 이용석 조사과장이 자신의 생생한 체험을 담아 집필한 수기다. 저자는 6.25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이 처음 실시되어 성공적으로 자리잡기까지의 과정에서 발생했던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들과 현장에서 발굴된 유해들에 얽힌 사연들을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구술하고 있다.

<죽은 자들의 증언> 표지
 <죽은 자들의 증언> 표지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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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편견에 부닥쳤던 전사자 유해발굴사업

지금은 숭고한 호국보훈사업으로 자리 잡은 전사자 유해발굴사업. 정치적 이해를 떠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있는 국가적 사업임이 틀림없다. 실제로 김대중 정부에서 처음 시행됐던 이 사업은 노무현 정부에서 '국가적 영구 지속사업'으로 법제화됐고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이르러서도 꾸준히 지속돼 왔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 역시 지난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해 전사자 유해발굴사업 추진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천명한 바 있다.

하지만 저자는 유해발굴사업이 이렇게 자리잡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고 토로한다. 단적으로 유해발굴사업을 추진하라는 상부의 지시에 당장 저자 본인부터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느낌이었다는 솔직한 고백이 쏟아진다. 유해발굴사업이 시행 초기 얼마나 많은 편견을 마주해야만 했는지 짐작이 가능한 대목이다.

"처음 임무를 부여받던 1999년 9월, 잘나가는 육군 중령이라고 생각했던 저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날벼락이 떨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한민국 군 역사에 처음 있는 일이고, 그것도 영관급 장교가 유해발굴을 한다니. 육군 본부에서 대령, 장군으로 이어지는 웅대한 꿈을 펼쳐야 하는 마당에 이게 무슨 일인가?" - p.18

일부 지휘관의 종교적 신념으로 인한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유해발굴을 하기 전에는 반드시 '개토식'이라는 행사를 진행한다. 발굴을 시작하겠노라 하늘과 땅에 고하는 일종의 의례다.

그런데 유해발굴사업이 처음 실시될 때 일선 지휘관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절하는 것을 꺼려했던 것. 이에 격분한 저자는 자기보다 계급이 높았던 상관에게 "이것은 종교의식이 아닌 고유의 민족문화의식으로, 존중의 의미로 누구나 절을 하는 것"이라 열변을 토해낸다.

2015년 50사단에서 열린 유해발굴 개토식
 2015년 50사단에서 열린 유해발굴 개토식
ⓒ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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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편견은 군(軍)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학계를 비롯한 민간의 시선도 곱지는 않았다는 고백이 이어진다. 계획 수립 초기 유해발굴에 대한 경험이 없어 막막한 심정이었던 저자는 축적된 노하우를 얻기 위해 고고학계에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저자의 연락을 받은 한 고고학자는 "우린 장의사가 아니야!"라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고.

예상치 못한 편견에 부닥쳤을 때 저자가 느낀 좌절과 고뇌는 생생한 구어체로 여과없이 드러난다. 책장이 넘어갈수록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는 저자의 태도도 인상적이다. 저자도 편견에 휩싸인 채 떨떠름하게 시작한 일이었다. 그러나 막상 각계각층의 반대와 편견에 직면하자 일종의 오기가 발동한 것이다. 결국 저자는 뒤늦게서야 자신이 맡은 임무의 가치를 깨닫기 시작했고 모두의 편견에 맞서 싸워 반드시 이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겠노라 다짐한다.

"전쟁사를 연구하고, 6·25 당시 각 사단의 전투 상보와 그동안 쌓여온 전사자 관련 증언과 제보 내용 등을 분석하며 어디에서 유해를 찾을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유해와 관련된 기록물은 찾을 수 없었고, 그나마 남은 전쟁 기록도 살아 있는 사람과 관련된 영웅담이 섞여 정말 유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을 기록에서 찾는다는 것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보다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 p.19

감격적인 첫 발굴 순간, 지속 위해 국무조정실까지 찾아가

시행착오 끝에 2000년 4월 3일, 마침내 첫 발굴이 이뤄졌다. 경상북도 칠곡군 다부동에 위치한 328고지였다. 20여 개 언론사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첫 삽이 들어 올려졌고 개인호와 교통호에서 유해들이 식별되기 시작했다. 저자는 "차라리 쏟아진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며 그 참혹했던 순간을 회고한다.

이후로도 저자는 한시적 사업이던 유해발굴사업을 영구사업으로 전환하기 위해 직접 국무조정실에까지 찾아가 브리핑을 자청하는 등 사업의 지속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그 발로 뛰고 땀으로 쓴 흔적들을 읽고 있노라면 저자의 헌신에 눈물이 나올 지경이다.

솔직한 심정으로 고백하는 퇴역 군인의 회고는 그래서 더욱 안쓰럽고 애틋하기까지 하다. 어쩌면 이 한 사람의 의지와 열정이 아니었더라면 사업 자체가 처음부터 좌초됐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내심 안도감이 들기도 한다.

2012년 6월, 강원도 인제 명당산 발굴현장에서 브리핑하고 있는 저자의 모습
 2012년 6월, 강원도 인제 명당산 발굴현장에서 브리핑하고 있는 저자의 모습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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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이 손잡고 공동으로 유해발굴해야

얽히고설킨 이 이야기를 통해 저자가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료하다. 바로 '평화'다. 저자는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은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이들을 위한 국가의 당연한 의무이자, 평화를 여는 첫 걸음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유해발굴사업의 또 다른 목적은 전쟁을 잊어가는 세대들에게 그 참혹했던 기억을 일깨우고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기고자 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저자는 유해발굴사업이 한반도의 긴장을 해소하고 남북통일을 여는 첫 걸음이 될 수 있다고도 주장한다. 남북이 공동으로 유해발굴을 실시하여 국군과 북한군의 유해를 상호 송환하자는 제안이다.

2012년 5월 25일, 북한에서 발굴된 故 이갑수 일병의 유해가 고국으로 봉환되는 장면. 미군이 북한 지역에서 발굴한 유해를 미국을 경유해 송환한 특별한 경우에 해당된다.
 2012년 5월 25일, 북한에서 발굴된 故 이갑수 일병의 유해가 고국으로 봉환되는 장면. 미군이 북한 지역에서 발굴한 유해를 미국을 경유해 송환한 특별한 경우에 해당된다.
ⓒ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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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남한 지역에서 발굴되는 중공군의 경우 이미 2014년부터 한·중 우호협력 차원에서 중국 측에 송환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군 유해의 경우 여전히 북한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파주의 '적군묘지'에 잠들어 있다.

이런 사례를 생각해본다면 남북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유해발굴사업이야말로 경색된 남북관계를 복원할 수 있는 또 다른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남북관계 복원 방안 마련을 위해 고심하고 있을 문재인 정부에 '남북공동 유해발굴사업'에 대한 진지한 검토를 제안하는 까닭이다.

덧붙이는 글 | <죽은 자들의 증언>, 이용석 저, 인사이트앤뷰, 2013.06.06, 18,000원.



죽은 자들의 증언

이용석 지음, 인사이트앤뷰(2013)


태그:#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 #국유단, #유해발굴, #문재인, #한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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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사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한국근대사 전공) / 취미로 전통활쏘기를 수련하고 있습니다.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 기사 제보는 heigun@naver.com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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