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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 5. 17. 중부전선. 채반의 누에처럼 널브러져 있는 중국군 시신들. ⓒ NARA
(* 이 기사에는 시신 사진이 담겨 있습니다. 심약하신 분들은 보지 마시길 권합니다.)

"전쟁은 죽음의 향연"

일찍이 영국 사람들은 "전쟁은 죽음의 항연이다(War is death's feast)"라고 했다. 전쟁은 죽음을 반드시 동반하기에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아무튼 전쟁에는 죽음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나는 102학군단(ROTC) 출신으로 대학 3, 4학년 후보생 시절이나 임관 후 광주보병학교에서 16주 기초 군사교육을 '오지게' 받았다. 그때 교관이나 지휘관으로부터 자주 들어 머릿속에 각인된 말이다.

"전쟁에는 2등이 없다."

사실 그 말은 맞다. 전쟁터에서 병사들은 적군을 죽이지 않으면, 곧 자신이 죽기 마련이다. 그게 전쟁이요, 그래야 전투에서 아군이 승리하는 것이다.
1951. 5. 25. 길바닥에 팽개쳐진 어느 중국군 시신. ⓒ NARA
그후 내가 전방 보병사단 말단 소총소대장으로 복무할 때다. 그 부대 임무는 '경계 철저'였다. 그때 소대장들은 소대원들이 야간 매복근무를 나가기에 앞서 복창시켰던 구호가 있었다.

"먼저 보고, 먼저 쏘자."

이처럼 군인은 적을 발견하면 투항시키거나 먼저 죽이는 게 마땅한 임무다. 역사상 이름 난 장군이나 영웅들은 아무튼 적군을 많이 죽였기 때문에 그런 칭호를 부여받았을 것이다.

나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 세 차례 방문해 70여 일 간 그곳에 수장된 수백 만 장의 한국전쟁 사진을  검색했다. 그 가운데 가장 많았던 장면은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들이 공산군 병사들을 죽였던 전과(戰果) 장면이다. 그 다음으로는 당시 헐벗고 굶주린 한국의 고아나 피란민들을 도와준 사진 그리고 공산군 포로 사진 등이었다.

이는 지난날 우리 국군이 월남전에 참전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극장에서 본 영화 상영에 앞서 보여줬던 '대한 늬우스'에서는 우리 맹호부대나 청룡부대가 월맹군을 사로잡은 장면이나 비둘기부대가 월남 난민들에게 의료지원을 해줬다는 화면들이 주를 이뤘다. NARA에 수장된 미군들의 한국전쟁 사진도 이와 거의 비슷했다.

나는 이들 사진 가운데 절대 시간 부족으로 그 일부만 입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한국전쟁의 참 모습을 볼 수 있는 장면에 방점을 두고, 리서치(Research, 검색)하여 스캔해 왔다.

이번 제4회에서는 '전쟁과 죽음'이라는 주제로 꾸미고자 한다.
워싱턴 D.C. 내셔널 몰에 세운 한국전쟁 전몰자 위령비. ⓒ 박도
'전쟁과 죽음'

미국 워싱턴 D.C. 내셔널 몰 링컨기념관 옆에 있는 한국전쟁 전몰자 위령비(Korean War Veterans Memorial)에는 'Dead U. S. A. 54,246 U.N. 628,833'라는 전사자 숫자가 돌에 새겨져 있다. 그런데 한국전쟁 당시 공산군 측 전사자는 이보다 훨씬 더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어느 문헌에서는 한국전쟁 전사자는 피아 150만 명 이상으로, 여기에 민간인 사망자까지 합치면 300만 명이 넘을 거라고 추정한다.

한국전쟁 67주년을 앞둔 이즈음 나는 한반도에서 유명을 달리한 국군, 유엔군, 인민군, 중국군과 민간인을 포함한 수백만 영령들을 조상(弔喪)하고자 한다. 이와 함께 한국전쟁 당시 국군과 적군 전사자를 제재로 쓴 모윤숙, 구상 두 시인의 작품도 소개한다.

(기사에 실린 사진들은 필자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및 맥아더기념관에서 직접 검색하여 수집한 것입니다.)
1950. 7. 5. 태극기로 덮은 한 국군 용사의 무덤. ⓒ NARA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모윤숙
……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워있는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른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지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고나.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
 
나는 죽었노라,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나는 숨을 마치었노라.
질식하는 구름과 바람이 미쳐 날뛰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
드디어 드디어 나는 숨지었노라.
……
1950. 11. 8. 시인 모윤숙 씨가 라디오 방송으로 전시 피란민들을 위로 하고 있다. ⓒ NARA
1950. 7. 29. 경북 영덕. 어느 북한 인민군이 논두렁 수로에 머리를 박은 채 죽어있다. ⓒ NARA


초토의 시  8
- 적군 묘지 앞에서
                         구상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워 있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구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바른 두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 너그러운 것이로다.  

이곳서 나와 너희의 넋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 땅은 삼십 리면
가로막히고,
무주공산(無主空山)의 적막만이
천만 근 나의 가슴을 억누르는데,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람 속에 깃들여 있도다.

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에
구름은 무심히도
북으로 흘러가고,   

어디서 울려오는 포성 몇 발,
나는 그만 이 은원(恩怨)의 무덤 앞에
목 놓아 버린다.   
1951. 4. 9. 부산. 한국의 한 소녀가 유엔군 묘지에 꽃다발을 바치고 있다. ⓒ NARA
1950. 9. 15. 인천. 유엔군 인천상륙작전 중 집중 포화로 전사한 인민군들. ⓒ NARA
1951. 5. 24. 국군이 중국군 시신을 한데 모아 매장하고자 밧줄로 끌어 옮기고 있다. ⓒ NARA
1950. 9. 길바닥에 널브러진 인민군 시신들. ⓒ NARA
1952. 5. 30. 한 유엔군의 전사자 죽음 앞에 전우들이 총에다 철모를 씌운 뒤 추도의 기도를 드리고 있다. ⓒ NARA
1951. 5. 17. 중부전선. 유엔군 병사들이 중국군 시신들을 매장하고자 구덩이로 모으고 있다. ⓒ NARA
1950. 10. 8. 부산. 유엔군묘지에서 한 병사가 추도의 나팔을 불고 있다.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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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10.31. 원산. 헐벗고 굶주렸지만 웃음은 떠나지 않는 아이들. ⓒ NARA
1950.9. 한 지아비가 시각장애인 아내를 지게에 진 채 피란길을 떠나고 있다. ⓒ NARA
1950.10. 서울 은평. 한 소녀가 동생을 돌보며 불타버린 야외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있다. ⓒ NARA
1953.2.19. 전란 중이지만 설빔을 차려 입은 천진난만한 소녀들이 민속놀이의 하나인 널뛰기를 하고 있다. ⓒ NARA
1950.10. 옹진전투에서 한쪽 다리를 잃은 한 국군 특무상사가 목발을 짚은 채 침통한 표정으로 철조망 앞에 서 있다. ⓒ NARA
기자의 저서. 왼쪽부터 <카사, 그리고 나> <백범 김구 암살자와 추적자> <약속> <항일유적답사기>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 ⓒ 박도
태그:#한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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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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