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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 24일 오후 9시 5분]

2016년 11월, 새벽 2시. 느려 터진 집 컴퓨터로는 부족해 혼자 새벽에 피시방에 갔다. 왜냐? 본나루록 페스티벌 티켓을 사야 했으니까. 새벽 2시에 해외결제를 하려고 카드번호를 입력하니 은행에서 전화가 왔다. "고객님의 카드가 현재 해외 결제 시도 중입니다. 해킹이 의심됩니다." 해킹이라니? 급한 마음에 "아니 그거 저예요, 저! 표 매진 되기 전에 얼른 사야 해요! 바쁘니까 끊어요!"라고 소리쳤다.

나는 20대 초반에 록 페스티벌에 미쳐 있었다. 보통 나흘 동안 진행되는 록 페스티벌 기간에는 걸어 다닐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춤을 췄다. 록 페스티벌은 팝 음악 마니아였던 내게 해방구였다. 해마다 2~3개의 록 페스티벌을 갔고, 세계에서 제일 핫 하다는 영국 글래스턴베리페스티벌까지 갔다. 그랬던 내가 24살 이후, 음악 취향의 변동으로 캠핑하며 숙식을 해결하는 거친 록 페스티벌 대신 공원에 소풍 나온 기분으로 나들이 가는 재즈 페스티벌만 갔다. 나이를 먹을수록 씻지도 못하고, 한여름땡볕에 오래 서 있는 록 페스티벌이 부담스러웠다.

1년 동안의 세계 일주 여행을 결심한 뒤, 6년 동안 잠잠하던 '록 스피릿'이 꿈틀댔다. 한국에 오지 않은 뮤지션들의 공연을 즐길 절호의 기회였다. 대충의 일정을 보니 미국 테네시의 본나루 페스티벌에 갈 수 있었다. 5일권 가격은 310달러. 매우 부담스러운 가격이지만 내 안의 록 스파릿은 '가란 말이야!'라고 소리쳤다. 비록 5일 동안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잠도 설칠 테지만, 다시 록 페스티벌에 가보기로 했다. 지금 아니면 또 언제 해보겠어!

30살 저질 체력의 여자에게 록 페스티벌이란

본나루 페스티벌 현장
▲ 본나루 페스티벌 본나루 페스티벌 현장
ⓒ 조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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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나루 페스티벌 현장
▲ 본나루 페스티벌 본나루 페스티벌 현장
ⓒ 조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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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 짜리 싸구려 텐트와 삼만 원 짜리 얇은 침낭을 메고 본나루 페스티벌 현장에 도착했다. 현지인들의 고급 캠핑카와 유명 브랜드 텐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내 초소형, 초저가 텐트를 쳤다. 내 한 몸 겨우 들어갈 세로 180cm 크기에 방수도 안 돼 새벽이슬에 물이 새는 싸구려 국방색 텐트였지만, 아무렴 어떠냐. 이미 내 마음은 록 스피릿으로 가득 차 공연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문제는 내 싸구려 텐트가 아니라, 내 몸이었다. 페스티벌 장소는 농장이었다. 포장도로는 없고 잔디와 흙밭이 있었다. 비 한 방울 안 오는 건조한 날씨에 8만 명의 사람들이 밀집된 공간에서 걸으니 대기 중에 엄청나게 많은 미세 먼지가 생겼다. 눈이 미친 듯 따가워 거울을 보니 양쪽 눈이 새빨갰다. 화장실에서 우연히 만난 미국인이 준 인공 눈물을 계속 눈에 쏟아부었지만 큰 효과가 없었다. 눈을 셀 수 없이 깜빡여야 겨우 시야 확보가 가능했다.

23살 때 간 영국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서도 첫날 안구 건조증으로 고생했다. 그때는 20대 초반, 의료팀에서 준 인공눈물 몇 방울로 병이 나았다. 30살인 지금, 내 눈은 인공눈물 몇 방울 따위로 회복되지 않았다. 그사이 내 몸은 늙어버린 걸까. 온종일 누군가 내 눈을 바늘로 마구 찌르는 듯한 통증이 왔지만, U2를 봐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겨우 버텼다.

드디어 U2를 본다

본나루 페스티벌 현장
▲ 본나루 페스티벌 본나루 페스티벌 현장
ⓒ 조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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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나루 페스티벌 현장
▲ 본나루 페스티벌 본나루 페스티벌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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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켓 구매 몇 달 후 공개된 출연진 목록에는 노벨 평화상 만년 후보자인 가수 보노가 속해있는 그룹 'U2'가 있었다. U2는 1980년에 데뷔, 12장의 앨범을 발표하고 1억 5천만 장의 음반을 판매했다. 보통 U2 공연을 좋은 좌석에서 보려면 최소 30만 원 이상이 든다. 세계적인 유명 음악잡지 '롤링스톤즈'가 선정한 위대한 아티스트 100인에도 U2가 있다. U2의 보노는 여러 국제 구호 단체에 기부하고 홍보대사로 활동한다. 그는 공연 중에도 정치적 멘트를 서슴없이 한다.

U2의 음악은 기독교 정신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U2의 가사 중에는 I believe in the kingdom come(왕국이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You broke the bonds(당신이 속박을 끊어주었고) 등의 기독교적 영성이 가득한 가사가 많다. 그들의 노래는 내게 신을 향한 질문이요, 사랑의 표현이다. U2는 한 번도 한국에 오지 않았기에 여태 U2의 공연을 보지 못했지만, 이제 드디어 U2를 보게 됐다.

한국 록 페스티벌에서 U2 정도의 거물급 뮤지션을 가까이서 보려면 오전부터 밤까지 꼼짝 말고 관객석 앞줄을 지켜야 했다. 록 페스티벌에서는 드넓은 풀밭 위에 선착순으로 줄을 선후 선채로 공연을 관람해야 한다. 미국도 U2 정도의 뮤지션을 보려면 경쟁이 치열하겠지 하는 마음에 U2의 공연 시간인 밤 11시보다 4시간이나 일찍 줄을 섰다.

예상외로 맨 앞줄에 들어가려 줄 서 있는 사람은 많이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맨 앞줄은 텅텅 비어 있었다. 대부분의 관객은 관람객 맨 뒷자리에서 캠핑 의자를 펴 놓고 편하게 공연을 구경했다. 거물급 록 밴드의 공연이 수도 없이 많은 미국이니 사람들이 유명 뮤지션을 가까이 보겠다고 조바심내지 않는 걸까. 

쓰라린 눈을 1초에 10번씩은 끔벅이며 4시간을 기다린 끝에 무대에선 U2를 봤다. "오 마이갓, 내가 보노를 보다니!"믿기지 않는 현실이었다. U2의 베스트 앨범 'JoshuaTree'의 히트곡 'Where the street have no name', 'I still haven't found what I am looking for', 'With or without you"이 울려 퍼졌다. 울컥하는 기분에 잠겨버린 목을 가다듬고, 바늘로 찌르는 듯한 안구통증을 견디며 보노와 같이 노래를 불렀다.

미국 애들과 놀기는 무리다

본나루 페스티벌 현장
▲ 본나루 페스티벌 본나루 페스티벌 현장
ⓒ 조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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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의 공연이 끝나고 이틀의 시간이 더 남았다. 안구건조증은 갈수록 심해졌지만, 이대로 록 페스티벌을 포기하기에는 30만 원이 넘는 티켓 값이 아까웠다. 빨갛게 충혈되어 눈곱이 덕지덕지 붙은 눈을 연신 꿈뻑이며 페스티벌 현장 곳곳을 걸어 다녔다.

Red Hot Chilly Peppers, The weeknd, Lorde 등의 빌보드 차트를 점령한 뮤지션들의 공연이 줄을 이었다. 그중 유난히 내 눈길을 끈 공연은 랩음악을 하는 Flatbush Zombies라는 팀이었다. 푸드트럭에서 타코를 먹고있는데 옆 공연장에서 어마어마한 환호성이 들렸다.

남자들의 거친 목소리로 "와~~~"하는 환호성에 귀가 아플 정도였다. 이윽고 무대에는 3명의 흑인 청년들이 나왔고, 어림잡아도 천명은 넘을 것 같은 서양 남자들이 잔뜩 몰려들었다. 수천 명의 서양 남자들이 점프 하고 슬램(공연 도중에 관람객들이 서로 격렬하게 몸을 부딛치며 어깨싸움하듯노는 방법)을 하는데, 장관이었다. 관중들의 격렬한 모습에 한껏 흥이 돋은 가수는 관객석 위로 다이빙까지 했다. 관중들 머리 위로는 풍선, 깃발, 물병, 휴지 등이 날아다녔다.

20대 초반 나도 한국에서 록 공연 좀 다니며 장기하와 얼굴들, 크라잉넛, 노브레인 등의 록 밴드 공연들을 보며 슬램도 했지만 그건 이미 옛날얘기. 30살 먹은 동양 여자인 내가 건장한 미국 남자들 틈바구니에 뛰어들어 공연을 보기는 겁이 났다. 30살 먹어서 혼자 미국 록 페스티벌 온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고 여기며 수천 명의 관중들이 미처 날뛰는 장관을 감상했다.

기도하며 본 'The head and the heart'

본나루 페스티벌 현장
▲ 본나루 페스티벌 본나루 페스티벌 현장
ⓒ 조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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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나루 페스티벌에 오기 전 어떤 팀이 무대에 서는지 알아보다가 시애틀 출신의 'The head and the heart'라는 팀의 공연을 보게 됐다. 어쿠스틱 곡을 연주하는 팀인데 'Lost in my mind'라는 노래가 특히 좋았다. 가사중에 'Momma once told me, You are already home where you feellove' '엄마가 내게 말했죠. 네가 사랑을 느끼고 있다면 넌 이미 집에 있는 거야'라는 부분에 괜히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여행이 길어질수록 매일 싸웠던 엄마가 그리웠고, 지긋지긋했던 집에 돌아가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런 마음이 들 때면 'Lost in my mind'를 들었다.

무대 위에서 'The head and the heart'가 등장해 그 노래를 연주하자 연신 들이켠 맥주 탓에 괜히 한국말로 소리를 질렀다. "엄마, 보고 싶어! 매일 싸운 거 후회해","하느님, 저 여행 끝나면 좀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불안해도 행복하게 사는 법을 알 수 있으면 좋겠어요!" 기도인지, 술주정인지 모를 내 목소리는 밴드의 연주에 묻혀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았겠지만 한바탕 한국말로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고 나니 어쩐지 속히 후련했다. 신은 내 기도를 들었을까.

평소 운동과는 담쌓고 지낸 30살의 체력으로 5일간의 록 페스티벌은 아주 힘들었다. 20대 초반에 아파도 금방 괜찮아지던 나는 어디 가고 안구건조증 때문에 페스티벌 기간 내내 골골대던 비실비실한 30대 여자만 남았다. 그런데도 한국에서 절대 만날 수 없는 U2를 보고, 아픈 눈에 연신 인공눈물울 쏟아 부으며 자정까지 춤을 췄다. 나중에 또 록 페스티벌에 갈 수 있을까? 그땐 나도 현지인들처럼 고급 브랜드 텐트 치고,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가고 싶다.


태그:#세계일주, #미국여행, #록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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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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