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가' 울산 현대의 2017년 전반기는 우울함의 연속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2017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이하 ACL) 출전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차라리 나가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성적이 좋지 않았다. 태국의 강호 무앙통 유나이티드 원정에서는 경기력과 결과 모두 완패했고, 가시아 앤틀러스(일본)에게는 홈에서도 0-4로 패하는 굴욕을 맛봤다. 조별리그 탈락은 당연했다.

리그에서도 시원찮은 모습은 이어졌다. 실수가 이어지며 수비 조직력이 무너졌고, 공격에서는 오르샤만 돋보였다. 새롭게 영입한 이종호에 큰 기대를 걸었지만,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최전방 공격수로 변신한 코바 역시 만족스럽지 못한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김도훈 감독의 고민은 더 커져만 갔다. 특히, 지난 4월 전남 드래곤즈와 경기에서는 0-5로 대패하며, 명가의 부활은 멀어져만 가는 듯 보였다.

ACL과 리그에서의 연이은 참패와 부진이 약이 된 것일까. 울산이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인천 유나이티드 원정 승리를 시작으로 3연승을 거두는 등 전남전 대패 이후 6경기 연속 무패행진을 달렸다. 그리고 찾아온 3주간의 짧은 휴식기. 울산은 통영으로 전지훈련을 떠나 조직력을 가다듬으며, '명가'의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굵은 땀방울을 아끼지 않았다.

'역대급' 동해안 더비를 마무리한 울산의 저력

짧지만, 굵은 여름 방학을 보낸 울산이 '명가'의 저력을 보여줬다. 울산이 '슈퍼매치' 못지않은 '동해안 더비'에서 영화보다 더 극적인 승리를 만들어냈다.

울산이 17일 오후 6시 포항 스틸야드에서 열린 2017 KEB 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14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와 경기에서 2-1로 승리했다. 이로써 울산은 7경기 연속 무패 행진 달성에 성공했고, 리그 2위까지 뛰어오르며 본격적인 선두 경쟁에 가세했다.

극장 경기였지만, 양 팀의 전반전 경기력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치열한 중원 싸움과 수비 조직력에 초점을 맞춰서인지 경기 속도와 패스 정확도에 아쉬움이 많았다. 실제로 전반 28분이 지날 때까지 페널티박스 안쪽에서의 슈팅 장면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오직 상대의 밀집된 수비를 끌어내기 위한 중거리 슈팅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지루함이 경기장을 가득 메울 무렵, 울산이 시원한 바람을 몰고 오기 시작했다. 울산은 전반 29분 포항 진영에서의 강력한 전방 압박으로 볼을 빼앗아 낸 뒤 절묘한 침투 패스로 득점 기회를 만들어냈다. 상대 수비 뒷공간을 완벽하게 무너뜨린 오르샤가 강현무 골키퍼와 일대일 기회를 잡아냈다. 비록, 오르샤의 마무리 슈팅이 강현무 골키퍼의 슈퍼 세이브에 막히기는 했지만, 답답한 경기 흐름을 뒤바꾼 신호탄이었다.

울산은 이어진 코너킥 상황에서도 이영재의 슈팅이 포항의 골대를 때리며, 스틸야드를 가득 채운 팬들을 술렁이게 했다. 전반 35분에도 오르샤의 낮고 빠른 크로스에 이은 이종호의 슬라이딩 슈팅이 포항의 간담을 서늘케 했고, 후반 1분에는 김인성의 슈팅이 또다시 골대를 때리며 축구 보는 재미를 한층 끌어올렸다.

두드리면 열린다고 했던가. 마침내 울산이 포항의 골문을 열었다. 후반 6분 측면에서 올라온 크로스를 배슬기가 제대로 걷어내지 못했고, 볼에 대한 집중력을 잃지 않은 이종호가 침착하게 슈팅까지 연결해 골망을 갈랐다.

0의 균형이 깨지자, 스틸야드는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포항은 후반 15분 U-20 월드컵 멤버였던 이승모를 투입해 변화를 줬고, 적극적인 공격으로 동점골 만들기에 나섰다. 후반 21분 울산 수비를 멍하게 만들었던 심동운의 환상적인 패스가 뒷공간을 파고든 강상우에게 정확하게 향했고, 그를 막아서려던 정승현의 반칙과 함께 페널티킥으로 이어졌다.

동점골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키커도 '에이스' 룰리냐였다. 그런데 룰리냐의 어정쩡한 킥이 김용대 골키퍼의 선방 능력을 돋보이게 해주면서, 동점골 기회가 허무하게 날아갔다. 포항은 후반 30분에도 바르셀로나를 떠올릴 만큼 훌륭했던 삼자 패스로 상대 수비를 무너뜨렸지만, 슈팅 기회를 잡아낸 룰리냐는 김용대 골키퍼를 또다시 넘어서지 못했다.

그러나 포항 역시 두드리니 열렸다. 후반 35분 코너킥 상황에서 '주포' 양동현이 높은 점프력을 자랑한 헤딩슛으로 동점골을 터뜨렸다. 이날 양동현은 선발 출전했음에도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지만, 팀이 필요로 한 순간 득점을 터뜨리며, 올 시즌 K리그 최고의 공격수임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포항의 기세는 멈추지 않았다. 후반 43분에는 교체 투입된 이광혁이 울산 수비수 사이를 통과시키는 절묘한 슈팅으로 득점을 기대케 했지만, 김용대 골키퍼의 믿을 수 없는 선방에 또다시 고개를 숙였다.

만 37세란 나이를 잊고, 몸을 아끼지 않는 김용대의 활약에 하늘이 감동한 것일까. 선제골 이후 포항의 공세에 고전하던 울산이 극장골을 터뜨렸다. 교체 투입된 김승준이 페널티박스 안쪽으로 빠르게 파고들었고, 상대 수비수를 침착하게 제쳐낸 뒤 슈팅까지 연결해 골망을 갈랐다. 후반 추가 시간에 터진 매우 극적인 득점이었다.

이렇게 울산은 '동해안 더비', 그것도 원정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머쥐었다. 특히 김용대의 활약이 눈부셨다. 페널티킥을 포함해 실점이나 다름없었던 슈팅을 수차례 막아냈다. 그의 눈부신 선방이 없었다면, 승부는 일찌감치 홈팀 포항쪽으로 기울었을지도 모른다.

울산의 공격력도 대단했다. 최전방 스트라이커 이종호는 남다른 활동량과 볼에 대한 집중력을 보여줬고, 상대 수비의 강한 몸싸움에도 쉽게 밀리지 않는 강인함을 보여주면서, 울산의 확실한 '주포'의 탄생을 기대케 했다. '총알탄 사나이' 김인성은 빠른 발과 드리블로 상대 수비를 쉼 없이 흔들어줬고, 극장골의 주인공 김승준도 남다른 침착성과 결정력을 뽐내며, 선발 복귀를 기대케 했다. '에이스' 오르샤의 드리블과 날카로운 움직임 역시 여전했다.   

울산이 시즌 초반만 해도 실수가 잦던 수비에 단단함을 더했다. 오르샤에 의존하던 공격은 다양성과 날카로움이 생겼다. 그 덕에 7경기 연속 무패행진도 이어갔다. 지금의 기세가 이어진다면, 선두는 물론 리그 우승까지도 넘볼 수 있다. '명가' 울산의 진짜 시즌은 지금부터가 시작인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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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현대 VS 포항 스틸러스 동해안 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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