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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래옥 냉면, 평양냉면 매니아 중에서는 여기 냉면을 최고로 치는 사람이 많다.
 우래옥 냉면, 평양냉면 매니아 중에서는 여기 냉면을 최고로 치는 사람이 많다.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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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냉힙스터'라는 말이 나온 지도 몇 년이 흘렀다. 그 사이에 언론과 SNS에서는 평양냉면 맛집 서열 세우기가 계속되고 있고 평양냉면의 위상은 사그러들 줄 모른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평냉(평양냉면의 줄임말)을 먹어야만 미식가냐, 취향에는 위계가 없다, '면스플레인' 그만해라 등의 반론도 이미 많이 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평양냉면을 둘러싼 자부심과 면스플레인도 끝이 없다.

평냉 찬양, 혹은 평냉 찬양에 대한 비판 등 많은 이야기가 오갔지만 또 한번, 평양냉면 부심에 대한 이야기를 얹는다. 처음부터 이야기 하자면 나는 평냉힙스터도 아니며, 그렇다고 맛에 위계가 없으니 취향을 존중하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취향에는 위계가 없을 수는 있겠으나, 취향을 뛰어 넘어 절대적으로 잘 만든 맛과 못 만든 맛은 있다. 내가 의문을 품는 것은 평양냉면의 원형이 미식의 위계에서 윗단에 속하는 것인가, 그러니까 평양냉면이 미식을 가르는 절대적인 기준이 될 만한 음식이냐는 근본적인 질문이며 그와 더불어 평냉부심에 대한 일종의 비판이다.

평양냉면이 왜 '미식'의 기준이 돼야 하는가

을밀대 냉면, 매니아가 많은 곳이나, 면스플레이너 중에서는 여기 냉면을 '사파' 취급하는 경우도 있다. 특유의 '살얼음' 육수가 온도를 낮춰서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는 주장도 나온다.
 을밀대 냉면, 매니아가 많은 곳이나, 면스플레이너 중에서는 여기 냉면을 '사파' 취급하는 경우도 있다. 특유의 '살얼음' 육수가 온도를 낮춰서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는 주장도 나온다.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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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냉면 예찬론자들이 하는 말은 비슷하다. "처음에는 나도 이게 무슨 맛인지 싶었지만 이상하게 자꾸 생각나고 먹을수록 그 맛의 묘미를 깨닫게 되는 맛"이라는 것이다. 나도 이 말에는 동의한다. 고기 내음이 아주 옅게 스쳐 지나가는 차가운 국물이 즉각적으로 맛있게 느껴질리도 없고, 먹을수록 당기기는 한다. 평냉부심, 평냉힙스터는 바로 이 부분에서 탄생한다. 누구나 먹을 수는 있지만 누구나 처음부터 쉽게 즐길 맛은 아닌, '범인과 다른 나의 미각'이라는 의식 말이다.

그런데 이 '즉각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맛'이 과연 진정한 미식의 기준인가? 이를테면 잘 만든 우동 한 그릇, 약간의 소스가 적절히 묻어난 본토의 파스타 한 그릇이 많은 이들에게 '즉각적인 미식의 경험'을 선사한다고 해서 이 음식이 미식의 위계에서 낮은 단계에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물론 모든 음식은 음미할수록 제맛을 알 수 있다. 잘 만든 음식일수록 더 그렇다. 하지만 처음부터 맛있음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 미식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게다가 평양냉면이 뭐 처음 맛보는 허브의 향이라던가, 기존에 익숙하게 먹던 음식과 전혀 다른 형식의 음식이라 거부감이 드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결국 평양냉면이 처음부터 맛있다고 즉각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음식의 원형이 본래 가지고 있는 '비어있음' 때문이다.

평양냉면이 대충 만든 음식이라거나 허무함만 가득한 음식이라는 소리가 아니다. 평양냉면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노하우와 수고스러운 공정이 필요하다. 단지 원래 평양냉면이 추구하는 맛이, 그러니까 평양냉면의 이데아 자체가 '비어있음'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기육수이지만 뜨거운 상태가 아니지만 차갑게, 맑게 먹기 때문에 고기 지방의 두터움이나 감칠맛은 거의 제거된 상태다. "걸레 빤 물 냄새가 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애초에 기존 고기육수의 향과 감칠맛이 옅은 음식이다. 혀의 즐거움을 완벽하게 충족시켜 주지 못하기에, 많은 부분을 정서적인 측면에 기대야 한다. 이것이 평양냉면의 매력이다. 그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 비어있음을 개인적으로 즐기느냐 마느냐야 말로 미식의 위계가 아닌 취향의 영역이다. 미식의 측면에서 평양냉면을 평생 안 먹는다 한들 별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다.

평양냉면의 원형이 가진 비어있음이 평양냉면이 절대적인 미식의 기준이 되는 것에 대한 의문점이 된다면, 이 비어있음을 채우는 면면은 평냉부심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다.

'비어있음'을 채우는 유쾌하지 않은 전통과 '썰'

의정부 계열 냉면집인 '필동면옥'의 냉면과 수육
 의정부 계열 냉면집인 '필동면옥'의 냉면과 수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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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초적인 비어있음을 채우는 첫 번째는 전통성이다. 평양냉면이 미식가의 음식이 된 큰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한국은 전통을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막상 제대로 된 노포가 거의 없는 나라다. 100년 전통 운운할 가게가 없다.

그런데 평양냉면은 어떤가. 70년 역사의 우래옥을 필두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가게가 여럿 있다. '장충동파' '의정부파' 등 계파까지 나눌 수 있다. 이 노포들은 미식으로서의 평냉 소비에 힘을 싣는다. 그런데 이 전통에는 좋은 면도, 나쁜 면도 있다. 몇 가게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한국의 노포는 일단 식당 환경부터 쾌적하지 않다. 화장실이 불결해서 꺼려지는 곳도 많다. 전통이라는 이유로 이 불유쾌함을 좋게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다.

'원래 처음부터 이랬으니까'라는 이유로 녹색 띠가 낄 정도로 오버쿠킹해서 냄새가 나는 완숙 달걀이 올라가고 한 여름에도 철이 아닌 배가 올라간다. 왜 주는지 모르겠는 빨간 김치도 곁들여진다. 툭툭 끊어지는 메밀면의 묘미를 즐길 수 없는 몇몇 노포의 '쫄깃쫄깃'한 면발은 전통인지 한국인의 입맛인지도 모르겠다.

육수와 면의 섬세한 향에 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식당의 쇠 젓가락을 쓰지 않고 나무젓가락을 챙겨간다는 평냉힙스터들이 왜 오버쿠킹한 달걀의 역한 냄새와 화장실의 악취에는 둔한 건지 모르겠다. 전통은 개선되어야 한다. 전통이라는 이름에 너무 많은 것을 눈감고 있지는 않나.

두 번째는 평냉을 둘러싼 각종 '썰'이다. 이것은 첫 번째의 전통성과도 궤를 같이할 수 있는데 평냉을 좋아하는 이들 중 많은 이들이 각종 노포의 역사와 계파에 대한 썰을 풀기를 즐긴다. 여기에 서울 3대 평양냉면 집 등의 순위 매기기는 대중들의 갑론을박의 장이 된다. 노포의 역사와 계파에 따른 차이 등의 썰이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런데 많은 경우 이 썰에 파묻혀 맛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축소된다. 아예 없어지기도 한다.

상암동 배꼽집 냉면. 평냉계의 신흥 강자다.
 상암동 배꼽집 냉면. 평냉계의 신흥 강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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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자타공인 미식가로 인정받는 그룹과 함께 수제 햄버거를 먹을 일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그룹에서도 음식에 얽힌 각종 역사를 잘 알고 있기로 유명한 중년 남성이 햄버거가 나오기 전부터 햄버거에 얽힌 역사를 줄줄 읊기 시작했다. 햄버거의 기원이 함부르크에서 시작되었으며 뭐 어쩌고 그런 것 말이다. 질세라 이 중년 남성의 이야기에 이 사람 저 사람의 썰들이 얹어졌고 사람들은 햄버거를 먹는 내내 자신들의 '지식뽕'에 취해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들, 다양한 맛을 본다는 이유로 햄버거 종류를 여러가지 시킨 뒤 햄버거를 잘게 조각내 각자 접시에 덜어 칼로 썰어 먹었다. 햄버거는 빵과 패티, 치즈와 야채 등의 부가 재료와 소스의 합이 딱 맞아 떨어지는 것에 의의가 있는 음식이건만. 가뜩이나 요즘 유행을 따라 너무 높아 양손으로 꾹 잡고 입에 욱여넣어야 겨우 그 조합을 한 입에 맛볼 수 있는 햄버거는 접시 위에서 잘게 잘려 층층이 분리되었고, 그 분리된 것들은 하나씩 포크로 찔리는 신세가 되었다.

햄버거가 내려는 맛의 조화, 레이어를 아무도 즐기지 않았다. 맛은 배제한 채 썰만 난무하는, 한국 미식의 세계의 단면이라는 생각이 들어 식사 내내 자리가 불편했다. 햄버거가 이럴진대 평양냉면은 오죽한가. 평양냉면은 각종 썰에 무엇보다 깊이 파묻힌 음식이 되었다. 이 썰은 또한 맨스플레인의 장이 된다. 오죽하면 면스플레인이라는 말까지 있겠나.

"진정한 평냉 매니아라면 이렇게 즐겨야 한다", "xx가게를 평냉 맛집이라고 하는 이의 말은 들을 가치도 없다" 등 면스플레인의 장은 오늘도 활발하다. 평양냉면 맛집을 소개하는 기사라도 나올라치면 댓글창은 온각 면스플레이너들로 아수라장이다. 서로 비꼬기는 얼마나 비꼬는지... '평냉이 자부심이구나'라는 생각부터 먼저 든다. 자신이 최고로 친다는 평양냉면 가게는 MSG를 쓰지 않는다며 찬양하는 면스플레이너에게 "그 집 또한 MSG를 쓴다"고 말하자 그럴리 없다며 붉으락푸르락 하는 일도 있었다. 심지어 평양냉면에서 MSG의 사용을 부정적으로 얘기한 것도 아닌데...

2016 4월, 당시 여·야 3당 원내대표가 여의도 한 평양냉면 전문점에 모여서 오찬 회동을 가졌다. 그런데 만약 평냉힙스터들이 이 광경을 봤다면 "왜 평냉집에서 비냉을 먹느냐"며 원유철 의원을 욕했을지도 모르겠다.
 2016 4월, 당시 여·야 3당 원내대표가 여의도 한 평양냉면 전문점에 모여서 오찬 회동을 가졌다. 그런데 만약 평냉힙스터들이 이 광경을 봤다면 "왜 평냉집에서 비냉을 먹느냐"며 원유철 의원을 욕했을지도 모르겠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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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냉힙스터들을 넘어서면 대중적으로는 '평냉 베스트 맛집 3' 같은 순위가 존재한다. 각종 매스컴, 혹은 블로거들이 정하는 이 '서울 xx 베스트 맛집'시리즈는 순위 매기기를 좋아하며, 자신의 주관을 이야기하기를 두려워하는 한국의 습성과 딱 맞아떨어져 흥하는 마케팅 수단이 된다. "내가 먹는 음식의 맛에 대해 나의 생각을 이야기 한다"는 어떻게 보면 이 쉬운 일을 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자신의 주관이 없으니 "여기가 제일 알아주는 곳이래" "여기가 요즘 핫한 곳이래"라는 말로 한 번 방송이 탔다 하면 우르르 몰려든다. 요즘 맛을 둘러싼 SNS의 수식어 중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여기 xx 잘하네" "xx맛집" "인정" "투떰즈업"(two thumbs up, 일명 '엄지 척') 등등, '내가 이 집을 인정한다'는 정도이지 거기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 왜 맛있는지 좋은지 말하기를 무서워하고, 남의 평가에 기대거나 대충 퉁친다.

사실 이것은 나도 무서워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직업이 직업이니까 맛의 평가를 아주 객관적으로 해야 할만 같은 두려움, 객관화에 실패할까 싶은 두려움이다. 하지만 직업인으로서의 맛 평가자가 아니라면, 그 음식에 대해 자세히 혀로 맛보고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이 뭐가 그리 무서운가.

기상청이 서울과 경기도 일대에 올해 첫 폭염주의보를 내린 지난 16일 경기도 의정부 평양면옥 앞이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다.
 기상청이 서울과 경기도 일대에 올해 첫 폭염주의보를 내린 지난 16일 경기도 의정부 평양면옥 앞이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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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냉의 근본적인 빈 맛을 채우는 것에는 이 외에도 정서적으로는 이북 출신 증조부에 대한 그리움, 물질적으로는 싸구려 식초와 물겨자 등도 있지만 이런 것을 나쁘게만 보지는 않는다. 발전 없는 전통이라고 하기에는 요즘 많은 연구를 한 듯한, 평냉 신흥 강자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평냉부심'을 둘러싼 모든 것이 너무나도 한국적이며, 그 안에는 긍정적인 면만큼 혹은 그보다도 더 부정적인 면이 혼재되어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평냉부심을 버리라거나, 평냉 유행이 고쳐져야 할 무엇이라고 생각치는 않는다. 평냉이 완벽한 음식은 아님을, 그리고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평냉 맛도 모르는 애송이'라고 면스플레인 하며 우기지 좀 말라는 소리다.


태그:#평양냉면, #냉면, #평냉, #평냉힙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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