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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시골에서 살림을 도맡는 아버지로서 살림노래(육아일기)를 적어 봅니다. 아이들이 처음 태어날 무렵에는 하루하루 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보람이었다면, 아이들이 제법 큰 요즈음은 아이한테서 새롭게 배우고 아이랑 고맙게 배우는 살림이라고 느껴요. 그래서 아이와 지내는 나날은 '육아일기'보다는 '살림노래'가 어울리지 싶어요. 살림을 지으며 노래를 부르듯이 배우고 누리는 나날이라는 마음입니다. 며칠에 한 번씩 공책에 짤막하게 적어 놓는 살림노래를 이웃님과 나누면서 '살림하며 새로 배우는 기쁨' 이야기를 펼쳐 보려 합니다. (글쓴이 말)

어디에서나 무엇을 갖고도 잘 노는 아이들. '갓풀 숨바꼭질'을 하던 날
 어디에서나 무엇을 갖고도 잘 노는 아이들. '갓풀 숨바꼭질'을 하던 날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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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보다 늦게 자는데 일찍 일어나?"

며칠 앞서 큰아이가 불쑥 물었습니다. 그때에는 딱히 제대로 이야기해 주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여러모로 할 일이 많으니 그러지"하고만 대꾸했어요. 오늘 아침 문득 그 물음은 제가 어릴 적에 우리 어머니한테 여쭌 말이기도 하다고 떠올랐어요. 저도 어릴 적에 우리 어머니한테 으레 여쭈었지요.

"어머니는 저보다 늦게 주무시는데 어떻게 새벽에 그렇게 일찍 일어나셔요?"

아마 그때 어머니는 도마만 바라보면서 이렇게 얘기해 주셨지 싶습니다.

"할 일도 많고 도시락도 싸야 하니까 그러지."

우리 아이들도 앞으로 저희 나름대로 무언가 느끼거나 배울 텐데, 여기에 하나 더 배우도록 하자고 생각합니다. '어른이나 어버이는 그저 일이 많아'서 잠을 줄이지는 않는단다, 스스로 짓고 싶은 꿈이 있고 어여쁜 아이들하고 빚고 싶은 살림을 그리면서 즐겁게 몸을 놀린단다, 하고 말이지요.

연뿌리조림을 마치고 식히는 동안 밥상에 그림책 펼치기
 연뿌리조림을 마치고 식히는 동안 밥상에 그림책 펼치기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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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뿌리조림을 마친 날

큰 냄비 가득 연뿌리조림을 마친 날, 따뜻한 조림으로 밥을 맛나게 먹고서 밥상을 치우고 닦은 뒤에 그림책을 올려놓습니다. 재미있지? 재미있게 누리렴. 아직 따스한 기운이 남아서 뚜껑을 열고 식히는 연뿌리조림 곁에서 그림책 하나를 사이에 놓은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슬그머니 옆방으로 갑니다. 조용히 눕습니다. 너희 아버지는 허리를 펴야겠어.

삼천오백 원 오른 달걀 한 판

닭이 수천만 마리가 죽어 나간다는 이야기를 처음 듣던 때를 떠올립니다. 그 뒤로 달걀값은 안 떨어집니다. 반 해가 넘었군요. 아무튼 우리 식구는 달걀 한 판을 장만해 놓으면 보름 남짓 먹어요.

국을 끓이며 가끔 달걀을 풀어요. 이러다가 달걀찜을 할 뚝배기를 하나 새로 장만했어요. 뚝배기로 달걀찜을 하면 한결 맛나리라 여겼어요. 면소재지에 아이들하고 자전거를 달린 김에 가게에서 달걀 한 판을 사는데 요새 9000원을 치러요. 달걀값이 껑충 뛰기 앞서하고 대면 예전에는 5500원이었으니 삼천오백 원이 올랐네요. 달걀 한 판 값으로 갑자기 삼천오백 원이 뛴 셈이니 비싸다고 하면 비쌀 테지만, 달걀 한 판에 구천 원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리 비싸다고는 여기지 않아요.

닭이 우리한테 베푼 알을 돈이 아닌 고마운 숨결로 헤아린다면 진작에 이만 한 값으로 받아도 되었다고 느껴요.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달걀을 너무 값싸게 너무 많이 사다가 먹은 탓에 '공장 축산'이 되었고, 이 흐름이 하루아침에 크게 말썽이 되어 수천만 마리에 이르는 닭이 슬프게 죽음길로 가고야 말았지 싶어요. 더 많이 먹는 밥은 이제 멈추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즐겁고 알맞게 먹는 밥으로 거듭나야지 싶습니다.

볶는 소리를 즐기면서 살림을 짓습니다
 볶는 소리를 즐기면서 살림을 짓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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볶는 소리

밑반찬을 볶을 적에는 두 가지를 잇달아 볶습니다. 멸치든 마른새우든 불판 하나로 잇달아 볶아요. 이틀에 걸쳐 따로 볶으면 불판을 다시 닦지요. 한 가지를 볶고 나서 다른 한 가지를 볶으면 손이 더 가면서 밥상맡에 아이들하고 함께 앉지 못합니다. 그래도 부엌에서 함께 있고, 신나게 볶으면서 이 맛난 볶음을 맛나게 즐길 수 있기를 비는 마음이 됩니다. 볶는 소리에 노래하는 소리를 담습니다. 볶는 냄새에 사랑하는 이야기를 섞습니다

따라쟁이

밥상을 차려 아이들을 부릅니다. 아이들은 밥상맡에 앉아서 찐고구마랑 찐감자랑 찐달걀을 신나게 먹습니다. 작은아이한테 "젓가락으로 풀도 집어 먹고" 하고 말하니, 작은아이는 "젓가락으로 풀도 집어 먹고"를 따라합니다. "밥상맡에 얌전하게 앉고" 하니 "밥상맡에 얌전하게 앉고"를 따라해요. 옳거니, 그렇단 말이지? "아버지 사랑해" 하니 "아버지 사랑해" 하고 따라합니다. 따라쟁이 아이들은 따라하면서 하나씩 배우고, 어버이는 어버이대로 하나씩 가르칩니다.

낡은 자전거 아닌 사랑스러운 자전거를 끌면서 노는 작은아이
 낡은 자전거 아닌 사랑스러운 자전거를 끌면서 노는 작은아이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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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지 않은 자전거

저한테는 자전거가 몇 대 있습니다. 이 가운데 하나는 낡아서 더는 달릴 수 없습니다. 저하고 한몸이 되어 십만 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달려 준 자전거는 이제 저희 도서관학교 한켠에서 고이 쉽니다. 그러나 이 낡은 자전거는 어느 때부터인가 작은아이 놀잇감이 됩니다. 너무 오래 많이 달린 탓에 뼈대와 이음줄이 닳고 삭았는데, 작은아이는 제 몸보다 큰 이 자전거를 끌고 밀고 당기면서 놀아요.

작은아이가 보기에는 멀쩡하면서 멋스러운 자전거라고 합니다. 작은아이는 "왜 이 자전거는 안 타? 왜 이 자전거는 달릴 수 없어?" 하고 물어요. 아무래도 작은아이가 보기에 이 자전거는 낡은 자전거 아닌 그냥 자전거입니다. 멋스럽고 이쁜 자전거예요.

작은아이 말을 듣고서 오래도록 그 말을 곱씹습니다. 아버지가 이제 말을 바꾸어야겠구나. 이 자전거는 아버지랑 오래도록 한몸이 되어 온 나라를 누빈 씩씩한 자전거란다. 튼튼하고 아름다운 자전거야.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글쓴이 누리집(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태그:#살림노래, #아버지 육아일기, #삶노래, #아이키우기, #시골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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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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