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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철이 다가오고 있다. 최근에는 '인생은 한 번 뿐(You Only Live Once)'이라는 욜로(YOLO) 열풍을 타고 여행에 대한 관심이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그럼에도 신나게 여행을 준비할 때마다 어쩐지 뒤가 따끔거리는 느낌이 든다. 이 불편함은 무엇인지, 그 이유를 분석해보았다.

[첫 번째 훈계] "그것은 '진정한' 여행이 아니다" 

최근 몇 년 간 통계청이 실시한 국민 희망 여가 활동 조사에서 여행은 순위권을 차지했다. 많은 사람들이 원해서일까. 다른 취미보다 유독 여행에 대해선 다양한 훈계 및 훈수가 존재하는 듯하다. 대표적인 것이 타인의 여행에 대해 "그것은 진정한 여행이 아니다"라고 일갈하는 경우다.
 
꼭 여행은 진정해야하는가, 그냥 즐기고 오면 막돼먹은 여행이 되는건가 ... 고민이 깊어진다.
▲ 진정한 여행이란 무엇인가? 꼭 여행은 진정해야하는가, 그냥 즐기고 오면 막돼먹은 여행이 되는건가 ... 고민이 깊어진다.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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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포켓몬 Go'(포켓몬 고)를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지만, 2016년만 해도 속초에서만 게임할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증강현실게임이라는 이 새로운 문물을 접하기 위해 사람들은 고속버스를 타고 속초로 향했다. 관광객이 늘어나고 지역 경제가 활기를 띠었다. 속초 맛집은 포켓몬이 많이 나오는 집이라고 현수막을 걸었고, 속초시장은 이박사 가운을 입고 여행객들의 '포켓몬 사냥'을 독려했다.

하지만 이 같은 소동에 불편한 기색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한 일간지 칼럼이 대표적이다. 작성자는 스물 몇 살 때 했던 무전여행을 서술하며, 지금의 포켓몬 Go 열풍이 젊은이들에게 어떤 '실존주의적 물음'을 던지는지 물었다. 그가 했던 무전여행은 '실존주의적 물음'이 있는 여행이었는데, 지금 흙수저 세대들의 속초행은 대체 뭐냐는 거다. 그 칼럼의 타이틀은 '속초에는 아무 일 없다'였다.

이 사진은 승려 구마라습의 뒷모습이다. 그가 산스크리트어 불경을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불경으로 번역했다.
▲ 실존주의적 물음이란 무엇인가 이 사진은 승려 구마라습의 뒷모습이다. 그가 산스크리트어 불경을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불경으로 번역했다.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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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적 물음'이 무엇인지 칼럼에 자세히 나와 있지 않았지만, 여하튼 그것이 없는 여행은 여행이 아니라는 일갈. 사실 이런 훈계는 흔한 일이다. 장기여행을 다녀온 여행자에게 사람들은 여행이 즐거웠는지를 묻기보다 "여행에서 무엇을 얻었는지" 물어본다. 긴 여행에 반드시 대단한 깨달음과 인격적 성숙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자유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패키지투어를 이용하는 사람에게 "찍고 도는 게 무슨 여행이냐"며 비판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서 완주한 사람은 중간에 버스를 탔다는 사람에게 "반드시 걸어서 완주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며 깎아내리기도 한다.

사람들은 주관적 경험에 입각한 자신의 여행만이 진정한 여행이라며 목청을 높인다. 여행의 의미는 무엇인지, 왜 꼭 '진정한' 여행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없이 그저 서로 목소리를 높이는 이상 이런 불편함은 계속될 것이다.

[두 번째 훈계] "자넨 무슨 돈으로 여행하나?" 

한번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위해 바이욘에서 생장피데포드행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배낭을 멘 각국 여행자들이 많이 보였는데 한국 사람도 간혹 눈에 띄었다. 어떻게 자리를 앉다보니 한국 남자 어르신 두 분과 나, 그리고 한국 청년 한 명 이렇게 넷이 마주보며 가게 되었다. 앞으로의 도보 순례길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어르신 한 분이 갑자기 턱으로 청년을 가리키며 물었다.

"자넨 무슨 돈으로 여행하나?"

24살 청년은 얼굴이 빨개져서 "아, 저 아르바이트도 하고..." 하면서 제대로 대답을 못 했고, 이 어설픈 대답은 '요즘 청년들 문제 있다'는 어르신들의 훈계로 이어졌다. 나는 그걸 보며 큰 교훈을 얻고 그다음부터 그 어르신들을 피해 다녔다.

중세 가톨릭의 순례길에서 시작되었으나 지금 현대인에게는 성찰의 길로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한국 어르신들의 '요즘 젊은이들에 대한 분노'는 사그러들지 않나보다.
▲ 산티아고 순례길 중세 가톨릭의 순례길에서 시작되었으나 지금 현대인에게는 성찰의 길로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한국 어르신들의 '요즘 젊은이들에 대한 분노'는 사그러들지 않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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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 어르신들은 그 청년이 무슨 돈으로 여행을 하는지 궁금했을까? 그것도 턱으로 사람을 가리키며 불편하게 물어봐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나중에 한국에서 그 의문이 풀렸다. 여행기 기사엔 늘 이런 댓글이 달렸다.

"돈 많아서 여행 다니는 거 자랑하냐."
"팔자 좋은 소리 X질러놨다."

여행은 돈이 많아야 할 수 있고, 그만큼 팔자가 좋아야 한다는 인식에서 비롯한 댓글이다. 사실 꼭 돈이 많아야 여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남이 돈이 많아서 여행하든, 비트코인이 많아서 여행하든 고깝게 바라볼 필요가 없다는 거다. 자신과는 하등 상관없는 일이다.

[세 번째 훈계] "너 미래는 준비 안 해?" 

욜로(YOLO) 현상을 취재하는 기사 등을 읽어보면, 욜로족이 현실 즐기기에 집중하다가 허세적 소비에 빠지게 되고, 점점 미래를 준비하지 않게 된다는 우려를 나타내기도 한다. 이런 우려가 드러난 대표적 질문이 있다. 여행을 가려는 사람에게 "너 미래는 준비 안 해?"라고 묻는 것이다. 
 
이 말엔 여행을 허영과 사치의 풍조로 생각하고 경계하는 태도가 들어있다. 타인의 여행을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 자랑하기 위해 가는 것이라 생각하고 '보여주기 위한 여행을 한다', '허영에 찌들었다', '김치 냄새 난다'고 공격하는 것이 이에 속한다.

'한국에도 좋은 곳이 많은데 왜 외국에 가느냐?'도 비슷한 맥락의 발언이다. 이 논조는 '어차피 사치와 허영인 여행을 할 거면, 이왕이면 내수진작을 위해 국내를 여행하라'는 국산장려 운동의 정신을 이어받고 있다.

이 댓글에는 여행에 대한 대표적인 편견이 두 개나 담겨있다. 첫번째는 진정한 여행이란 배낭을 앞뒤로 매고 하는 경험위주의 여행이라는 것과 두 번째는 한국여자는 사치와 허영만 일삼기 때문에 그가 말하는 진정한 여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내 기사에 달렸던 네이버 댓글 이 댓글에는 여행에 대한 대표적인 편견이 두 개나 담겨있다. 첫번째는 진정한 여행이란 배낭을 앞뒤로 매고 하는 경험위주의 여행이라는 것과 두 번째는 한국여자는 사치와 허영만 일삼기 때문에 그가 말하는 진정한 여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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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한국 사회에선 여행도 마음 편히 떠날 수 없다. 진정한 여행을 위해선 실존적인 물음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무슨 돈으로 여행을 다니냐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하고, 허영에 찌들고 '김치 냄새' 나는, 답 없는 하루살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여행을 둘러싼 이런 엄혹한 분위기 속에서 여행을 떠나는 이들은 공연히 주눅 들 수밖에 없다. 정말 여행에 이런 엄한 잣대와 훈계가 필요할까.

각자의 인생, 각자의 도전, 각자의 여행

기자는 2014년에 실크로드를 따라 6개월간 중국과 중앙아시아, 중동 지역을 여행했다. 마지막으로 파리에서 인천행 비행기를 탔는데 옆 좌석에 60대의 한국 여성이 앉았다. 서유럽패키지로 7개국을 12일 만에 돌고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리곤 내게 물었다. "아가씨는 몇 개국이나 여행했어?" 대충 대답하고 그녀의 사진을 함께 구경했다. 사진 속의 그녀는 형형색색의 등산복을 입고 각국의 랜드마크 앞에서 빛나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과연 여행 인증샷을 찍어 주변이나 SNS에 자랑하는 것은 진정한 여행이 아닌 것일까. 대체 누가 그런 잣대를 정해놓았을까.
▲ 인증샷의 최고봉, 파리 에펠탑 과연 여행 인증샷을 찍어 주변이나 SNS에 자랑하는 것은 진정한 여행이 아닌 것일까. 대체 누가 그런 잣대를 정해놓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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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그녀가 젊었을 때는 여행할 여력이 없었을 것이다. 대부분 한국 어머니들처럼 그녀는 나이가 들어 관절이 약해진 지금에야 패키지 투어에 몸을 실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가끔 '무엇이 진정한 여행이냐'는 질문을 접할 때마다 그녀를 떠올린다. 딸을 주겠다며 기내에서 제공되는 빵과 버터를 가방에 담으며 멋쩍게 웃던.

그녀의 서유럽 7개국 12일 여행에 대해, 우리는 '실존주의적 물음이 없다'고 혹은 찍고 도는 여행이어서 진정한 여행이 아니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무슨 돈으로 여행 다니냐며, 팔자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 보여주기 위한, 허세에 찌든 여행이라고 공격할 수 있을까. 사진을 보여주며 그녀는 시종일관 행복해했다. 일정은 바빴지만 보고 싶은 여행지를 다 볼 수 있었다며.

물론 그녀의 완벽했던 서유럽 여행은 내게는 견딜 수 없이 지루한 여행 방식이다. 당시 나는 여섯 달 동안 9개국을 여행했다. 실크로드 유적을 답사하고 현지인들을 만나며 더 많은 체험을 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내 기준에서 좋은 여행은 좋은 호텔에 머물거나 랜드마크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낯선 곳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2014년 경주에서 중국을 거쳐 중앙아시아, 중동, 유럽까지 옛 비단의 여정을 따라 여행했다.
▲ 실크로드여행에서 만난 비단 짜는 소녀 2014년 경주에서 중국을 거쳐 중앙아시아, 중동, 유럽까지 옛 비단의 여정을 따라 여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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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누군가에게는 랜드마크에서 인증사진을 찍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생고생하며 긴 여행을 하는 것이 여행의 의미다. 마찬가지로 누군가에겐 미슐랭 가이드에 소개된 식당에서 미식을 즐기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겐 새로운 액티비티에 도전해 보거나 현지의 문화예술을 즐기는 것이 여행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누구든 익숙한 삶의 터전을 떠나 낯선 곳에서 오는 감각을 충실히 즐긴다면, 그리고 그것이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길을 떠나는 이유는.

우리는 모두 오늘과 내일을 위해 살아간다. 단지 차이점이라면 살아가는 방식의 변화다. 과거에는 오늘 열심히 살아서 내일이 풍요로워지는 것이 유일한 삶의 방법이라고 믿었다면, 지금은 오늘 즐겁게 살아야 내일의 삶도 즐겁게 이어나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도 생겨나고 있을 뿐이다. 욜로(YOLO)든 뭐든,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향을 따라 살면 그만이다.

각자의 인생에는 각자의 도전이 있는 것처럼, 여행도 마찬가지다. 서로 훈계할 필요도 눈치 볼 이유도 없이 여행의 다양한 형태를 인정하는 것. 지금 여름 휴가를 준비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 아닐까.

우리 각자 알아서 잘 살아보아요.
▲ 율로인들 뭔들, 여행인들 뭔들 훈계는 이제 그만~ 우리 각자 알아서 잘 살아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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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욜로여행, #YOLO, #여행꼰대, #욜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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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 여행작가. 저서 <당신에게 실크로드>, <남자찾아 산티아고>, 사진집 <다큐멘터리 新 실크로드 Ⅰ,Ⅱ> "달라도 괜찮아요. 서로의 마음만 이해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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