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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는 친구와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 대화를 나눴다. 과제가 너무 많아 힘들다는 일상적인 대화부터, 트럼프가 당선된 날 학교 친구들과 껴안고 엉엉 울었다, 캠퍼스에 '성중립 화장실'이 있는데 너무 좋다는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남자 이야기' 역시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몇 해 전부터 불고 있는 페미니즘 열풍과, 지난 대선을 기점으로 뜨거워진 성소수자 이슈 소식을 전했고 친구 역시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중이라 말했다. 특히 친구는 성차별적 시각은 한국 남성들만의 것은 아니고, 미국 백인 남성들 역시 덜하지 않다며 한탄했다.

한국과 미국에서 각자 겪어온 경험들을 주르륵 늘어놓다보니, 한국 남성과 미국 남성들은 비슷한 수준의 성차별적 사고를 지니고 있다는 판단에 이르렀다. 다만 둘의 의견이 달라진 지점이 있었는데, 꽤나 흥미로웠다. 바로 남성들이 '성매매'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고찰이었는데, 한국 남성들 사이에서는 성매매 행위가 집단화되고 문화화된 반면, 미국 남성 사회는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성매매 수요는 당연히 있지만,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은밀하게 진행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이 존재한다고 했다. 친구의 말을 그대로 빌리자면 이렇다.

"야, 남자애가 성매수 했다고 학교에 소문나면 걔 왕따 돼. 남자애들이 더 싫어하더라."

성매수 행위가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자. 다만 그것이 남성 커뮤니티의 주된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맥락을 파헤치다보면, 남성 사회를 이루는 원동력이 되는 그 단단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다. 핵심 키워드는, 남성들 간의 '연대'다.

남성들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 앞으로 저지르고자 하는 잘못에 대한 보호를 받고자 강력한 남성 연대를 구축한다.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큰 파워를 가진 알리바이로 작동하는데, 이에 대한 어떠한 반론도 제기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아름다운 비유를 하나 들어보자면, 시속 110km가 넘는 눈바람과 영하 50도를 넘나드는 극한의 추위를 이겨내고자 '허들링'을 하는 황제팽귄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들은 서로의 몸을 촘촘하게 밀착해 밖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을 이겨낸다. 이렇게 촘촘하고 단단하게 이뤄지는 남성들의 원은 이 지구를 뒤덮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의 연대가 '의리' 따위의 것으로 포장되며 항상 낭만적인 장면만 탄생시키는 것은 아니다.

치열한 변명보다 '사과할 수 있는 용기'가 먼저다

안경환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자택 앞에서 기자회견에서 소감을 밝히기 위해 기자들을 향해 걸어나오고 있다.
 안경환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자택 앞에서 기자회견에서 소감을 밝히기 위해 기자들을 향해 걸어나오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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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장관 후보자로 임명된 안경환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명예교수의 여성관이 논란이다. 안 후보자는 지난해 11월 <남자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출간했다. 남자의 '진짜 본성'을 파악하고 그 본성을 넘어 시대에 발맞춤하는 남성상을 제안한다는 내용을 담은 이 책은, 문제적 구절 투성이다.

"젊은 여성의 몸에는 생명의 샘이 솟는다. 그 샘물에 몸을 담아 거듭 탄생하고자 하는 것이 사내의 염원이다"라는 구절에서는 성매매를 하는 남성들의 심리를 '당연한 것'으로 규정했고, 성매매를 하다 현장에서 적발된 한 부장판사 사건에 대해서는 "아내는 한국의 어머니가 대부분 그러하듯이 자녀교육에 몰입한 나머지 남편의 잠자리 보살핌에는 관심이 없다"라고 평했다. TV조선은 가장 앞에 나서 안 후보자를 비판했다.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안 후보자의 저서에 대한 갑론을박이 오갔다. 후보자 본인은 16일 자처한 기자회견에서 "책 전체를 읽고 판단해달라"는 기존의 입장을 유지하며, 장관 후보자직에서 사퇴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그를 지켜봐왔거나 그와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이들은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의 동료들이 나서서 그에 대한 비판을 반박한 이유는 무엇일까? 안 후보가 평소에 정말로 '좋은 사람'이었거나, 그들 스스로 '내 남자' 안경환을 지키고자 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한인섭 교수를 비롯해, 안 후보의 법무부장관 임명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비판자들에게 충고했다. 글을 오독하지 말고, 제대로 읽어서 안 후보자가 전달하고자한 '본의'를 제대로 파악하라는 것이었다. 더불어 악의적 편집으로 안 후보를 곤경에 빠트린 TV조선은, 그를 낙마시키고자하는 정치적 의도가 다분했다고 주장했다.

영화 <피아니스트>의 대사 한 줄이 생각나는 지점이다. 피아노 연주의 원리 원칙을 중시하는 피아니스트 '에리카'(이자벨 위페르)는 그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틀린 해석보다는 잘못된 악보가 낫다". 이렇게 말하는 그녀는, 제자들의 자유로운 해석을 금하고, 슈만과 슈베르트 본연의 기교와 멜로디를 그대로 따라 하기를 바란다.

한 교수는 에리카와 같은 주장을 하는 듯 보인다. 독자들의 오독(일지도 모르는 것)이, 잘못 쓰인 악보(책 <남자란 무엇인가>)보다 나쁘다고 생각한다. 한 교수 본인의 시각으로는 독자와 언론이 해당 저서에 대한 심각한 오독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로 한 교수가 페이스북에 작성한 글을 보면, 오독이라 생각되는 부분을 '정정'하려는 치열함이 돋보이기도 한다. 안경환 후보자와 오랜 세월을 보내온 지인으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대응에는 가장 중요하고 거대한 무언가가 빠져있었다. 자신이 안 후보자를 그렇게 괜찮은 사람이라 믿고 있다면, 치열한 변명보다는 사과할 수 있는 용기를 먼저 주어야 하는 것이 옳았다.

탁현민의 사과가 실패한 이유... 반복되고 있는 문제들

앞서,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소속 탁현민 행정관의 여성관 논란도 뜨거웠다. 탁 행정관은 <남자마음설명서>라는 책에 미천한 성의식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콘돔의 사용은 섹스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등과 가슴의 차이가 없는 여자가 탱크톱을 입는 것은 남자 입장에선 테러를 당하는 기분'이라는 문장 등이 대표적으로 지적을 받았다.

탁 행정관은 논란에 곧바로 사과했다. 탁 행정관은 지난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2007년에 제가 썼던 '남자마음설명서'의 글로 불편함을 느끼고 상처를 받으신 모든 분들께 죄송한 마음을 표한다"며 "10년 전 당시 저의 부적절한 사고와 언행에 대해 깊이 반성한다. 현재 저의 가치관은 달라졌지만 당시의 그릇된 사고와 언행에 대해 깊이 반성하며 사과드린다"는 입장을 밝혔다. 비교적 빠른 대처였고, 변명 없는 담백한 사과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사과는 실패로 되돌아갔다. 잘못과 부끄러움을 모르는 그들만의 '연대' 때문이었다. 대표적인 '진보 연예인'으로 불리는 배우 문성근은 지난 7일 자신의 트위터에 "탁현민이 수고 많다"며 "국가 기념일 행사에 감동하는 이들이 많은 건 물론 문 대통령님의 인품 덕이지만, 한편 '공연기획·연출가'의 말랑말랑한 뇌가 기여한 점도 인정해야 한다"라고 썼다.

끝으로 문성근은 "그가 흔들리지 않고 잘 활동하도록 응원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탁 행정관이 잘못된 여성관으로 비판을 받고 있는 현상을 '탁현민의 수고'라고 표현했고, 논란의 논점과는 전혀 다른 지점인 '연출가의 말랑말랑한 뇌'를 언급하며 문제의 본질을 무화했다. 여성을 대하는 탁현민의 뇌가 지나치게 '말랑말랑해서' 벌어진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탁 행정관 스스로가 잘못을 시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묵묵부답인 청와대도 문제적이다. 청와대의 사과가 탁 행정관의 사과보다 먼저 이루어졌어야 했다. 탁 행정관은 청와대에 의해 '발탁'된 것이다. 청와대 인선에 대한 모든 책임은 청와대로 다시 돌아간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에 대한 언급을 완전히 피하는 방법을 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물론, 조국 민정수석, 조현옥 인사수석 모두가 조용하다.

진보를 자처하는 인사의 명분 없는 '쉴드'와, 책임을 져야하는 이들의 침묵은 결국 탁현민의 사과를 실패로 만들었다. 자신이 지지하는 사람에 대한 건강한 비판과 책임자의 사과가 함께 했어야만, 그의 사과는 비로소 완전해 질 수 있었다.

앞선 두 논란이 흥미로운 이유는, 모두가 예외 없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따분한 패턴이 이제는 지루해 질 정도로, 문제는 매번 같은 양상을 보인다.

한 남성이 잘못을 저질렀다. 그 잘못은 주로 여성혐오 논란 등 기형적인 성 인식에 관한 것이다. '지인'을 자처하는 다른 남성이 등장한다. 그를 위한 필사적인 변명을 늘어놓는다. 비판자를 비난한다. 마지막으로, 그의 인성, 남다른 업무 능력 등을 언급하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그 자리의 적임자라 확신한다.

사과의 기술을 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이러한 패턴의 연속은, 남성 연대 속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현상이고, 그것은 남성 연대의 토양을 더욱 단단히 할 것이라는 말이다. 그들의 과거 언행에 대해 최대한 선한 해석을 제공하고, 사과의 책임을 거세해버리는 것.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의 품성과 능력이라며, 논점을 무화시키는 것.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사과의 기술 보다 그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남성성을 엮어 만든 안락한 세계에서 빠져 나와 객관의 시각을 갖는 것이다.

남성 연대 속 강경화와 '위안부' 피해자들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는 최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방문했을 당시 받은 배지를 달고 7일 국회 인사청문회에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위안부 문제 해결 방향에 대해 강 후보자는 "앞으로 나아가는 데 모든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며 "피해자들은 물론 단체, 정부와 국민들, 의원님들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주 금요일 광주 '나눔의 집'을 방문했을 때 피해 할머니께서 달아주셨다"며 가슴에 단 배지를 가리킨 강 후보자는 "이 배지를 달아주신 할머니의 마음을 담아서..."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궁극적으로 일본의 진정성 있는 조치, 피해자들의 마음에 와 닿는 조치가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그런 방향으로 적극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옷깃에 돋보인 '배지'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는 최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방문했을 당시 받은 배지를 달고 7일 국회 인사청문회에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위안부 문제 해결 방향에 대해 강 후보자는 "앞으로 나아가는 데 모든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며 "피해자들은 물론 단체, 정부와 국민들, 의원님들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주 금요일 광주 '나눔의 집'을 방문했을 때 피해 할머니께서 달아주셨다"며 가슴에 단 배지를 가리킨 강 후보자는 "이 배지를 달아주신 할머니의 마음을 담아서..."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궁극적으로 일본의 진정성 있는 조치, 피해자들의 마음에 와 닿는 조치가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그런 방향으로 적극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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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잘못을 해도, 나를 예쁘다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남성들에게 또 다른 남성은 그런 역할을 해왔으나, 여성들에게 허락된 관계는 없었다.

강경화 외교부장관후보자는 낙마할 뻔했다. 자녀의 위장전입 의혹 때문이었는데, 강 후보자는 청문회장에서 스무 번이 넘는 사과를 해야 했다. 문재인 정부 스스로가 '위장전입'을 5대 불가 원칙으로 내세웠기 때문에 할 말은 없다만, 유독 강경화에게만 가혹한 시간이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강 후보자에게 자녀 위장전입 논란이 일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그녀가 자녀의 교육에 더욱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엄마'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탁현민과 안경환의 명백한 차별적 발언에 대해서는 모든 가능성을 덧붙여가며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도록 도왔지만, 강경화를 위해 나서는 이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기득권 연대체 밖의 사람이었고, 엄밀히 말하면 여성이라는 이유로 기득권 생태계에 훼방을 놓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강 후보는 기진해져갔다.

곧 '사과의 달인'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연신 고개를 숙여대던 강경화에 손을 내민 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었다. 지난 8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강경화 후보자가 꼭 외교부 장관이 돼서 한일 위안부 합의 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도와달라"며 "강 후보자는 장관도 되기 전에 할머니들을 찾아 위로해준 고마운 사람"이라는 간절한 지지를 전달했다.

이날의 장면은 앞선 두 남성연대와 대비를 이뤄 더 큰 의미를 갖게 됐다. 강 후보자에 대한 정치권의 난타전이 집중된 가운데, 일반 시민, 성범죄 피해 경험이 있는, 여성들이 직접 나섰다. 기득권 정치권에서 변방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여성을 위해 다른 여성들이 직접 나선 것이었다. 일본 사회학자 우에노 치즈코는 "여성 간의 호모소셜은 성립할 수 없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애초에 사회적 약자층을 이루는 여성들의 연대는 그다지 강력한 힘을 갖지 못한다는 통찰이다. 결과론적으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강경화 후보자 지지선언은, 정국에 큰 영향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자의 연대가 기존 남성 연대 질서에 작은 울림을 던지는 장면은 다각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다시 일상이다. 며칠 전, 남자 여럿과 술자리를 함께했다. 자리에 함께 있던 한 남성이 지인 여성의 얼굴을 평가하거나 대상화하는 대화를 시작했다. 자리의 유일한 여자였던 나는 불쾌했다. 그런 이야기는 하지 말아 달라 지적했다.

그러나, 도리어 혼쭐이 난 것은, 그 혐오를 내뱉은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지적한 내가 되었다. 오랜만에 모여서 재밌게 노는데 왜 초를 치냐. 술자리에서까지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야했냐. 가장 주도적으로 여성 대상화 하는 발언을 하던 사람은 '잘 한다 형'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합당하다 생각했던 지적은, 그들이 이루는 단단한 벽 앞에서 아스라졌다. 나는 그들과 다른 성별을 가졌기에 구분 당했고, 그 구분은 그들의 잘못에 어떠한 반발도 할 수 없는 장애물로 작용했다. 숨이 막혔고, 볼때기가 욱신거렸다.

이렇듯 일상에서나, 정치에서나 남성들의 진하디 진한 상호작용은 무섭도록 촘촘하게 존재한다. 그것에 균열을 내는 것은 여성들에게 쉬운 일이 아니다. 남성 스스로 박차고 나와야 한다. 잘못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하고, 사과할 줄 알아야 하고, 건강한 비판을 건넬 줄 알아야 한다. 남성 연대의 아늑한 달콤함을, 뱉어버릴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할 때가 왔다.


태그:#안경환, #법무부 장관,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 #문재인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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