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엘르> 포스터.

영화 <엘르> 포스터. ⓒ 소니 픽쳐스


프랑스 최고 여배우 이자벨 위페르의 주연 작 <엘르>가 개봉했다. 감독은 <원초적 본능>, <로보캅>등으로 유명한 폴 버호벤이다. 제작비 820만 유로가 투여되었으며, 프랑스에선 이미 2016년 5월에 개봉한 작품으로 프랑스에서 63만 명의 관객을 모았었다. <베티 블루 37.2>의 원작자 필립 지앙의 소설 <오…>를 영화화한것이다. 영화는 74회 골든 글러브에서 여우주연상과 외국어작품상을 수상했다.

절친 안나(앤 콘시니)와 함께 게임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미셸(이자벨 위페르). 그녀는 중년의 나이에도 여전히 매력적이다. 한가로이 식사를 즐기려던 어느 날 괴한이 집에 침입하고 그녀는 강간을 당한다.

당당한 그녀

하지만 그녀는 아무렇지 않다는 일상에 복귀하고 담담하게 전 남편 리처드(샤를스 베를링)와 친구들 앞에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이야기한다. 경찰에 신고하라는 친구들의 말을 무시하고 그녀는 사건을 덤덤히 넘기려 한다. 그런데 강간범이 계속 그녀 곁에 흔적을 남기면서 그녀는 분노의 복수를 준비한다.

<엘르>는 검은 옷에 검은색 스키마스크를 착용한 남성이 한 여성을 때려눕히고 강간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녀의 다리사이에선 피가 흐르기까지 한다. 그런데 다음 상황이 이상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성폭행 범이 사라진 뒤 그녀는 울음을 터뜨리거나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다. 그저 차분히 옷을 고쳐 입고 바닥에 떨어져 깨진 접시들을 치운 뒤 조용히 욕조에 몸을 담근다.

당혹스러울 정도로 폭력적인 상황을 첫 프레임에 담아내며 시작한 <엘르>는 곧이어 미셸의 아이러니한 행동을 보여주며, 자연스레 관객에게 기묘한 분위기와 의구심을 던져준다. 그리고 미셸이라는 복잡 미묘한 캐릭터의 정체를 하나씩 공개하며 흥미를 더해간다. 27명을 살해한 사이코패스의 딸인 미셸. 자신은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의 남편과 불륜관계를 저지르면서도 딱히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다. 그러면서도 전남편이 젊고 예쁜 여자를 만나는 것을 참을 수 없어 한다. 게다가 그녀는 매력적인 앞집 유부남을 망원경으로 훔쳐보며 자위까지 한다.

독특한 캐릭터와 어지러운 주변 상황을 함께 제시하며 영화는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39년 전 27명의 이웃을 잔인하게 살해한 아버지의 가석방 심사 뉴스는 그녀의 트라우마를 건드리며 괴롭힌다. 또한 철없는 외동아들 뱅상은 임신한 여자 친구 조시와 동거를 시작하려하는데, 조시는 분노조절장애 증상을 보이고 있어 미셸을 연신 당혹시킨다. 게다가 미셸의 엄마는 어린 남자와 재혼 하겠다며 미셸의 심기를 건드린다. 여기에 더해 직장에선 미셸의 얼굴이 합성된 여성캐릭터가 괴수에겐 강간당하는 동영상까지 유포된다.

영화의 미덕

 <엘르> 속 여성 캐릭터는 주체적인 데 반해 남성은 매우 지질하다.

<엘르> 속 여성 캐릭터는 주체적인 데 반해 남성은 매우 지질하다. ⓒ 소니픽쳐스


이렇게 <엘르>는 설명하기 힘든 캐릭터와 복잡한 상황들을 원색적이면서도 아이러니하게 보이며 진부함과는 거리를 두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약간의 반전이 배치되어 있는 결말도 묘한 여운을 남긴다.

<엘르> 가장 큰 매력은 이자벨 위페르의 뛰어난 연기에 있다. 그녀는 세계3대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쉽게 정의를 내리기 어려운 미셸이란 캐릭터를 과감하고 섬세한 연기로 완성시키면서 관객을 설득시키려 한다. 앤 콘시니와 버지니아 에피나 등 다른 조연들의 연기도 훌륭하다. 적은 분량의 캐릭터들이 하나하나 기억에 남을 정도로 인상적인 연기를 보인다.

영화가 내포한 강한 메시지도 주목할 만하다. <엘르>는 매우 극단적인 페미니즘 드러내고 있다. 주변 인물들에 의해 현실과 사이버 세상에서 모두 강간을 당한 미셸 통해 어디서나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현대 여성의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주목할 점은 강한당한 이후 미셸의 태도다. 불쾌하지만 두려움 떨거나 어둠속에서 시간을 보내지 않고 당당하게 복수해 나간다는 점이다.

미셸은 남성으로 대표되는 공권력에 도움을 받지 않고 현실과 사이버상의 강간범을 모두 직접 찾아 나선다. 특히 남성을 이용하여 강간범에 복수하는 그녀의 방식에는 남성의 약점과 여성의 강점이 잘 드러나고 있기도 하다.

이런 미셸과 대비되는 그녀의 주변 남자들은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그리고 있다. 아버지는 살인의 역사를 쓴 인물이고, 전남편은 무능하고 지질하다. 아들은 철없다. 미셸의 섹스파트너는 색마일 뿐이다. 그리고 미셸 엄마의 재혼상대는 돈만 보고 노인네와 결혼하려고 하는 한량이다.

이렇게 영화 속 남자들은 긍정적인 캐릭터가 하나도 없다. 이 과한 설정은 실제 이런 남자들 틈바구니에서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에게 미셸이 정답이라고 얘기하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미셸에게 남자들은 의지해야하는 대상이 아니다. 그녀에게 남자란 단순한 존재이며 때로는 이용해 먹는 존재일 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구건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zigm)와 포스트(http://post.naver.com/zig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엘르 이자벨 위페르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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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의 아빠이자 영화 좋아하는 네이버 파워지식iN이며, 2018년에 중소기업 혁신대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보안쟁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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