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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의 고층 아파트 화재 사건을 보도하는 BBC 뉴스 갈무리.
 영국 런던의 고층 아파트 화재 사건을 보도하는 BBC 뉴스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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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의 고층 아파트 화재로 인한 사망자가 17명으로 늘어났다.

영국 BBC에 따르면 15일(현지시각) 런던 경찰청은 "현재까지 17명의 사망을 확인했다"라며 "그러나 중상자와 실종자가 많아 사망자는 훨씬 더 늘어날 것(will be more)"이라고 밝혔다.

전날 새벽 대형 화재가 발생한 런던 서부 래티머 로드의 27층짜리 아파트 '그렌펠 타워'는 200여 명의 소방관이 16시간 넘게 진압 작전을 펼친 끝에 모든 불씨가 꺼지면서 검게 그을린 처참한 민낯을 드러냈다.

그러나 건물 안에 여전히 연기와 유독가스가 남아 있어 수색 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종자 수색 작업이 완전히 끝나면 사망자가 최소 100명이 넘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불 나면 집 안에 머물러 있으라" 권고 논란

영국을 충격에 빠뜨린 이번 화재는 '예고된 인재'(人災)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영국인들은 유럽 최대의 금융 도시인 런던에서 후진국형 참사가 벌어졌다는 것에 분노하고 있다.

특히 그렌펠 타워가 주로 서민층이 거주하는 임대형 아파트인 데다가 최근 부실한 리모델링 공사로 화재를 비롯해 사고 위험을 우려한 주민들의 민원이 많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여론이 들끓고 있다.

1974년 완공한 그렌펠 타워는 불과 2년 전 860만 파운드(약 123억 원)를 들여 리모델링 공사를 마쳤다. 그러나 건물 외벽을 감싸는 피복(cladding)이 가연성 소재여서 불길이 더 거세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렌펠 타워의 한 주민은 "그런 값싼 피복은 독일이나 스칸디나비아 국가가 아닌 영국에서나 쓰는 것"이라며 "영국 정부는 우리 같은 서민에게는 관심조차 없다"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화재 당시의 그렌펠 타워를 보여주는 소셜미디어 갈무리.
 화재 당시의 그렌펠 타워를 보여주는 소셜미디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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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는 건축 전문가들을 인용해 "그렌펠 타워에 사용한 피복은 아랍에미리트, 호주 등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 사건 때 발견됐던 것과 동일하다"라며 "저렴하지만 화재에 취약한 소재"라고 설명했다.

이어 "런던 시의 건축물 규제 당국이 리모델링 공사 당시 너무 저렴한 피복 소재를 사용하지 말라고 권고했으나, 시공업체 측이 이를 무시하고 가장 저렴한 소재를 낙찰해 사용했다"라고 전했다.

또한 그렌펠 타워는 비상 상황 대비도 취약했다. 실제 불이 났을 때 화재 경보가 울리지 않았고, 스프링클러조차 없었다. 주민들의 대피를 위한 비상계단도 한 곳밖에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평소 불안감을 느낀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했으나 개선된 것은 없었다. 한 실종자의 가족은 "600여 명이 거주하는 아파트에 스프링클러가 없고, 불이 나서 건물이 다 타버렸다"라며 "(실종된 가족을)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고통스럽다"라고 호소했다.

무엇보다 아파트 관리업체가 주민들에게 불이 나면 실내에 머무르라는 대응 방침을 전달한 것이 논란이다. 3년 전 주민들에게 배포한 안내문에는 "아파트에 화재가 났을 경우 자신의 집에서 불이 난 것이 아니면 밖으로 나오지 말아야 한다"라고 되어 있다.

사디크 칸 런던 시장은 "화재가 발생하면 실내에 머물러 있으라는 권고는 대단히 잘못된 것"이라며 "그렌펠 타워에서도 권고를 따르지 않고 탈출한 주민들은 대부분 살았다"라고 지적했다.

33시간 만에 현장 찾은 메이 총리... '비난 봇물'

화재 발생 후 뒤늦게 그렌펠 타워 현장을 방문한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를 보여주는 소셜미디어 갈무리.
 화재 발생 후 뒤늦게 그렌펠 타워 현장을 방문한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를 보여주는 소셜미디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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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뒷북' 대응도 구설에 올랐다. 메이 총리는 화재가 발생하고 33시간이 지난 이날 오전 10시께 그렌펠 타워 현장을 찾았고, 집을 잃은 주민들과 희생자· 실종자 가족은 만나지도 않고 돌아갔다.

언론과 소셜미디어에서는 메이 총리가 턱에 손을 괴고 무성의한 자세로 소방 당국 간부들의 설명을 듣는 사진을 공유하면서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소방 당국은 안전상의 이유로 진화 작업이 완전히 끝난 뒤 메이 총리가 현장을 방문했다고 해명했으나 소용없었다.

누리꾼들은 진화 작업에 지친 소방관들의 사진을 공유하며 "메이 총리는 가장 먼저 희생자·실종자 가족들을 만나서 위로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진화 작업을 펼친 소방관들을 격려해야 했다"라고 지적했다.

야당인 노동당 제러미 코빈 대표는 "지난 2009년 6명이 숨졌던 런던 남부 캠버웰 화재사건 당시 고층 아파트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으나 정부가 무시했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영국에 수천 개의 아파트가 있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며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것에 대해 깊은 분노를 느낀다"라고 강조했다.

비난 여론이 심상치 않자 메이 총리는 이번 화재에 대한 공식 조사(public inquiry)를 지시했다. 메이 총리는 성명을 통해 "화재의 원인, 결과, 책임 등의 질문에 답하기 위한 전면적인 조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지 언론은 최근 총선에서 보수당이 과반 의석을 상실해 가뜩이나 입지가 흔들리는 메이 총리가 이번 사태로 최대의 정치적 위기에 몰렸다고 전했다.

런던 고층 아파트 화재 진압을 끝내고 지친 영국 소방관들의 사진을 공유하는 소셜미디어 갈무리.
 런던 고층 아파트 화재 진압을 끝내고 지친 영국 소방관들의 사진을 공유하는 소셜미디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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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영국, #런던 화재, #그렌펠 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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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냉탕과 온탕을 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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