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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를 유유히 흐르는 일 강을 건너면 알자스 박물관이 나온다.
▲ 스트라스부르크 일 강 시내를 유유히 흐르는 일 강을 건너면 알자스 박물관이 나온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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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북동부, 라인 강 서안의 평야지대에 자리 잡은 알자스(Alsace) 지역은 독일과 국경을 길게 접하고 있다. 이 알자스 지역은 오fot동안 분쟁을 겪으며 프랑스와 독일의 문화가 복잡하게 융화된 곳이다.

그래서 알자스에서는 다양한 문화가 섞이면서 알자스만의 특별한 문화와 다양한 풍경이 형성되었다. 알자스는 독특한 문화의 바탕 위에서 맛있는 음식과 대표적인 포도주 산지로 알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전통문화를 잘 보존하고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알자스의 중심지인 스트라스부르(Strasbourg)에 도착해 알자스 박물관(Musée alsacien)을 찾아가 봤다. 알자스 사람들의 삶이 가장 잘 담겨 있는 곳이다.

아름다운 꼴롱바주 건물로 만들어진 따뜻한 분위기의 박물관이다.
▲ 알자스 박물관 건물 아름다운 꼴롱바주 건물로 만들어진 따뜻한 분위기의 박물관이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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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스부르 대성당에서 출발해 구텐베르크 광장(Place Gutenberg)을 지난 후 남쪽으로 조금 더 내려갔다. 스트라스부르를 싸고 유유히 흐르는 일(Ill) 강을 건너자 알자스 박물관이 나타났다. 박물관을 바라보는 일 강 주변에는 스트라스부르의 풍광을 즐기려는 젊은이들이 모여 있었다.

르네상스 시대에 알자스 전통의 반목조로 만들어진 가옥이 알자스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전형적인 중세시대 목조건축 방식인 꼴롱바주(Colombage) 건물이었다. 길가에 주택 같이 보이는 건물 1층에 가까이 가서야 이 건물이 박물관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알자스 박물관의 간판은 마치 작은 상점의 간판같이 조그마했지만, 전통복장을 입은 알자스 인 모형이 간판 위에 서서 여행자들을 안내하는 듯했다. 박물관의 간판도 굳이 크고 우람하게 꾸미지 않는 프랑스인에게서 삶의 여유가 느껴졌다.

백십 년 전인 1907년 처음 문을 연 알자스 박물관은 1917년 스트라스부르시가 관리하게 되면서부터 박물관 규모가 더욱 커졌다. 이 민속 박물관은 알자스 지방의 다양한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여러 사람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건물 자체가 유적인 박물관, 옛 모습 그대로 남겨져

운치 있는 목제 가구들이 포근함을 느끼게 해 준다.
▲ 알자스 가옥의 거실 운치 있는 목제 가구들이 포근함을 느끼게 해 준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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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입구에서 입장료를 내고 받은 입장권을 지하철 개찰구 같은 곳에 넣고 전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나무 기둥으로 틀을 잡고 회반죽으로 기둥 사이가 채워져 있었다. 전시장으로 쓰이고 있는 가옥은 그동안 여러 번의 개조작업을 거쳤는데, 알자스의 각 지역, 즉 보주산맥(Vosges Mts.) 지역, 평야의 농업지역, 포도 재배지 등 여러 곳의 건축 특색이 다양하게 반영돼 있다.

잘 지어진 이 박물관은 건물 자체를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박물관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내부의 전시실에는 다양한 공간이 여럿 있었고, 나무 계단과 복도로 이어진 전시실들이 독특한 알자스만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박물관의 3개 층 전시실을 구석구석 돌아보기 위해 계단을 올라갔다. 박물관 내부에는 놀랍게도 총 5천여 점에 이르는 알자스 지역 문화 유물들이 전시실마다 가득 전시되어 있었다. 알자스의 전통문화를 알기 쉽게 보여주는 의상 등의 민속유물, 그릇 등의 식생활용품, 가구, 공예품, 장식물, 미술품, 문헌이 다양하게 전시돼 있었다.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다음 전시실의 문을 열며 알자스의 문화를 구경했다. 알자스 인의 생활이 배어 있는 옛 시절 생활용품들을 보면서 다른 박물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알자스 지방 특유의 따뜻함을 느꼈다.

전시관 자체가 옛 알자스 가옥이다 보니 과거에 쓰던 가구와 여러 민속용품이 그대로 남겨진 듯했다. 복원품으로 재현해 놓은 박물관이 아니라, 옛 모습이 그대로 옮겨진 '삶의 공간'인 것이다.

알자스 가옥의 거실로 들어서자 반지르르한 나무 바닥 위에 수백 년 동안 사용한 목제 가구들이 가득 차 있다. 마치 나무 가구 전시장 같은 모습이다. 알자스 지방 귀족들이 사용하던 이 가구들은 사팽(sapin)이라는 전나무로 만들어졌다. 특히 거실의 코너를 장식하고 있는 하늘색 장식장은 집으로 가져오고 싶을 정도로 탐이 났다.

모두 나무로만 만들어진 방 안에 들어와 있으니 마치 오두막에 들어와 있는 듯한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사람이 사는 집에 들어와 남의 집을 구경하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집 구경하기 좋아하는 아내가 함께 구경을 왔더라면 정말 살아보고 싶은 집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가운데 뚫린 의자에 앉아 아이 낳았던 알자스 여인들

이 높고 푹신해 보이는 침대 위에서 자면 아늑할 것 같다.
▲ 알자스 가옥 침대 이 높고 푹신해 보이는 침대 위에서 자면 아늑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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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크고 아름다운 난방기구는 음식 조리용으로도 사용된다.
▲ 난방기구 이 크고 아름다운 난방기구는 음식 조리용으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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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실의 침대는 옷장과 함께 벽에 붙어 있다. 이 침대와 옷장들은 알자스에서 백 년 넘게 살아온 것들이다. 침대의 이불과 커튼은 투박한 체크무늬로 만들어졌는데, 이불이 두꺼운 거로 보니 알자스 지방이 겨울에는 꽤 추운가 보다.

이불이 푹신푹신해서 편안하고 아늑해 보이는 침실이다. 침대는 사람의 허리 높이 정도로 높아서 자다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꽤 아플 것 같다. 침대에 한 번 누워보고 싶었지만 밖에서만 볼 수 있어 아쉬웠다.

옛날 모습 그대로인 난방기구들도 거실 한쪽에서 다양한 옛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덩치 큰 난방기구들은 운치 있는 세라믹으로 만들어졌다. 짙푸른 초록색과 푸른색 도기 위에 예쁜 도안이 그려진 난방기구는 집 안에서 여러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난방기구는 벽난로처럼 집 안에 온기를 퍼트리는 알자스식 난방 시스템으로, 벽면에 뚫려 있는 구멍을 통해 건너편의 부엌으로 열을 효과적으로 전달시키는 방식이다. 연결 파이프를 통해 데워진 연기를 보내 고기를 훈제시키는 등 음식 조리에도 사용됐다.

알자스의 산모들은 앉는 곳이 뻥 뚫린 의자에 앉아 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 분만의자 알자스의 산모들은 앉는 곳이 뻥 뚫린 의자에 앉아 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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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을 잇는 복도와 계단을 나오면서 만나게 되는 아름다운 가운데 뜰이다.
▲ 박물관의 안뜰 전시관을 잇는 복도와 계단을 나오면서 만나게 되는 아름다운 가운데 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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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박물관에서 만난 가장 놀라운 전시물은 바로 이상하게 생긴 의자였다. 앉는 부분이 꼭 변기처럼 뚫려있는 이 의자는 산모들의 출산용 의자였다. 

앞쪽에 있던 두 관람객이 이 의자를 가리키며 영어로 나누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예전에 알자스의 산모들은 이렇게 생긴 목조의자에 앉아 아이들을 낳았어."

"저 의자에 앉아서 어떻게 아이를 낳았는지 모르겠는데? 믿을 수 없어. 산모들이 앉아서 아이를 낳으면 너무 불편하지 않았을까? 아이를 낳을 때 힘을 주기에는 효과적일 것 같기는 한데 앉아있으니 힘들지 않았을까?"

알자스 인이 지금 사는 것만 같은 흥미로운 전시실들은 지하부터 3층까지 'ㄷ'자 모양 형식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다른 층의 전시실로 이동할 때에는 계단이 바깥에 있어서 외부 복도로 나가야 했다. 박물관 동선이 갑갑한 일직선이 아니어서 마음이 편했다.

전시관 동선을 따라 다니며 한 번씩 바깥으로 나가 틈틈이 시원한 공기도 마시고 바람도 쐬었다. 박물관 건물 가운데는 'ㅁ'자 형태로 뚫려 있는데, 그곳에 있는 넓고 예쁜 중앙 뜰의 독특한 분위기가 시선을 잡아끈다. 마당과 나무 계단에는 자유로운 새들도 날아들었다. 가운데 마당을 보다가 하늘을 올려다보니 마치 알자스의 마을처럼 파랬다. 그날의 하늘이 알자스의 집들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입'에서 나온 곡물가루로 빵 만든 이유

빵과 쿠키 틀을 보면 알자스 인들이 다양한 식생활을 했음을 알 수 있다.
▲ 빵과 쿠키 굽는 틀 빵과 쿠키 틀을 보면 알자스 인들이 다양한 식생활을 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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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전시관 안으로 들어와서 보니 알자스 가옥의 부엌이 나온다. 엄청나게 크게 구운 빵 여러 개가 천장에 먹음직스럽게 걸려있다. 19세기 프랑스에서는 한 달에 한두 번 빵을 크게 만들어서 오랫동안 두고 먹었다고 한다.

그 아래에는 빵 만드는 커다란 틀이 전시되어 있다. 모양이 왕관 모양으로 생긴 빵틀은 분명히 알자스의 유명 빵인 구겔호프(Gugelhopf)를 만드는 틀일 것이다. 커다란 빵틀에서 김이 솔솔 나는 큰 빵이 구워져 나오면 누구나 마음이 뿌듯했을 것만 같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흰 밀가루로 만든 빵이 비쌌기 때문에 흰 밀가루 빵 대신 다른 곡물이 들어간 빵을 주로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전시된 빵 모형도 표면이 거칠고 진한 갈색이었다. 어쨌든 다양한 모양의 빵틀이 있는 걸 보면, 주식인 빵의 모양을 다양하게 만들어 먹었을 정도로 알자스 인의 식생활은 어느 정도 풍족했을 것 같다.

알자스의 부엌에는 다양한 쿠키 틀도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나뭇잎, 시계, 별 등 독특한 모양의 쿠키를 만들어 먹었음을 알 수 있다. 쿠키가 다양한 문양과 무늬로 먹음직스럽게 찍혀 나오니 쿠키를 만드는 사람이나 먹는 사람이나 지루하지 않았을 듯하다.

쿠키 틀 옆에는 와플을 만드는 철제 틀도 있는데, 우리나라의 붕어빵을 만드는 틀과 똑같이 생겨서 웃음이 나왔다. 와플의 모양도 요새와 같은 격자 모양으로 되어 있어서 전혀 생소하지 않다.

제분기 장식에 사용된 인물 모양 문양이 익살스럽다.
▲ 제분기계 문양조각 제분기 장식에 사용된 인물 모양 문양이 익살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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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독특한 문양을 가진 장식물들이 제분 기계에 달려 있었다. 제분 기계에서 갈린 곡물가루가 나오는 부위를 꾸미던 장식물들을 따로 모아두었는데, 모두 사람의 얼굴 모양이었다.

왜 제분 기계의 입구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알자스 지방에서는 곡물가루가 나오는 입구를 흉측하면서도 험상궂은 사람들의 얼굴로 조각했는데, 밀가루 등을 조각상의 입으로 나오게 함으로써, 곡물로 생길 수 있는 질병과 악한 기운을 막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정말 살아있는 사람처럼 만든 조각상의 벌린 입을 통해 밀가루가 나온다고 생각하니 그 감각이 참으로 돋보였다.

가톨릭 신자와 기독교 신자는 서로 혼인할 수 없던 사회

검은색 계열의 의상에 특이하고 거대한 리본 장식을 하고 있다.
▲ 알자스 여인의 의상 검은색 계열의 의상에 특이하고 거대한 리본 장식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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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자스 박물관의 '하이라이트' 알자스 여인들이 입던 의상이었다. 전시관에서는 알자스 지방의 전통의상을 입고 알자스 인을 재현한 마네킹들이 집안 곳곳에 서서 손님들을 맞고 있었다. 식탁 앞 대형 액자에는 알자스 전통 혼례복을 입은 여인이 손을 모으고 있는데, 검은색 복장에 온몸과 머리를 화려한 꽃으로 장식한 모습이었다.

다른 방 곳곳에서도 알자스 여인들의 의상과 장식품을 볼 수 있는 전시가 눈에 띄었다. 당시 여인들은 대부분 검은색과 짙은 남색 의복에 화려하면서도 거대한 장식용 리본을 머리에 착용하고 있었다. 알자스의 여인들은 미사를 드릴 때도 전통의상을 입고 화려한 머리 장식을 달았다고 한다.

머리 장식용 리본인 '그랑 뇌(grand noeud)'가 참으로 독특했다. 알자스 지방은 머리 위에 커다란 리본을 두르고 검은 드레스를 입는 것이 전통 의상이었다. 그랑 뇌는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품격 있게 전통의상과 잘 어울렸다.

한복 등 한 가지 전통의상으로 통일됐던 우리나라와 달리, 프랑스는 지방마다 고유의 전통 의상을 다르게 입었다. 특히 여러 종파가 공존하는 알자스 지방은 자신이 믿는 종교에 따라 옷이 달랐다.

여인들의 의상은 자신의 신분을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했다. 전시실 설명문에 따르면, 당시 알자스에서는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끼리의 결혼이 사회적으로 비난받았기 때문에, 결혼 적령기의 여성들은 의상으로 자신의 종교를 명확하게 나타냈다고 한다.

특히 당시 알자스에서는 젊은 여성의 치마 색이 곧 종교를 나타냈다. 알자스 여성들은 주로 검정 치마를 입었지만, 가톨릭 신자인 여성들은 빨간 치마, 기독교 신자는 녹색 치마를 착용했다. 보수 가톨릭 집안의 청년 남성이 결혼하고 싶은 여인을 만났는데, 그녀가 녹색 치마를 입고 있으면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이다.

옷의 색상으로 신분을 나타내던 사회. 다른 종교를 믿고, 다른 색상의 치마를 입고 있는 여인과의 결혼이 비난받던 사회. 그 안에서 살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숨 막히는 신분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아름다운 의상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들으니 옛 알자스 사람들의 삶이 피부로 느껴지는 듯했다. 아름답게만 보이던 알자스 인의 삶 속에도 어려운 문제와 고난이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박물관 지하의 전시실까지 모두 둘러본 후 중앙 뜰에 나와 잠시 휴식을 취했다. 아름다운 목제 난간으로 둘러싸인 복도와 목재 골조가 드러난 꼴롱바주 건물이 4면에서 둘러싸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올려다본 네모난 하늘은 파랗게 빛나고 그 위로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여행기 약 520 편이 있습니다.



태그:#프랑스, #프랑스 여행, #스트라스부르, #알자스 박물관, #알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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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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