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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36조 제1항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

1938년 헨리 터너(Henry Turner)는 후에 터너 증후군(Turner syndrome)이라 불리게 되는 염색체 이상증세를 보고했다. 곧 의학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그들이 절대적으로 믿고 있던 성별 구분의 과학적 합리성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성염색체는 X와 Y의 두 가지가 있는데 X와 X가 만나 XX 조합을 구성하면 여성, X와 Y가 만나 XY 조합을 구성하면 남성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터너증후군은 성염색체가 X하나였다. 그러면서도 외부 생식기는 여성의 그것이었다. XX가 아님에도 여성인 존재가 발견됨으로써 여성은 XX라는 기존 의학계의 공식이 깨진 것이다. 그러나 주류 의학계는 Y염색체가 존재해야 남성이기 때문에 X염색체만 가진 터너 증후군이 X와 Y염색체에 따라 성별이 결정된다는 원칙의 예외가 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4년 뒤 의학계는 다시 한 번 난감한 상황에 봉착했다. X, Y 염색체가 모두 존재하는 성염색체 이상증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1942년 해리 클라인펠터(Harry Klinefelter)는 XXY로 염색체가 구성된 사례를 발견했다. 클라인펠터 증후군(Klinefelter syndrome)이라 불리게 된 이 증상은 남성의 생식기를 가지고 있지만 고환이 작고 체모가 거의 없는 특징을 보인다. 유방이 비대해져 여성과 같은 유방을 가지기도 한다. 남성은 XY 구성의 염색체를 가지고 있다는 원칙이 깨짐과 동시에 Y염색체가 있음에도 여성적 특징이 나타나는 클라인펠터 증후군은 Y염색체의 존재가 남성을 결정한다는 주장을 위협했다.

X나 XXY의 성염색체 조합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XX와 XY라는 염색체의 구성이 인간을 남성과 여성으로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는 신념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님을 밝혀냈다. 그럼에도 인간이 남성과 여성으로 엄격히 구분 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이들은 Y염색체의 존재나 외부 생식기의 형태를 통해 남성과 여성을 구분할 수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런데 이들의 주장은 클라인펠터 증후군에 의해 다시 한 번 깨지고 말았다.

클라인펠터 증후군 중 성적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사례가 다수 발견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생을 살면서 유전자 검사를 받아볼 일이 거의 없다. 클라인펠터 증후군 역시 고환이 작고 체모가 없다는 것 외에는 외관적 이상증상이 적기 때문에 증상을 알지 못한 체 평생을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성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클라인펠터 증후군 중 일부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뒤늦게 XXY염색체 조합을 알고 오히려 성정체성의 혼란을 편안하게 받아들여 안정감을 찾기도 한다.

성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클라인펠터 증후군의 사례는 인간을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신념에 다시 혼란을 주었다. 그들은 자신의 생물학적 성이 아닌 다른 성에 대한 정체성을 가진 이른바 성전환증을 정신병이라 주장했다. 인간을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하고 이 범주에서 벗어나는 이들은 정신질환자로 치부하여 남성과 여성이라는 범주 내에 억지로 위치시켜 예외를 부정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클라인펠터 증후군의 여성으로써의 정체성은 그들의 주장에 따른 때 여성인 XX(Y)염색체의 존재에 의해 정신병이라고만 몰아붙일 수는 없었다.

인간을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가지 성으로 구분할 수 있다는 강력한 환상은 의학의 발달을 통해 XX, XY 염색체 구성이 발견되면서 과학적 환상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X(터너 증후군)와 XXY(클라인펠터 증후군)가 발견되면서 과학적 환상 또한 입지를 위협받았다. 흑조(black Swan)가 단 한 마리라도 존재한다면 모든 고니는 백조(white Swan)라는 정의는 깨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Y염색체의 존재와 외부생식기라는 어설픈 과학적 변명은 폐기되어야 할 남성과 여성이라는 환상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성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클라인펠터 증후군 사례를 통해 Y염색체와 남성의 외부 생식기를 가지고 있음에도 남성이라 정의하기 어려운 흑조가 나타났다. 이들은 남성임에도 여성의 정체성을 가진 정신병자로 몰아 남성의 범주에 넣을 수도 없었다.

더 이상 모든 고니가 하얀색이라 주장하기 어려워졌다. 외적 특성과 유전적 구성을 통해 남·녀를 구분할 수 없다면 성전환증의 존재를 받아들여야 했다. 더 이상 인간을 남성과 여성만으로 구분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인류와 함께 언제나 존재해온 그러나 단 한 번도 존재로써 인정받지 못한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3의 성이 드디어 존재로써 인정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XX 염색체를 보유한 여성들과 XY 염색체를 보유한 남성들은 고집스럽게도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클라인펠터 증후군이 보고된 것은 1942년이다. 과학적으로 남성과 여성을 구분할 수 있다는 환상이 깨진지 반세기가 훌쩍 넘은 것이다. 그럼에도 어떠한 과학적 근거도 없는 양성(남·여)이라는 환상은 아직까지 우리사회를 강하게 지배하고 있다. 헌법 제36조 제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한다고 규정한다. 성에 따른 불평등의 거부는 환영할 일이지만 성을 양성(남·여)로 구분 짓는 것에는 큰 문제가 있다. 남도 여도 아닌 제3의 성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헌법 제36조 제1항의 양성은 성을 남과 여, 이분법으로 구분한다는 것을 넘어 더 큰 문제를 가지고 있다. 양성을 혼인과 연계시켰기 때문이다. 헌법이 혼인과 가족구성은 양성에 따라야 한다고 규정함으로써 한국에서 동성 커플의 결혼은 당연히 인정받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2013년 9월 7일 영화감독 김조광수는 사업가인 김승환과 결혼식을 올렸다. 그런데 이들은 둘다 남성이었다. 그들은 결혼식을 올린 후 담당 구청에 찾아가 혼인신고를 하려 했다. 구청은 이들의 혼인신고를 받아주지 않았다. 판례에 따라 동성의 결혼은 불가하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구청장의 처분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 역시 소를 각하했다(서울서부지방법원 2016. 5. 25. 선고 2014호파1842 판결).

사람들은 저마다 성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리고 자신의 성정체성을 가장 잘 아는 이는 바로 자신이다. 내가 나를 남성 또는 여성이라고 생각하는데 타인에 의해 여성 또는 남성으로 규정된다면 그것은 존재를 부정당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사회적으로 남성 또는 여성으로 규정되었으나 여성 또는 남성의 성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이들의 존재를 부정해 왔다. 심지어 헌법까지 모든 사람을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 짓는 양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그들의 존재를 부정했다. 성별에 따른 평등을 추구한다며 오히려 제3의 성을 부정해버린 것이다. 존재의 부정은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잔인한 폭력이다.

성적욕망 또한 마찬가지다. 남자라고 꼭 여자를, 여자라고 꼭 남자를 성적으로 욕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남자가 남자를, 여자가 여자를 성적으로 욕망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든 여자가 여자를 사랑하든 이 역시 타인이 간섭할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사랑마저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심지어 군대에서는 남자가 남자를, 여자가 여자를 사랑하기 위해 형사처벌까지 감수해야한다.

헌법 제1조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선언한다. 국민이 주권자이기에 헌법은 국민을 거역할 수 없다. 그런데 현재 우리 헌법은 주권자인 국민 중 일부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 헌법이 스스로 헌법을 위반하는 것이다. 주권자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개인의 성과 사랑을 국가가 통제하겠다는 발상은 쉽게 납득할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광민 변호사는 부천시 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성소수자, #성전환 , #동성애,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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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사무소 사람사이 대표 변호사다. 민변 부천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경기도 의회 의원(부천5, 교육행정위원회)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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